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절 인공 수술
2015. 6. 8. 조순희
퇴행성관절염 수술로 인해 75년 만에 처음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찬바람 일듯이 뛰어 다니던 내가 많은 세월의 무게 탓일까? 무릎에 인공관절을 넣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발걸음을 멈추게 되니 인생의 최대 고비를 맞듯 위태로운 일상의 연속이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보고는 자식들이 모두 못 볼 걸 본 듯 깜짝 놀란다. 퇴행성관절염에 대하여 잘 아는 아들이 약과 주사는 임시처방일 뿐이라고, 결국은 수술을 해야 한다며 그 정도인지는 몰랐다 한다. “제 말대로 하루 속히 수술하세요.”라며 단호하게 결정을 내린다.
어머니 라면 끔찍스럽게 생각하는 효자인데 평생 처음 크게 화를 내는 게 아닌가. “노심초사하는 자식들의 마음도 헤아려 주실 줄 알아야지요. 서울 저희 병원에서 하세요. 연골이 닳아서 인공을 넣는 수술이라 생명이 위험한 대수술은 아니지요. 안심하시고 저 따라 가세요.” 애원을 한다. “애비야, 굳이 서울까지 갈 게 뭐 있어? 청주의료원 정형외과 이신노 과장님께서 수술을 잘 하신다고, 5천명을 넘게 하셨다고 모두들 한목소리로 그런다.”
참 잘 하신다는 소리가 전국에 떠들 석 한단다. “불편하게 서울까지 갈 게 뭐 있어? 엄마가 수술하러 왔다면 여러 자식들이 근심걱정으로 편할 날이 없을 턴데. 청주의료원 이신노 과장님께 수술할게 그렇게 알고 있어 알았지?”
어느 날 셋째 딸이 전보 받고 달려오듯이 주중에 왔다. "서울에서 수술 안 하시고 청주에서 하신다면서요? 학교 개교기념이라 수술할 날 예약하려고 왔어요." 의료원으로 통화를 한다. 제일 빠른 날이 7월 9일이라며 아들하고 통화를 하더니 몇 개월을 어떻게 기다리느냐고 서울서 하라는 요망이다.
밤에 전화가 왔다. “어머니, 내일 청주에 내려갑니다. 수술할 날짜를 당겨보려고요.” 아들이 오더니 3월 10일로 예약이 되었다고 한다. 병원 문턱을 모르던 나는 돌파를 깨듯 애타는 아들의 심정을 존중하며 병원에 들어섰다. 다리 수술한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목련꽃 만발 하듯이 관절 수술한 환자들이 곳곳에 빼곡하다. 삶의 희망을 부여잡은 듯 다리와 무릎에 하얀 붕대를 칭칭 동여맨 환자들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간호사가 병실을 설명하며 선택권을 준다. 특실, 일반실, 병원에서 직원으로 채용하는 간병인 둘이 상주하는 병실, 고용직원회원으로 채용하는 간병인 둘이 있는 병실이 있다고 하며 특실과 일반실은 보호자가 없을 경우에는 일반 간병인을 하루일당 8만원씩 줘야 한단다. 병원직원이 붙는 병실은 저렴하게 하루 3만 원씩 병원비에 계산이 되고 고용직 회원으로 근무하는 간병인은 하루일당으로 3만 원씩 현금지급이라고 한다. 간호사 설명을 듣더니 아들이 “어머니는 특실로 간병인을 붙여달라고 한다.” 듣던 나는 “그건 자식들 생각이고요. 돈을 떠나서 저는 여러 사람들과 소통 할 수 있는 병원직원 간병인 있는 병실을 주세요.” 하니 당분간은 들어 갈 자리가 없고 일반실에 계시다가 자리가 나면 그 때 들어가시도록 예약을 하겠다고 한다.
“어머나 가 불편스러울 턴데요. 아니면 우리가 돌아가면서 휴가 연차를 낼까요?” 질문을 한다. “생각은 고맙지만 아니다. 간호도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잘하는 법이다.” 일반실을 들어가니 당장 간병인이 필요했다. 병원에 부탁하니 대기하고 있는 간병인이 없다고 한다. 걱정이 태산이었다. 딸이 이 병원 저 병원으로 구해도 간병인이 없다고 하는 게 아닌가? 자식들은 많지만 모두 맞벌이하는 직장인들이니 쉬운 일이 아니다. 수소문 끝에 동생한테 부탁했다.
자식들이 양다리 다 수술을 하라고 하였지만 한쪽 다리 수술을 먼저 하고 예약된 병실로 들어갔다. 생소한 자리, 굴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으로 마음이 착잡했다. 옆자리에 이미 다리를 수술하신 연세 많은 할머니가 마치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 맞듯이 여러 환자들의 인사소개를 한다. 모두들 노환이거나 다리수술, 치매, 풍골이 80평되는 골절환자 등 다양하다.
난생처음 하얀 병원 복을 입고 환자들과 처음 느껴보는 병실생활을 하게 되었다.
다리수술이란 미리 다짐하고 짐작했던 예상보다 엄청나게 아프다. 양쪽을 다 하려고 했더니 더 이상 생각할 여지가 없어 한쪽다리만 했다. 남편 있는 환자들은 아프다고 호소를 하면약이 되어 주는 것처럼 주물러주며 위로하는 것을 보니 새삼스럽게 남편 생각이 나 외로움에 우울했다. 사랑도 못 느끼는 무미한 끝자락 인생의 존재이련만 얼마나 더 살겠다고 알아주는 이 없는 고통스러운 아픔을 안고 견디는지. 후회와 알 수 없는 느낌의 슬픔, 진통제 없이는 잠 못 드는 새벽녘의 진저리쳐지는 시간의 더딤도 느껴봤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자식들의 온 정성과 간병인들의 정성, 간호사님의 들의 정성 전문 의사 이신노 과장님의 최고의 의술로 인해 수술은 잘 되었지만 아직 완전하지를 않아 다니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등록은 했지만 그동안 퇴행성 관절 인공수술로 강의 듣는 걸 어쩔 수 없이 중단하게 되었다. 아픔 끝에 새로운 내 인생의 여명이 다시 태어나듯 새롭게 밝아 오리라.
첫댓글 '사랑도 못 느끼는 무미한 끝자락 인생의 존재이련만 얼마나 더 살겠다고 알아주는 이 없는 고통스러운 아픔을 안고 견디는지. 후회와 알 수 없는 느낌의 슬픔, 진통제 없이는 잠 못 드는 새벽녘의 진저리쳐지는 시간의 더딤도 느껴봤다. ' 예원님. 그처럼 고통스러운 큰 수술을 하시는 동안 병문안도 못드리고 죄송합니다. 그렇게 많이 아픈 순간 역시 옆지기님께서 계셨다면 아마 그토록 외롭고 쓸쓸하게 아픔을 견지진 않으셨을겁니다. 부디 용기 내시고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