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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성시대 바세린젤리
구글링, 역사저널 그날 325회 참조
바실리 자이체프라는 소련 전설적인 저격수가 있음
딱 1달동안 공식 기록만 225명을 저격 사살한 소련의 구국 영웅이고, 나치 독일에겐 악몽이었던 사람
에너미 앳 더 게이트라는 헐리웃 영화로도 많이 알려져있음
그런데 이 바실리 자이체프와 더불어 많은 적을 사살하고, 나치 독일의 악몽이었던 저격수가 또 있어
죽음의 숙녀, 우크라이나 출신 여성 저격수
류드밀라 미하일로브나 파블리첸코
10개월간 309명을 사살했고 그중 특히 나치 독일 저격수만 36명을 사살한 뛰어난 저격수였음
실력으로도 유명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도 나치 독일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지
관련 영화로는 1941:세바스토폴 상륙작전 (우크라이나/러시아 합작 영화)이 있는데 영화 평이 좋아서 한번 보는걸 추천해
(실제와 다르게 각색된 부분도 있음)
포스터 왼쪽의 여성이 주인공인 류드밀라 배역
류드밀라뿐 아니라 당시 소련의 붉은 군대엔 2천명이 넘는 여성 저격수가 있었고
공식 여군 숫자는 100만명이 넘었어
이는 21세기 현대 기준으로도 상당히 많은 숫자야
소련은 독재 국가니까 강제 징집한거 아니야??
No 상당수는 자원입대였음
위에 류드밀라도 자원 입대한 케이스야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던 당시기준 고학력 여성으로 사격 클럽에서 활동한 경력으로 자원 입대함
당시 전세계에서 소련만큼 대대적으로 여군을 활용하는 나라는 없었어
여성들이 나라를 지키고 싶어하더라도 대다수 나라들은 여성군인을 대외용으로 이용하거나 전투를 불허했음
여성 군인들을 활용하더라도 통신병, 간호병등 극히 일부 병과에만 배치하는게 대부분이었지
반대로 소련은 자원입대한 여성군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어
통신병, 간호병뿐 아니라 실제 전투에 투입했고 특히 위에 소개된 류드밀라처럼 본인이 적극적으로 원한다면 바로 참여시켰음
류드밀라도 원래 입대할때 간호병을 제안받았는데 본인이 저격을 하길 원해서 저격수로 투입됐고
이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1. 우선 공산주의의 핵심 원리는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다" 이기 때문임
공산주의가 유독 파격적이었던 이유중 하나도 저 성평등이 핵심 원리여서 그래
그래서 전세계 성평등, 여성인권에 공산주의는 상당히 영향을 많이 끼쳤어
당연히 국가에서 저걸 이용한건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저 평등 사상을 이용해 여성 인력도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고
순수한 여성들의 우국충정을 인정해 여군들을 허용한게 아니라 그만큼 유용했기 때문에 여군들을 적극 활용한게 맞아
그럼에도 이게 의미있는 이유는, 전쟁에 참여하는거 자체가 당시 서구권의 역사적 전통적인 의무이자 "권리"였기 때문이야
과거 그리스에서 노예가 아닌 특권층 "시민"들이 군인으로 직접 전쟁에 참여했던 것처럼
1등 시민으로써 의무이고 그것은 곧 권리였던게 정식 군인으로써의 전쟁 참여였음
사실 21세기에는 맞지 않지만 2차세계대전까지도 서구권 많은 사람들의 인식은 그랬어
다른 국가에서 여성 군인들을 활용하지 않고 여성의 전쟁 참여를 제한하거나 후방 물자지원에만 대부분 투입한 이유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기저엔 그들을 동등한 국가 시민으로써 생각하지 않은 인식이 깔려있지
그러나 군복을 입은 여성을 대하는 그 세 나라 군대의 입장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여자를 전투에 투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독일군과 미군은 말할 나위가 없고 영국군에서도 전투병과에 들어간 여군은 없었다. 전투 지역에 배치된 영국군 부대에서 근무하는 영국 여군이 적지 않았는데도, 영국은 여군의 교전 참여를 엄하게 금지했다. 전투에서 적에게 죽을 수는 있었지만 적을 죽일 수는 없는 상황에 처한 이들이 영국 여군이었던 것이다. 또한 영국 미국 독일 모두 다 군대에서 남성과 여성을 엄격히 분리하는 원칙을 고수했다. 여성 군인이 일반 부대에 분산 배치되는 일은 없었고, 여군 부대의 지휘관은 여성이 아니면 나이 지긋한 남성이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503091778635984
