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여호와의 증인을 잊고 지냈었습니다.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고등학교때 지녔던 종교적 관심도 뒷전이 되더군요.
그러던 중에 유튜브 다리우스 님의 동영상(소아성애자)부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잊고 있었지만 저와 저희 가족이 받았던 피해를 고스란히 이 곳에 적어두고 제2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외할머니는 끝까지 증인을 믿으시다가 돌아가셨고 어머니 삼촌들 이모는 증인을 했던 경력이 있었습니다.
윤선생 영어교실 사장님과 지금은 벧엘에 계신 과거 대연각 호텔 사장님 따님(김명희 자매)이었던 분, 그리고 강원도에서 돌아가신 정태웅 형제, 그리고 최찬 형제 집안과도 어느 정도 안면이 있습니다.
그 분들에게는 늘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좋으신 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여호와의 증인은 가짜라는 생각이 들뿐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저의 추억속에서 벌써 20여년이 지났지만,
한편으로는 아련하고, 한편으로는 답답합니다.
그때는 어려서 잘 몰랐는데........... 이제 생각해보면 여호와의 증인에 속았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성경적인 이야기는 다른 분들께서 하셨기 때문에
저는 제가 직접 겪었던 이야기로 증인이 왜 틀렸는지 말하고자 합니다.
1. 1975년을 종말로 예언하지 않았다고?? 극소수의 증인들이 설레발 친거라고??
저는 현재 이십대의 학생으로써, 침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저희 가족의 대다수(할머니, 이모, 삼촌들, 어머니)가 여호와의 증인이었습니다.
얼마전에도 여호와의 증인들과 마주쳐서 문득 1975년도에 그렇게 종말이 온다고 얘기했는데 대학 안간 사람들은 어떻게 보상할거냐' 라고 하자 1975년을 '한국의 일부 증인들이 설레발쳐서 있었던 헤프닝'쯤으로 이야기하더군요. 개인의 선택이지 누가 강요한 게 아니다 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정말 화가 납니다.
저희 큰 삼촌의 경우,
회중 내에서 16살에 봉사의 종을 하셨다고 합니다. 1975년 당시 아마겟돈이 오기 때문에 경기고등학교를 자퇴하라는 정태웅 형제의 말, 회중의 말을 듣고 1학년때 자퇴를 했습니다.
저희 어머니 말씀으로는 '왜 잘하는 애를 자퇴시키시는거냐'고 담임선생님이 한달동안 만류하신 내용이 기억난다고 합니다.
큰 삼촌은 1975년까지 파이오니아를 열심히 하다가 1976년에 증인을 탈퇴하고 검정고시를 보고 군 복무 후 한국외대에 들어가셔서 지금 사업가로 활동중이십니다.
가끔씩 증인에 관한 이야기를 여쭤보면, '내가 거기 계속 있었으면 아직도 세뇌당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았을 것' 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저희 어머니 역시 고등학교를 진학할 성적이 되었지만 진학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당시에 대학 갈 사람들은 비싼 돈 들여서 다 대학보냈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에서 현재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의 견해가 아니라, 장로들이나 회중에서 1975년을 아마겟돈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에 당시에 대학가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 취급 받았었다고 합니다.
2. 결혼 문제
주 안에서 결혼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요?
저희 아버지라는 사람은 지금도 수도권의 모 회중의 형제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현재 장로이구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와 이혼하고 회관에서 증인들에게 청첩장을 돌리고 이방인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증인생활을 아직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회중에서도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습니다.
제 아버지라는 사람이 전도인카드를 돌려받을 때 저희 어머니를 잘 알고 있던 형제분에게 한 소리 들었다는 것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라구요? 간통외에는 이혼이 안된다구요?
제 아버지라는 사람은 부인이 병들었다는 이유로 이혼하고 이방인 여자와 결혼했는데도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부인이 병들면 버리고 이방인 여자랑 결혼하는 것이 성경적인지
그런 사람을 버리고 이방인 여자랑 결혼하면서 청첩장까지 돌린 사람을 방관하는 것이 성경적인지 묻고 싶습니다.
