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의 쉼터에 '대전 원지명은 태전'이었다는 글이 떴다.
나는 서해안 산골마을에서 살다가 소년기에 대전으로 전학가서 살았다.
대전 역전이 가까운 은행동에서 살면서 초중고와 젊은 날을 보냈기에 1960년부터 중심지에 대한 이모저모는 어렴프시 기억이 난다.
대전역을 처음 본 것은 1957년. 정말로 허술한 일본식 건물이었다.
1977년 말에 떠난 뒤 2019년 1월인 지금 대전 원중심지는 어떻게 변했는지 그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원중심지는 지금은 발전이 더디어서 이제는 무척이나 후졌다.
'원로의 쉼터'에서 대전 옛 지명이 '태전'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나중에 더 검색해야겠지만 흥미진진하다.
'태전(太田)'이 원래 지명인데도 '클 태'가 뜻이 너무나도 크기에 일본인 이등박문이 '대전(大田, 한밭)'으로 낮춰 부르도록 지시해서 개명했다는 내용이다.
다소 의문스러워서 아랫처럼 댓글 달았다.
공주갑부 김갑순의 땅부자 이야기도 덧붙인다.
배다른 형제끼리의 재산 다툼으로 망했다.
1)
태전 : 우리 말로는 무어라고 불렀나요?
대전 : '한밭'이라고 하여 '한밭중학교'가 있지요.
은행교 앞 중앙시장 '태전마트?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은행교?
1960년부터 1977년까지 은행동 중교다리 인근에서 살았지요.
대전 떠난 지가 40년도 더 되니 기억이 가물거리고...
좋은 자료이군요.
일제시대 철로가 들어서기 전에는 농가 10채도 안 되는 촌.
대전역이 있는 지명일 터?
대전역은 내가 살던 은행동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
대전역전, 은행동, 선화동 일대가 공주갑부 김갑순네 땅 30만 평(인터넷 자료는 22만평)이었으나 형제끼리 재산싸움으로 헐값으로 처분..
2)
인터넷 검색하니 중앙시장 태전마트 위치는 내가 살았던 집에서 500m 거리도 안 되고...
내가 살 때에는 그런 상호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저는 아직도 대전에 연관이 남아서...
대전이 무척이나 많이 컸군요. 우리나라 5대도시로...
인구 순위는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대전, 광주...
왜 이런 글이 떴는지? 고개를 가우뚱.
제가 소유한 땅도 공주갑부의 소유였다가 그들은 재산 다툼으로 망했지요.
어쩌면 충남 제1위 갑부였을 게다.
그가 소유한 땅이 1,000만 평이 넘었다.
고려대, 동아일보를 세운 전북 고창군 고창면 갑부 김성수만큼은 아니어도 김갑순도 갑부 반열에 들었다.
김성수는 일제에 땅 900만 평을 헌납하고...
좋은 글감 하나를 얻었다.
시간이 나는대로 자료를 더 수집하고, 대전 본토박이 친구를 만나면 위 사실여부를 확인해야겠다.
위 상호 가운데 중앙시장 '태촌마트'라는 상호에는 고개를 가우뚱한다. 그런 상호도 있나? 하는 수준...
내가 기억하는 1960년대의 중앙시장 모습은 허술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일제시대부터 원동, 은행동에 살았고, 내가 사는 집은 은행동 일본 2층기와 집이었다. 일본인적산가옥이었고, 2층은 마루, 다다미 왕골 돗자리를 깔았다.
은행동, 선화동 일대에는 이북 피난민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이들은 거의 다 장사꾼이었다.
동쪽에 치우는 대전역에서 서쪽 방향으로 교통이 발달하였고, 남쪽으로는 중교통으로 가는 원동, 인동 일대는 허름한 상가였고, 정말로 대형 화재가 자주 일어났다.
불구경하는 재미도 있었고.
대전역에서 바라보면 원도심지에는 목척교, 대전도청, 대전경찰서가 있었고 도청에서 북편쪽으로는 대전법원이 있었다.
