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건축은 생명 안에서의 성장임
교회 건축이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게 하신 주님께 감사한다.
게다가 그분은 우리에게 건축할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셨다.
에베소서 2장 21절은 건물마다 모두 자라간다고 말하고, 그 다음 구절은 우리가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함께 지어져 간다고 말한다.
이것은 합당한 교회 건축이 생명 안에서의 성장임을 시사한다.
에베소서 4장에서 우리는 성장의 사상을 볼 수 있다.
13절은 온전히 자란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15장은 범사에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자라기 위해 진리를 붙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16절은 사랑 안에서 스스로 건축하기까지 몸의 성장에 대해 말한다.
14절에는 성장의 사상이 있는데 우리가 더이상 이리저리 요동하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더이상 어린아이가 되지 않는 것은 합당하게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장 12절에서 16절까지의 모든 구절에서 성장의 사상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절들에 따르면 몸의 건축은 생명 안에서의 성장으로 말미암는다.
1954년 나는 처음으로 교회의 건축에 관한 사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 내가 받은 빛은 분명하지도 완전하지도 않았다.
나는 오늘날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건축에 주의를 기울이거나 건축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신약은 매우 강하게 그것을 강조한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건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집회소 건물을 예로 들면서 나는 성도들에게 건물의 재료들과 같이 그들 위에, 아래에, 앞에, 뒤에, 그리고 양쪽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건축될 수 있도록 누가 다음에 있는가를 알아야만 한다고 성도들에게 말했다.
나는 미국에서 똑같은 종류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1964년 이후 나는 이런 식으로 건축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곤란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 이전에 마닐라와 타이빼이에서 나는 누가 내 위에, 내 아래에, 내 옆에 있는지 아는 것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으로 온 이후 나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곤란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누가 내 옆에 있는지 말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예화가 생명이 없는 재료로 지어진 물질적인 건물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재료들이 일단 건물 안에 놓여지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우리는 살아있는 건축 재료들이며 끊임없이 움직인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예를 보자.
로마와 에베소에 있는 교회는 그들의 가정에서 모였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건축되었기 때문에 어디에 살든지 그들에게는 문제가 없었다.
건축의 이런 예표는 물질적인 건물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집이며 여기저기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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