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소개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태어나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1987년 시집 『매장시편』을 펴낸 이래 시와 산문, 비평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그간 시집 『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 『운주사 가는 길』 『벽을 문으로』 『처음 사랑을 느꼈다』 『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길은 한사코 길을 그리워한다』 『누군가 간절히 나를 부를 때』, 시론집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 시 해설집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 산문집 『들키고 싶은 비밀』, 번역시집 『어느 침묵하는 영혼의 책』, 시화집 『내 애인은 왼손잡이』 등을 펴낸 바 있다.
청년기에 지울 수 없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시’를 구원의 동반자로 삼아 간난신고(艱難辛苦)의 한 세상을 견뎌왔다. 특히 그 과정에서 김수영과 김지하 시세계와의 만남을 가장 큰 축복이자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지방지 기자를 거쳐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가르쳐왔으며, 세계의 모순과 삶의 역설과의 소통 내지 대화를 바탕으로 한 ‘생성 미학’의 정립을 최종 목표와 이상으로 삼고 이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 시인의 말 중에서
스무 해 만에 펴내는 나의 두 번째 산문집 『시는 기도다』는 분명 시와 산문 사이에서 어중간한 포즈를 취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사유를 전개하고 담론을 이끌어가는 주요 논거와 사변이 자주 시와 시인들의 말로 의지함으로써 저도 모르게 현실을 객관적으로 탐구하면서 매서운 비판을 가하는 산문 정신 대신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에 더 주목하는 일종의 시론(詩論)에 가까워진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다. 하지만 내게 시는 분명 어떤 ‘겉사실’의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속사실’의 대상이다. 특히 올바른 시가 단순히 현상의 사건이 아니라 가장 깊은 심연의 언어를 그 근본으로 하고 있다면, 표면적인 형태와 그 접근 방법이 다를 뿐 시 정신이야말로 산문 정신이 지향하는 사유 체계와 비판 정신의 정수다.
젊은 시절, 나에게 하나의 길잡이이자 일종의 경전이었던 김수영의 『퓨리턴의 초상』과 『시여, 침을 뱉어라』 등에 실려 있던 산문들과 시의 관계가 그 좋은 예다. 내심 나의 문학적 스승으로 삼아왔던 김수영의 말처럼 주로 개인적 자유에 관계하는 시 정신과 정치적 자유를 이행하는 산문 정신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밀고 나갈 때, 어느새 시와 산문은 서로의 차이와 대립을 끌어안으며 역동적인 통일을 이룬다. 얼핏 대립적으로 보이는 주관과 객관, 사유와 존재, 형식과 내용 사이의 끊임없는 운동과 ‘모험’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문득 그 차이를 넘어서게 하는 ‘기적’을 낳는다.
■ 산문집 속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나무들’은 이런 시인들의 표상이다. 모든 ‘나무들’이 오직 제 양심의 흐름과 불가역적인 그 명령에 복종하는 고독한 시인처럼 각기 서 있는 그곳이 바로 생명 유지의 작업장이자 침실이며 기도실이다. 스스로를 지탱하는 뿌리를 땅속 깊은 곳의 세계 중심에 둔 채 하늘과 영원을 향해 가지를 뻗어가는 ‘나무들’은, 자유로운 구속 속에서 최고의 필연성을 추구하는 시인들을 닮아 있다. 특히 그것들은 근원적으로 무릎을 땅에 꿇고 두 팔을 위로 치켜든 채 기도하는 기도자와 닮아 있다. 평생 세상과 스스로 담을 쌓은 채 살아가는 봉쇄수도원 수사들처럼 고결한 정신의 시인들을 연상시키는 게 한 그루 나무다.
(「시가 터져 나오는 자리」, 19쪽)
― 출판사 책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