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서
원성 스님과의 아름다운 해후(邂逅)
뉴욕과 파리에서 개인전을 연 화가스님이 있었다. 훤칠한 키에 이목구비가 준수하여 허주 못지않게 잘 생긴 원성(圓性)스님이다.
스님은 동자승과 옛날 살림 도구를 윤곽선이 없이 농담만으로 그린 풍속화 전문 화가다.
외국에서 순회 전시를 열기에 앞서 엄선한 작품들을 인사동 불교용품 매장에서 선보인 적이 있었다.
인사동 학고재(學古齋)에서 고미술을 감상하고 나오는데 근처에서 원성스님의 동자전(童子展)이 열린다는 포스터를 보았다.
전시 작품보다 미남스님에 관심이 더 많은 터
비 오는 날 토요일 오후였다. 스님은 관람객들에게 작품들을 직접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맑은 음성이 너무 좋았다.
전시장이 협소하여 작품 2-30점이 전부였다.
작품 사이의 공간에도 파격(破格)이 필요한 것인지?
이질적인 포인트가 있으면 작품이 돋보인다. 그래서 모서리마다 연꽃이 고즈넉이 놓여있었다.
어느 시인은
왼 손가락 끝이 엄지손가락 끝에 닿았으니 손이 아니라 연꽃이더라!
연꽃을 들고 미소(蓮花示衆)짓는 석가모니
망자 외로운 저승길 동행하고
꽃상여 장식하고
옥황상제가 이승으로 보낸 심청의 환생도 연꽃 속에서
풀(草)중에 으뜸은 연이리라.
연꽃
만삭된 몸
풀 날이 언제인지
탱탱 불은 젖가슴
열어볼 날 언제인지
진흙 밭에 발 묻고
열 손가락으로
문 열며 지긋이 마음 다스리더니
또르르 이슬 구르는 날
반야심경 음송으로
꽃잎 하나 연다.
시 : 목필균
젊은이들 한 그룹이 빠져 나가자 전시장이 텅 비어 썰렁했다.
내가 연등을 보고 있자니 원성스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연꽃이 마음에 드시는 모양입니다. 비 맞지 않게 잘 포장해 드리세요.”
아무리 좋은 작품일지라도 임하시중(荏荷示衆)의 미소(微笑),
연꽃의 심오한 진리에 비하면, 한낮 보잘 것 없는 마발(馬勃)에 불과하리라!
연꽃이 떠난 빈자리를 대신해서 스님이 미소로 채워주시겠지!
관객이 자기 작품은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연등만 쳐다보고 있으니 이상했으리라.
뜻하지 않게 선물을 받고 보니 어안이 벙벙했다. 이럴 때는 미소로 화답하는 것이 나의 상용 수법이다.
방긋 웃어주고 고마운 마음에 연등을 들고 나와, 콧노래 부르며 인사동 길을 활보했다.
흐일 원성 스님과 만남은 다음에
파고다공원에서
역사의 수레바퀴여!
가던 길을 멈추고.
인사동이나 구경하세!
여기는 사동(寺洞) 일주문
만보완상 (漫步玩賞)하는
문화유객(文化遊客)들이여!
과거 현재 미래가 조화롭게
춤추는 역사 현장을
느긋하게 와유(臥遊)하라!
고려청자가 막사발이 된들
통영반이 닭다리반이 된들
문화는 장사꾼에게 맡기고
친구들을 목포집으로 불러
홍어가 얼마나 잘 익었는지
코 좀 풀고 와야 쓰것다.
눈이 호강을 했으니 뱃속을 채울 차례, 사찰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 산촌(山村)을 찾았다.
산촌에서는 육류, 생선을 사용하지 않고 산채만으로 5색 6미를 만든다.
눈이 즐겁고 입이 즐거운데. 고전 음악과 전통 춤이 곁들여지니 술맛 또한 좋을 거야!
식당 안은 손님으로 꽉 차 있었고. 혼자 온 사람은 나 하나 뿐이었다.
승복을 입은, 산사에서 승려 생활을 한 미남주인이 반갑게 맞이했다.
산촌 김 사장은 병무청장을 지낸 허상구 형과 호형호제하는 막역한 사이다.
