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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의 기도
삿 13:8-14
8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
9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여인이 밭에 앉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였으나 그의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10 여인이 급히 달려가서 그의 남편에게 알리어 이르되 보소서 전일에 내게 오셨던 그 사람이 내게 나타났나이다 하매
11 마노아가 일어나 아내를 따라가서 그 사람에게 이르러 그에게 묻되 당신이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그 사람이니이까 하니 이르되 내가 그로다 하니라
12 마노아가 이르되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13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14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고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하니라
삿 13:8-14 / 이 말을 듣고 마노아는 여호와께 기도를 올렸다. `주님, 어찌해야 할지 몰라 이렇게 주께 빕니다. 주께서 저희에게 보내 주셨던 사람을 다시 한 번만 보내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를 통하여 태어나게 하실 그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십시오' 9) 그러자 하나님께서 마노아의 기도를 들으셨다. 마노아의 아내가 밭에 앉아 있을 때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그에게 다시 나타났다. 이때 마노아는 없었고 그 아내만 혼자 있었다. 10) 마노아의 아내는 급히 남편에게 뛰어가 말하였다. `여보, 어서 이리 나와 보세요. 전에 나를 찾아오셨던 그분이 또 오셨어요! 어서요!' 11) 뒤따라온 마노아가 아내를 그 사람에게 `어르신께서 전에 이 사람에게 말씀하셨던 그분이신가요?' 하고 묻자 그가 `그렇다' 하고 대답하였다. 12) 그래서 마노아는 다시 그에게 `어르신께서 전에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 아이가 태어나면 우리가 그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일은 하지 말아야 할까요?' 하고 물었다. 13)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대답하였다. `내가 이미 네 아내에게 다 말해 준 그대로이다. 14) 포도나무에 열리는 포도송이를 따먹어서도 안되며, 또한 포도주뿐만 아니라 독주를 마셔도 안 된다. 더구나 부정한 음식은 일절 입에 대지 말아야 한다.'
마노아는 태어날 아이에게 어떻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인지 가르쳐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임해 태교의 중요성과 나실인의 규례를 지키도록 다시 이야기해 주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노아(8)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가 자신의 아내에게 나타나 나실인을 임신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마노아의 신앙이 얼마나 돈독한지 볼 수 있습니다. 마노아는 의심하지 않았고 오히려 낳을 아이에 대해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묻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내가 만났던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 나서지 않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합니다. 마노아의 간절한 기도의 모습과 신앙의 일면을 볼 수 있습니다.
마노아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9-11) 마노아의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찾아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노아는 없었기에 그의 아내가 마노아를 찾아가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다고 이야기합니다. 마노아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사람에게 그 사람인지 확인을 합니다. 이것은 마노아가 의심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양육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침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그 하나님의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대답해 줍니다.
다시 알려주는 하나님의 사람(12-14) 마노아는 여호와의 사자에게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어떻게 그 아이에게 행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봅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는 전에 알려주었던 것을 이야기해주며 아기를 낳을 마노아의 부인의 행실을 조심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줍니다. 그러면서 명령한 것은 다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먼저는 그 아이가 아닌 그 아이를 품을 어머니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준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가 나실인인 이상 어머니 또한 똑같이 나실인과 같은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자녀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적용: 마노아는 하나님께 자신이 할 일을 가르쳐달라고 물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께 물어보고 그 답을 통해 순종하고 계신가요?
교육의 아버지 '페스탈로찌'는 자녀에게 있어서 최초의 교사는 부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어떤 영적인 관심, 어떤 신앙교육의 관심에 의해서 양육되느냐에 따라서 그 아이의 인격, 삶의 칼라와 방향이 달라집니다.
< 설 교 >
자녀 어떻게 기를까요?
사사기 13:8-14 / 이동아목사
한 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벌이었던 이병철씨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다른 것은 다 마음대로 되었는데 두 가지만은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니, 하나는 골프이고 또 하나는 자식이더라는 것입니다. 또 예로부터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농사는 자식농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듯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녀교육입니다. 그래서 다른 일에는 성공한 분들도 이 자녀교육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들이 자녀문제로 임기동안 홍역을 치렀던 경험을 하였습니다.
세계적인 발명가인 에디슨의 아들인 토머스 2세라는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는 기계와 감기를 낫게 하는 기계를 발명했다고 허풍을 떨며 다니다가 아버지 에디슨에 의해 경찰에 고발당하기도 했습니다.