끝으로 여호와의 증인은 문제가 많은 집단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삼위일체나 지옥과 같은 교리들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종말론 등과 같은 교리, 피교리의 수많은 번복만큼은 그들이 잘못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어렸을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회관을 뛰쳐나오고 싶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증인조직내 부조리는 끝내 해결되지 않죠..여느 인간집단과 마찬가지로. .
1975를 기억하는 젊은분이 있다니..1975는 결국 전세계적 문제였습니다. 정말 증인들 정당화기재보고 종교관념의 맹목이란 어떤것인가를 알게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을 프린트 아웃해서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네요. 아직도 1975를 일부의 해프닝으로 생각하시는 분께. 이런 경험담이 중장년층에게는 더 도움이 됩니다. 교리 같은 골치아픈 논증은 피하시려는 경향성이 있거든요. 감사합니다. 이러한 증언이 더욱 많았으면 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을 읽은 가족분들이 저의 글을 혹여나 믿지 못하신다면 따로 연락주세요.. 도움이 되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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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할머니는 큰 아들의 탈퇴를 보면서 가슴 아파하셨으며 돌아가시는 날까지 저와 저희 어머니가 증인이 되길 바라셨습니다.
75년에 대한 소소한 관점차이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큰 틀에서 보면 75년은 증인들의 실수였고 많은 이들의 기회를 앗아가버렸죠.
1974년 한국 지부는 공사중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자진봉사중이었던 한 형제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곧 아마겟돈이 오는데 왜 지부 공사를 하나요?"
지부위원 P형제 왈:
"아마겟돈이 오면 모든 건물이 파괴됩니다.
따라서 부활할 사람들을 수용하고 교육할 시설이 필요합니다.
모든 건물이 무너질찌라도 벧엘 건물은 무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분의 증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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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은 아니고 조기취업한 학생입니다... 어머니 생각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여호와의 증인 조직이 조장한 광기속에서 부모에 의해 중학교도 졸업 못했을 뻔 한 사람입니다.
결국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대학에 가서 회사 잘 다니고 있습니다.
가정 분위기 때문에 당장 그만 두지는 못하는 많은 젊은이들께서는 학업만은 절대 그만 두지 말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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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렇게 원칙주의자인 증인들이 그러한 이혼들을 용납한다는 자체가 형평에 맞지 않는 겁니다. 다른 증인들도 그리 이혼하니까 조직을 깔 수 없다? 오히려 더 욕을 먹어야죠.
사람 살다보면 별의 별일들이 있다.그런 것은. 극소수이다.... 개신교에서 범죄가 날때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입니다....
한가지 더 부언하면 결혼식에 갔고 언갔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과 결혼하고 청첩장을 돌린 사람의 아버지가 장로다? 그리고 그걸 협회에서 방조한다?
그러니까 더 욕을 먹어야죠... 여증들이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유가 뭡니까. 도덕성 아니겠습니까?
제 글을 정확하 안읽으산 것 같습니다. 제 아버지라는 사람이 장로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입니다.
원래.청첩장을 안주는데 청첩장을 줬다고 형제들이 얘기해준겁니다. 제가 무슨 말을 더 어찌할까요?
그라고도 제명이 안됐다구요. 그냥 비상식적인 일 투성인데 님은 이글의 팩터자체를 의심하시네요 무슨 얘기를 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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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겪은 것이 보편적이든 아니든 그런 것아 한가지라도 있으면 잘못된겁니다 이명박 대통령 이야기를 꺼내셨는대 광우병 소에 광우병 걸릴 확률이 극소수이면 안전한 겁니까?
반대로 저와 저희 가족이 겪은 일을 님의 어머니나 가족이 겪어봤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장로아들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걸 얘기했더니 극소수이니 싱빙성이 없다거나 특이케이스이니 안정받을 수 없다고 생각좀 해보세요. 위로는 바라지도 않았으나 돌까지 던지시는 건 심하시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