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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옥만당(金玉滿堂)
금옥관자(金玉貫子)가 집에 가득하다는 뜻으로, 어진 신하가 조정에 가득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金 : 쇠 금(金/0)
玉 : 구슬 옥(玉/0)
滿 : 찰 만(氵/11)
堂 : 집 당(土/8)
(유의어)
금옥영실(金玉盈室)
출전 : 노자(老子) 第9章
이 성어는 노자(老子) 제9장에 나오는 말로 사람의 욕심을 다 채우는 것보다는 적당하게 그치게 하는 것이 좋다는 뜻으로 그 해석 몇 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解釋 1)
가득 차 있는 상태를 무리해서 계속 유지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두들겨 날카롭게 만든 칼은 오래가지 못하고 금은보화를 집안에 가득 쌓아둔다고 해서 그것을 유지해 나갈 수는 없다. 부귀하여 교만하게 되면 스스로 화를 부르게 될 것이다. 일을 이루었으면 물러나는 것이 천도의 이치이다.
(解釋 2)
늘리고 채우기보다는 적당할 때 멈추는 게 낫네. 쇠를 불려서 날카롭게 하면 오래 보존될 수 없네. 금옥이 방에 가득하면 아무도 지킬 수 없네. 부귀하면서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만 남길 뿐. 공이 이루어지면 물러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네.
(解釋 3)
계속 채우려 드는 것보다는 멈추는 것이 더 낫고 잘 다듬어 예리하게 하면 오래 갈 수 없다. 온갖 금은보화를 집안 가득 채우지만 그것을 지킬 수가 없고 부유하고 높은 자리에 있다 하여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는 꼴이다. 공이 이루어지면 물러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 老子 道德經 第9章
持而盈之, 不如其已.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더) 채우려고 하는 것은 그만두는 것만 못하다(같지 않다).
揣而銳之, 不可長保.
갈아서 날카롭게 된 것은 오래 보존하기가 어렵다.
金玉滿堂, 莫之能守.
금과 옥 같은 보물이 집에 가득하면 이를 지킬 수가 없다.
富貴而驕, 自遺其咎.
부유하고 귀한 신분이 되어 교만해지면 허물을 남기게 된다.
功遂身退, 天之道也.
공을 이루고 나서 (그 혜택에 머물지 말고) 몸을 물리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解釋)
9장은 초나라 무덤에서 발견된 죽간본(竹簡本)에 전문(全文)이 나오기 때문에 보다 빠른 시기에 지어져서 도덕경에 삽입된 것이다. 그리고 이 장은 우리들이 공을 이루고 살면서 어느 선에서 멈추고 물러서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장이다.
이러한 맥락은 여러 장에서 다양한 언어로 거듭 표현되고 있지만 2장의 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 공을 이루고 그 자리에 머물지 마라), 34장의 공성이불유; 공을 이루고 그 결과물을 소유하지 않는다), 77장의 공성이불처(功成而不處; 공을 이루고 그곳에 있지 않는다), 9장에서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비유를 들어 다른 장보다 비교적 더 잘 설명하고 있다.
30장의 물장즉노(物壯則老; 모든 것이 장성하면 노쇠한다)와 44장의 지지불태 가이장구(知止不殆 可以長久;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 오래 갈 수 있다)를 통해, 빨리 성해지려고 하지 말고 멈추어야 위태롭지 않고 오래가기 때문이라 말한다.
持而盈之 不如其已.
揣而銳之 不可長保.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더) 채우려는 것은 그만두는 것만 못하다(같지 않다). 갈아서 날카롭게 된 것은 오래 보존하기가 어렵다.
노자가 한 이 말을 공자가 말한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부족한 것과 같다)은, 논어(論語)의 선진편(先進篇)에 나오며, 공자가 제자(子貢)의 질문에 대해 다른 제자들(지나친 子張과 부족한 子夏)을 비교해서 지적한 말이다.
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두 문장이 '지나침이 좋지 않다'는 의미로는 비슷하지만, '부족함이 좋지 않다'는 말에는 차이가 있다.
공자는 지나침과 부족함이 모두 좋지 않다는 중용(中庸)을 강조하고 있고, 노자는 현재 가진 것에 부족함을 느끼기보다 그것에 만족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릇에 물을 담아서 이동할 때 물을 가득 채우는 것보다 덜 채우는 것이 지니기에 낫다. 그리고 칼을 갈아서 지나치게 날카로운 것은 쉽게 무디게 되니 보관하기 어렵다.
그래서 노자는 사물에 빈 공간이 많을수록 쓰기에 좋고, 통나무처럼 투박할수록 좋게 여긴다. 즉 그릇에 물이 적고, 칼의 날이 무딘 상태로 있어도 충분히 만족함을 중요하게 여긴다.
