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교회의 의장 선빈 주교
(기사 출처 = UCANEWS)
중국이 또다시 교종청(교황청)과의 합의를 어기고 교종청의 승인 없이 주교를 임명했다.
마테오 브루니 교종청 공보실장은 4일 짧은 성명을 내고 “교종청은 중국 당국이 하이먼 교구의 선빈 주교를 상하이 교구로 전보시키기로 했다는 것을 며칠 전 통보받았으며, 언론 보도를 통해 오늘 아침 착좌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당분간, 저로서는 이 일에 대한 교종청의 입장에 대해 말할 것이 없다.”
중국은 1950년대 이후 외세 간섭 배제를 이유로 교종에 의한 주교 임명을 거부하고, 주교를 독자적으로 선출해 왔다. 그러나 양측은 지난 2018년 교종청과 잠정 합의를 맺어 그간 불법 서품된 주교들을 교종청이 인정하는 한편 앞으로는 양자 사이에 합의된 이를 주교로 임명하기로 했다. 이 합의는 2년 단위로, 2020년과 2022년에도 갱신 연장됐다.
중국은 시진핑이 장기 집권체제를 구축하면서 그의 민족주의적 방침에 따라 모든 종교의 “중국화”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2022년 11월, 합의가 갱신된 지 겨우 한 달 만에 교종청은 공개적으로 유감 성명을 내고, 중국 정부가 유장 교구의 펑웨이자오 주교를 장시 교구의 보좌주교로 착좌시킨 것은 “(장시 교구가) 교종청에 의해 인정되지 않은 교구”라고 지적했다.
중국 교회는 1946년에 교계제도가 설정됐지만, 1950년대에 중국천주교애국회가 교회를 장악하면서 주교 임명은 물론 교구 설정 등도 독자적으로 진행해 왔고, 교종청의 의사와 상관없이 기존 교구를 통폐합하거나 새 교구를 만들어 왔다.
중국 정부가 승인한 중국 천주교주교회의는 선빈 주교의 착좌식이 4일 열렸다고 확인했다.
주교회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착좌식은 베이징교구의 리산 대주교가 주례했고 연설했다.
착좌식에는 교구 사제와 중국천주교애국회 지도자 등 200명가량이 참석했다.
선빈 주교는 주교회의 의장이며, 2022년 8월 열린 제10차 중국천주교 전국대표회의에서 선출됐다.
착좌식 뒤, 선빈 주교는 자신은 상하이 교구에서의 훌륭한 애국주의 전통과 가톨릭교회의 사랑을 계속 실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국 천주교회의 “독립과 자치 원칙”, 그리고 “중국 천주교회에 대한 국가의 지도”를 따를 것이라고 다짐했다.
새로 상하이 주교로 착좌한 선빈 주교. (사진 출처 = 아시아가톨릭뉴스 자료사진)
2018년, 프란치스코 교종은 9월 22일 발표한 합의로 “우리가 바라는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고, 모든 중국 가톨릭 신자 간의 온전한 일치를 회복하며, 더 큰 형제적 협력의 단계로 이어져,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수행하려는 우리의 다짐을 새로이 하는 전례 없는 새 과정”이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즉, 중국과의 합의는 중국에서 지하 교회와 공식 교회로 분열된 상태를 종식하고 중국에서의 복음화 활동의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다.
상하이 교구는 애국회 문제로 갈라진 중국 천주교회에서 교종에게 충성하는 지하 교회의 상징이자 또한 정부가 승인한 공식 교회와의 접점으로 지난 수십 년간 중국 교회에서 가장 초점에 있는 교구다.
상하이 교구의 (교종청 기준 교구장인) 마다친 주교는 애국회에 가입한 사제로서 2012년 상하이 보좌주교로 서품됐는데, 서품식이 끝나자 바로 그 자리에서 애국회 탈퇴를 발표해 충격을 일으켰다. 직후 그는 연금됐으나 2014년 교구장인 판중량 주교(2000-14)가 사망하자 교종청은 그를 상하이 주교로 임명했다. 마 주교는 1985년에 교종청 승인 없이 상하이 보좌주교로 서품됐다가 1988년에 교구장이 된 진루센 주교(예수회, 교종청 기준으로는 2005년에 교구장서리 주교로 승인)에 의해 후계자로 키워졌다.
이에 앞서 상하이 교구장이던 궁핀메이 추기경(1950-2000)은 1955년에 체포돼 1960년에 반혁명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986년에 석방돼 가택 연금됐다가 1988년에 해외 출국이 허용됐다. 교종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에 그를 “가슴에 품은 추기경”(cardinal in pectore, 비밀 추기경)으로 임명했는데 본인에게는 1988년 그가 바티칸에 와서 알현할 때 그 사실을 알렸으며, 1991년에야 공식 발표했다. 진루셴 주교도 1955년에 궁핀메이 주교 사건 때 수백 명 사제와 더불어 체포된 적이 있다.
교종청은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된 뒤 대사관을 국민당 정권의 자유중국 정부가 있는 타이완의 타이베이로 옮겼다. 현재 교종청은 유럽 국가로서는 (본토의) 중국이 아니라 타이완과 국교를 맺고 있는 유일한 국가다.
중국의 가톨릭교회는 대륙 본토가 공산화된 뒤 1950년대에 교종의 승인을 거부하고 스스로 주교를 선출하는 애국교회 운동이 벌어지면서, 이에 참여한 공식 교회와 이를 거부하고 교종에게 충성을 다짐한 지하 교회로 갈라져 있다. 한 교구에 공식 교회와 지하 교회 주교가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도 많았다.
교종 비오 12세는 1958년에 애국회에 참여해 교종의 승인 없이 다른 주교를 서품하는 주교는 파문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1980년대 요한 바오로 2세 교종 이후로 이 정책은 서서히 변해, 지난 2018년의 잠정 합의 직전에는 공식 교회 주교들 대부분도 주교 서품 이후에 따로 교종청의 사후 승인을 받아 합법이었고, 교종청 승인을 받아 지하 교회 주교가 된 뒤에 공식 교회에 참여한 이들도 있었다.
현재 “자치”를 내세운 중국 정부가 공인한 공식 교회는 한 교구의 사제, 수도자, 평신도 대표가 모인 천주교대표회의에서 새 주교를 선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사실상 정부가 임명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즉 중국 교회는 형식상, (공식 교회 권위를 가진) 중국 주교회의, (인사행정권을 가진) 천주교 전국대표회의, 천주교 애국회 등 3개 기관이 통치한다. 애국회는 중국공산당 통일전선부가 사실상 관리하며 개별 가입이다.
기사 원문: https://www.ucanews.com/news/china-installs-another-bishop-without-vatican-approval/100899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