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들어 수은주가 가장 아래로 떨어진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몰려든 8명의 老健兒(?)들은 늙은 피부라 감각이 둔해져서라는 이유라기보다는 가기 전에 한번이라도 친구들을 더 만나는 것이 우리 나이의 의무라는 뜨거운 우정의 발로라고 믿고싶다.
오늘도 변함없는 도우미 아줌마의 진한 정이 녹아든 뜨거운 생강차를 준비한 조 거사님은 도착하는 친구마다 달려가 혹한으로 차가워진 몸과 가슴을 녹여주는 우정을 보인다. 이맛으로 모임에 참석한다는 친구도 있을 정도로 그 맛과 향이 둘 사이를 의심할 정도로 진국이다.
밖으로 나오니 쏟아지는 햇볕이 추위의 위력을 한층 덜어줘 오히려 산책하기 적당한 날씨를 만들어준다. 이제 바람에 날리는 낙엽도 찾아보기 힘든 겨울의 한가운 데로 들어섰지만 무성한 잎으로 풍요를 뽑내던 여름보다 잎을 미련없이 대지로 돌려보내고 을씨년스런스런 裸木들이 자아내는 쓸쓸한 분위기가 그 밑을 걸어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잘 조화되는 것 같다.
손을 뻗으면 만져질듯 가까이 선명하게 보이는 청계산을 보면서 저 산봉우리를 다람쥐처럼 오르내리던 고 박 찬운 친구에 대한 추억담이 절로 나와 잠시 상념에 젖어든다. 자주 등산하고 술과 담배 거기에 여자까지 멀리하여 백수 멤버 중 장수의 롤모델이었던 그 친구가 그렇게 허망하게 우리 곁을 훌쩍 떠날 줄 누가 알았으랴! "人命在天" ! 하나님이 데려가는 날 까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한다. 오늘은 앞으로의 삶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호숫가의 인기있던 물가 벤치보다 산기슭의 양지쪽 벤치가 더 좋은 것을 알고 조거사님이 벌써 명당 자리를 잡고 우리를 기다린다. 홍어 2판에 주선장님이 대학 동기모임 여행에서 가져온 대형 막걸리, 최총무 특유의 과일 바구니를 능가하는 이 두훈 기장님의 잘 다듬어진 과일 박스가 차려지니 훌륭한 간식 잔치가 시작된다. 이기장의 과일 박스를 본 심술 첨지 조거사님이 한마디 거든다. "이 기장은 입회 일자가 일천한데도 학습 능력이 뛰어나 모임의 좋은 점 나쁜 점을 이미 다 터득한 것 같다."고 칭찬이 곁들인 놀림의 농을 건낸다.
오늘 모임의 주요 안건인 송년회는 마지막 금요일인 30일 당산역에서 12시에 만나 한강 숲길을 걷고 12시 50분까지 선유도역 6번 출구로 가서 송 재덕 친구를 비롯한 나올 가능성 있는 친구들과 합류하여 그 동네 중국집에서 갖기로 결정했다.
이런저런 얘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다가 문득 12시 가 넘어서자 윤총장이 오늘은 들어가서 먹는 곳을 물색해 보라고 한다. 그러니 옆 친구가 "들어가고 집어넣는 것은 전문가인 최총무에게 물어보라!" 라 대꾸하자 모두가 웃으며 아무래도 윤 총장 멘트 속에 오늘의 점심을 자기가 책임지려는 뉴앙스가 풍기는 것 같음을 느낀다. 그러자 한 회장이 "지난 번 윤총장의 카페 댓글 내용에 금년 자기 생일 잔치를 이 모임 저 모임에서 하다보니 6번 치루었다고 해서 내가 답글로 기왕이면 백수 친구들에게 한번 더 지갑을 열어 럭키 7번째를 만드는 것이 어떠냐고 했는데 오늘 그 일을 실천에 옮기려는 것이냐?" 했더니 묵묵부답으로 시인한다.
부랴부랴 모처럼만에 청도 수산에 전화를 걸어 윤 총장의 7번째 생일(우리 백수 친구들에게는 3번째) 잔치방을 예약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서 나가는데 최총무가 싸놓았던 쓰레기 봉투가 없어졌다고 걱정하니 김 병철 관장이 자기가 주어나왔다고 한다. 최총무의 틀에 박힌 책임감으로 기어이 쓰레기 봉투를 빼앗아 통에 버린다.
