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송구영신 예배는 기독교 전통의 절기가 아니라 전래 민속 행사의 전통이 기독교적 버전으로 변형된 것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뜻의 送舊迎新이라는 말 자체는 날과 시간성에 의미를 두는 동양적 종교 문화와 밀접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송구영신이란 말은 음력 섣달그믐 밤에 묵은해를 보내고 신년의 운수 대통을 기원하던 무속적인 민속 행사에 사용된 용어였다. 그러한 민속 제의가 주술적이고 기복적이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문화와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이 배경이 되어 송구영신 예배가 다분히 기복적인 분위기로 흐르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대림절로부터 부활절에 이르는 교회력에 따른 기독교의 절기는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어린이주일, 어버이주일이나 추수감사주일조차도 전통적인 기독교 절기가 아니다. 어린이주일은 어린이날에 이어진 한국식 기념일이고, 어버이주일은 미국의 Mother's Day와 관련되어 있고, 추수감사주일 역시 미국의 추수감사절에서 기원한다. 기독교의 절기는 아닌 것이다.
그날을 교육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가능하나 그 날과 예배 자체를 신비화하거나 다른 주일과 전혀 다른 보다 소중한 날로 특별한 의미를 두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여전히 그리스도가 주일의 주인이요, 어린이나 부모, 노인, 추수 감사 헌금이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송구영신 예배 역시 마찬가지이다. 새해맞이 의식, 해맞이 행사가 아닌 것이
다.
▲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송구영신을 소중히 여겼다. 우리는 송구영신 예배를 민속적인 전통 위에 세워진 참기독교적인 행사로 자리 잡게 할 수 있다. 새해를 맞이하는 특별한 시간, 기복적인 요소를 지양하고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예배를 드림으로 귀한 의미를 살릴 수 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공용) |
그럼에도 한 해의 마지막 날이자 새해 첫날을, 예배와 기도로 마무리하고 시작하는 일은 중요하다. 성경 속에서도 새로운 시작을 할 때 단을 쌓는 사례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송구영신 예배를 기복적인 메시지와 이벤트로 채우기보다 성경적인 원리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키워드는 언약·은혜·감사·섭리, 반성·참회·화해·용서, 믿음·소망·사랑 등이 될 것이다. 예배의 중요한 요소는 감사, 참회, 기도, 말씀, 축복의 기원, 성찬식 등이 될 것이다. 자칫 점 카드 뽑기를 연상케 하는 '말씀 카드 뽑기' 이벤트나 주술적 기도나 선포 등은 피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교회 전체나 각 가정에 필요한 말씀을 목회자가 직접 전해 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교회에 따라 올해의 10대 사건, 새해맞이 카운트다운 등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떡국이나 간식을 나누기도 하고, 어른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송구영신 예배는 의미 있는 시간에 행하는 공동체 예배일 뿐 아니라 한국식 기독교의 신년 문화 행사의 성격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적 정체성을 지키게 하는 기독교적 예전과 성결한 공동체 문화를 유지하지 않으면 공동체와 신자의 신앙이 저속하게 왜곡될 것이다.
제사와 추도 예배, 푸닥거리와 치유 기도(이사·개업 예배 등등), 굿과 심방 예배 등의 관계처럼 송구영신 예배도 샤머니즘적 문화적 배경이 농후하다. 즉 전통적 민속 행사와 송구영신 예배 사이에는 일련의 역사적 문화적 연속성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분별력이 없이 송구영신 예배를 무속적 기복적 요소와 분위기로 채워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송구영신'을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문화적 토양 위에 예전과 행사를 성경적 원리에 따라 행함으로써 기독교적 고유성이 분명한 예배로 드려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문화는 복음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복음은 문화를 변혁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도 한다. 목회자가 이를 인식하고 카타르시스와 기복에 초점을 둔 샤먼적 기능을 버리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감사, 말씀과 기도, 그리스도와의 연합, 지체 간의 하나 됨과 축복을 안내하는 예배 인도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특별한 시간성의 의미가 최고조가 되는 순간, 교인들은 가장 진지하고 준비된 마음으로 교회를 찾는다. 기복적인 방향으로 몰아가 욕망을 채워 주느냐, 아니면 예배자가 되게 하여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새로운 한 해를 출발하게 하느냐, 목회적 신학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따라서 송구영신은 뜻있는 예배를 통하여 복음적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축복의 현장이 될 수 있다.
황영익 / 서울남교회 담임목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Ph.D.Candi.
이 글은 황영익 목사(필명 황산)의 페이스북에 실린 것으로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