- 장안(長安)으로의 천도(遷都) -
싸움이 일단 중지되자 원소(袁紹)는 모든 제후(諸侯)들을 위해 승리(勝利) 축하연(祝賀宴)을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원소(袁紹)는,
"참으로 통쾌(痛快)한 승리(勝利)였소. 무엇보다도 적의 대장군 여포(呂布)가 우리의 장비(張飛)와 관우(關羽)라는 보궁수(步弓守)와 마궁수(馬弓守) 같은 졸병을 못 당하고 쫓겨갔으니 이제야말로 우리가 의병(義兵)을 일으킨 보람이 있는 것 같구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좌중에서는,
"한 가지 여포(呂布)의 목을 놓친 게 아깝긴 하지만 말이오."라는 대꾸조차 들려왔다.
그때, 홀연히 나타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사수관(汜水關) 싸움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손견(孫堅)이었다.
"오, 손견(孫堅)
장군(將軍). 무사(無事)하셨군요."
"지금 승리의 술잔을 나누던 중이었소. 이리 앉으시오."
좌중(座中)에서는 불현듯 나타난 손견을 보자 한 마디씩을 건넸는데 갑옷이 헤지고 뜯어진 손견(孫堅)은 아랑곳이 살기등등(殺氣騰騰)한 채 좌중을 향해 이렇게 일갈(一喝)하는 것이었다.
"그 전에 원술(袁術) 장군(將軍)에게 물어 보고 싶은 말이 있소이다."
그러자 원술(袁術)이 겸연쩍은 얼굴로,
"나한테?"
"그렇소, 당신(當身)은 나와 무슨 원수(怨讐)를 졌다고 사수관(汜水關) 싸움에 우리에게 군량(軍糧)을 보내주지 않았던 거요? 그 이유(理由)를 듣고 싶소. 그 때문에 우리 병사들은 싸울 기력(氣力)을 잃고 맥없이 죽어갔소. 대답(對答) 여하(如何)에 따라 나는 원술(袁術) 장군 당신을 벨 수도 있소."
원술(袁術)은 그 소리를 듣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袁術다.
"손 장군(孫將軍)! 내가 그만 참소(讒訴)하는 놈의 말을 잘못 듣고 큰 실수(失手)를 하였소. 지금 당장 그놈의 목을 베어 올 테니 장군께서는 용서를(容恕) 해 주시기 바라오."
그리고 원술(袁術)은 밖에 나가 휘하 장졸에게 무언가 명령하더니 잠시 후 참소(讒訴)한 놈의 목을 베어 가지고 들어와 손견(孫堅)에게 재삼 용서를 비는 것이었다.
그러자 손견(孫堅)은 더 이상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축하연(祝賀宴)에서 본진으로 총총히 돌아온 손견(孫堅)에게는 뜻하지 않은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동탁(董卓)의 심복(心腹) 부하(部下)인 이유(李儒)였다.
"대체 당신은 무슨 용무(用務)로 나를 만나러 왔소?" 손견(孫堅)이 괴이(怪異)해서 묻자 이유(李儒)는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조아린다.
"동 승상(董丞相)께서는 평소부터 손 장군(孫將軍)을 존경하고 계셨습니다. 그리하여 승상(丞相) 댁 (宅) 따님과 손 장군(孫將軍)님의 아드님이 백년가약을 맺어 깊은 인연을 가지고 싶어 하시는데 장군님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손견(孫堅)은 그 말을 듣자 크게 화를 냈다.
"동탁(董卓)이란 놈이 역천무도(逆天無道)하여 내가 그놈의 구족(九族)을 멸하려는 터인데 역적(逆賊) 놈과 사돈(査頓)을 맺다니 말이 되느냐? 내, 너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니 곧 돌아가서 동탁에게 내가 곧 목을 자르러 갈 것이라고 전하라!"
이유(李儒)는 도망치듯 돌아와 동탁(董卓)에게 사실대로 고했다. 동탁은 그 소리를 듣고 크게 화를 내며 물었다.
"그러면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나?"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제가 살펴 본 역도(逆徒)의 세력(勢力)이 우리보다 월등(越等)히 우세(優勢)합니다. 따라서 낙양(洛陽)을 지키기가 매우 어려울 듯하오니 일시(一時) 장안(長安)으로 천도(遷都)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엇? 천도(遷都)를 하자고?"
"그렇습니다. 호뢰관(虎牢關)에서 여포(呂布)가 크게 패한 뒤로는 군사들의 사기(士氣)가 크게 꺾였습니다. 그러니 일시 천자(天子)를 장안(長安)으로 모시고 싸움을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게다가 요즘 거리에는 이상한 노래가 떠돌고 있습니다."