비폭력의 영웅 인도의 간디에게도 엉덩이에 뿔난 것과 같은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이 할리라르라고 합니다. 허가받지 않은 과일 가게를 하다가 잡히기도 하고 남의 돈을 훔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변호사로 보다 엄한 중형을 내릴 것으로 주장한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말년에는 아버지인 간디가 죽을 무렵에는 알코올 중독과 여색으로 빠져 요양소를 전전하다가 이슬람교로까지 개종을 해서 아버지의 속을 무던히 썩이다가 장례식장에 나타났는데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오늘 읽은 구약의 말씀 사사기 13장에 보면 마노아의 가정에는 오랫동안 자녀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마노아의 아내에게 아들을 낳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40년 동안 블레셋의 손에 붙이심으로 그 백성들이 큰 고통중에 있을 때 단 지파가운데 '마노아'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잉태치 못하여 생산의 문이 닫혀있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호와의 사자가 그녀에게 나타나 수태를 고지하며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때 남편 마노아는 하나님께 '우리가 낳을 그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가르쳐달라'고 간구합니다. 마노아는 자식이 생기는 기쁨보다 그 자식을 어떻게 기르고, 가르치며 행하여야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게 여겨져 자녀교육방법을 질문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오늘날처럼 자녀교육이 어려운 시대가 없다고 합니다. 마노아의 질문은 자녀들을 가진 모든 부모들이 날마다 하나님 앞에 물어야할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 니다 따라서 지금은 우리 모두도 내게 주신 자녀들을 '어떻게 기를까'라는 마노아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1)기도하는 부모되어야 합니다.
자녀를 얻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마노아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삿13:8)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의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임하게 하사 그로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 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여러분 마노아 처럼 기도해 본적이 있습니까? 태어나기도 전에 기도하였습니다. 주실 아이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부모의 기도는 강조할 수록 좋은 것 같습니다.
패륜아의 길을 걷는 아들을 위한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어린 기도가 "성 어거스틴"을 길러내 었습니다. 마노아의 아들 삼손도 한때 방탕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마지막에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들어낸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아직도 자녀교육에 대해 후회하고 실망하시는 분계십니까? "기도 할 수 있는데 왜 실망하십니까? 염려하십니까? 찬송을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노아의 기도는 자녀를 기르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삿13:12) "마노아가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 어떻게? 교육방법을? 부모역할을 묻고 있습니다. 마노아가 기도한 내용은 이 땅에 사는 모든 부모들의 고민과 문제를 들고 기도하는 것 같습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 오늘 같이 교육의 현장이 흔들리고 있는데 주님께 기도가 필요합니다.
2)부모가 산대로 살아갑니다.
성경은 부모들에게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무릇 부정한 것을 마시지 말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배운데로 살지 않고 본데로 산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삿13:2-4)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더니(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4)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 4절에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 아내에게 이르기를"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 했습니다. 똑 바로 걸으라고 호통치기 전에 먼저 "똑 바로 걷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 미국 대통령이었던 존 F.케네디의 아버지는 양조장을 경영해서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술장사로 돈을 벌어 자식들을 모두 훌륭하게 교육시켰고 출세와 성공의 길을 달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과는 어떻습니까? 그 아들 중에 하나는 약물중독으로 중풍에 걸려 폐인이 되었고, 또 둘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고, 하나는 척추불구가 되고, 존 F.케네디는 대통령까지 되었지만 총에 암살 당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늙은 케네디 옹은 울면서 고백하기를 "내가 수십년 동안 술을 만들어 그 술을 마신 사람들의 가정을 파괴하며 사랑과 안정을 빼앗았더니 이제 그 보응을 받는 구나." 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사는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산대로 살아갑니다. 부모의 가르친 대로 살지 않습니다.
3)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으로 누려야 합니다.
태에서 나오기 전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삿13:5)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 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이 아이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고 말씀합니다.(삿13:7)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 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을 날까지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시 127편에 보면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자식은 내가 낳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본래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마음 내 뜻대로 기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방법대로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영화배우 남궁원 장로의 아들 홍종욱 군은 하버드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을 뿐 아니라 졸업할 때 3개의 상을 받는 수석의 영예를 얻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양춘자 집사가 밝힌 자녀교육 비결은 바로 '세상 과외공부 대신 성경 과외공부'였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방식대로 자녀를 양육했다는 것입니다.
서울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원종수 박사는 공부할 때 새벽기도와 말씀 읽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존귀하게 하신 것은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미국의 33대 대통령 트루먼은 퇴임후 고향인 미조리주에서 독서와 봉사로 여생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견학을 왔습니다. 어린학생들은 트루먼에게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 공부도 잘했고 지도력도 있었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트루먼은 대답하기를 "아니, 그 반대였지. 눈이 나빠 안경 없이는 볼 수 없었고 열등생이었으며 큰 소리에 벌벌 떠는 심약한 아이였단다."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이 되셨어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믿었단다. 그리고 부모님의 가르침을 좇아 늘 성경말씀을 읽고 기도를 했단다." 그렇습니다. 주님 앞에 쓰임 받고 그 이름이 존귀케 된 것은 오직 믿음, 오직 신앙인 것입니다.
4)하나님의 사람으로 길러야 합니다.
(13)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 가서(14)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서 내가 그에게 명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나실인/네개의 주요항목을 말씀하십니다.
(1)땅에 속한 누림/땅에 속한 누림과 즐거움을 멀리해야 합니다.
