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 가는 길
이재부
흰 구름이 땅에 내려앉은 듯 밤꽃이 산을 덮었다. 물큰! 물씬! 풍겨오는 밤꽃향기가 후각을 넘어 심경을 자극한다. 이것저것 골라서 선택할 여절이 없는지 꽃들이 뒤엉켰다. 꽃을 피우고 지는 자연의 질서가 있을 테지만 한통속하얀 파도가 밀려오는 듯, 백운(白雲) 몽설(夢泄)의 환상이다. 대단위 밤나무 단지가 연속 된다. 밤꽃이 만발한 광경을 보며 왜 백색 나신(裸身)이 득실대는 해변이 생각날까. 환한 태양의 조명이 백사장을 연상(聯想)시키는 햇빛 반사의 분위기 탓이리.
자연을 점령하여 이익을 창출하려는 사람의 집념이 대단하다. 온 산들이 밤나무 밭이다. 알밤이 떨어지는 가을의 정경도 상상해본다. 어우러진 꽃들의 군집 속에 “잘살아보세” 옛 새마을 운동의 의지도 보이고, 꽃과 벌‧나비들, 교분의 밀담도 들릴 것 같다.
꽃들의 신방을 차려주고 꿀과 꽃가루를 퍼 나르는 벌들의 날갯짓도 분주하다. 꿀 따는 호시절이다. 돈 버는 기회를 잡은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리오. 시간이 없단다. 사랑할 대상을 모두 사랑하라. 펼쳐지는 대로 가까이 다가가, 있는 그대로 즐기며 살라. 삶의 순간이 헛되지 않게 원근을 가리지 말고 시야를 넓혀라. 어우렁더우렁 함께 어울려 환희의 세상을 만들라한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밤꽃세상을 바라보며 꿀을 따는 벌과 나비의 숨찬 강연을 듣고 있다. 그들은 왜, 작은 떨림도 빼지 않고 알밤을 잉태시키는 양‧음의 외설을 숨기지 않는지. 꾸밈없는 흰 밤꽃, 내면의 순수성이 또 다른 유혹이다.
명승지 마곡사에 찾아가 헝클어진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나를 바르게 보는 정견(正見)의 가피를 입으려 했는데, 밤꽃향기에 취해 마음이 흔들린다. 청춘의 불씨가 아직도 남았는지 엉뚱한 상상에 빠져 진한 음담을 버리지 못한다. 연때가 맞춰진 탓인가. 마곡사 가는 길 양편 산야에는 밤꽃 유혹이 절정이요, 그 향기 또한 성세(盛世)이다. 공주엔 밤이 유명하다하는데 그 중에도 증안면이 중심인가보다.
밤꽃 냄새가 남성들 유정(遺精)의 향기와 비슷하단다. 꽃들의 향기나, 동물들의 암내가 다 이성(異性)을 유혹하는 번식의 수단이 아닐까. 사람도 이성(理性)과 지성의 문화가 없다면 체취를 번식의 수단으로 삼았으리라.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들의 대부분이 그러하지 않던가. 도경에 올라선 스님들이 성직을 수행하는 성지를 찾아가면서도 중생의 마음, 세속의 길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종족 보존이 위대한 생명의 길이거니 창조주가 부여한 본능의 현상을 어찌 부정하리요. 마곡사를 찾아가는 경건한 대로는 어디란 말인가. 인의의 길이 사람의 수와 같으니 누구에게 물어볼까. 이리로 가면 선계이고, 저리로 가면 속계인가. 양심의 길이 마음길이니 꽃그늘에서 쉬어갈까. 선악이 동전의 양면 같다하니 그 경계는 어디일까. 일주문, 금강문, 불이문 같은 불가 3문이 경계일까. 마곡사를 찾아가며 밤꽃 향기 속에서 바르게 사는 길을 묻는다.
(2015년 6월 16일 마곡사를 다녀와서)
첫댓글 안녕하세요. 선생님.~~^^ 날씨가 무덥습니다. 건강 하시지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선생님 글은 언제나 신선하여 읽기 편안합니다. 잘 읽었어요. 많이 배우고 나 갑니다.
졸문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밤꽃향기가 물씬 나는것 같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마곡사 더러 가 보았지만 일곡 작가님 글 읽어보니 새로운 맛이 납니다.
그 사찰 다시 한번 가고싶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