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옥새(傳國玉璽) -
원소(袁紹)를 비롯한 제후(諸侯)들은 잿더미가 되어 버린 낙양성(洛陽,)城) 내에 진을 치고 동탁(董卓)을 공격(攻擊)할 기회(機會)를 다시 노리고 있었다.
장사 태수(長沙太守) 손견(孫堅)은 궁중(宮中)의 불을 끈 뒤에 건장전(建章殿) 자리에 장막(將幕)을 치고, 종묘(宗廟)가 있던 자리에는 조그만 전각(殿閣)을 짓게 하고 한(漢)나라 선왕(先王)들의 위패(位牌)를 모시도록 하였다.
그렇게 한 뒤, 제후(諸侯)들과 함께 종묘(宗廟)에 제사(祭祀)를 지내고 나니 날은 이미 저물었다.
손견(孫堅)은 고개를 들어 잿더미가 되어버린 궁전(宮殿)을 천천히 둘러보며 쓸쓸한 감회(感懷)에 젖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호화(豪華)롭던 궁전(宮殿)이 지금은 폐허(廢墟)가 되어 버렸으니 영화(榮華)롭던 한(漢)나라 시절(時節)의 종말(終末)을 보는 것 같아 손견(孫堅)의 감회(感懷)는 어느덧 입에서는 탄식(歎息)이 되어 저절로 흘러나왔다.
"아아, 낙양(洛陽)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어 버리고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탄(塗炭)에 빠져버렸으니 장차(將次) 이 나라를 어찌했으면 좋단 말인가!"
마침 그때 손견의 군사 하나가 남쪽을 가리키며,
"장군(將軍)님! 저 우물 속에서 이상한 광채(光彩)가 나오고 있는데 그게 무엇일까요?" 하고 물었다.
손견(孫堅)이 그와 함께 우물에 가서 그 속을 들여다보니 과연 우물 속에서는 오색(五色) 광채(光彩)가 이상(異常)하게도 번쩍거리는 것이었다.
"음... 저게 무얼까? 횃불을 밝혀서 우물 속을 조사해 보라!" 군사(軍士)들이 횃불을 들고 와서 우물 속을 살펴보니 우물 속에 궁녀(宮女)의 시체(屍體)가 하나 떠 있었는데 그 궁녀의 목에 걸린 비단(緋緞) 주머니에서는 이상한 광채(光彩)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물 속으로 들어간 병사(兵士)가 꺼내온 비단(緋緞) 주머니를 풀어 보니 그 속에는 주홍(朱紅)빛 상자가 들어 있었고 그 상자(箱子) 속에서 천자(天子)의 옥새(玉璽)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옥새(玉璽)에는,
수명우천(受命于天)
기수영창(旣壽永昌)
이라는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정보(程普)! 이 글은 무엇을 뜻하는가?" 손견(孫堅)은 고사(故事)의 지식(知識)이 풍부(豐富)한 정보(程普)에게 물었다.
정보(程普)!는 옥새(玉璽)를 세밀(細密)하게 감상(鑑賞)해 보고 이렇게 대답한다.
"이 옥새(玉璽)로 말하면 사백여 년 전인 진시황(秦始皇) 때 만든 것이온데 이사(李斯)라는 사람이 전문 여덟 자를 새긴 것이옵니다. 그런데 진시황(秦始皇) 이십팔 년에 진시황이 동정호(洞庭湖)를 건너다가 심한 풍랑(風浪)을 만나 이 옥새를 물에 던졌더니 풍랑이 잦아들어서 호수를 무사히 건넜다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이후로는 누구든지 이 옥새를 손에 넣는 사람은 반드시 나라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이 옥새를 <전국 옥새(傳國玉璽)>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날 주공(主公)께서 이 옥새를 손에 넣게 되신 것은 이만저만한 경사(慶事)가 아니 오니 주공께서는 여기 이러고 계실 것이 아니라, 곧 강동(江東)으로 회군(回軍)하셔서 큰일을 도모(圖謀)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면서 옥새(玉璽)를 손견(孫堅)에게 전하는데 정보(程普)!가 얘기한 것은 손견으로서는 참으로 놀라운 말이었다.
