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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사두었던 옷들이 안맞아서 고민하고 있는 저와..
스튜디오 웨딩촬영 예약해 놓은 막내 동생이랑
다이어트 한답시고..
그동안 탄수화물과 지방 섭취를 최대한 줄여 보겠노라고 용 쓰다가
결국은 어제 큰집 할머니가 보내 주신 감자와 옥수수에 항복했어요.
지금 찜기에다 감자랑 옥수수랑 계란 찌고 있는데..
얼마전 다단계에 빠진 친구가 하도 간절히 원해서..
다시는 제게 다단계 얘기는 하지 않겠다는 약속 받고 백만원이 넘는 냄비세트 샀는데..
지금 걔 사정이 워낙..
제가 힘겨워할 때 제게 큰 힘이 되어주었던 친구였기에..
그 정도 돈은 걔가 자존심 상해 하지 않는다면 그냥 주려고도 했던 돈이라서..
그동안은 그저 라면 끓이고 물 끓이는 용도로만 쓰다가 오늘 제대로 써먹어 보네욤..ㅠㅠ
풍겨나오는 냄새가 왠지 그리운 고향의 냄새 같아서...
문득 어릴 적 기억 한자락이 생각나서 또 궁시렁거려 봐요^^
명절 때면 우리집은..
명절 음식 준비하고 다들 둘러 앉아 도란도란 정감있는 얘기 나누며 송편 빚는
다른 집의 모습과는 달리... 정신없이 바빠요. 엄마가 방앗간을 하니까...
30년 넘게 그랬던 것 같아요.
주문이 쉴새없이 들어와서 아예 식구들 전화기랑 집전화를 다 꺼놓고
떡 주문 예약도 명절 며칠 전에 마감시키는데도 엄청나게 바빠요.
시집간 둘째만 빼고
저랑 남동생, 막내 여동생은 최대한 휴가를 많이 내서 집에 내려 가서 엄마의 방앗간 일을 돕죠.
방앗간 일 하기 싫으면 빨리 시집가라는데.. 참...
방앗간 일을 하기 싫다기보다도 거기 오는 손님들, 아줌마들한테
시집 안가느냐는 잔소리 듣기가 더 싫고 짜증나는거니까..
일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 사람들도 명절 준비를 해야 하기에 대목에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 구하기도 힘들고...
각자 파트별로 역할 분담이 뚜렷해요.
엄마가 총 지휘, 감독하고 간 맞추고..
아빠도 휴가 며칠 내서 배달 담당하시고...
남동생은 배달하거나 무거운 쌀포대 같은 것 옮기고 떡쌀 빻고...
막내 여동생이 엄마 다음으로 떡 만드는 기술이 좋아 이런저런 떡 만들고..
(얘가 식품영양 전공이고 조리사 자격증도 몇 개 있고.. 타고 났어요.)
저는 온갖 잡일 담당에 떡 속고명 만들기... 그리고 집안 청소, 설거지, 식사 준비, 참기름 짜기...
다른 사람들은 나름 전문 인력인데..
저는 딱히 잘하는게 없어서 잡일 담당이에요..ㅋㅋㅋ
그렇게 명절 전날까지 힘들게 일하고 나면...
명절 당일은 시집간 동생네 식구들까지 합류하게 되죠.
그럴 때마다 판이 벌어지는데...
아빠가 있을 때는 윷놀이를 하고...
아빠가 친척들 만나거나 다른 집으로 마실 가시면...
엄마랑 세 딸들이랑 네명이서 고스톱을 치죠.
그래봤자 점100원짜리이긴 하지만...
그러다가 필 받으면 점200원짜리로...ㅋㅋㅋㅋ
비록 왜색 놀이 문화이긴 하지만...
우리 엄마가 가장 기다리고 고대하고 제일 행복해 하는 시간이래요.
방앗간 일로 엄청 힘들고.. 피곤할텐데도..
(대목에는 엄마는 보통 세시간도 못 주무시고.. 저희도 마찬가지..)
꾸벅꾸벅 졸음 참아가며 실눈 뜨고...
정말이지 허리 뻐근해지고 다리 저려오는 통증을 참아가며.. 코에 침 발라가면서 쳐요^^
엄마가 행복하다면 우리는 그걸로 되니까..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시구요.
우리가 상습적으로 고스톱 판을 벌이는건 아니니까요.
일년에 딱 두세번 그래요. 명절 때나 휴가 때...
저는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은데..
그 시간에 며칠 잠 못잔 것 보충하고 싶은데...
엄마가 눈 찡긋찡긋하면서 엄마 소원이라고.. 엄마의 유일한 낙인데..
아주 작은 효도 하는 것이라고 막 강조하셔서^^
아침상 물리고 난 다음부터 하루종일 고스톱 쳐요.
