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중앙교회 김익명 장로님. 상고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에 실패 한 후 상가점원을 하던 갓 스므 살 청년이었던 나를 당신이 부장으로 있으셨던 유년부 총무로 세워주시고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으로 내 속에 숨어 있던 나도 모르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 주신 분으로 평생 잊을 수 없는 분이시다.
2. 청량리중앙교회 유년부는 당시 아이들이 300여명 교사들이 50여명이 되는 교회 안에서 가장 열심 있는 부서 중 하나였는데 갓 스무 살 상가점원이었던 내가 총무가 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는데 장로님 나에게 전권을 다 맡기시고 내가 마음 껏 일할 수 있도록 교회에서는 줄 수 없는 재정을 지원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다. 내 이후의 목회적인 기량과 능력(?)은 이때 청량리중앙교회 유년부 총무를 하면서 발견하고 갈고 닦은 경험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가 내 인생의 전성기였었다. 장로님 덕분이었다.
3. 장로님은 당시 200명 정도 출석하던 교회에서 가장 헌금을 많이 하시던 분이셨다. 교회재정의 1/3을 담당하셨다. 예를 들어 추수감사헌금 예산이 300만 원이라면 100만 원은 자기 책임인줄 생각하고 헌금하시는 분이셨고 그러고도 예산이 미달이 되면 모자라는 부분을 또 헌금하시는 분이셔서 청량리중앙교회는 예산이 미달되는 법이 없었다.
교육전도사 시절 당회에 건의할 일이 있어서 장로님에게 부탁을 드렸다. 나를 아껴주시고 무엇보다 헌금을 많이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장로님을 통하면 쉽게 당회결의를 얻어 낼 수 있을꺼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장로님은 그 때 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씀을 주셨었다.
‘전도사님 내가 연보를 좀 많이 하잖아요’ ‘그러시지요’ ‘그래서 난 당회에서 말 안해요’ ‘왜요?’ ‘연보를 많이 하든지 말을 많이 하든지 둘 중에 하나만 해야 해요’ ‘둘 다 다 많이 하면 못써요’
4. 그런 분이 돌아가셨다.
냉면 좋아하셔서 냉면 한 번 사드리려고 날자 보고 있었는데 에녹처럼 그냥 하나님이 갑자기 불러가셨다.
하나님 나라로 가셨으니 감사하지만 그래도 많이 섭섭하고 슬프다. 장로님 안녕히 가세요. 가셨어도 저 죽을 때까지 장로님을 잊을 수는 없습니다. 장로님 참 근사하고 훌륭하셨어요. 사랑하고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