지금은 관청이 신도심지인 둔산동, 유성온천 너머로 가수원/진잠 등지로 이전했기에 원도심지 상권이 거의 죽었다. 대전공단지역이 있는 동쪽(신대리 일대)은 원래 똥오물을 퍼다 붓는 불결한 지역이었으나 지금은 공단지역으로 탈바꿈했다.
서구 둔산동 일대에는 1988년 올림픽경기로 크게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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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지금 01 : 15가 넘었으니...
나중에 보탠다.
첫댓글 좋은 아침입니다
대전이 태전이였다는것 저도 처음 알았네요
일본이 참 안좋은짓 별걸 다했네요
대전에 애착이 많으십니다~^^
지명에 대해서는 조금은 의문이 됩니다.
제가 대전에서 살때에는 인구 20여 만 명의 중도시였는데
지금은 외곽지역을 포함한 광역시로 확장했기에 엄청나게 면적이 넓고 인구는 늘었대요.
제 조부와 부친은 대전 가수원동 땅을 팔아서 서해안 시골에 토지를 샀지요. 시골 땅이 더 비쌌다는 뜻.
수십 년이 지난 뒤 이제는 역전되어서 대전 땅값이 시골보다 300 ~500배 비싸졌지요.
대전에 아직도 연고지가 남아 있기에.
원도심지에는 중국인, 이북사람들이 정말로 많았지요.
청소년기를 대전에서 보내면서 성장했네요. 대전은 5대도시안에 드는데 그리 큰 도시란 느낌이 들지 않아요. 교통의 요지로 사방 팔방에서 상업적으로 무역업을 하는 사람들이 옛날에 드나들던 곳이었겠죠.
대전은 원래 작은 시골마을. 농가 10가구도 안 되는 곳인데... 철도가 들어서는 바람에 발전했지요.
일제시대 공주갑부 김갑순 땅이 대전 땅 40%나 소유했다네요.
역전, 도청 인근의 알짜배기 땅이 개인소였고, 충남도청은 깁갑순이가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기려고 자기 땅을 내놨지요.
대전 천안등은 멀지 않는 거리지요 최윤환님 폭 넓은 상식 잘 배우고 갑니다
예.
댓글 고맙습니다.
한밭 대전은 원래 작은 곳이었지요. 지형적으로도 작고 좁고 그래요.
동구 북구 쪽으로는 산들이 가로막고, 서구 남구쪽으로 세력이 넓혀지겠지요.
아주 오래전~
대전역에 내리니 아직 새벽이었습니다.
해서 근처 다방에 갔더니 종업원이 내 옆에 앉았고 개시라며 쌍화탕을 사달래서 사준적이 있습니다.
나중 계산하려니 한잔에 300원이랍니다.
그때 대전까지 차비가 300원이었거든요~^^*
언제적 일이었는지는 몰라도... 재미나는 옛 기억이군요.
조용한 도시이지요.
저는 대전에 현충일이면 꼭 갑니다. 제 아우가 거기 있으니 가서 비석에 꽃한송이라도 꽂고 와야죠.
국립대전현충원이군요. 1980년대에 유성지구에 개설했지요.
님의 동생이 군인이었거나 국가 유공자였군요. 안타깝게도 호국영령이 되었으니...
저는 1980년대 중간에 그쪽으로 근무할 뻔 했는데 서울 사는 아내가 엄청나게 반대하대요.
국방부 산하기관이었다가 지금은 보훈처 산하기관이 되었지요.
최규하 대통령의 묘소가 있고...
대전현충원... 저도 몇 차례 갔지요. 제 고교여친구의 아들도... 묻혀 있고.. 외동아들이었는데..
@최윤환 네에
@최윤환 전 친동생이랍니다. 최전방에서 감전사고로
삭제된 댓글 입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호남선이 지나가는 서대전역. 조금은 후진 곳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변했겠군요.
대전은 새로 생긴 서구 둔산동 일대로 세가 확장되었지요.
고속전철...
우씨... 제 소유 대덕구 신대리 산 밑으로 토지수용되는 줄 알았다가 살짝 비켜서는 바람에 살았네요.
대전은 교통중심지.. 통과역이 되겠지요.
선화동 이름 반갑네요.
울 와이프도 수십년 전 선화동 살면서 선화 초등 나왓다나~ㅎ
선화초등학교라...