포도주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하십니다. 술마시지 말라는 것입니다.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다고 말씀합니다. 술은 육신의 쾌락을 쫒는 것입니다. (시104:15)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潤澤)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전10:19)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 은 범사에 응용되느니라" 즉 속한 누림이나 즐거움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쾌락을 쫒아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2)거역/그의 머리를 밀지 말아야 합니다.
머리를 민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위의 권위인 주님의 권위를 벗어버림을 의미합니다. (고전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 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고전11:6)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 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 주님의 머리되심에 복종하는 가운데 머물러야 합니다. 삼손도 이 사실을 부모로부터 배워 알고 있었습니다. (삿16:17) "삼손이 진정을 토하여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 하나님의 나실인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우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다시말하면 주님의 권세아래 주권을 인정하고 주께 맡기고 살아갈 때 비로소 주님의 능력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3)천연적인 애정/그 가장 가까운 친척인 혈족의 시체로도 더럽히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께 거룩하게 되도록 구별되어야 합니다.
심지어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더럽혀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천연적인 애정으로부터 나오는 사망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며 우리 자신을 거룩케 함 안에서 정결케 보존되어야 합니다.
4)사망을 이겨야 합니다./우리 곁에 있는 예기치 못한 사망을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곁에서 영적인 죽음의 악취를 느낄 때면 언제든지 빨리 도망쳐야 합니다.
에드워드 후버가 말하기를 오늘 교회에 나가지 않는 아이는 내일에 범죄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부모들은 반드시 자녀들을 교회학교에 데리고 나오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주일학교 교육과 주일성수 신앙은 기독교 교육에서 예배가 가장 큰 교육입니다. 4살된 아이를 둔 어머니가 있었는데 그 아이 밥 먹이고 옷 입히고 신발 신기고 또 자기 화장하고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오면 언제나 예배 시간에 지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아이가 여섯이나 된 어머니가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여섯을 줄줄이 이끌고 예배시간 전에 언제나 교회에 왔습니다. 그래서 그 비결을 물어 보았더니 토요일 저녁에 옷을 입혀서 재운다고 했습니다. 토요일부터 준비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부모는 자녀들에게 먹을 것을 잘 먹이고 좋은 옷 입히고 학교에 보내서 가르치는 것으로 부모의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닙니다. 주일 잘 지키는 자녀들로 길들이시길 바랍니다.
5)사랑과 공의를 배합한 양육태도입니다.
삼손이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삿14:1-3)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불레셋 딸 중 한 여자를 보고(2) 도로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딤나에서 불레셋 사람의 딸 중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취하여 내 아내를 삼게 하소서(3)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삼손이 아비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를 데려오소서 하니" 삼손의 부모들은 자녀가 잘못된 선택을 하고 고집을 부릴 때 야단을 치지 않습니다. 내버려둡니다. 이것이 자녀를 망치는 것입니다.
게다가 자녀를 데리고 포도원으로 들어갑니다. 죄의 인화물질을 가까이 접근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삿14:5) "삼손이 그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서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어린 사자가 그를 맞아 소리 지르는지라"
부모를 속입니다. 거짓말을 합니다. 사자 시체에서 난 꿀을 먹음으로 나실인의 규례를 어깁니다. 그리고 부모들에게 감쪽같이 속입니다. 방탕한 삼손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님의 양육 태도가 잘못된 것입니다.
(삿14:8-9)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취하려고 다시 가더니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 즉 사자의 몸에 벌떼와 꿀이 있는지라(9) 손으로 그 꿀을 취하여 행하며 먹고 그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 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취하였다고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잠언 13장 24절에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근실한 징계는 자식에게 악한 습성이 형성되기 전에 행해져야 합니다.
가)자녀를 징계할 때는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① 부모의 화풀이로 자녀를 때리지 말 것
② 자녀가 여러 명일 경우 공평하게 징계 할 것
③ 징계 받는 이유를 알려 줄 것
④ 부모가 의논한 후 징계할 것
⑤ 매를 들 때는 욕구불만으로 하지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할 것
⑥ 시작과 끝을 확실히 할 것
⑦ 아이에게 알맞게 벌을 주고 그 아이 혼자 있을 때 벌을 줄 것입니다.
잠언 19장 18절에 "네가 네 아들에게 소망이 있은 즉 그를 징계하고 죽일 마음을 두지 말찌니라"고 했습니다. 초달을 경히 여기는 자는 좋은 자녀교육을 못합니다. 징계는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스잔나 웨슬리 여사의 자녀를 기르는 규칙을 소개합니다.
1. 비겁한 마음을 먹거나, 벌을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나중에 가서는 고치기 어려운 거짓말하는 버릇이 생길까봐 늘 살폈답니다. 그래서 이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누구든지 잘못하였다고 생각될 때 그것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다시는 안 하기로 약속하면 때려주지 않는다는 법을 세워 놓았습니다. 이 규칙 때문에 많은 거짓말을 방지할 수 있었다.
