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조(曹操)의 대패(大敗) (下) -
조홍(曺洪)은 등허리를 들이대고 조조(曹操)에게 말했다.
"형님! 그만한 상처(傷處)를 가지고 무슨 약(弱)한 소리를 하십니까. 제가 업고 갈 테니 어서 업히십시오. 이 조홍(曺洪)이는 죽어도 좋지만 이 난세(亂世)에 형님 같은 분은 반드시 살아나셔야 합니다. 적병(敵兵)이 다시 오기 전에 어서 이 자리를 떠나십시다."
조홍(曺洪)은 조조(曹操)를 등에 업고 무작정(無酌定) 산기슭을 달려 내려왔다.
바로 그때 형양 태수(滎陽太守) 서영(徐榮)의 군사(軍士)들이 조조를 찾아 헤매는 소리가 들린다. 조홍(曺洪)은 조조(曹操)를 업고 두 사람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숨죽여 산기슭에 도착(到着)하였다.
그러나 정작 산기슭에 내려와 보니 눈앞에는 커다란 강(江)이 가로막혀 있었다.
앞에는 강(江)이 가로막혔고, 뒤에서는 자신(自身)들을 찾는 수색(搜索)이 다가오고, 게다가 몸에 난 상처(傷處)가 심하여 운신(運身)을 할 수 없으니 그야말로 진퇴유곡(進退維谷)이었다.
"아아, 나의 운명(運命)은 이제 그만인 것 같다. 홍(洪)아! 적(敵)에게 죽어서 천추(千秋)에 한(恨)을 남기고 싶지 않으니 깨끗이 자결(自決)을 할 수 있도록 나를 내려놓아 다오!" 조조(曹操)는 숨을 헐떡이며 애걸(哀乞)하듯 중얼거렸다.
"안 됩니다 형님! 자결(自決)을 하시다니 형님 답지 않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앞은 강(江)으로 가로막혔고, 뒤에는 추격대가 있으니 우리가 무슨 재주로 살아난단 말이냐?"
"궁즉통(窮卽通)이라 하였으니 살아날 길이 있겠지요.... 이 강을 헤엄쳐 건너기로 하겠습니다."
조홍(曺洪)은 조조(曹操)를 일단 땅에 내려놓고 갑옷을 벗어 버리더니 칼 한 자루만을 입에 물고 다시 조조를 등에 업고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 달빛에 번득이는 강물은 유유(悠悠)히 흘렀다. 두 사람은 물결 따라 흘러가면서 한 덩어리로 헤엄을 쳤다. 그러고는 서서(徐徐)히 반대편(反對便) 기슭으로 접근(接近해 갔다.
그리하여 건너편 기슭에 거진 다가와 보니 강 언덕 위에서는 갑자기 횃불을 든 병사(兵士)들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형양 태수(滎陽太守) 서영(徐榮)의 병사(兵士)들이었다.
"앗, 저게 뭐야? 귀신(鬼神)인가? 사람인가?" 그들은 헤엄쳐 오고 있는 조홍(曺洪)과 그에게 업혀있는 조조(曹操)를 보자 자기들 대장에게 보고(報告)한다.
"지금 이 시간(時間)에 강(江)을 건너오는 놈이라면 조조(曹操)의 패잔병(敗殘兵)이 분명(分明)하다. 저놈들을 잡아라!" 대장인 듯한 자의 명령(命令)이 떨어졌다.
설마하니 그들도 적(敵)의 대장 조조(曹操)가 그 꼴로 강을 건너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또다시 화살이 연방(連方) 날라왔다.
조홍은 조조를 업은 채 죽을힘을 다해 적(敵)들을 피(避)해서 어둠에 묻힌 강기슭에 닿았다.
그러나 점점(漸漸) 다가오는 적을 피할 도리가 없어서 절망(絕望)에 잠겨 있노라니까 바로 그때 한 떼의 군사(軍士)가 이리로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앗! 저건 또 뭐냐?"
