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아들에게서 e티켓이 왔다.
"요즘 호평받는 연극이 있어요. 연말에 두 분 생각이 나서 티켓을 보내드립니다. 재미있게 관람하시고 멋진 데이트 하세요" 라고 했다.
아들 커플이 함께 준비한 세모 선물이었다.
마음이 찡했다.
"직장생활에, 내년 봄에 있을 결혼준비에, 연말연시 각종 행사에 지들 사는 것도 바쁠 텐데 이런 생각까지 해주다니"
고마웠다.
퇴근 무렵, 혜화역에서 아내와 만나 맛있는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후식으로 커피까지 마셨다.
공연은 오후 7시 30분이라 카페를 나와 대학로를 거닐었다.
청춘기 때 그곳에서 가끔씩 데이트를 하곤 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가보니 그 때 그 정감들이 몽글몽글 샘솟았다.
푸근하고 따뜻한 서정이 뚝뚝 떨어졌다.
'사랑해 엄마'란 작품이었다.
줄거리는 심플했다.
또한 극의 흐름을 누구나 다 예측할 수 있을 만큼 진행과 전개는 간결했다.
하지만 중간 중간에 감성을 자극하는 임팩트가 강렬했다.
어느 순간엔 폭소가 터졌고, 어느 땐 눈물이 줄줄 흘렀다.
코미디언이자 다재다능한 연애인, '조혜련'이 연출했다.
그리고 본인이 주인공으로 열연했다.
남편 없이 홀로 노점 생선장수를 하면서 아들을 키웠다.
평생을 헌신한 대한민국의 엄마들 모습이 그대로 묻어났다.
하나밖에 없는 철없는 아들.
엄마를 사랑하고 좋아 하지만 표현에 너무 서툰 청년이었다.
소싯적 내 모습이 투영되는 것 같았다.
한없는 희생 그리고 말년에 몹쓸 병마와 싸우는 엄마.
그 애틋한 모정이 질펀하게 흘렀다.
비로 그 대목에서 관객들은 저마다 손수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절절했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강력한 최루 가스였다.
소리 없이 흐느끼는 관객들도 있었다.
관객들 중 팔,구할이 여성들이었다.
특히 모녀가 함께 온 경우가 많았다.
그 분들에겐 공감대가 더 크고 깊었을 게다.
공연을 보고 나오면 거의 백프로 자신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나도 전철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렸다.
부모의 가없는 희생과 사랑이 없었다면 과연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나 있었을까.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가뜩이나 비상계엄 정국에 혼란스럽고 드라이한 일상에 촉촉한 눈물과 훈훈한 감성을 선물 받은 것 같아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잖아도 어젯밤 수도권엔 간간이 보슬비가 흩날렸다.
전철 안에서 우리 가족 밴드에 공연 사진과 간단한 감상평 그리고 감동의 편린을 짧게 올렸다.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주어 고맙다"고 했다.
자녀들도 댓글로 부모의 멋진 데이트에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12월 5일 밤이 흐뭇함과 감사함으로 깊어 가고 있었다.
낙엽이 뒹구는 고즈넉한 대학로.
작은 소극장이 선사하는 감흥과 눈물 그리고 해학과 익살을 바로 눈 앞에서 진하게 느껴보시길 권한다.
이 아득하고 혼란한 24년의 세모에 한번쯤은 대학로 나들이를 추진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벌써 금요일이다.
한 주가 훅 갔다.
행복하고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빈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