2. 거짓말이나, 훔치는 일이나, 교회 안에서 장난치는 일이나, 주일날 장난치는 일이나, 복종을 안 하는 일이나, 싸우거나 하는 등등의 죄가 되는 일을 했을 때는 절대로 벌을 주지 않고 지나치는 일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3. 똑같은 잘못 때문에 두 번 야단을 치거나 매를 때리는 법은 없다. 그리고 일단 고치고 난 다음에 다시 그것을 책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4. 특히 스스로 생각해서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는 항상 칭찬을 해주고 결과에 따라서 자주 상도 줍니다.
5. 어떤 아이든지 순종하는 행동을 하거나 남을 기쁘게 해주기 위하여 마음먹고 행동했을 때는 그것이 비록 제대로 되지는 않았어도 그것을 잘 받아들여 주고 다음에는 더욱 잘 하도록 사랑으로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6. 예의범절을 바르게 하고 남의 물건이면 비록 그 값어치가 일전 짜리 핀 하나라도 침해하지 말고 주인의 허락이나 동의 없이는 만지지도 말아야 합니다.
나)부모님들은 자녀에게 생명의 언어를 사용하십시오
부산시 청소년종합상담실은 개소 10주년을 맞아 발간한 부모교육자료에서 "자녀를 슬프게 하는 말" 8가지를 소개하였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①나가버려(밀치는 말) ②너의 형은 안 그러는데 왜 그래(형제와 비교하는 말) ③다시 한번 그런짓하면 그냥 안 둔다(위협하는 말) ④답답해 죽겠다(재촉하는 말) ⑤엄마는 화내고 싶어서 화내는 줄 아니(변명하는 말) ⑥너는 정말 어쩔 수 없다(가능성을 부정하는 말) ⑦너는 왜 그렇게 머리가 나쁘니(결점을 비난하는 말) ⑧너는 몰라도 돼(무시하는 말)등과 같은 말이 자녀를 슬프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축복하며 길러야 합니다. 축복 받고 자란 아이가 복을 받고 삽니다. 복된 자녀로 양육해야 합니다.
마노아 가정의 자녀교육의 결과를 통하여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마노아 가정에 삼손은 하나님이 잉태케 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안목의 정욕을 육신의 정육과 이생의 자랑인 사단의 덫에 걸려 나실인의 규례를 벗어나 살았고 부모님의 교육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기도가 필요하며 무슨 교육이 필요한 것인가? 이렇게 질문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삼손이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삿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29)집을 버틴 두 가운데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30) 가로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 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삼손의 죄지은 두눈을 뽑아버립니다. 눈을 뽑고 놋줄로 매고 옥중에서 맷돌을 갈도록 합니다 눈을 통하여 여자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여 그는 눈을 뽑아버리고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십니다.
불렛셋신 다곤 제사 삼손 재주-두 기둥사이에서 기도하여 3000명이 운집해 이 있는 가운데 주의 능력이 그를 사용하여 주의 뜻을 이루십니다.
삼손과 같은 방탕아도 부모님의 기도로 끝내는 회개하고 주님께 쓰임받았습니다. 주님은 변화되기 어려운 기질을 가진 자라도 변화시키시고 그 교만과 자만을 꺾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시고야 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험하고 사악한 세상에서 우리에게 열매로 기업으로 주신 자녀들을 위하여 어떻게 자녀를 길러야 할까요? 주여 우리 부모가 무엇을 행할까요?
기도하는 부모가 되게 하시며 그리스도로 옷입고 신앙의 본을 보이는 부모 자녀를 나실인으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부모가 되게 하여 주소서 그래서 사랑과 공의를 실천하는 부모로써 기업으로 주신 자녀를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자녀로 양육하도록 지혜를 주시옵소서.
나실 인의 어머니
삿 13:8-14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찾아와 마노아와 그 아내를 만났습니다. 마노아 는 이 일을 위하여 진지하게 기도드렸습니다(8절). 그는 아내가 들려 준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내가 현숙한 아내임을 알고 있 었기 때문에 “ 진심으로 자녀를 믿고 있었습니다. ” 오히려 그는 때가 되면 약속된 자식이 탄생하리라는 사실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주저함이 없이 “ 태어날 아이 ” 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낳을 아이에 대해서 그들이 어떻게 행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임무에 더 충실하고자 했기 때문이며 사건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선한 사람이 경건하게 묻는 것은 “ 그가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인지 ” 이지 “ 무엇을 취할 것인가 ” 하는 것이 아닙니다(전 2:3). 나실인의 부모로서 계율이 무엇이며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가만을 생각 했습니다. 그리하여 주의 사자를 찾았고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은 혜롭게 그의 기도를 들어주었습니다(9절). 하나님은 자기들의 임무를 알 고자 하며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자들을 결코 버려두시지 않습니다. 그녀 가 홀로 양떼를 돌보고 있을 때 천사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홀로 있는 시간은 때때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그녀는 급히 이 일을 남편에게 알리려고 남편에게 갔습니다. 그녀는 천사에게 남편과 함께 만나주시도록 기다려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그녀가 그 녀의 남편을 데려오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사자에게 급히 달려온 마노아는 그가 그의 아내에게 나타난 바로 그 천사라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약속된 말씀을 환영했습니다. 