당시 가장 앞서있던 많은 서구권 국가들이 여성을 훌륭한 시민과 군인을 키워내는 어머니로써 여겼고 그러기에 그들을 보호했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침략자 혹은 적의 생명을 뺏을 수 있는 권한은 남성에게만 주어졌고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내는 의무밖에 주어지지 않았던거야
그런데 소련에선 여성에게도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그리고 적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을 공식 인정한거지
또 다른 이유는 사실 이게 더 핵심이긴 함
2. 소련이 그만큼 급박했고, 많은 군인이 필요했기 때문
당시 나치 독일의 군대는 세계 최강이었음 화력면에서도 규모면에서도 엄청났지
소련은 땅은 크고 강국이지만 연전연승 무패신화던 나치 독일에 비해선 모든 것이 열세였어
전술, 무기 등의 열세를 딛고 전쟁을 이겨내려면 결국 그만큼 많은 인원의 동원이 필요했고
실제로 독일-소련 전쟁에서 소련은 독일보다 군인도 민간인도 훨씬 많이 사망했어
2차세계대전 아니 전세계 전쟁을 통틀어 가장 처절한 전쟁이자 많은 사망자를 낸 전쟁이 바로 독일-소련 전쟁임
2차세계대전 주요 국가 사망자인데 군인도 민간인도 소비에트 연방 (소련)이 압도적이지
당시 소련 군인들은 전투에 투입된 이후 평균 24시간 내에 죽었다고 함..그냥 전투 투입되면 그날 죽는데 평균이었던거야
여성에 대한 성평등 의식, 여성도 인민이다라는 의식이 공산주의의 핵심의식이었지만
동시에 수천년 이어온 가부장적, 성차별의식이 바로 해결된건 아니었어
단지 그 의식을 무시하고 여성 군인들까지 모두 활용할만큼 처절하게 필사적으로 저항해야 하는 상황이
바로 2차 세계대전 독-소 전쟁이었던거야
여성 군인이라고 해서 전장에 포로가 되었을때 더 나은 대접을 받았던 것도 아니야
여성을 생명을 잉태하고 보호해야 하는 약한 2등시민으로 생각했던건 전쟁에 나서지 않은 여성일때나 작동했지
오히려 포로의 처절한 고초와 더불어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인 고초까지 포함됐어 특히 어디서나 취급이 최악인 저격수는
(저격수는 적으로 만나면 가장 증오 받는 군인이야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옆에 동료들이 맥없이 죽기 때문에)
소련의 여성 저격수 2000명중 500명만이 생존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고 나머지 1500명은 확인할 수 없었어
상당수가 포로로 잡히거나 사살되어 끔찍한 고초를 겪었겠지
3. 또 한가지 이유는 소련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군인 참여가 활발했다는 점도 있어
또한 러시아에서는 여성 군인의 존재가 그리 드물지 않은 편이었다. 이런 예는 ‘조국전쟁’에서 기병대 장교로서 나폴레옹(Napoléon)의 그랑 아르메(Grand Armée)와 싸운 나데즈다 두로바(Надежда Дурова; Дуров)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여군 부대를 실전에 투입된 유일한 나라도 바로 러시아였다. 1917년 6월에 마리야 보치카료바(Мария Бочкарева)가 이끄는 ‘여성 결사대대’는 비록 적진을 돌파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독일군 수백 명을 사로잡는 전과를 올리기까지 했다.[1] 10월혁명 뒤에 벌어진 세 해 동안의 내전 속에서 태어난 붉은 군대에는 초창기에 수만 명에 이르는 여군이 있었다.
[1] 무용(武勇)의 모범을 보이고 병사들의 무단이탈을 막고자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전투 부대가 창설되어 실전에 투입된 예로서는 근현대사에서 유일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류한수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교수의 2006년 6월 학술발표회 발표문 1페이지 중 일부 발췌-
수백명의 독일군을 사로잡은 1차 세계대전 러시아 여성 결사대대
왼쪽은 여성 결사대대 대장 마리아 보치카료바, 오른쪽은 서프러제트의 에멀린 팽크허스트
사내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서 여군이 적과 용감히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어 전쟁에 지친 남성 병사의 전투 의욕을 북돋는 것이 목적이었음이 드러난다. ‘사내들이 오죽 못났으면 계집들이 총을 들고 싸우겠냐?!’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목표였던 것이다.
