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전반기의 독일만큼 광기와 극단에 휩싸인 나라도 없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패배했고,
민주주의가 붕괴하고, 감당할 수 없는 전쟁배상금에 짓눌리고, 초인플레이션을 겪으며 자신들이 축적한
모든 것을 잃은 독일이었다. 히틀러라는 전대미문의 독재자를 자신들 손으로 뽑은 것도 독일이었다.
오늘날 합리적이고 검박한 독일인이 과연 그들의 후손인디 의아할 정도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할퀴고 간 독일의 만신창이 역사와 당시 독일인이 느꼈던 공포화 불안감을 극명하게 드러낸
소설이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1959 이다. 노벨 문학상 1999을 받은 그라스는 이 작품의 두께만큼이나
묵직한 독일 현대사를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보여주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상 심사평에서 '인간들이
떨쳐버리고 싶었던 거짓말, 피해자와 패자 같은 잊힌 역사의 얼굴을 장난스로운 블랙동화로 잘 그려냈다." 라고 평했다.
3부작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952~54년 정신병원에 수감된 주인공 오스카가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정신병원에서 회상하는 시점과 오스카가 겪은 1899~1954년의 독일 역사가 뒤섞이며 이야기를 끌어낸다.
1899년은 어머니의 출생, 1954년은 오스카의 30세 생일인 해다. 작품 배경인 단치히는 작가의 출생지이고,
발표 년도는 작가가 30세 되던 해란 점에서 자전적, 자의식적인 소설이다.
세 살 생일에 지하실에서 추락해 성장을 멈춘 오스카는 정신은 어른이지만 몸은 어린아이다. 생일 선물로 받은
양철북, 어머니의 불륜, 유대인의 학살의 빌미가 된 1938년 11월 9일 이른바 '수정의 밤'사건, 단치히 우체국
방어전, 아버지의 죽음, 첫사랑이자 계모인 마리아, 의붓동생이자 아들인 쿠르트, 러시아군이 점렴한
단치히 탈출, 정신병원 수감까지 오스카가 겪은 사건 하나하나가 독일 현대사와 맥락을 같이한다. 오스카가
성장을 멈춘 1927년은 나치스가 세력을 키워가던 시절이고 그가 다시 성장하는 것은 2차대전이 끝날 무렵
아버지가 죽은 다음이다.
오스카와의 관계가 뒤죽박죽인 마리아와 쿠드트는 나치스가 지배한 독일 사회의 가치 전도에 대한 상징인지도
모른다. 오스카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하는 것은 그 뒤에 벌어진, 잊고 싶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역사에 대한 절규로 들린다.
(출처 " 교양으로 읽는 세계사)
|
첫댓글 양철북을 치는 난쟁이 오스카의 시각에서 나치 점령부터 세계대전 종전 후까지의 파행적인 독일 역사를 그린 작품입니다.
감사합니다.
결코 더 이상 성장하지 않겠다!
(절규)
그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내야 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극한의 포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