빈자리가 없어 먼저 와있는 외국손님에게 양해를 구했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좋아해서 찾아왔으나, 낯선 외국인과 마주하여, 조신(操身)하며 술을 마셔야 한하니 입맛이 가셨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뜨리는 것은 권주(勸酒)가 제일이다.
곡차(막걸리) 한 동이를 가져오라 해서, 예절과 관습은 벗어버리고 주거니 받거니, 화기애애한 술자리가 되었다.
영국에서 온 젊은 남녀는 의류 디자이너들이었다.
동양의 신비한 아름다움을 유럽패션에 접목하기 위해 서로 의기투합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여성은 패선 디자이너 뺨치는 차림새였다.
남성은 검은색 정장에 흰 와이셔츠가 깔끔하고 옷매무새는 정갈했다. 넥타이는 자주색 스트라이프다.
남녀의 차림새는 역동적이어서 정(靜)과 동(動)이 함께 있는 것 같았다.
말로만 듣던 영국신사들의 세련된 풍모를 접하며 같이 술잔을 기울이니 몇 순배에 취기가 들었다.
나야 차림새라면 결코 뒤지지 않는 멋쟁이 아닌가? 인사동에 갈 때면 주로 등나무 꽃 넥타이를 맨다.
넥타이
남자의 한가운데 달려있다.
평소에는 축 늘어져 있다.
걸을 때 흔들린다.
앞쪽이 불룩하고 굵다.
넥타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젊은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찬사를 쏟아 놓았다.
“리얼 아트, 홧 어 뷰티플 칼라, 환타스틱, 이메이징”
“그건 예술이야! 예술”
손님들은 나의 넥타이와 외국인 남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래서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넥타이를 풀어 재끼고 “우리 서로 바꾸어 맵시다.” 하며 미련 없이 넥타이를 주어 버렸다.
“와 부라보, 땡큐 써” 두 사람의 목소리가 스테레오 합창이다.
눈을 말똥말똥 뜨고 지켜보던 옆자리 젊은이들이 요란하게 박수를 쳤다.
전혀 허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곡주(穀酒)를 사발에 가득 채워 단번에 들이키니 알딸딸하게 취기가 들었다.
다불유시(多彿游時)
밥 먹고 숭늉 마시는 일이 다반사(茶飯事)라고 했던가. 이런 이름을 가진 식당에서 전통차도 팔고 있었다.
헤어지기 섭섭하여 따라 온 서양 젊은이들과 함께 고전음악이 흐르는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벽에 화살표와 함께 여인의 나상(裸像)이 그려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많을 다, 부처 불, 놀 유, 때 시, (多彿游時)라는 넉자가 붓글씨로 써 있었다.
종업원에게, 부처님이 유희하는 때라고 하니 부처님도 여자와 어울리는 모양이죠?
“저희 집 오시는 손님 수준이라면 바로 압니다. 힌트 하나 드리죠. 메이드가 티슈를 들고 있습니다.‘
주문을 받으러 왔을 때 우리가 의아해 하는 기미를 느꼈는지
“힌트 더 드리죠! 그곳은 세상에 가장 급한 사람이 가는 곳이라 보폭(步幅)이 석자는 되어야 합니다.”
미련한 나는 큰 소리로 몇 번 반복해서 읽어보고야 뜻을 알았다.
아하! 이제야 알겠다. 신라시대 사용했던 이두(吏讀)문자를 썼구먼.
손님에게 그것이 있는 곳을 알려야겠는데, 먹고 마시는 정갈한 곳에 어찌? 장난꾸러기 주인의 재치가 귀여웠다.
사찰에서 W.C.를 한국식으로
수필가 김원이 미국 L.A에서 불사(佛事)를 하시는 예일대 출신 무량스님에게
법당 입구 좁은 계단에 '다불유시(多佛有時)'라는 팻말이 보이는데요?
절간에서 흔히 사용하는 해우소(解憂所)이다.
다불유시를 거꾸로 읽으면 시유부(불)다가 된다.
첫째는 "See(시) you(유) Buddha(부다)"
둘째는 "Time(時) is(有) not(不) many(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