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앞둔 교정에서
보름 전 한 학기를 마무리 짓는 정기고사를 마쳤다. 교사들은 성적 처리와 학교 생활 기록부 세부 능력 특기사항 기재로 바쁜 나날인데 코로나 확진가가 발생해 난감했다. 지난 주말 3학년 2명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후 천 명 가까운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선별 검사를 받아야 했다. 감염자와 동선이 겹친 다수 학생과 일부 교사들은 자가 격리 상태로 방학에 들게 되었다.
내일 방학에 들면 광복절 이전 2학기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고3과 교직원들의 코로나 예방 백신 접종 관계로 학사 일정이 1주 미루어졌다. 여름 방학은 짧아 당초 3주 계획에서 1주 더 늘어 광복절 이후 개학한다. 내게는 방학 중 치과 진료를 다녀야 하는 시간을 확보해 잘 된 셈이다. 대신 2학기는 대체 공휴일제 시행과 함께 학사일정이 늘어져 해를 넘겨 겨울 방학에 든다.
코로나 확산세가 수도권만이 아니라 지역까지 좀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경남에서도 김해와 창원에서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다. 어제는 함안이 연고인 지기가 재난 문자에 그곳에서 10명이 한꺼번에 발생했단다. 내가 주중 머무는 거제도 예외가 아니라 8명이 발생했다. 이번엔 특히 학생 감염자가 연일 나오고 있어 더 걱정이 된다. 인근 학교에서도 확진가가 나오고 있다.
엊그제는 퇴근 후 고현으로 나갈 일이 있었다. 한 달 한 번 당뇨약을 타 오는 내과 의원을 찾아가는 길이다. 연사 들녘을 지나 연초교를 건너 연초천 하류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한 시간 남짓 걸려 내과에 들려 혈당을 측정하니 안정된 수치였다. 그럼에도 주치의는 약을 먹으라며 처방전을 끊어주어 약국에서 약을 탔다. 당뇨는 의사에게 한 번 코가 꿰면 봉이 되어 벗어나기 어렵다.
고현에 나가면 으레 들리는 실내포장이 있는데 엊그제는 예외였다. 겨울에는 가오리무침이 나오고 봄에는 생멸치회무침이 나오는 간이식당이다. 주인 아낙은 철 따라 차림표가 달랐다. 자작이지만 맑은 술을 비우기 좋은 안주였다. 밑반찬이 깔끔하게 나와 반주와 함께 공기밥으로 저녁까지 때우고 와실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런데 코로나 감염이 우려되어 걸었던 길을 되돌아왔다.
어제는 일과를 마치고 와실로 들어 옷차림을 바꾸어 연초삼거리로 나갔다. 그간 입은 여름 양복을 세탁소에 맡겼다. 이후 가끔 들렸던 돼지국밥집에서 저녁을 한 끼 해결하려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어디나 코로나 안전지대가 아닌지라 께름칙했다. 식당 건너편 농협 마트를 찾아 수산물 코너에 보인 생물 오징어를 두 마리 사 와실에서 데쳐 곡차 안주로 삼았다.
새날이 밝아온 칠월 셋째 목요일이다. 이른 아침밥을 해결하고 와실을 나서 연사 들녘을 둘러 교정으로 들었다. 당직 노인은 현관문을 열어 놓고 국기를 게양하고 운동장에서 맨발 걷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현관으로 바로 들지 않고 교정에 심어둔 봉숭아를 살폈다. 먼저 가꾼 뒤뜰 언덕 봉숭아는 꽃이 피었지만, 앞뜰 향나무 그루 아래와 서편 비탈은 이제 잎줄기를 불려갔다.
앞뜰 교정에 뒤늦게 심은 봉숭아 그루는 잎줄기를 한창 키워가는 즈음이라 꽃송이는 아직 덜 맺혔다. 봉숭아를 한 포기 한 포기 살피다가 보호색을 띤 파란 애벌레를 찾아냈다. 달포 전 뒤뜰 언덕 심어둔 봉숭아 잎줄기를 갉아 먹던 애벌레와 같은 녀석이었다. 거름을 주어 무럭무럭 자라는 봉숭아 잎줄기를 제법 많이 해코지해 놓아 속이 상했다. 네 마리를 찾아내어 즉결 처분했다.
서편 울타리 경계에 심어둔 봉숭아까지 둘러보고 뒤뜰로 갔다. 그곳은 한 달 전부터 꽃이 피기 시작한 봉숭아가 꽃 대궐을 이루었다. 장마와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송이들이 만발했다. 내일 방학에 들어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아도 봉숭아는 학교를 잘 지켜줄 것이다. 팔월 중순 개학해도 앞뜰과 서편 울타리 가장자리 늦게 심은 봉숭아는 꽃잎을 달고 아이들을 반겨줄 테다. 21.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