노자가 만족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들의 삶에 있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이 좋은가? 노자는 현실의 삶(의식주가 해결되어 생존)에 지장이 없는 정도에서 만족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노자는 12장의 위복불위목(爲腹不爲目; 배를 위하지 눈을 위하지 마라)과 24장의 여식췌행(餘食贅行; 잔밥과 군더더기 행위)의 문장을 통해, 배를 위하는 것 이상 추구하면, 그것은 남의 눈을 의식함이며 잔밥과 군더더기의 행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노자는 이것을 자신이 지닌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채우려는 행위로 보고 그만두는 것만 못하다고 말한다.
현실의 삶을 사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 물품이나 기술을 지니고 있고, 사회적 지위나 명예 등을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미래를 위해 저축해 두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자신의 미래도 있지만, 자식이나 손자 등 후손의 미래를 대비하는 측면도 있다. 그리고 둘째는 남과 비교해서 자신이 앞서 있다는 것을 굳이 나타내고자 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비교우위에 서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 마음을 노자의 언어로 표현하면 67장의 감위천하선(敢爲天下先; 감히 천하에 앞서고자 함)이 된다.
노자는 이 장에서 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 감히 천하에 앞서고자 하지 않음)을 자신이 지니고 있는 세 가지 보배 중 하나라고 말했다.
첫째의 이유로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경우는,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하고 있지 못하면 불안초조하면서 어둡고 힘든 현재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어느 정도 저축을 하고 있다고 해도 후손의 미래까지 생각한다면 다다익선(多多益善;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음)의 마음으로 채울 수 있는 데까지 채우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만족을 모르고 채우고자 하는 욕망의 노예가 된다.
둘째의 이유로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경우는, 내보다 더 많이 가진 자가 없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채우는 행위를 하게 된다.
만약에 자기 분야에서 최고로 많이 가진 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다른 분야에는 미치지 못하니 불만족이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모든 분야에서 최고 자리에 있기 때문에 비교할 상대 없이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일시적인 만족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한 자신이 늙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 지속적으로 자신의 것을 지닐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불만족스럽다.
역사적으로는 당대에 모든 것을 지녔다고 생각한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면서 영생을 꿈꾸었지만, 자신도 그가 세운 제국도 오래가지 못했다.
金玉滿堂 莫之能守.
富貴而驕 自遺其咎.
금과 옥 같은 보물이 집에 가득하면 이를 지킬 수가 없다. 부유하고 귀한 신분이 되어 교만해지면 허물을 남기게 된다.
자신이 지닌 재산과 지위 등에 만족할 수 없어서 더욱 많이 지니게 되면 결과적으로는 그것들을 지킬 수가 없다. 자신의 그릇보다 그것에 담긴 내용물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때의 그릇은 사람의 능력을 의미하고, 내용물은 재산과 지위 등을 말한다.
지닐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재산은 말할 것도 없고 생명까지 위태롭다.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지위가 높으면 밑에 있는 사람이 말을 듣지 않아 없는 권위로 누르려고 하니 더욱 허물이 많이 드러나면서 무시당하게 된다.
세상에는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무난하게 잘 지켜내는 사람도 있다. 이 사람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능력 있는 사람이 자신의 그릇보다 조금 조금 적게 내용물(권력, 지위, 명예, 재산 등)을 담고 있으면 무리 없이 그 내용물을 지닐 수 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능력이 있으면서 내용물을 적게 담는 사람인가? 이것에 대한 대답이 이번 장의 마지막 문장이다.
功遂身退 天之道也.
공을 이루고 나서 (그 혜택에 머물지 말고) 몸을 물리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이 사람은 하늘의 도를 아는 사람이다. 하늘의 도는 공을 이루고 나서 그 혜택으로 주어지는 내용물(권력, 지위, 명예, 재산 등)을 챙기려고 하지 않고 물러나는 것이다.
중국의 한(漢) 나라를 세우는데 크게 공을 세운 신하 중 장량(張良)은 물러나 살았고, 한신(漢信)은 물러나지 않아 토사구팽((兎死狗烹; 사냥이 끝나 잡은 토끼가 죽으면 개도 필요 없어져 주인이 삶아 먹는다) 당하였다.
공을 이루는 과정에 그 일을 해내기 위해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그 정도의 힘이 있기 때문에 주어진 내용물(권력, 지위, 명예, 재산 등)을 지닐 수 있다.
그러나 일이 끝나고(공을 이루고) 나면, 내용물(권력, 지위, 명예, 재산 등)을 가지고자 하는 사람은 많은데 비해 그것은 한정되어 있으니 필연적으로 다툼이 일어나게 된다.
