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해(瓦解)되는 회맹 연합(會盟聯合) -
이날, 낙양(洛陽)을 버리고 장안(長安)으로 도망(逃亡)치는 동탁(董卓)을 쫒다가 형양(衡陽) 싸움에서 크게 패(敗)한 조조(曹操)가 초췌(憔悴)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원소(袁紹)는 조조(曹操)를 위로(慰勞)하기 위해 잔치를 베풀었으나 조조(曹操)는 그 자리에서 노여운 어조(語調)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대의(大義)를 살리기 위해 회맹 연합(會盟聯合)을 결성(結成)하여 한테 모였으나 이제 알고 보니 제후(諸侯)들의 마음속에서는 제각기 다른 배포(排布)를 품고 있는 것 같소. 이래가지고는 아무 일도 안 될 것이므로 나는 당분간( 當分間) 고향(故鄕)으로 돌아가 몸을 쉴 생각이오."
손견(孫堅)도 떠나가고 이제는 조조(曹操)도 떠나겠다고 하니 동탁(董卓)을 제거(除去)하려고 모였던 회맹 연합(會盟聯合)은 점차(漸次) 와해(瓦解)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제후(諸侯)들은 총대장(總大將) 원소(袁紹)의 지휘력(指揮力) 무능(無能)에 환멸(幻滅)의 비애(悲哀)를 느끼게 되었다.
이윽고 다음날 조조(曹操)가 군사를 거느리고 양주(揚州)로 떠나버리자 공손찬(公孫瓚)도 내심 느끼는 바가 있어서 유비l(劉備)를 불러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 보았자 아무 소득(所得)도 없을 것 같으니 유 장군(劉將軍)도 일단 평원(平原)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소?"
"네, 분부(分付)대로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공손찬(公孫瓚)도 군사(軍士)를 거느리고 낙양(洛陽)을 떠나 버렸고, 그간 전공(戰功)을 크게 세운 관우(關羽)와 장비(張飛)도 아무런 훈공(勳功)을 받지 못한 채 유비(劉備)와 함께 낙양(洛陽)을 떠나 평원으로 돌아갔다.
한편, 형주(荊州) 자사 유표는 원소(袁紹)의 명을 받고 나자 곧 수하 장수인 괴량과 채모(蔡瑁)에게 군사 만여 명을 주어 손견(孫堅)을 잡아오게 명하면서 강동으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뒤에서 수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손견(孫堅)은 군사를 거느리고 길을 재촉하니 문득 괴량의 군사들이 길을 막는다.
"누가 무슨 일로 길을 막느뇨?"
손견(孫堅)이 말하자 괴량이 앞으로 나서며 이렇게 외친다.
"네가 한나라 신하로서 어찌 옥새를 감추었느냐? 순순히 내놓으면 무사할 것이로되 그렇지 않으면 이곳을 살아서 지나가지 못하리라!"
그 말을 들은 손견(孫堅)은 크게 노하여 황개를 시켜 괴량을 쳐부수게 하였다. 양 편의 군사들이 크게 싸우는 중에 괴량의 형세가 불리해지자 이번에는 채모(蔡瑁)가 합세하였다. 그러나 채모 역시 황개를 당해 내지 못하고 급히 쫓기는데 이번에는 산 뒤에서 북소리와 제금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형주 자사 유표가 대군을 휘몰아쳐 나왔다.
손견(孫堅)은 유표를 보자 마상에서 예의를 보이며 말했다.
"유 자사는 어찌하여 원소의 말을 듣고 나를 의심하시오?"
"네가 옥새를 감추고 강동으로 돌아가려는 것은 모반을 하려는 음흉스러운 속셈이 아니더냐?"
"내가 만약 옥새를 감추고 있다면 유 자사의 칼과 화살 아래 죽으리다."
"정말 그렇다면 짐 검사를 받아라."
그 말에 손견(孫堅)은 크게 화를 내었다.