12절에 “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 마노아는 사자에게 아내에게 내린 지시를 다시 말해줄 것을 요청했습니 다. “ 우리가 아기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 ” 라고 했습니다. 자녀 교육을 아내에게만 맡기지 아니하고 그 위대한 일을 위해서 이들은 서로 주의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며, 혼자에게 부담시키지 말고 서로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자는 그가 전에 알려준 지시를 다시 말해 주었습니다(13-14절). 내가 금한 “ 모든 것을 그 여자로 하여금 알게 하라 ”, 그리고 “ 내가 명한 것들을 지키도록 하라 ” 우리들 자신이 올바로 행하고 자식들에게 좋은 교육을 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의하고 매우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역사는 낮이 있고, 밤이 있습니다. 역사는 밝아오는 아침이 있고 어두워 가는 밤이 있습니다. 낮이 가면 밤이 오고, 밤이 가면 아침이 오듯이 역사는 어두운 밤과 밝은 아침이 교체되는 가운데 역사는 수 놓여집니다. 성경 의 역사를 봐도 밤같은 불신 시대가 있었고, 낮같은 부흥의 시대가 있었습 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노야 홍수이전 시대 소동과 고모라가 망 하기전 시대는 역사는 밤같이 어두웠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의 역사, 여호수아가 요단강 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는 역사의 아침 이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때마다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갈 역사의 주인공들이 있습니다. 역사의 주인공들은 역사의 아침에 일하기 시작하고 역사의 밤 이 오면 쉬였습니다. 사람은 낮에 일하고 일은 기성인을 시켜 일합니다. 그 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일할 수 없는 밤에 일하시며 기성인을 고용하는 것 이 아니라 미성년을 길러서 일을 시작하십니다. 합당한 역사에 합당한 인물을 기르십니다. 이삭 출생, 사무엘 출생, 솔 로몬 출생, 세례 요한 출생이 다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물들이 세상에 태어날 때 세상은 밤같이 어두웠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암흑같이 어두 운 역사시대에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는 인물을 잉태케한 기록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정착을 했으나 우상을 섬김으로 역사는 어두워 져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시사 외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외적의 침해를 받을 때마다 하나님은 그래도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사랑하시사 그 때마다 사사를 세워 이스라엘을 도탄에서 구원했습니다. 옷니엘, 에홋, 삼갈,드보라, 기드온은 국난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스라엘을 도탄에서 구했습니다. 사사의 활동은 부분적이고 일시적이었습니다. 몇 년이 가지 않아 또 백성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번에 마노아 가정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가정은 단 지파요 소라 땅에 살았습니다. 불행하게도 자식이 없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낳을 수 없는 자식을 하나님이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주신 아들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그 가정을 택했습니다. 마노아의 아내는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나실인의 아들을 낳으리라는 기쁜 소식을 들었을 때, 남편에게 달려가 그 일을 보고하고 의 논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나타나지 않고 그의 아내에게 나타난 것으로 보다 아내의 믿음이 남편보다 앞섰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노아의 아내는 그 일을 숨기지 않고 남편과 의논했습니다. 마노아의 말을 듣고 남편은 사자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유는 우리가 낳을 아이에 대해 어떻게 행할 것인가 묻기 위 함이였습니다. 마노아의 아내가 밭에서 일하고 있을 때 다시 하나님의 사 자가 나타났습니다. 마노아의 아내는 급히 남편에게 달려갔습니다. 하나님 의 사자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린 것입니다.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에게 질문했습니다. “ 우리가 어떻게 이 아이를 기르오리까 ”, “ 우리가 어떻게 이 아이에게 행하리이까 ” 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어떻게 기르시겠습니까 “ 어떻 게 우리의 자녀를 기를까 자녀를 낳는 문제보다 어떻게 키울 것인가 ” 하 는 문제는 큰 문제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교육가라도 자녀 교육에 자신있 는 사람은 없습니다. 교육은 대상에 따라 다르고, 교육은 지도자에 따라 다릅니다. 교육은 환 경에 따라 다르고 교육은 시대에 따라 다릅니다. 자식 교육은 마음대로 키 울 수 있는 교육이 아님니다. 자식을 그 따위로 키우느냐고 남의 자녀됨됨 을 나무랄 수 없는 줄 압니다. 자식은 묶어 둘 것이 아니라 풀어줄 것이며 가두지 말고 뛰여다니게 할 것이요, 마음껏 먹고 자고 마음껏 하도록 해야 합니다. 나쁜 일을 하는 짓에 신경쓰지 말고 좋은 일을 발견하고 가치관을 알고 좋은 일을 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어린아이를 어른으로 보지 말고 그리고 어린 아이는 무한한 발전을 막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런 교육 적인 문제보다 언제나 앞세워야 할 것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 이 아이를 어떻게 양육하리이까 ” 고 묻는 것입니다. 아이의 성장이 비정상적일 때 “ 아버지여,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리이까 ” 고 물어야 합니다. 아이가 빗나갈 때 “ 아버지여 우리가 어떻게 하리이까 ” 고 물어야 합니다. 빗나간 아이의 빗나간 책임은 아이에게 있지 않습니다. 있다면 부모에게 있습니다. 