옥새(玉璽)를 건네받은 손견(孫堅)은 워낙 야심(野心)이 큰 사람인지라 그는 그곳에 있던 부하들을 보고 이렇게 경고(警告)하였다.
"오늘 밤 이 일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일체 입을 열지 마라!"
이튿날 손견(孫堅)은 군사를 거느리고 강동으로 돌아가려고 원소(袁紹)에게 작별(作別) 인사(人事)를 고(告)하러 갔다.
"본인은 이즈음 건강이 좋지 못해 당분간 본국으로 돌아가 쉴 생각이오."
원소(袁紹)는 손견(孫堅)의 이 말을 듣자 소리를 크게 내어 웃는다.
"하하 하하, 손 장군이 몸이 불편(不便)하다고요?"
"아니, 맹주(盟主)께서는 내가 몸이 불편(不便)하다는데 웃기는 왜 웃으시오?"
"손 장군이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솔직(率直)한 이유는 건강 문제 때문이 아니라 어제 옥새(玉璽)를 얻었기 때문이 아니요?"
손견(孫堅)은 그 소리를 듣고 속으론 크게 놀라면서도 시치미를 딱 떼었다.
"옥새(玉璽)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오?"
그러자 원소(袁紹)는 노기를 띠며 꾸짖는다.
"손 장군! 나는 모든 비밀(祕密)을 다 알고 있소. 건장전 우물 속에서 옥새(玉璽)를 얻었거든 그것을 맹주(盟主)인 나에게 응당 가져올 일이지 감쪽같이 숨기고 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짓이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저는 영문을 모르겠소이다."
"손 장군이 그렇게까지 시치미를 뗀다면 내가 증인(證人)을 불러오리다."
원소(袁紹)는 곧 부하를 시켜서 간밤에 옥새의 비밀(祕密)을 알려 준 손견(孫堅)의 부하를 불러오게 하였다.
"저 병사는 손 장군의 부하로서 어젯밤에 우물을 조사했던 사람인데 그래도 나를 속일 작정인가?"
손견(孫堅)은 밀고(密告)한 놈을 보고 기가 막혔다.
그리하여 칼을 뽑아 들 모양을 보이자 원소(袁紹)가 미리 준비해 놓은 부하들에게 명령한다.
"손 장군을 호위(護衛)해 온 병사들을 경계(警戒)하라!"
순간 손견(孫堅)은 칼을 뽑아 원소(袁紹)를 겨냥했다.
그러자 원소(袁紹)를 호위하고 있던 안량(顔良), 문추(文醜) 등 두 장수가 손에 칼집을 붙잡으며 금방이라도 칼을 뽑아들 듯 손견 앞으로 다가선다.
손견(孫堅)의 편에서도 정보, 황개, 한당 등 맹장(猛將)들이 싸울 태세를 갖춘다.
크게 놀란 사람은 동석(同席)했던 제후(諸侯)들이었다.
"손견(孫堅) 장군이 이처럼 결백(潔白)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옥새(玉璽) 문제는 사실이 아닌 듯하오니 맹주(盟主)께서는 노여움을 거두시는 것이 좋을 것 같소이다."
원소(袁紹)는 제후(諸侯)들의 충고에 노기가 누그러지며 이렇게 따져 물었다.
"그러면 옥새(玉璽)를 갖지 않았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證明)하려는가?"
"나도 한나라의 신하인데 내가 어찌 옥새(玉璽)를 가지고도 나라의 모반(謀反)을 꾀하리오. 천지신명(天地神明)께 맹세(盟誓)컨대 그런 일은 결단코 없소!"
병사들에게 경계를 풀라고 명했다.
그러나 이튿날 소식을 들어보니 손견(孫堅)은 간밤에 군사를 거느리고 낙양(洛陽)을 떠나 강동(江東)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것이 아닌가?
"음... 그놈이 암만해도 의심(疑心) 스러우니 형주 자사(荊州 刺史) 유포(劉表)에게 곧 사람을 보내어 도중(途中)에서 손견(孫堅)을 체포(逮捕)하도록 하라!"
원소(袁紹)는 기어코 손견(孫堅)을 의심(疑心)하고 그의 체포령(逮捕令)을 내리고야 말았다.
삼국지 - 47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