반가운 이름이네요.
저는 대흥초등 학교 나왔지요. 은행동이면 원동초등학교 다녀야 하는데도 조금 멀리 떨어진 대흥초등으로 전학했지요.
선화동 이름이 예쁘지요.
한밭 대전은 작은 시골마을(가구 10가구)이었기에 대전역이 개설되고, 도청이 공주에서 대전 선화동으로 이전한 뒤로는 100% 가까운 사람들은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이지요.
일제시대, 한국전쟁 이후로 피난민이 엄청나게 내려와 대전 상권을 이들이 다 장악했지요.
대전의 옛이름이 태전이엇다는 글 저도 아침에 읽엇습니다. 육해공군 사령부가 잇는 신도안현장에서 일할때 대전에 살앗던 추억이 잇습니다.
예...
계룡대 근처에서 살았군요.
저도 위 지역, 3군본부를 업무상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네요.
신도안.. 지명이 주는 이미지가 독특하군요.
통일이 되면 이들 본부는 또 어디로 이전해야 됄까요?
우리나라(남한 북한 통털어서) 중심지는 어디일까요?
우리의 영역을 보다 북쪽으로 넓혔으면요.
극동의 호랑이가 으르렁 거리는 그런 강국이었으면 합니다.
이젠 대전발 영시 오십분은 바뀌었겠지요.
대전에 이젤님이 살고 계시고
더는 궁금한 게 없어서 구체적으로 댓글 못 달아 죄송합니다.
그래도 눈으로는 공부잘했습니다.
댓글에 ㅋㅋㅋ.
그런 시절도 있었지요.
이젤 님이 대전에 사시는군요.
유성 온천으로 유명했던 곳도 대전이지요
그 시대 상류층 신혼 여행지가 유성 온천 그리고 자유부인도 유성온천에서 촬영했다던데 ㅎㅎ
예..
예전... 서해안 촌놈은 저는 대전에서 목간에 처음 가봤고, 나중에는 유성온천에서 때를 밀었지요.
지금은 아마도 온천수가 아닌 수돗물을 끓여서 내놓겠지요. 이름만 온천수?
한밭이라는 이름 이었는데
왜놈들이 한문으로 대전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이야길
들은것 같읍니다.
우리 고향도 그렇게 된것 같고 ,,전국의 동네 이름까지도
모두 한문으로 바꾸어졌다 합니다.
아마 전국이 똑같은 현상일 겁니다.
구한말 제 시골마을은 꼬부래(꽃바래, 고뿌래 등 옛말)이었는데 일제시대 한자는 화망(花望)이대요.
전국이 다.. 한자병에 걸렸고...
일제시대 성씨 최(최)를 산본(山本)으로 바꿨대요.
저는 해방 이후에 태어났기에 그냥 최씨이고...
일제의 흔적이 지금도 엄청나게 많이 남아 있지요.
난 대전에는 한번도 가본적도 없는데
옛날 이름이 태전 이였다니 새로운 얘기에요
그저 서울 토박이인 난
댓글 감사.
그렇군요.
대한민국 땅이 엄청나게 넓거든요.
우리나라는 북한/남한도 있는데
저는 고작 국토 반도 안 되는 남한에서 살지요.
남한 지역 안 가 본 곳이 수두룩하자요.
아마도 가 본 곳이란 고작 1/100,000 수준.
언제 기회가 되면 대전직할시 방문해 보셔요.
충남지역에도...
대한민국 남한도 엄청나게 넓어서 구경할 곳 많지요.
그렇군요 대전이 태전이라
여러가지 많이 아시는 덕에
잘 읽고 갑니다 늘~건강하세요~()
저도 처음 듣는데요.
아닐 것같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원 대전은 작은 마을이지요. 불과 10가구 정도의 한촌이라고 하던데...
이런 곳을 태전이라고 불렀다는 게 논리상 어색하네요.
그 당시의 문헌/ 관청의 기록이 있을 터인데... 조선조에 지명이 있을 터인데..
이런 근거도 없이 그냥 일방적으로 개인이 글 내면?
의문 많은 저는 고개를 가우뚱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