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과 김시습
선비는 세월을 타고 나야 제대로 된 포부를 펼칠 수 있습니다. 능력에 비하여 안타까운 세월을 살다 간 사람들도 많지요. 조선 세조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도 그러한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 ‘시습’은 논어의 첫머리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에서 따온 것입니다. 시시때때로 익힌다는 이름과 마찬가지로 시를 잘 짓고 학문을 좋아하는 선비였지요. 그는 최초의 금서인 금오신화를 짓습니다.
많은 사람이 금오신화에 귀신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金鰲神話로 귀신 神자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금오신화는 새로울 신(新)자를 씁니다. 金鰲新話 즉 "새로운 이야기, 참신한 이야기"라는 것이지요.
금오(金鰲)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금오산(金鰲山)을 뜻합니다. 경주 남산의 주봉이지요. 세조의 왕위 찬탈 이후 김시습이 금오산에 있는 용장사에 7년간 은거하며 지은 이야기가 금오신화(金鰲新話)입니다.
금오신화에는 5가지 단편소설이 들어 있습니다. 만복사 저포기, 이생규장전, 남염부주지, 취유부벽정기, 용궁부연록 등이 그것이지요. 대부분 인간과 귀신에 얽힌 이야기가 많습니다. 김시습은 유학자 출신이지만 세조의 집권 이후 세상을 버리고 출가해 산에서 도를 닦았기 때문에, 소설에 유교와 거리가 먼 불교 및 도교적 내용이 많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김시습은 세조의 충직한 신하인 한명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한명회가 이런 시를 짓지요. 청춘부사직(靑春扶社稷) 백수와강호(白首臥江湖) "젊어서는 사직을 보필하고 늙어서는 강호에 은거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김시습은 이 시를 이렇게 고쳐 버립니다. 靑春亡社稷(청춘망사직) 白首汚江湖(백수오강호) "젊어서는 사직을 망치고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힌다."라고 말이지요. 명쾌하게 살아있는 권력을 비웃은 김시습은 배포가 참 큰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김시습은 1483년, 49세 때 관동으로 2차 방랑길을 떠납니다. 춘천, 강릉, 양양 등을 거치며 많은 시를 남겼지요. 춘천에도 김시습의 발자취가 여러 곳에 남아있습니다.
청평사를 오르다 보면 '영지'라는 연못을 만나게 됩니다. 김시습(金時習)은 이곳 영지를 보고 “네모난 못에 천 층의 봉우리가 거꾸로 들어 있다.(方塘倒揷千層峀)”고 표현하기도 했지요.
소양정에 오르면 김시습의 시 한 편이 현액되어 있습니다. 그 시의 전문을 소개합니다.
등소양정(登昭陽亭)
조외천장진(鳥外天將盡) 수변한불휴(愁邊恨不休) 산다종북전(山多從北轉) 강자향서류(江自向西流) 안하사정원(雁下沙汀遠) 주회고안유(舟廻古岸幽) 하시포세망(何時抛世網) 승흥차중유(乘興此重遊)
소양정에 올라 <김시습> 새가 나는 저 너머로 하늘은 끝나려 하는데 시름은 끝나려 하지만 한은 끝이 없구나. 산들은 북쪽으로부터 굽어들고 강은 절로 서쪽을 향하여 흐르느니.
기러기 내려앉는 모래톱은 아득하고 배 돌아오는 옛 언덕 그윽하구나. 어느 때 세상 그물에서 벗어나 흥에 겨워 이곳에서 와 다시 놀아볼까?
주변에 옛 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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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 님의 글입니다. <아는 것만큼 볼 수 있고.....> 다시금 이 귀절을 되뇌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집에서 소양정이 빤히 보입니다. 일제 때 놓여 아직도 잘 쓰고 있는 소양교를 건너면 바로 봉의산 자락이고, 5분만 걸어 올라가면 소양정이 있는데, 그곳에 김시습의 편액이 걸려 있는 줄은 몰랐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