저녁에 아빠 들어오시기 전까지..
평소엔 귀한 아들이라고 절대 부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남동생 보고
점심 차려 오라거나 아니면 시켜 먹거나...
명절날 영업하는 식당이 어디 있다고...ㅋㅋㅋ
제부는 조카들과 놀아주고..
남동생은 점심 담당에 저랑 가끔 바톤터치.. 또는 자기 친구들 만나러 가고...
엄마나 동생들은 패를 읽으며, 예상하며 치는데..
저는 사실.. 말하자면 민화투 치는 수준이죠.
아주 단순 무식..
쇼당 붙일 줄도 모르고..
일단은 눈에 보이는대로 광이나 쌍피 먼저 후다닥 먹고..
그나마 노리는게 첫뻑!이나 아니면 쪽이나 따닥, 폭탄, 자뻑?정도..
광박, 피박부터 면하려고 방어적인 화투를 치는데..
나머지 세명은 아주 공격적이죠.
고도리나 구사, 홍단, 청단, 멍텅, 쓰리피... 노리면서..
저는 패가 잘들어와서 하다보면.. 운 좋으면 하는 것이고..
쓰리고는 감히 꿈도 못꾸구요..
엄마는 저더러 맨날 베짱이 적다고..
어차피 상한선 만원이니까 공격적으로 나가라고 맨날 GO!인지 STOP인지 묻고...
사실 돈 만원이 아까운게 아니라..
GO를 외쳤다가 독박 쓰는게 정말정말 싫어서...
독박 쓰는거 진짜로.. 아주 기분 나쁘더라구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고수들 틈에서도 이상하게 저는 돈을 잃지는 않거든요.
나중에 보면 본전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있더라구요.
단순, 무식하게 오로지 민화투 한길만을 고집하는데도...ㅋㅋㅋ
온갖 짱구 굴리면 이리저리 패를 읽고 고민해서 치는 세 사람보다도..
나중에 정산하면 결국은 제가 땄더라구요.
뭐.. 제가 배포 있게 GO하기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STOP하니까 그런거겠지만..ㅋㅋㅋ
다들 어찌나 짜증들 내는지.
자기들은 '못먹어도 GO! 곧죽어도 GO! 무조건 GO!' 라고 하면서..ㅋㅋㅋㅋ
왠지 느낌은 완전 대박의 조짐이 보이는데..
흔들고 현재 광은 2개 갖고 있고 쌍피도 들고 있고 고도리에 홍단할 것도 같고...
상대방은 피박 또는 광박 가능성이 커보이고..
거기서 저는 GO를 외치고 쓰리고까지 가야 하는지..
아님 상대들의 남은 패.. 청단이나 구사, 또는 광으로 날 가능성을 보고
욕심 그만 부리고 그쯤에서 STOP 해야 하는지..
아님 독박 쓸 땐 쓰더라도.. 못먹어도 GO를 해야 하는지...
여기서 우리 가족들의 성격과 성향이 나오는거죠.
배포 있고 도전적이고 사업가 기질의 엄마랑 여동생들...
그리고..
꼼꼼하고 전형적인 공무원 스타일인 아빠랑 남동생....
저는 20대에는 엄마 쪽에 가까운 스타일이었다가
3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어떤 사건을 계기로 방어적이고 수세적인 성격으로 바뀌더라구요.
근데 저의 고스톱 치는 모양새가...
제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삶의 방식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
도전적이기보다는 방어적이고 안정을 추구하려는...
물론 20대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귀국해서는 사촌언니와 함께 나름 의욕적으로 추진해 보던 일을
1년만에 싹 말아 드시기도 했구요..ㅋㅋㅋㅋㅋㅋ
그때 인생 공부 많이 했어요.
하지만 이런저런 시련들과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세상을 보는 지혜와 경험을 더 넓게 쌓게 되었고
또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더 크게 다가올 불행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뭐.. 제가 그다지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살다보니 가끔은..
여기서 그만 멈춰야 할지..
계속 밀고 추진해 나가야 할런지.. 고민되는 상황이 종종 있더라구요.
그때의 판단은 오롯이 물론 각자의 몫이지만..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다보니..
제 나름의 고민도 정리가 되었고..
비로서 결정하게 되었어요.
저는 여기서 그만 Stop 해야겠다고...ㅋㅋㅋㅋ
저랑 제 동생들이 고스톱을 배우게 된 것은 제가 초등학교 때.... 많이 이르죠?
제 동생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죠.
우리 큰집 고모(아빠 사촌동생)가 저보다 다섯 살 위인데..
언니가 없던 저로서는 언니 같은 고모였고
막내여서 동생이 없던 고모로서도 제가 동생 같은 조카였겠죠.
공부도 잘하고 똑똑하고 예뻤던 고모를 참 많이 따랐는데..