"이놈! 정녕 네가 나를 이렇게나 모욕한다면 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양군 간에는 다시 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손견(孫堅)의 군사들은 먼 길을 오가느라고 모두 지쳐있던 데다가 유표의 군사들은 워낙 강군이어서 손견은 크게 패하고 정보, 황개, 한당 등 세 장수와 함께 간신히 목숨을 보존하고 초라한 행색으로 강동으로 돌아갔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원소는 낙양에 그냥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군량과 마초(馬草)도 넉넉하지 않아서 군사를 보존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사정을 알고 모사 봉기(謨士 逢紀)가 원소(袁紹)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하를 경륜하려는 우리가 군량에 쫓겨서야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기주(冀州)는 물자가 풍부한 곡창지대(穀倉地帶)이오니 우리가 그곳을 손에 넣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양군 간에는 다시 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손견(孫堅)의 군사들은 먼 길을 오가느라고 모두 지쳐있던 데다가 유표의 군사들은 워낙 강군이어서 손견은 크게 패하고 정보, 황개, 한당 등 세 장수와 함께 간신히 목숨을 보존하고 초라한 행색으로 강동으로 돌아갔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원소(袁紹)는 낙양에 그냥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군량과 마초(馬草)도 넉넉하지 않아서 군사를 보존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사정을 알고 모사 봉기(謨士 逢紀)가 원소(袁紹)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하를 경륜하려는 우리가 군량에 쫓겨서야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기주(冀州)는 물자가 풍부한 곡창지대(穀倉地帶)이오니 우리가 그 곳을 손에 넣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자 공손찬(公孫瓚)이 대군을 이끌고 기주로 쳐들어 온다는 급보를 들은 기주 지사 한복은 크게 놀라 순심(荀諶), 신평(辛評) 등 두 모사를 불러 대책 강구 회의를 열었다.
순심이 말한다.
"일이 이렇게 되면 원소(袁紹) 장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원소 장군이라면 공손찬(公孫瓚)도 겁을 낼 것이 분명하니까요."
한복은 그 말을 옳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장사 경무(長史 耿武)가 반대하였다.
"원소로 말하면 지금 몹시 궁핍하여 아무한테나 핑계가 없어서 트집을 못 잡는 형편인데 그런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양 떼 속에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절대 안 됩니다."
그러나 한복은 경무(耿武)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원소(袁紹)에게 사람을 보내어 구원을 요청하자 경무(耿武)는 하늘을 우러러 긴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탄식하였다.
"아아, 이제는 기주(冀州)도 망하는 판이구나!"
원소(袁紹)는 기주(冀州) 지사 한복(韓福)의 구원 요청을 받자 모든 것이 계획대로 들어맞는 것을 크게 기뻐하며 몸소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기주로 진군하였다.
원소(袁紹)가 기주(冀州) 고을에 들어오던 때 충신(忠臣) 경무(耿武)는 나라가 망해 가는 꼴을 보고 있을 수만 없어서 원소(袁紹)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칼을 빼들고 원소(袁紹)에게 덤벼들었다.
"이놈아! 네가 무슨 음흉(陰凶)한 속셈을 가지고 이 땅에 나타났느냐?"
그러나 경무(耿武)는 원소(袁紹)가 타고 있는 말에게만 상처를 입혔을 뿐 대장 안량(顔良)의 칼에 쓰러져 버렸다.
원소(袁紹)는 기주(冀州) 지사 한복(韓福)의 영접을 받으며 관아(官衙)로 들어오자 한복(韓福)을 분위장군(奮威將軍)으로 삼아 실권(實權) 없는 명예직(名譽職)으로 돌려버리고 저수, 봉기 등의 심복(心腹) 장수(將帥)들에게 모든 실권(實權)을 잡도록 만들어 버렸다.
한복(韓福)은 그제서야 충신 경무의 간언(諫言)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이러다가는 나의 목숨조차 위태로울지 모른다!)
한복(韓福)은 그렇게 생각되어 마침내 기주(冀州) 땅을 버리고 단신(單身)으로 진류 태수(陳留 太守) 장막(張邈)을 찾아가 몸을 의탁(依託)하였다.
삼국지 - 48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