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성자
방학을 맞아 창원으로 복귀한 칠월 중순이다. 간밤 금요일 저녁에는 아파트단지 맞은편 상가에서 친구와 장어구이로 맑은 술잔을 기울였다. 함께 자리해준 지기가 둘 더 있었다. 넷은 모두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이십여 년 전 창원으로 전입해 같은 학교 근무하면서 알게 된 친구와 오래도록 교류를 가져왔다. 오는 팔월 말 정년을 맞아 내보다 먼저 자유로운 영혼이 될 친구였다.
날이 밝아온 칠월 셋째 토요일이다. 방학을 맞은 첫날 이른 아침 산행을 나섰다. 집 앞에서 창원대학과 도청 앞을 둘러 대방동 종점으로 가는 101번 시내버스를 탔다. 대방동 뒷길에서 성당을 지나 내렸다. 대암산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할머니 둘을 스쳐 지났다. 그들은 대암산 입구 체육기구까지 올라가볼 모양이었다. 나는 성주동 아파트단지 뒤를 돌아 용제봉으로 갈 참이었다.
교회를 지나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갔다. 한 노인이 허리를 굽혀 길바닥에서 뭔가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가드레일 밖으로 던져주길 반복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새벽에 소나기가 내려 지렁이가 길바닥으로 나와 기어 다녔다. 피부 호흡을 해야 하는 지렁이는 여름날 비가 오면 땅속이 갑갑해 길바닥으로 나왔다. 할아버지는 길을 가면서 그 지렁이들을 움켜 길섶으로 넘겼다.
할아버지의 생명 존중 의식과 실천이 놀라웠다. 할아버지는 지렁이가 산행객들의 발길에 밟힐까 봐 풀숲으로 옮겨주었다. 또한 지렁이는 햇볕이 내리쬐면 화상을 입어 말라죽어 개미들 밥이 되고 만다. 할아버지는 가던 길을 멈추고 지렁이들을 안전지대로 이사를 시켰다. 나는 ‘어르신! 적선하십니다. 복 받을 겁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고승의 설법보다 소중한 생태 보존이었다.
할아버지의 모습이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지식보다 울림이 컸다. 내가 수없이 산행을 다녔지만 길 위의 지렁이를 사람들 발길에 밟혀 죽을까 봐 바깥으로 옮겨주는 이는 처음 봤다. 나는 여태 그렇게 힘들지 않을 그런 보시를 왜 해보지 못했는지 와락 부끄러움을 느꼈다. 세상에나, 길을 가면서도 평범한 한 노인에게 거룩한 성자와 같은 분위기를 받았다.
등산로 들머리 길섶은 작년 행정 당국에서 심은 수국 잎줄기가 세력을 불려갔다. 앞으로 여름이면 해를 거듭할수록 수국이 피어 아름다운 꽃길이 될 듯했다. 등산로 들머리는 새벽 산행을 마친 사람들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산 아래 아파트단지 사는 사람들이 새벽마다 산행을 다녀오는 코스인 듯했다. 농바위를 지나 산모롱이를 돌아가니 계곡은 맑은 물이 포말을 일으키며 쏟아졌다.
상점령 갈림길에서 용제봉으로 오르는 숲길로 들었다. 새벽에 소나기가 한 줄기 내렸는데 이른 아침에도 성근 빗방울이 들었다. 비는 세차지 않아 옷이 젖을 정도는 아니라 시원함을 느꼈다. 계곡에 놓인 목책 교량을 건너서 소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걸으니 삼림욕과 다름없었다. 더러 보이던 산행객들은 상점령이나 불모산 나들이 길로 향했는지 인적이 드물어 호젓했다.
용제봉 기슭에서 영지버섯이 있을까 봐 등산로를 벗어나 숲을 헤쳐 걸었다. 숲속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봐도 영지버섯은 눈에 쉽게 띄지 않았다. 자손이 벌초를 다녀가 묵혀지지 않은 무덤가는 비비추 무더기가 꽃을 피웠다. 함초롬히 비를 맞은 꽃이 난초꽃처럼 기품이 있어 보였다. 한동안 숲속을 헤집고 다니니 이제 갓을 막 펼쳐 자란 영지버섯을 만나 숲속을 다닌 보람이 있었다.
용제봉 기슭에서 나와 등산로를 따라 걸어 계곡으로 내려갔다. 너럭바위를 타고 시원한 물줄기가 흘렀다. 배낭과 모자를 벗어던지고 허리를 굽혀 얼굴의 땀을 씻으니 아주 시원했다. 얼굴을 씻은 뒤 바위에 앉아 물줄기가 뿜어내는 음이온을 흡입했다. 계곡에서 등산로로 나와 숲을 빠져나오니 뒤늦게 산을 찾아오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산행객들은 주로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었다. 21.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