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산 오징어숙회
거제는 인근 통영과 몇 가지 측면에서 비교 대조된다. 통영은 문화 예술계 인사들을 다수 배출한 예향으로 알려졌다. 반면 거제는 연륙교가 놓이기 전에는 섬이라는 고립된 자연환경이 유배지로 각인된다. 통영은 세병관과 제승당을 비롯한 역사 고적과 나전칠기를 비롯한 전통의 맥을 잇고 있지만 거제는 현대에 와서 대형 조선소가 들어서서 젊은 층이 많이 모여든 생산 산업도시다.
두 도시는 포구를 낀 바닷가라 섬으로 떠나는 유람선이 뜨기도 하는 해양 관광자원이 풍부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통영은 외지에 온 관광객이 여장을 풀고 머문다면 거제는 지나는 걸음에 잠시 거쳐 가는 곳이다. 두 도시는 어항을 낀 포구들이 곳곳에 있다. 통영은 서호시장과 중앙시장 생선회와 향토 음식으로 맛집이 있지만 거제는 미식가나 식도락가들이 통영만큼 즐겨 찾지 않는다.
교직 말년 거제로 임지가 정해져 올해 삼 년째다. 내년 이월이면 정년이라 시한부 거제살이로 이제 남은 기간이 6개월이다. 그간 주중 퇴근 후나 창원으로 복귀하지 않은 주말이면 거제 곳곳을 누볐다. 주로 해안선 탐방 트레킹이었고 알려진 산에도 더러 올랐다. 거제 현지인보다 인문 지리나 자연환경에 밝아졌다. 생활권에서 먼 둔덕을 제외한 거제 전역에 내 발자국을 남겨가고 있다.
거제에 지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가 활동으로 낚시 인구가 그렇게 많음에 새삼 놀랐다. 낚시에 관심이 없는 나는 작년 앵산 기슭에서 딴 두릅은 양이 많아 학교 급식소로 보내 동료들과 봄 향기를 나눈 적 있다. 두릅만이 아니라 국사봉에 올라 곰취 잎도 따왔다. 올해도 세 차례나 올라 딴 곰취 잎을 와실에서 곡차 안주로 남을 정도라 창원까지 가져가 지기들과 나누기도 했다.
사등 성포에서 가조대교를 건너간 계도는 어촌체험 마을이었다. 진동만 내해였는데 잘 꾸며진 낚시터였고 바다에 뜬 낚시콘도가 보였다. 거가대교가 빤히 바라다보인 장목면 궁농항에는 많은 예산을 들였을 해상 낚시공원이 꾸며져 있었다. 장승포에서 북쪽으로 나간 능포 방파제에도 해상 낚시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거제 갯바위 낚시터는 여러 군데였고 낚싯배를 타고 떠나기도 했다.
내가 주중 연사 와실에 머물면서 아침저녁 끼니는 손수 해결해야 한다. 일요일 창원에서 올 때 아내가 마련해 준 몇 가지 찬으로 연명한다. 지난주는 고향을 찾아 따온 고구마 잎줄기볶음과 새송이버섯볶음 등이다. 와실에서 두부와 감자를 넣은 된장찌개를 끓이고 국사봉에서 따온 곰취잎도 곡차 안주로 삼고 있다. 점심시간에 교내 급식은 부족한 단백질과 지방을 벌충하는 기회다.
거제에서 맛집을 찾아 외식을 해본 경험은 드문 편이다. 부임 초 같은 부서 동료와 하청 내해 자연산 횟집을 찾은 적 있다. 퇴직한 선배와 옥포 굴구이집에 한 번 앉아봤다. 고현으로 나가면 실내포장에서 오징어숙회나 생멸치 회무침으로 맑은 술을 비우고 왔다. 수협마트에서 포장된 우럭회를 한 접시 사 와실서 먹기도 했다. 보름 전 장승포 수변포차에서 한치숙회를 먹어보기도 했다.
방학을 이틀 앞둔 칠월 둘째 수요일이다. 일과를 마치고 와실로 들어 옷차림을 바꾸어 연초삼거리로 나갔다. 그간 입은 양복을 세탁소에 맡기고 돼지국밥으로 저녁을 들고 가려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코로나 감염자가 속출해 식당에 앉기가 께름칙했다. 농협 마트에 들려 수산물 코너를 둘러봤다. 지난날 고현으로 나가 실내 포장에서 먹어본 오징어를 팩에 포장해 진열해 놓았더랬다.
농협 마트에서 오징어를 두 마리 사 와실로 들었다. 내장을 꺼내고 끓는 물에 데쳐 도마에 놓고 썰었다. 생선과 달리 비린내가 나질 않고 가시가 없어 조리도 간단해 초장만 있으면 되었다. 저녁 밥상을 차리기 전 냉장고에 둔 곡차를 꺼내 잔을 채워 안주로 삼았다. 거제는 봄이면 생멸치가 흔했다. 계절이 바뀌어 여름이 되니 오징어가 더러 보였다. 거제산 오징어도 내겐 올해 여름뿐이다. 21.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