부모가 책임질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 양육함에 있어서 항상 하나님에게 물어야 합니다. “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리이까 ” 자식은 바른 정신으로 키워야 합니다. 독주로 혼미해서는 안됩니 다. 자식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 말씀도 모르게 자식을 키우는 것은 자식을 죽도록 내버려두는 불의 한 부모가 됩니다. 자식은 죄에서 멀리 떠난 생활을 하도록 키워야 합니다. 죄를 무서워하고, 죄를 멀리하고, 죄를 지었을 때 회개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이것이 나실인의 교육방법입니다. 부모 자신이 나실인의 생활을 하고, 자식으로 하여금 나실인의 생활을 하도록 키우면 그 자식은 자라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나실인이 됩니다. 지금 세상은 어두운 세상입니다. 사람의 마음도 어둡고, 세상도 어둡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언제, 어디서 먼동이 터 올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사랑들은 아무 것도 하지 있 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기르시는 때입니다. 머지 않아 역사의 아침이 밝아올 때, 하나님이 기르신 나실인이 하나님의 일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실인을 양육하는 아버지가 되 고 어머니가 됩시다. 마노아와 그의 아내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하나 님의 자녀를 낳아 기르겠다는 뜻을 세웁시다. 서원을 드립시다. “ 하나님의 자식을 어떻게 기르리이까 ” 하는 기도와 간구를 드립시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마노아에게 아들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그 아이에게 복을 주었고, 그 아이에게 성령의 크신 감동을 주었습니다. 노아와 그의 처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들을 낳아 나실인으로서 크게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우리가 낳은 자녀는 다음 세대를 위한 하나님의 나실인인 줄 알고 키워 하나님에게 바칩시다. 우리 자신이 나실인의 생활을 합시다. 우리 자녀에 게 나실인의 생활을 가르칩니다.
마노아의 기도와 하나님의 사자의 출현
삿 13:8-14
앞 단락에서는 마노아의 아내가 여호와의 사자로부터 계시를 받은 내용에 대해서 남편 마노아에게 알려 주었다.
본 단락에서는 마노아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난 후에 일어난 일이다. 마노아는 아내의 말을 전해 들은 후에 여호와께 기도를 드렸다. 마노아의 기도의 요점은 마노아의 아내에게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그들에게 다시 오게 하셔서 탄생할 아이에게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마노아는 아내에게 전해준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이 성취될 것을 믿었다. 마노아는 아내가 잉태하지 못해서 아이를 생산치 못하는 사실 속에서 아내에게 하나님의 사람이 잉태하여 아이를 출생케 할 것이라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한 것이다. 그의 기도는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것을 묻는 것이었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원칙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순종과 기도이다. 신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성경을 주셨다. 성경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때 믿음을 화합하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명확하게 깨닫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드시 성취되는 말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성취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결코 의심치 말아야 한다. 기도에 의심을 더하는 것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두 마음을 품는 행위이고 마음에 정함이 없는 행위이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믿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마노아의 기도를 들으셨고,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마노아의 아내에게 왔다. 마노아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믿는자들의 기도에 즐거이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헛된 수고나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다시 왔을 그 때 마노아의 아내는 밭에 않아 있었는데, 마노아는 그때 아내와 함께 있지 않았다. 그녀는 하나님의 사자의 출현에 마노아의 아내는 다시 “급하게” 남편에게 달려가서 말했다. 그녀는 이전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으니 와서 보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마노아는 아내의 말을 듣고 아내를 따라서 하나님의 사자에게 갔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에게 말씀하신 분이냐고 물었고, 하나님의 사자는 “그로라”고 긍정을 했다. 마노아는 그가 하나님의 사자인 것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사자에게 물었다.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에게 자신의 아내에게 지난번에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고 말했고, 그 말씀이 이루어질 때 그들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고 아이에게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마노아가 하나님의 사자에게 질문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한 것과 동일한 내용이다. 이것은 마노아가 자신이 기도한 것의 의미를 명확히 알고 있었고, 그의 기도가 자신의 마음을 담은 진실한 기도였다는 것을 잘 나타내 준다.