어렸을 때 동생들이랑 큰집에 놀러가면
행랑방에 모여서 고모가 민화투를 가르쳐 주더라구요.
막내는 너무 어려서 할아버지 오시나 망보라고 시키고..ㅋㅋㅋㅋㅋㅋ
같은 그림 따먹기 이론으로 점수 계산법이나 같은 짝끼리 하나하나 맞춰 가던것이
어찌나 재미있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던지...
그땐 돈이 아니라 공기놀이 가지고 점수 계산했어요.
그러다가 대문간에서 큰집 할아버지의 기척이 나면
고모가 갑자기 이불을 뒤엎는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저랑 동생한테 엎드려!라고 하더라구요.
진행 중인 판을 흩트리고 싶지 않다는 고모의 강력한 의지였죠!ㅋㅋㅋㅋ
할아버지가 문 한번 쓱 열고 들여다 보고 가시면
다시 조용히 그 판을 마무리 짓고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나요.
저 역시 고모의 뜻을 엄중히 받들어.. 저는 집에 와서 제 동생들을 앉혀놓고
고모한테 배운 것들을 그대로 전수해 주었죠. 복습 차원에서...
문제는...
아빠가 들어왔을 때 내가 동생들한테 엎드려!라고 했는데 아무도 엎드리지 않아
화투판이 적나라하게 들통나는 바람에
아빠한테 엄청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았던 기억이...ㅋㅋㅋ
그나마 저를 너무 사랑해 주셨던 할머니 덕분에 살아남긴 했지만...
이것들이.. 제가 아빠의 기습을 예상해서 몇 번이나 사전 연습을 시켰음에도
막상 그 상황이 닥치니까 어리둥절해서 손만 빨고 있었다는..ㅠㅠ
어린 동생들을 선동하여 나쁜 물 들였다고 대표로 저 혼자 맞았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도 독박 쓰는걸 그토록 싫어하고 기분 나빠하나 봐요..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옛날 생각이 나서 너무 웃겨서...ㅋㅋㅋㅋ
지금 주방에서 풍겨오는 감자 삶는 냄새와 옥수수 찌는 냄새가...
그냥 아랫목에다 이불 깔고 고모랑 동생이랑 민화투 치며 즐겁게 놀았던
어릴 적 아련한 기억을 생각 나게 해서요.
그렇게 큰집 행랑방에서 고모랑 민화투 치고 있으면 항상..
마당 한구석 화덕의 가마솥에서는 감자와 옥수수 찌는 냄새..
그리고 부엌에서는 달큰한 팥칼국수 냄새가 풍겨 왔던 것 같아요.
오늘은 저녁 때 덥긴 하지만 팥칼국수 끓여서 먹어야겠어요.
엄마나 큰집 할머니가 해 주시던.. 그 맛은 나지 않겠지만..
우리 집은 그냥 수제비나 해물 칼국수도 해 먹지만...
팥물 내려서 팥칼국수나
찹쌀가루 익반죽해서 새알 팥죽을 많이 해 먹거든요.
얼마전부터 뭔가.. 간절히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맞다, 이 달큰한 팥칼국수..였네요.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긴 하지만...
아, 오늘도 우리 자매의 다이어트 계획은 이렇게 물 건너 가는군요...ㅋㅋㅋㅋ
넉넉하고 행복한 휴일 보내시길 바래요~
첫댓글 팥칼국수에 설탕 넣는거는 전라도에서 먹는건데...부모님께서 자주 해주셔서 많이 먹었었는데..ㅋㅋ 혹시 김국도 먹어봤어요??ㅋㅋ
전라도식 맞아요^^ 보성 벌교 쪽 시장에 가면 아주 유명한 팥칼국수 할머니.. 6시 내고향 같은데 나오시던데... 근데 김국은 뭔지 잘 모르겠어요. 매생이국은 종종 먹어봤지만.. 멸치랑 새우로 국물내서 매생이에다 홍합살 또는 바지락살 넣고 끓이면.. 해장국으로 은근 괜찮아요^^
고스톱에 저런 심오한 철학이 있었을 줄이야~ ㅎㅎ.. 카드던 고스톱이던 하기만 하면 지갑 털리기때문에 재미없어서 안했는데.. 저런 판단력을 키워주는 좋은 운동이었군요.. ㅎㅎㅎ..
^^ 고스톱이 치매 예방을 막아준다잖아요.. 고스톱 배운지 20년이 넘지만 여전히 저는 민화투 치는 수준이에요..
저도 집에 내려가면 엄마랑 고스톱 쳐드려요. 근데 따면 안되고 꼭 잃어드려야 해요~ 돈을 따면 스트레스를 풀어드리는 게 아니라 더 받게 하는 거라서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