여성결사대대라는 이름 아래 여성 2,000명이 모여들었다. 보치카료바는 이들을 혹독하게 조련했고, 훈련생이 조금이라도 여자처럼 굴면 바로 내쫓았다. 300명이 끝까지 남았다. 드디어 여성결사대대가 벨라루스에서 실전에 투입되었다. 7월 9일에 내려진 공격 명령에 남성 병사들이 항명하는 와중에 여성결사대대가 뛰쳐나가 돌격했다. 적 참호를 점령하고 독일군 장교와 병사 여러 명을 사로잡았다. 여군에게 당했음을 깨달은 포로들은 욕을 내뱉었다. “제기랄, 무슨 창피냐?!” 여성 병사들은 수치심에 떠는 독일 장교가 자결하지 못하도록 그의 손을 묶었다. 그러나 그 뒤로 여성결사대대는 실전에 투입되지 않았고 볼셰비키 혁명 뒤에 해체되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409291273832735
이렇게 소련에서 여군을 대대적으로 허용했지만 바로 여성들을 동등하게 인정해줬을까?
그건 아니야
생명을 빼앗는 것은 남자의 일이고 생명을 보살피는 것은 여자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뿌리박힌 전통 사회에서 여성 전투원은 훨씬 더 불편한 존재였다. 조국에 쳐들어온 독일군과 싸우겠다며 전선으로 나아가는 남성 군인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낸 러시아 민간인이 같은 동기로 입대해서 최전선으로 행군하는 소련 여군을 보고는 눈물을 흘렸다. 당연히 남자가 해야 할 일을 하는 여자라는 존재가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여성 군인은 혐오를 사기도 했다. 영국 BBC가 만든 독소전쟁 다큐멘터리에는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한창일 때 자기가 독일군 포로를 심문해서 정보를 얻어낸 다음에 그 포로를 권총으로 사살했다고 증언하는 지나이다 피트키나라는 러시아 참전용사 할머니가 나온다. 다큐멘터리 진행자는 ‘당신은 살인자로 비춰질 수 있다’며 그 할머니를 걱정해준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본디 군인은 전시에 살상을 하는 사람이며, 남성 참전용사에게는 그런 우려의 말을 하지 않는다. 침략을 받은 나라를 지키려고 군인이 되어 적을 처단한 여성 군인은 남성 군인과는 사뭇 다른 평가를 받았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503091778635984
당시 소련 여군들은 거의 대부분 자원이었고 많은 수가 전투에 배치되길 원했음
특히 여성 조종사들은 전투기 부대를 희망했고 소련 당국은 고민하다 여성 폭격기 부대를 만들어
근데 뭐..공산주의가 아무리 강력한 사상이라도 수천년 이어온 빻은 의식이 바로 바뀌겠어?
훈련용, 연락용으로 쓰던...나무에 첫 덧댄 라이트형제급 복엽기를 준거야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 전투기에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었냐면
1차 세계대전시 많이 활용된 복엽기
2차 세계대전시 많이 활용된 발전된 단엽기
근데 소련당국이 여성 전투기 부대는 믿지 못한다면서 연습용 비행기로 쓰이는 복엽기를 준거지
저 복엽기라는게 2차 세계대전엔 이미 전투용으로 정말 적합하지 못했음 속도면에서도 파워면에서도
오죽하면 비슷한 시기엔 복엽기 위에서 윙워커라고 쇼 하는게 유행했을 정도임
저런걸 주고 싸우라고 하니............존나 씨발 때려쳐;;;;
하고 할거같지만 소련 여군들은 달랐음 오히려 머리를 써서 그걸 이용한거야
당시 나치들 사이에서 밤의 마녀들로 불림
여성 폭격기부대는 총 2만 3천회를 출격했고
멀리 활강이 가능한 복엽기의 장점을 이용해 아예 엔진을 끄고 조용히 활강해 폭탄을 터뜨렸어
아무런 소음 없이 갑자기 밤에 위에서 폭탄이 떨어지니 나치 군인들 사이에선 상당한 공포였다고 함
이렇게 직접 전투에 나선 여군들이 소련에 아주 많았어
그래서 독소 전쟁 이후 무공 훈장 등을 받은 여성 군인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지
그렇다면 여군은 전투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성 못지않게 제 몫을 해내는 당당한 전투원이었다. 최전선에서 여군이 여자라는 이유로 힘든 일에서 열외되는 배려는 없었으며, 여군은 전우에게 군인으로 제대로 인정받고자 일부러 위험한 임무에 자원하곤 했다. 전쟁 기간에 훈장을 받은 소련 여군은 10만명이 넘었으며, 붉은 군대의 최고 무공훈장인 소연방 영웅 훈장을 받은 여성 전투원만 해도 91명이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503091778635984