우리는 우리가 기도한 것이 명확하게 무엇인지 망각 할 때가 있다. 어떤 때는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도 있다. 자신이 무엇을 기도했는지, 그리고 기도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하나님께 자신이 명확하게 기도의 줄을 잡고, 응답을 믿고,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다. 마노아는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응답으로 하나님의 사자가 출현한 것을 믿었고, 또한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을 다시 하나님의 사자에게 물었다. 그것은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한 말이 13, 14절에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에게 “내가 여인에게 말한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서 내가 그에게 명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고 말씀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그 전에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의 사자는 이전에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서 마노아의 아내가 지킬 것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삼가고,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명한 것을 다 지키도록 하셨다.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은 4-7절에서 마노아의 아내에게 하신 말씀을 다시 반복하신 것이다. 마노아의 아내는 아이를 낳기 전까지 여호아의 사자의 명한 것을 조심해서 지켜샤 하고, 그녀가 아이를 출생할 것인데, 그녀에게 출생한 아이는 나실인으로서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는 일을 시작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은 변개함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하신 말씀, 그리고 마노아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응답으로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하신 말씀은 동일한 말씀이다. 마노아의 아내 뿐만이 아니라 마노아도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 말씀을 들음으로서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으로 가감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을 계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가감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중한 경고가 주어지는 것이다. 성경에 대해서 지식의 책으로, 교훈과 문화의 책으로서만 취급하는 것은 최대의 어리석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에 대한 지식으로 나와 있고,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관계와 하나님의 말씀이 무섭도록 말씀대로 성취된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나타내 준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을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확연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생의 법칙과 존재의 삶의 법칙으로 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굳게 믿고 오직 말씀을 통해서 인생을 살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의 결과는 하나님의 약속이 놀랍도록 성취되는 역사가 될 것이다.
자녀교육과 부모 책임
삿 13:8-14
성경 본문 12절에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출생한 아들 삼손에 대하여 “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까 ” 라고 이 사실을 예고한 하나님의 사자에게 문의한 말씀이 있습니다. 마노아의 질 문은 자녀를 가진 모두 부모들이 마음에 새겨서 날마다 하나님앞에 문의해야 할 귀 한 말씀인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각 가정에 선물로 주신 자녀들은 가정의 가장 귀한 보배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을 맡은 부모들이 그 자녀 어떻게 양육하며 그들에게 어떻게 해주어야 할 것인가를 문제점으로 함께 은혜 나누겠습니다. 1.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시 127:3-5에 “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식 낳기를 그렇게도 원하는 것인줄 압니다. 잉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창30:2, 삼상1:5). 그러므로 아이를 주시면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의 뜻대로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를 낳기를 원한다면 그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삭과 한나가 기도하여 아이를 낳았습니다(창 25:21, 삼상 1:9-18). (1) 그러므로 태모가 먼저 성별 생활해야 합니다. 마노아의 부부에게 천사는 지시했습니다. 3-4절에 “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니 무룻 부정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 ” 고 했습니다. 태교는 아주 중요한 것이요 잉태시 태모의 생활은 바로 태교가 되는 것입니다. (2) 성별하여 기르는 것이 좋습니다. 마노아는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를 것인가를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여호 와의 사자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5절에 “ 그 아이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나실인으로 기르라 ” 고 하였습니다. 평범하게 기르려면 상관없겠지 만 보다 어떤 목적 있는 자녀가 되기를 원한다면 성별시켜 양육함이 바람직합니다. (3) 고상한 꿈을 심어 줍니다. 마노아 부부는 삼손에게 “ 너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나실인이다 ” 라고 꿈을 심어 주며 키웠습니다. 잠 22:6에 “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 하리라 ” 고 했습니다. 모세의 생모요, 유모인 요게벳은 모세를 키울 때 “ 너는 히브리인이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이스라엘의 해방자가 되어야 한다 ” 고 꿈을 키워준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 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했습니다. 무엇보다 믿음의 꿈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2. 자녀 교육의 문제입니다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는 “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리이까 ” 합니다. 이 말씀은 곧 자녀를 어떻게 교육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1) 자녀 교육의 중요성 유태인을 멸망시키려면 그들의 학교를 폐쇄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 입니다. 유대인 교육열은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에 480개의 학교가 있었 습니다. 