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프레임을 통한 강한 부인과 강성 지지층의 집단 반발,
그리고 상황이 종료된 뒤의 침묵.
지난 5년간 각종 스캔들과 위기 때마다 청와대가 반복해왔던 패턴이다.
방역 위기와 외유 논란 속에서 강행됐던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의 중동ㆍ아프리카 순방 관련 대응에서도 이런 패턴은 반복됐다.
청와대는 특히 외유성 순방 논란과 관련해 “야당과 일부 모자란 기자들이 순방만 다녀오면 관광이네, 버킷리스트네 하는 말들을 쏟아낸다”(탁현민 의전비서관)며 명확한 전선(戰線)을 그어 대립각을 세웠다. 청와대가 사실상 야권과 일부 언론에 대한 ‘공격 좌표’를 제시하자 강성 지지자들은 SNS등을 통해 강하게 호응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숨기려던 참모진의 코로나 감염 사실과 김정숙 여사의 비공개 피라미드 관람 일정은 청와대가 ‘모자라다’고 규정했던 언론을 통해 밝혀졌다. 청와대는 그럼에도 “어떤 음해와 곡해가 있을지 뻔히 예상됐기 때문”이라며 사실을 숨긴 이유를 언론탓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비판 여론이 다소 잦아든 4일이 돼서야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의 방송 인터뷰를 통해 “국민적 정서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한 두명 확진자가 나온 것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한 불찰이 있었던 것은 맞다”며 관련 사실을 의도적으로 공개하지 않았음을 두루뭉술하게 시인했다.
이에 대해 김종혁 경제사회연구원 미디어센터장은 페이스북에 과거 청와대가 언론 칼럼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던 일을 제시한 뒤 “과거의 거짓말과 패턴이 너무나 똑같다. 국민을 속이려면 거짓말도 좀 진화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김정숙 여사의 버킷리스트가 있었는지 여부도 정권이 바뀐 뒤에는 규명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2019년 ‘김정숙 여사의 버킷리스트’라는 중앙일보 칼럼이 “사실을 왜곡했다”고 공개 비난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여권 지지층들이 강하게 반응했고, 논란은 본질인 '외유성 순방'이 아닌 진영대립으로 변질됐다. 위기를 모면한 청와대는 이듬해 재판에서 졌지만 침묵했다. 이미 관련 논란이 잦아든 시점이었다.
이런 패턴은 굵직한 위기 국면 때마다 활용돼왔다.
광화문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 비슷한 시기 2019년 열린 조국 수호 집회와(왼쪽)
2019년 ‘조국 사태’ 때 청와대는 조국의 가족과 관련한 야권의 의혹을 “가짜뉴스”로 규정하며 조국의 임명을 강행했다. 이런 청와대의 태도는 대규모 ‘맞불 촛불집회’를 불렀다. 1년 이상 지난 1월 27일 대법원이 정경심의 입시부정 혐의를 유죄로 확정했지만, 청와대는 입장을 내지 않았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선 25번의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곧 가격이 안정된다”고 했다. 지속적인 경고음이 나왔음에도 文까지 “부동산만은 자신있다고 장담한다”(2019년 11월)고 말했다. 文은 결국 총선에서 압승한 뒤인 지난해 1월 신년사에서야 “주거 문제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 매우 송구하다”며 사과했다.
방역과 관련해선 2020년 말 야권에서 “백신 도입이 늦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자 청와대는 대변인을 내세워 관련 비판을 “백신의 정치화”로 몰아세웠다. 백신 수급이 안정세로 돌아선 지난해 8월이 돼서야 이철희 정무수석을 통해 “초반 백신 수급을 서두르지 않았던 게 아쉽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하며 초기 백신 도입 실패를 슬그머니 시인하고 넘어갔다.
당시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강경한 초기 대응의 배경에 대해 “청와대는 여권 지지층이 여론전에서 활용할 명확한 논거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초기 대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여론의 향배가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영민(아래)과 김조원
실제 청와대는 2020년 참모의 다주택 문제와 관련 “노영민 비서실장과 김조원 민정수석이 언성을 높이며 다툼을 벌였다”는 공공연한 사실에 대해서도 “한 마디로 가짜뉴스”라고 브리핑했다. 이 주장은 국회에 출석한 김외숙 인사수석이 “언쟁(言爭)을 한 적 있다”고 시인하며 보름만에 거짓말로 드러났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문재인 정부는 불리한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가짜뉴스 프레임을 활용해 무조건 부인한 뒤, 강성 지지층에게 반격할 근거와 명분을 제공해 진영간 대리전으로 몰고가는 전략을 의도적으로 구사해왔다”며 “현재의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와 정부에 대한 신뢰도 하락은 5년간 반복해온 이런 전략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