붉은 군대 여군의 능력과 자질은 한 독일공군(Luftwaffe) 비행기 조종사가 “여성 대공포사수가 배치된 러시아 고사포의 포화를 뚫고 가는 비행을 한 번 하느니 차라리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영국군 고사포 부대의 포사격을 받으며] 토브룩(Tobruk) 상공을 열 번 비행하겠다”고 말한 데에서 잘 드러난다
여성 저격병은 매우 뛰어난 전과를 올려서, 일례로 노나 솔로베이(Нона Соловей)는 25일 동안 독일군 1개 중대 전체를 사살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여성 저격병에게 목숨을 잃은 독일 군인이 11,280명이었다. 이렇듯, 대조국전쟁 기간 동안 붉은 군대의 여성 군인은 전투 병과를 비롯한 거의 모든 병과에서 복무했으며,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그리고 효율적으로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류한수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교수의 2006년 6월 학술발표회 발표문 2페이지 중 일부 발췌-
제목에 나치 군인들이 소련과 전쟁하면서 충격 받은 이유라고 써놨잖아
그건 바로 여군의 시신이었어
특히 나치 독일은 여성을 위대한 게르만을 낳고 길러내는 존재로 여겼기에 여성에 대해 이중적인 시각을 보였음
2차 세계대전 내내 여성의 편의를 위한 물품, 풍족한 생활을 제공해주고 대우하면서 또 애국심을 여성에게도 고취시키려 했지만
그 애국심이 철저한 위대한 게르만을 잉태하는 여성과 어머니로 국한되도록 성역할을 상당히 고정시켰어
덕분에 유독 다른 국가에 비해서도 여성에 대한 성역할이 고정되어있던 나치 독일 남성 군인들은
소련에서 여군이 남군과 동등하게 싸우는 모습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지
마녀니 계집애니 욕하면서도 여성들까지 치열하게 나서는 모습에
"이 도시의 시민 모두와 싸워야만 전쟁을 끝낼 수 있구나" 하는 압박에 시달렸다고 함
여성이 조국을 지키는 방법은 위대한 전사를 길러내는 것이라고만 믿었던 그들에게
남군과 더불어 치열하게 싸운 여군들의 시체와 무시무시한 저격수, 전투부대는
여성이 조국을 지키기위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엄청난 충격이었던거지
이렇게 치열하게 싸웠음에도 소련 여성 군인들은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어
이는 소련이 위치한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가부장적 분위기와 더불어
독재와 가부장 분위기를 이어갔던 소련내의 경직성 때문이었고 수천년 이어온 여성지우기가 작용한 사례였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대전중 가장 많은 여군의 기록과 여군의 이야기가 남은것이 소련이고
지금까지도 계속 발굴되고 지속적으로 영화화, 드라마화 되어 내려오고 있는 것도 소련이라는 점이 참 흥미롭지
우왕 넘 잘 읽었어....저런 배경이 있었는지 처음 알았네
근데...나 읽다가 문득 깨달았어....독소전쟁이 독일 소련 전쟁이었구나...?그전까지 독소전쟁 독소전쟁 들으면서도 그 독이 독(poison)을 말하는줄 알았어;;;와우,,,,
진짜 유익하면서도 흥미로운 글이다ㅠㅠ댓까지 흥미돋...정성글 고마워 여샤! 진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야...!!!
삭제된 댓글 입니다.
소련도 그렇게보는 가부장적 문화가 있었대 전쟁 끝나고 여군이란 사실을 숨기라고 했다는 말도 있고 그런데 또 참전용사들 증언보면 처음엔 여자들에게 부정적이었지만 똑같이 전쟁 수행하는 전우들을 보고 동질감과 동료애를 느꼈다고도 하더라 아마 우리나라도 그랬을듯 생사를 오고가는 상황에 전우애를 느끼니까
@므에에에에엥 체재 선전용 과거 부각용 등으로 그래도 다른나라보다 더 그런거같긴해 영국 미국 이런데도 통신병 간호병 여자들이 다수였는데 전혀 안나오는것처럼 덩케르크 영화도 그러더라 ㅋㅋㅋㅋ 울나란 이제 정부 주도하에 발전시키는 단계니까 한참 멀었지 러시아가 더 저럴 수 있던건 전투병에 여자가 많았어서도 있는거같아 통신병도 중요하지만 직접 총쏘고 폭탄 터뜨리는게 홍보에는 제격이라
얼마나 여자란 존재를 동등한 인간이 아닌 부속품으로 취급했으면 여군의 존재에 충격을 받어..ㅋㅋ ㄹㅇ 흥미돋이다 재밌게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