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제가 군목 훈련 중 부상당했을 때, 저는 회심을 체험하였습니다.
진정으로 죄를 회개하며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하나님의 종으로 나를 드렸습니다.
그 날의 영적 감격은 정말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습니다.
얼마 못가 제 심령은 다시 무디어지고 죄는 다시 나를 넘어 뜨렸습니다.
저는 안타까왔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 때 은혜를 회복하게 해 준 것이 성찬식이었습니다.
그전까지 성찬은 제게 형식적인 의식이었을 뿐입니다.
아무런 은혜도 감동도 감격도 없었습니다.
예문에 의하여 참회의 기도가 있었지만, 진정한 참회의 기도를 드려 본 기억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달랐습니다.
성찬 떡과 포도주를 받아 먹고 마시는 중에 “너와 나는 한 몸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너를 결코 버리지 않겠다!”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데, 쏟아지는 눈물을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 이후, 성찬을 대하거나, 집례할 때마다 그 때의 감격을 느낍니다.
성찬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하나됨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지시기에 앞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 성찬을 베푸셨습니다.
그 밤이 자나면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갈 것이고 부인할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에 큰 위기가 닥쳐올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몸 속에 미리 예수님 자신의 살과 피를 섞어 두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배반하고 도망가고 부인해도 예수님은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성찬을 받는 모든 이들이 이런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떡이 우리 몸에 들어와 우리 몸과 하나가 된 것 같이 예수님과 우리는 도저히 분리시킬 수 없이 하나가 되었다는 약속, 그래서 어떤 잘못을 하였을 지라도, 나는 너를 모른다 하지 않으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성찬의 축복은 예수님과 하나됨 만이 아닙니다.
또 하나의 축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찬을 받은 모든 이들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떡에 참여한 것입니다.
내가 주님과 하나되었다면 다른 사람도 주님과 하나된 것입니다.
우리는 한 성찬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같이 성찬을 받고도 여전히 남남인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라고 느껴지지 않거나 하나되기 싫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왜 이래?” 그 말은 자신과 교회가 하나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너와 달라!” 하면 이것은 성찬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찬의 은혜를 깨닫기 전에는 다른 성도들에게 비판적이었습니다.
싫은 사람은 싫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교회 현실에 대하여도 나라에 대하여도 매우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찬의 은혜에 눈이 뜨인 후, 그것이 바뀌었습니다.
어느날 성찬을 받으면서 참회의 기도를 하는데, 제 마음에 도무지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가 생각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용납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용서가 안되고 사랑이 안되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주님의 성찬 떡을 받아 씹는데, 가슴이 울컥하는 것입니다,
저와 한 몸이 되는 것이 주님께는 얼마나 큰 고통이 될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저는 울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내가 주님과 한 몸이 되는 것만 기뻐하고 감사하였지 주님의 고통은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때, 제 마음이 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른 사람을 제 몸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했던 사람이 “내가 그렇구나” 하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허물 많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허물 많은 우리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는 성찬식을 통하여 문제가 많은 사람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사도 바울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3) 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이루어 주신 하나됨을 우리가 깨뜨려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지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끝까지 함께 가야 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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