"그래? 도대체 무슨 노래이기에 그러는가?"
서쪽 우두머리도 한낱 사내요,
동쪽 우두머리도 한낱 사내다.
사슴이 달려서 장안으로 들어가면,
이런 어려움은 없게 되리라.
이유(李儒)는 동탁에게 저잣거리에 떠도는 노랫말을 말한 뒤에,
"서쪽 우두머리란 고조(高祖)께서 장안(長安_)에 도읍(都邑)하시어 십이 대(代)를 누린 세월을 뜻한 것이고, 동쪽 우두머리란 광무(光武)께서 낙양(洛陽)에 도읍(都邑)하시어 오늘 십이 대에 이른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장안으로 천도(遷都)를 하신다면 승상께서 틀림없이 영화를 누리시게 되실 것이옵니다."
동탁은 그 말을 듣고 나서 크게 기뻐하였다.
"음, 그럴듯한 얘기군 그러면 도읍(都邑)을 장안(長安)으로 옮기게 회군령(回軍令)을 내려라!"
조정(朝廷)에서는 동탁(董卓)이 장안(長安)으로의 천도(遷都)를 결정(決定)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랐다.
그리하여 만조백관(滿朝百官)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도 양표(司徒 楊彪)가 동탁(董卓)에게 이렇게 반대(反對)하였다.
"승상(丞相)! 새로운 천자(天子)가 즉위(卽位) 하신지 얼마 되지 않아 민심이 아직도 분분한 이때에 종묘(宗廟)를 버리고 도성(都城)을 옮기시면 민심(民心)이 크게 동요(動搖)할 것이니 이 일은 신중(愼重)하게 결정(決定)하셔야 합니다."
동탁(董卓)은 그 소리에 크게 화를 낸다.
"네가 뉘 앞에서 국가의 백년대계를 막으려 하느냐!"
그러자 이번에는 태위 황완(太尉 黃琬)이 말한다.
"양 사도(楊司徒) 의 말씀이 옳소이다. 낙양을 버리고 황폐한 장안으로 떠나오면 민심이 크게 흉흉해지옵니다."
"닥쳐라! 국가 대계에 민심이 무슨 걱정이냐!" 동탁이 크게 성을 내며 고함을 질러댔다.
"아니올시다. 백성이 없고서야 무슨 국가라 할 것입니까?" 이번에는 사도 순상(司徒 筍爽)이 말하였다.
"모두들 닥쳐라!... 여봐라! 저 세 놈의 벼슬을 당장 빼앗고 내 쫓아라!" 동탁(董卓)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수레에 올라탔다.
그러자 수레 옆으로 상서 주비(尙書 周毖)가 읍하고 달려든다.
"무슨 일이냐?"
"승상께서 장안으로 천도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그 일이 옳지 못함을 아뢰러 왔습니다."
"무엇이? 내가 네놈들의 말을 듣고 원소란 놈을 살려 두었다가 오늘날 이 꼴이 되었는지 아느냐? 네놈은 도저히 용서치 못하노라!" 동탁(董卓)은 호위병의 칼을 빼앗아 그 자리에서 주비를 향해 세로로 그어버렸다.
이튿날, 드디어 천도령이 내려졌다.
"이유(李儒)!"
"넷!"
"떠날 준비는 다 되었는가?"
"지금 관아마다 준비분망이옵니다."
"비용은 넉넉한가?"
"비용은 넉넉지 못하오나 부자 놈들을 군대로 뽑아 들이고 그네들의 돈을 모조리 거두어들이면 어떨까 하옵니다."
"그대 생각대로 하라 !"
이리하여 부자들을 군대로 뽑아 온 뒤에 재물을 빼앗고 그들의 가족들은 장안으로 강제 이주를 시켰다. 무지막지한 병사들은 어린아이나 부녀자들을 짐승 모양으로 장안으로 끌고 갔던 것이었다.
낙양
동탁(董卓) 일행도 그날로 길을 떠났다.
동탁은 낙양을 떠남과 동시에 모든 궁전과 관아에 불을 지르게 하였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장차 공격해 올 회맹 연합군에 대한 초토화 전술(焦土化戰術) 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동탁은 여포를 시켜서 선황(先皇)들의 무덤을 파헤쳐 그 속에 들어있는 부장품(副葬品)을 꺼내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거두어들인 황금과 보물을 실은 수십 대의 수레는 동탁의 행차 뒤에 따르게 하였으니 동탁이 저지른 죄악은 실로 말로 다 헤아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낙양
삼국지 - 44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