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앞서, 이 글은 단순히 요즘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세대를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이상하다고 눈살 찌푸리며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님을 먼저 밝히오니 부디 곡해 없으시길 청합니다.
이 글은 시대의 변화 속에서 가족의 개념과 돌봄의 방식, 그리고 인간 정서의 방향이 어떻게 이동하고 변해왔는지를 허접한 시선으로 바라본 안타까운 시선입니다.
반려동물의 배설물은 건강을 확인하기 위해“매끄럽게 예쁜지” 들여다보면서도, 늙은 부모 건강의 척도인 흔들리는 몸과 더뎌지는 걸음, 넘어짐과 인지의 상실로 이어져 헷갈리어, 반복되는 말투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어 보는 둥 마는 둥 귀찮아하는 모습.
이 글은 그러한 대비를 통해 돌봄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시대를 위트 있게 풍자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풍자의 핵심은 단순한 세대 비난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당연시했던 부모 봉양 대물림의 윤리와 새롭게 자리 잡은 감수성 사이의 충돌, 그 속에서 서로 다른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세대의 비애를 그렸습니다.
농경사회의 대가족 체제에서 산업화 이후 핵가족 사회로, 그리고 초개인화된 1인 중심 세대의 사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관계의 의무보다 정서적 선택을 우선한 것은 아닌지 생각에 잠겼습니다.
눈부신 과학 발전과 풍요로운 물질문명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습니다만, 그와 동시에 결핍에 따른 인간을 더 고립시키고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하여 그 외로움은 어느새 혈연을 대신할 새로운 가족의 형태로 반려동물을 품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변화 속에서 젊음을 불살라 자녀를 돌본 부모 세대는 고독을 씹어 삼키며 서러움을 안고 살아가고, 자식 세대는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에서 생존의 피로에 깊은 외로움을 동시에 짊어진 채 살아갑니다.
이 글은 편협한 시각으로 특정 대상을 가볍게 탓하기 위한 글은 절대 아닙니다.
적응하기 버겁도록 급속히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과 아직은 낯설게 다가온 우선 챙김의 대상이 뒤바뀐 현실을 돌아보기 위한 고민에서 스며 나온 작은 물음입니다. 가름하며,
반려동물 시대 풍자, 두문 시,
🙏🎋幸福한 삶🎋🎎🎋梁南石印🎋🙏…
반 : 반세기 채 지나기 전에 바뀐 풍경
려 : 려(慮,厲) 마음 속 상처 요동친다.
동 : 동서고금 산천경개 넘어 찾아봐도
물 : 물불 가릴 것 없이 일편단심인 듯
시 : 시대적 흐름을 누가 거역할 순가
대 : 대세가 그러하니 눈 찔끔 감고서
풍 : 풍상을 등지고 나가야 하는 노년
자 : 자고로 살만큼 살았으니 다 품자,
반려동물 시대 풍자 8행시,
🙏🎋幸福한 삶🎋🎎🎋梁南石印🎋🙏…
동물조류 벌레조차
징그럽고 무섭다며
그렇게도 싫다하던
내자슥이 뭔일인지
친구부탁 받았다며
강아지와 고양이를
집에들인 그날에는
본둥만둥 하더니만
몇날몇칠 지나더니
득달같이 찾아간곳
맡아달란 친구에게
내게달라 사정사정
허락받고 집에와서
복권맞은 기분일까
룰루랄라 싱글벙글
반려동물 업고안고
한몸되어 나뒹굴때
여기저기 흔적남긴
배설물을 살펴보며
이리뒤척 저리뒤척
색깔조차 예쁜지고
화색만연 히죽히죽
정성들여 화장지로
싸맨뒤엔 비닐포장
반려동물 놀라까봐
모셔가듯 살그머니
전용통에 보관하듯
하던애가 지세끼의
똥기저귀 인상쓰며
냄세난다 창문열고
코는막고 눈도감고
장갑끼고 짚어들은
기저귀가 벌레인듯
쓰레기통 던져두고
반려동물 유모차에
고이모신 듯한모습
동물호텔 놀이방에
미용샾에 패션숍에
반짝반짝 액세서리
요일별로 바꿔가며
유기농에 수제간식
영양제를 먹이면서
배불러서 끼적거려
병일까봐 호들갑에
노심초사 끙끙앓며
약국으로 병원으로
CT촬영 고액 MRA
이상없다 의사말에
돌팔이라 성내면서
늙은에미 이빨빠져
말도세고 음식세도
왜그런지 걱정않고
장난그만 하라는말
저자슥이 내세낀지
면박주는 저모습이
타박일까 구박일까
애통하고 절통하다
너라해서 세월앞에
이겨낼줄 알았더냐
곧어미뒤 따를날이
머지않음 잊지말라.
여러분 모르실 것입니다.
뭐냐고 궁금하시죠,
아기 유모차보다도
반려동물 유모차가
더 많이 생산·판매되었다는 현실,
그래요,
시대적 흐름은 거역할 수 없겠죠.
노동력이 필수였던 농경사회에서는
가난해도 가족 수를 늘리려 애썼다.
하여 가족이 많은 집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제때 끼니를 챙길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해
하루걸러 한 끼라도 식구를 늘리는 집이 많았다.
일반 가정의 작은 방에 대여섯은 보통이고
많은 집은 십여 명씩 한방에서 잠을 잤다.
조부•조모•큰아버지•삼촌•고모•형제•자매까지.
많으면 열대여섯이 부대끼던 시대를 지나왔다.
혹시 그때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이 나왔을까???
헐벗고 빈곤해도 대가족하에서는
아이 양육과 노인 봉양은 천부적 가치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불만 없이 대물림 되었다.
먼저 태어나 한 살이라도 더 먹은 형과 누나가
계속 생기는 동생들 챙기며 가사를 도왔던 시절
부모님이 연로하시면 자신의 분신인 손주들 돌보면서
세월을 낚는 일이 당연한 것으로 알았던 시절을 지나
예정된 때가 되면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배웅했던
그 시절이 진정 사람 사는 모습이 아닐까 한다.
요즘 갖가지 종류의 동물과 곤충, 어류, 갑각류
심지어 정글에 사는 외국산 악어를 비롯해 파충류까지
왜, 무엇 때문에, 그간 어떤 일이 있어서 그리되었을까,
가족 개념의 핵분열 1~2인 세대로 대세가 된 사회에서
인간성을 따지지 않고 물질 우선주의가 신분증이 되어
부모가 누구인지, 배경은 어떤지 끼리끼리 편먹는
금수저 흙수저, 주류와 비주류로 양분된 사회,
가족과 친척, 친구, 이웃 간의 소통 단절과
상대적 빈곤감에 위축된 결핍에서 파생된
악화가 양화를 구축 불을 댕긴 사회의 모순이 발화했을까,
하는 마음에 가슴이 미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어
서글퍼지는 것은 비단 나 한 사람뿐일까 하는 의문에
잠 못 들어 뒤척이는 이 밤을 붙들고 실랑이하고 있는
이 어리석음 절친한 벗이라고 터놓고 얘기할 수 있을까,
아니지, 나를 나무라고 탓할 것이 뻔할 뻔 자인 것은 아는 고로
조용히 입 다물고 사는 게 상처받지 않는 현명한 삶이리라, 끝,
첫댓글 잘 보고갑니다.
感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