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창동-4c인데 추위가 느껴지지 않은 것은 어젯밤 잠자리가 괜찮았다는 반증입니다. 모처럼 뛰는 트래킹을 하려고 운동화 끈을 질근 맸는데 카드 단말기 회사에서 온다고 해서 다시 숍으로 들어왔어요. 동구릉 역에서 롯데 아울럿으로 방향을 잡았더니 구리 농수산물 시장입니다. 생굴비 20.000-꼬막 10.000-낙지 떨이 3마리 15000을 사들고 고 홈 하는데 공원 개울 시냇물이 팔팔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네요. 역동하는 '힘의에 의지'가 동장군을 제압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에예공! 주말 잘 보냈니?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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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내가 안 가본 곳이 어디 있을까만 구리는 호남 텃밭입니다. 가락동 청과물 시장이 충장 오비(김태촌, 김0선)나와바리여서 구리는 자동적으로 전라도 건달들이 오래전에 자리를 잡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진접 손님보다 구리 손님들이 대체적으로 순한 것 같아요. 코끼리 할 때는 6개월 동안 백차가 5번쯤 왔고 날이면 날마다 진상 손님들 때문에 바람 잘날 이 없었다는 것 아닙니까? 모처럼 굴비 3마리를 굽고 가마솥 밥을 지어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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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굴비라 비린 내는 없었지만 살이 자꾸 부스러져서 식감이 2% 떨어지네요. 어려서 연탄불에 구워 먹던 그 굴비는 기름기가 차르르했고 각 잡고 있는 하얀 고기 살을 숟가락에 웃짐을 얹어 먹으면 살살 녹았어요. 설익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왜 부스러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샘표 간장-참깨-참기름을 넣고 만든 간장으로 갓 지은 쌀 밥에 비볐더니 예닐곱 살 추억이 스르르 소환되었어요. 어제가 동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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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죽이라도 없을까 찬찬히 돌아다녔는데 손님도 없고 찰밥도 없어서 아쉽네요. 인스타에서 사진을 캡처했어요. 동지가 세례요한의 생일인 이유를 아시나요? SNS 사진들을 보면 모두 웃고 있지만, 실은 웃는 게 웃는 게 아닙니다. 언제부턴가 끝없는 불안의 노예가 되어버렸어요. 편안함과 안전함이 우상이 된 날들입니다. 자아의 욕구와 결핍을 감추기 위한 가면을 벗을 수가 없는 시대, 얼굴의 원형은 깊숙이 숨겨 사람을 사람으로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참된 얼굴은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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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바닥’과 싸우면서 살 것입니다. 나만 그런가?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존경받는다’와 ‘멸시받는다’.는 한 대상에 대한 극과 극의 표현입니다. 그 가치는 하늘과 땅의 차이지요. 지극한 화려함과 차마 볼 수 없는 추함의 차이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 차이가 가장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경우가 있어요. 바로 연탄재입니다. 한 겨울, 아궁이에서 뜨거운 불꽃으로 타올라 사람들의 요구대로 삶을 마감한 뒤 미처 그 기운이 식기도 전에 골목길로 내버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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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차가운 폐기물로 전락하여 꽁꽁 얼어붙은 상태에서 뭇사람들의 침 뱉는 장소나 담뱃재 버리는 재떨이로 전락합니다. 살아있을 때 600도의 이글이글한 온도에서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누구도 봐주지 않는 영하의 차가운 신세가 됩니다. 어쩔 때는 이름 모를 나그네에게, 어쩔 때는 그를 애용하던 사람들의 발길에 채여 장렬히 산화하는 비극을 맞기도 하지요. 그래서 안도현은 이렇게 연탄재를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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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반쯤 깨진 연탄/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나를 끝닿는 데까지/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다시 돌아가면/연탄,/처음 붙여진 나의 이름도/으깨어져 나의 존재도/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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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발상이 참으로 위대합니다. 연탄재 한 장을 두고 연극처럼 열기와 냉기를 스미게 만듭니다. 시인은 겨울밤 잠 못 이뤄 뒤척이는 처절한 몸부림을 가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도현이 해직교사 시절,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곱씹으며 지었다는 시입니다. 그때 냉엄한 현실 속에서 발견한 차가운 연탄재, 자기 몸을 불사르며 방을 데워주고 라면을 끓여주며 마지막에는 재가되어 버림받는 그 신세를 발견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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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 삶에서 사라진 연탄. 그 이름은 원래 19공탄이었어요. 훨훨 타올라 세상 모든 것을 펄펄 끓이고, 태울만큼 태우다 가라는 주문이 들어있어요. 한 번이지만 남을 위해 뜨거운 삶으로 살다 가라는 지엄한 명령이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이타적 삶을 사는 불꽃같은 청춘의 상징이 아닐까?
2024.12.23.mo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