대공원역에 도착하니 성 주형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 함께 가자고 했더니 그냥 친구들 모습이 보고싶어 기다렸다고 말하고 서울 법대 친구들이 기다리는 할매집으로 향한다. 이제 우리 나이는 친구들 모습을 한번이라도 더 보는 것이 마음에 위안을 얻는 삶의 끝자락에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청도수산에 도착하니 변함없는 여사장과 서빙 아줌마가 반갑게 방으로 안내한다. 오랜만에 시원한 대구탕에 맥주,소주를 곁들여 윤 총장 3번째 생일 잔치가 벌어진다. 금년부터 맏형으로 모시기로 회원들의 동의를 받았으니 윤 총장님이 장형답게 아낌없이 아우들에게 베풀기로 마음먹은 것 같지만 조금은 미안한 뒤끝이 있다. 오늘도 대화의 초점이 최총무에게로 쏠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서빙 아줌마가 음식을 나르는 동작중 몸이 최총무에게 약간 쏠렸는데도 아래쪽에 소식이 왔었다고 터무니없는 고백을 했기 때문이다. 70대 부부가 운영하는 이발소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이어가자 친구들은 부러움 반 의심 반의 눈총을 주며 계속 진위를 닥달한다.
요즈음 우리 모임의 새로운 대화의 특징은, 이쪽에서는 이런 건을 중심으로 열심히 의견을 나누는데 조금 떨어진 저쪽에서는 전혀 다른 내용의 대화를 터뜨려 모두가 당황스럽게 된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캐보니 서글픈 내용이 나와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 이유는 귀가 대부분 어두워져 조금 떨어진 친구의 대화를 잘못 듣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한쪽에서는 "푸틴"을 얘기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바이든"으로 받아들여 얘기를 이어가는 헤프닝이 있었다.
70이 넘으면 "無恥"라고 했다! 잘못 들어도 좋다! 그저 계속 대화에 뛰어들어 열심히 웃고 떠들며 우정을 즐기자! 오늘 대화의 하일라이트는 김병철 관장이 내뱉은 한 마디 "前에 안 나온 놈 있어?" 였다. 최총무가 모심기를 자랑하지만 실제는 아래쪽에서 액이 나오기 어렵다면서 "전에는 잘 나왔는데..."하는 말에 맞받아 친 김관장의 말이다.
오늘 이미 두번씩이나 생강차로 서빙한 조거사님이 이제는 커피까지 8잔을 뽑아 들어서자 오늘 뜻밖의 푸짐한 점심 잔치를 마련한 맏형님 윤총장님에게 고맙고 감사하다는 인사의 박수를 보낸 다음 커피로 입가심을 하고 다음 주를 기약한다.
[오늘 함께한 친구들] 주재원,조원중,최기한,조남진,이두훈,윤영연,김병철,한현일
[다음 주 예고] 12.9일(金) 11시 대공원역에서 만나요. 오늘 지나며 추위는 우리 만남에 아무 지장이 되지 않음을 알았어요.
첫댓글 금년 내 생파는 처음도 백수요 중간도 백수며 종점도 백수회가 찍었어요 이는 막내 한회장이 맏형 생일을 진짜와 가짜를 넘나들며 음력과 양력으로 변환시켜 마치 금번 한국이 16강 진출만큼이나 드라마틱하게 계획 연출했기때문여요. 고마우이.
내년에는 米壽에 들어가시는 연로하신 맏형님의 생신일을 맞아 어떻게 하면 좀더 뜻깊게 길게 오래 축하하고 즐길 수 있나를 연구하다보니 7번씩이나 생일 상을 차리게 하는 번거러움을 끼친 우리 아우들의 치기를 넓은 아량으로 용납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맏형님의 米壽 잔치가 있을 내년에는 우리 나라의 운명을 가르는 총선도 있는 해이니 부디 맏형이신 장로님의 은혜로운 구국 기도로 그 결과가 잘 나와 米壽 잔치가 국가적인 행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내년 백수 산우회 모임에서만의 맏형님 생일 잔치가 7번이 되도록 지금부터 면밀한 계획을 수립해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