누구든지 5세가 되면 취학하여 히브리어 성경 fp위기부터 배우기 시작하여 12세가 되면 회당 입장의 허가를 받는 동시에 문답청취 자격을 인정받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외 유대에 460개의 회당학교가 있 었고 데가볼리에는 131개의 회당학교가 있었습니다. 현재도 그들의 국가 건설에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민족의 올바른 정신이고 그 올바른 정신적 토대의 형성은 교육에 있으며 올바른 교육은 어린아이 때부터 해야한다 하 여 유치원 교육을 3-5세 사이에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도산 안창호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본에 빼앗긴 것은 이 백성이 무식해서 그러하니 학교를 세워 이 백성을 깨우쳐야 한다 하여 교육사업에 친히 몸을 담았습니다. 천주교에서는 7세 이하 아이를 우리에게 맡기라, 그러면 이 나라는 천주교 국가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탈무드에 아이를 가르친 사람은 잉크로 깨끗한 종이에 글을 쓰는 사람과 같고 어른을 가르치는 사람은 더러운 종이에 잉크로 글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신 6:7 에 “ 부지런히 네 자녀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라 ” 고 했습니다. (2) 교육이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진의 이성, 미 의 감정, 선의 의지, 성(聖)의 인격을 대상으로 교육이념을 세워야할 것입 니다. 균형잡힌 지정의 진선미의 인격위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 랑하는 신앙적 교육이 진정으로 필요합니다. (3) 교육의 방법 고대의 헬라의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상반되는 교육방법을 채택하여 실 천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아덴식 교육이니, 스파르타식 교육이니 라고들 합니다. 아덴은 진보적이며 자유주의적인 문인 국가로서의 교육을 하였으 며, 스파르타는 보수적이며 통제적인 무인 국가로서의 교육을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아덴과 스파르타처럼 상반되는 듯한 두 가지 교육방식을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사랑으로 교육하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설교는 분노의 음성이라면 예수님의 설교는 사랑의 음성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적인 효과에서 보더라도 “ 하지 말라 ” 보다는 “ 하라 ” 는 것이 낫고 질책하는 것보다 부드러운 것이 낫습니다. 지나친 구속은 자녀를 위험한 처지에 두게 합니다. 지나친 억압은 반항심과 증오심만 불러 일으킵니다. 모름지기 부모들은 어린이들에게 감화력을 가지고 언행 심사간에 부모다운 애정과 덕을 나타내야 합니다. 아무리 난폭한 자 녀일지라고 어머니의 지성을 꺾을 수 없듯이 눈물의 자식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의 심성이 사막과 같이 메마르고 거칠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맙시다. 어린이들은 잘못을 저지르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마다 잘못을 알려주고 깨닫고 회개하여 항상 용서해 주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설 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2) 징계함으로 교육하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교육은 결코 징계를 삭제하지 않습니다. 대개 어머니의 교육이 실패하는 중요한 원인은 징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모와 현모는 어떻게 다릅니까? 자모는 사랑만하는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현모는 사랑도 주지 만 밝음과 용기를 가진 어머니입니다. 히 12:5에 “ 징계가 없는 아들은 사생자요 참아들이 아니라 ” 고 했습니다. 잠 23:13-14에 “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고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 고 했습니다. 칸트는 말하기를 “ 아이들이 울고 불고하여 여러 가지 무리한 주문을 하 는 경우에 그 방정맞은 의사를 따르게 하면 타락의 첫 걸음이 된다. 아이들은 너무 의욕을 충족시켜 주면 버릇이 없게 되며 이와 반대로 그 의욕을 정면으로 배격하면 그릇된 교육이 되고 만다 ” 고 했습니다. 그러나 징계는 사랑의 정신에서 해야 합니다. 딤후 2:25에 “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하라 ” 고 했습니다. 사랑의 채찍, 눈물의 채찍을 들라는 것입니다. 맞는 사람보다 때리는 사람이 더 큰 아픔을 가질 때 결코 맞는 자가 증오심을 가질 수 없으며 오히려 돌아서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잠 13:24에 “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리라 ” 고 했습니다. 3) 축복하며 기릅시다. 하나님께 바침으로 축복받게 합시다. 구약 시대에는 8일만에 할례를 받 게하여 언약의 자손으로 인쳐 축복을 받게 하셨고, 신약에서는 유아 세례 를 받게 하여 축복받게 했습니다. 어린아이 위해 항상 축복 기도하여야 합 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게 하여 축복하여야 합니다. 3. 어떻게 부모의 책임을 타하겠습니까? 마노아는 “ 우리가 이 아이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 ” 라고 물었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어떻게 부모의 책임을 다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자녀 교육은 반드시 부모에게 있어서 책임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자녀 교육 위한 부모 책임이 무엇입니까? (1) 앞서가는 부모가 됩시다. 아이들의 개성을 파악하고 적성과 심리를 분석하여 생활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가지고 보살피자는 것입니다. 무조건 권위로서 통제로서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관심과 배려와 연구가 있어야 되며 정포은의 어머니 는 의복 색깔까지고 교육적이 되도록 하지 않았습니까? (2) 희생하는 부모가 됩시다. 자녀가 잘 되는 일을 위해서는 온갖 노력을 아끼지 말며 필요한 여건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한석봉의 어머니나 웨슬레 어머니 수잔나 부인처 럼 세심한 뒷바라지와 희생의 노고가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 나는 기도로 서약한대로 하나님 앞에 바치고 성장시까지 뒷바라지를 했습 니다. 훌륭한 인물뒤에는 반드시 부모의 희생과 노고가 있는 법입니다. (3) 모범적인 부모가 됩시다. 진실하지 못한 교육은 깊지를 못하여 길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모든 일 에 모범이 되는 부모의 교육은 자녀에게 지대한 감화를 끼칩니다. 자녀들 을 자기네의 부모에 대해서 한없는 자부심을 갖습니다. 어린이 마음은 깨 끗합니다. 거기에 먹물을 붓거나 상처를 주면 좋지 않습니다. 자식에게 본 이 될 때 자식은 밖에 나가 사람다운 역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4) 신앙을 물려주는 부모가 됩시다. 무엇보다도 신앙적으로 자녀를 양육하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자 녀들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눈물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또한 말씀의 감화 가 필요합니다. 마노아와 같이 “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 오리이까? ” 하는 기도를 나의 기도 제목으로 삼아 참으로 자녀들의 올바른 교육을 위해 하나님 앞에 서원하고 헌신하므로 부모의 책임을 다하도록 하시기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