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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책 2권을 출간하면서 폐부 깊숙히 느낀 바이지만, 이 글을 쓰면서도 물흐르듯 유연한 문장을 구사한다는 것이 정말로 어렵고도 어렵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전편에 이어서.........)
그녀의 집에서 그렇게 하룻밤을 보낸 후 일주일 가량 대구에서 머무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성가대 지휘자로 있는 교회구경도 시켜주고, 친한 친구들 모임에 나를 데려 가기도 하였으며, 팔공산과 수성못, 성당못, 동성로 등 대구시내 구경도 두루 시켜주었다.
그녀와의 첫만남 이후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도 한달에 평균 두세통씩은 꼬박꼬박 편지왕래가 이어졌다. 당시는 정국이 매우 불안정하여 캠퍼스 안은 언제나 최루탄 가스 냄새가 진동하였고 연일 학생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나눈 대화의 주제는 주로 시국과 이념에 관한 것 아니면 학과공부나 써클활동 등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음대 성악과에 입학한 그녀와 달리 법학과를 선택한 나는 정말이지 대학생활을 하는 내내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전공 공부와 함께 TIME지 연구반과 합창단 써클활동을 병행하였으며, 학교가 끝난 후 저녁시간에는 매일 두세시간씩 과외수업을 하러 다녔기 때문에 그 흔한 미팅 한번 제대로 못해봤으니 말이다.
대학에 들어 가서도 2학년 여름방학때랑 ROTC후보생이던 3학년 겨울방학때 각각 한차례씩 그녀와 만남을 가졌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를 소중한 펜팔친구 그 이상으로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대학졸업후 3월 초에 ROTC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광주 상무대에서 4개월에 걸친 고된 훈련을 마친 나는 경기도 연천에 있는 철책사단의 소대장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같은 나이 또래의 부하 삼사십명을 거느리면서 1년내내 낮과 밤이 완전히 뒤바뀐 철책경계근무를 이상없이 완수하는 것은 결코 호락호락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엄한 아버지처럼 , 또 때로는 인자한 어머니처럼, 또 어떤 때는 형처럼 거칠기만 한 병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서 이상없이 이끌어야 했기에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그녀로부터 꾸준히 배달되어 오는 편지에 답장을 보내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그 해 9월 초순 어느 날 그녀가 면회를 오겠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전방에 근무하는 장교들의 경우 매달 2박3일씩 외박을 나갈 수 있었는데, 9월 셋째주 금요일날 그녀는 우리 소대원들을 위하여 푸짐한 먹을꺼리를 준비하여 부대로 면회를 왔다.
연천역에서 의정부행 기차를 타고 의정부에서 내린 후 또 다시 지하철을 갈아 탄 우리는 신촌으로 갔는데, 당시 유행이던 어느 분위기 좋은 음악다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차를 마시며 그녀에게 면회를 와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편지 답장을 제때 못해줘서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했다. 어느 정도 둘 사이의 대화가 오갈 무렵, 근사한 목소리의 음악다방 DJ가 들려주는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그녀는 문득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말 한마디를 내뱉았다.
"너는 결혼에 대해 생각해봤니?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어떤 사람이랑 결혼을 하고 싶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라는 물음과 함께 집안 어른들이 곧바로 결혼을 시키려고 잘 아는 집안끼리 자꾸 선을 보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는 여자들의 결혼적령기를 보통 20대 중반으로 보던 시기였기 때문에 나는 별다른 생각없이 "우리는 좋은 친구잖아... 어른들 뜻이 그러시면 따르는게 좋겠다. 너 정도면 얼마든지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으니 그렇게 하렴" 이라고 말을 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곧바로 "너는 내가 다른 사람한테 시집가면 좋겠니? 아무리 생각을 하고 또 해봐도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알고 또 내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너더라..." 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인 채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제껏 단 한번도 그녀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도 서로 좋아한다는 고백의 말 한번 해본 적도 없었고 더군다나 결혼에 대해서는 단 한차례도 심각하게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적잖이 당황스러워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한참동안을 아무 대답도 못하고 머뭇거리자 그녀는 "앞으로는 편지 더이상 안쓸께. 우리 인연이 여기까지인가 보다" 라는 말을 하며 벌떡 일어나 바깥으로 훌쩌 나가 버렸다.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녀를 그냥 이대로 보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다방 문을 열고 뛰쳐나가서는 그녀의 두팔을 붙잡았다.
* 왠만하면 이번에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후속편을 기약해야 할 것 같네요. 참고로, 후속편에서는 그녀와의 아름다운 사랑 그리고 사랑의 결실을 이루지 못한 이유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될 예정입 니 다. (혼자만의 아련한 옛추억을 떠올리면서 이 글을 읽어보세요! 열씨미 한번 써볼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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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런~!!! 여자의 감성을 자극하지 말던가~!! 알아주던가~!! 안쓰러운 펜팔걸~~~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그랬었나 봅니다.... 쩝~~
책을 두 권씩이나 출간하셨다는데... 펜팔의 영향도 적잖을 듯 싶은데요~??ㅋ
오랜 기간동안 편지를 주고 받았던게 저한테는 좋은 추억이자 정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ㅎ
연정이 없고서야 여인네가 그리 긴 세월
경험담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말씀이쥬? ㅎㅎ
여기 들어 오는 사람들 나이도 있고 하는데 더 깊은 얘기 같은 거 뭐 없나? ㅋㅋㅋㅋ
음....... 역시 예리하신 울 성님!! 음........ ㅋㅋ
매월 2박 3일씩 외박...요 대목에서 살짝 호기심이 생겼는뎅.. ㅋㅋ
진짜 기다려 지네 ㅎㅎ
멋진 명절 보내시게나 아우님!
감사합니다. 형님! 명절 대목 대박나세요 ^ * ^
이런 이런 ..멋진 조셉님을 짝사랑하고 있었나봐요.
에고..안타까워라~
오랜 세월 펜팔을 하다 보니 정이 많이 들었던게죠... 이젠 아주 오래전 일이네요~~
흥미 진진 해지는데 ㅎ 완결편 기대합니다..^^*
회장님! 글쓰는게 참 힘이 듭니다요~~ ㅎ
헐...소설가가 계셨네요.....^^*
그냥 있었던 일을 글로 적어본 것 뿐이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