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다 해방 후 누구보다 빠르게
애국자로 변신한 두 여인
1943년, 이화여전 강당.
교장 김활란은 학생들 앞에 서서
조선의 청춘들을 향해
"이번에 열린 이 기회야말로
황국 여성으로서 다시없는 특전"이라며
학병과 정신대 지원을
목놓아 독려했습니다.
같은 시기 시인 모윤숙 역시
태평양 전쟁 참전과 죽음조차
영광이라 노래하며 천황을 위한 희생을
맹목적으로 찬미했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1945년의 해방.
어제까지 일제의
발밑에서 충성을 맹세하던 이들의
카멜레온 같은 변신은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빨랐습니다.
김활란은 미군정청
한국교육위원회 위원에 임명된 데 이어
이화여전 총장으로 복귀했고, 마침내
이화여대 초대 총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모윤숙 또한 이승만 대통령의
양딸처럼 밀착하며 단독 정부 수립
과정에 깊숙이 협력했습니다.
결국 1948년 12월,
두 사람은 나란히 대한민국
UN 승인을 요청하는 공식 사절단이 되어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결성한 조직이
바로 악명 높은 '낙랑클럽'이었습니다.
총재에는 김활란,
회장에는 모윤숙이 앉았고,
영어가 유창한 상류층 여성들을 모아
주한 외국 요인들을 접대하고
로비하는 비밀 사교 단체 및
비밀 매춘.등.운영되었습니다.
김활란은 직접 회원들에게
외국인과의 대화 매너와 사교 댄스까지
가르치며 권력의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일제의 치하에서는 제자들을
성 노예와 죽음의 사지로 내몰고, 해방된
조국에서는 권력의 실세로 부활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누렸던
이들의 뻔뻔한 두 얼굴.
역사의 정의가 비켜간 자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씁쓸한 주홍글씨로
기억될 현대사의 부끄러운 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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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클럽 # 친일파청산 인명서전 등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