조조(曹操)와 조홍(曺洪)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살펴보니 그들은 어젯밤부터 대장의 행방(行方)을 찾고 있던 하후돈(夏侯惇), 하후연(夏侯淵)과 그들의 군졸(軍卒)이었다.
"오, 대장님이 여기 계셨구나!" 그들은 조조를 발견(發見)하자 크게 기뻐하면서 조조를 추격(追擊)해 오던 적병(敵兵)들과 한바탕 싸워서 물리쳤다. 그러고 나서 조조를 둘러싸고 숲속으로 피신(避身)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오백여 기의 군마가 웅성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저건 또 누구냐?" 그들은 숲속에서 숨죽이고 나타난 군마(軍馬)의 행색(行色)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적(敵)이 아니라 조조(曹操)의 가신(家臣)인 조인(曺仁), 이전(李典), 악진(樂進) 세 사람과 쫓겨온 그들의 병사(兵士)들이었다.
"오오, 그대들도 살아 있었는가?"
"대장(大將)님 무사(無事)하셨습니까?" 조조(曹操)와 부장(副將)들은 손을 마주 잡고 감격(感激)의 소리를 외쳤다. 싸움은 참패(慘敗)에 참패를 했지만 살아남았다는 사실(事實) 만으로도 서로가 그지없이 감격하였던 것이다.
조조(曹操)는 부하(部下)들과의 만남을 한없이 기뻐하면서,
"내가 오늘 새벽에 적(敵)에게 궁지(窮地)에 몰려 자결(自決)을 하려고 하였는데 큰 잘못을 저지를 뻔하였소. 적어도 한 군대의 우두머리 되는 사람은 죽음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오. 나는 비록 싸움에는 졌지만 이번 싸움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소. 내가 만약 새벽에 자결을 했더라면 여러 장수(將帥)들을 못 만났을 것이 아니오?" 하고 감탄(感歎)하였다.
"대장께서 자결(自決)을 하시려 하였다니 그게 웬 말씀입니까?"
"그러니까 내가 잘못 생각했었다는 말이오. 싸움에는 지면 지는 대로 깨닫는 일이 많은가 보오." 조조(曹操)는 참패(慘敗)한 것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事實)로 그렇게 생각되었다. 돌아보니 일만(壹萬) 여 명(名)을 거느리고 떠났던 군대(軍隊)가 지금은 고작 오백(五百)여 명(名)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조조(曹操)는 재기(再起)의 희망(希望)을 결코 잃지 않았다.
"일단 하내(河內)로 돌아가서 재기(再起)를 노리기로 합시다." 조조(曹操)가 副將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물론 그래야겠지요. 언젠가는 설욕(雪辱)의 날이 있을 것입니다." 하후돈(夏侯惇)과 조인(曺仁 )등도 조조(曹操)의 말에 용기(勇氣)를 내어 대답(對答)하였다.
오백여 명의 패잔병(敗殘兵)들은 새벽 공기(空氣)를 가르며 처량(凄涼)한 행군(行軍)을 시작(始作)하였다.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 소리조차 구슬프게 들리는 그들의 신세(身世)였다.
양가(良家)에 태어나서 고생(苦生)을 모르고 자라난 조조(曹操)도 이번만은 세상(世上) 일이 뜻대로 안 된다는 사실(事實)을 절실(切實)히 깨달았다.
(일찍이 어떤 예언자(豫言者)는 나를 난세(亂世)의 간웅(奸雄)이 될 것이라고 했었다. 그렇다! 간웅이면 간웅(奸雄)답게 한번 일어난 이상 백난(百難)을 무릅쓰고 끝까지 싸워 보자!)
조조(曹操)는 새벽하늘의 별들을 우러러보며 묵묵(默默)히 걸어가면서 속으로는 그런 다짐을 곱씹고 있었다.
삼국지 - 46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