이때 다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위태로워 목숨을 잃게 되거나, 지금 지니고 있는 것조차 지닐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많다. 멈춤을 아는 사람이 소요유(逍遙遊; 어슬렁 어슬렁 노님) 할 수 있다.
⏹ 9장 | 공이 이루어지면 물러나라
持而盈之, 不如其已.
넘치도록 채우기보다는, 적절할 때 멈추는 게 낫네.
揣而銳之, 不可長保.
쇠를 불려 날카롭게 하면, 오래도록 보존할 수 없네.
金玉滿堂, 莫之能守.
금과 옥이 방에 가득하면, 아무도 지켜낼 수 없네.
富貴而驕, 自遺其咎.
부귀하면서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만 남길 뿐이네.
功遂身退, 天之道.
공이 이루어지면 물러나는 게, 천지자연의 이치라네.
(解說)
이 장의 핵심은 마지막 구절 공수신퇴(功遂身退), 즉 '공이 이루어지면 물러나라'에 있다. 이는 노자가 늘 강조하는 겸양의 도리로, 2장의 '공을 이루어도 그 공에 머무르지 않는다(功成而不居也)', 34장의 '공이 이루어져도 그 명예를 소유하지 않는다(功成不名有)', 77장의 성인은 행위 하고도 공을 소유하지 않고, 공을 이루고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聖人爲而不恃, 功成而不處)' 등과 같은 맥락을 지닌다.
이러한 겸양의 도리는 자연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봄은 자신의 역할, 즉 만물을 소생시키고 꽃을 피우고 나면 여름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물러난다. 여름 또한 자기 일을 마치면 가을에, 가을은 다시 겨울에, 겨울은 다시 봄에 자리를 물려주고 미련없이 떠난다. 이처럼 공이 이루어지면 뒤로 물러나는 게 천지자연의 늘 그러한 이치이다.
노자는 이 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다음 네 가지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넘치도록 채우기보다는 적절할 때 멈추는 게 낫다.
자연의 도는 비움과 균형을 지향하지만 인간의 도는 채움을 지향한다. 사람들은 채우고 채워 가득 차고 흘러 넘쳐도 여전히 채우는 행위에 몰두한다.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사업가가 쉼 없이 숫자 계산에 몰두하면서 하늘의 별까지 자기 소유로 하려 들듯이 말이다. 그리하여 재물로 곳간을 가득 채우고, 갖가지 정보와 지식으로 머리를 가득 채우며, 온갖 재능으로 자기 이력을 가득 채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거꾸로 자신을 해치는 재앙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재물이 많으면 강도를 당하거나 도둑이 물려들 수 있고, 아는 정보와 지식이 많으면 잔머리 굴리느라 머리가 복잡해지며, 재능이 많으면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피곤해지게 된다.
둘째, 쇠를 불려 날카롭게 하면 오래도록 보존할 수 없다.
날카로운 상태, 즉 최고 정점에 이른 상태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극즉반(極則反)'이라고 하듯이 어느 상태가 정점에 이르게 되면 필연적으로 그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숫돌에 칼을 계속 갈다 보면 어느 순간 날이 넘어가 오히려 더 무뎌지게 된다. 또한 날카로운 상태는 결국 자기 자신을 해치게 된다. 날카로운 창끝이나 예리한 칼날은 주변 사물과 자주 부딪치고 마찰을 일으키게 되므로 금방 날이 상하게 된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신경이 날카로운 사람은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쉽게 화를 낸다. 그 결과 주변 사람들과 잦은 갈등을 일으키게 되고 결국 자신도 상처를 입게 된다.
그러니 사물이든 정신이든 날카로움을 유지한다는 것은 힘들고 피곤한 일이다. 소나기도 하루 종일 쏟아지는 일이 없고, 회오리바람도 하루 종일 가는 법이 없다.
셋째, 금과 옥이 방에 가득하면 아무도 지켜낼 수 없다.
집안에 많은 재물을 쌓아두고 있으면 즐거움보다 걱정이 앞서게 된다. 행여나 강도가 들지 않을까 도둑이 오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시도 마음 놓고 집을 비우지도 못한다. 그래서 많은 돈을 들여 최신형의 견고한 금고를 구입하여 그 속에 고가의 귀금속과 달러 뭉치 등을 보관한다.
그래도 안심이 안된다. 또다시 온갖 보안장치를 집 구석구석에 설치한다. 그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대담한 도둑은 아예 금고 채로 들고 유유히 사라진다.
넷째, 부귀하면서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만 남길 뿐이다.
부(富)와 귀(貴)는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갑자기 부귀해지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교만해지기 쉽다. 교만해지면 자기보다 못 가진 사람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을 하대(下待)하게 된다.
마치 처음부터 부자였던 것처럼, 마치 처음부터 고귀한 존재였던 것처럼 남들을 함부로 무시하고 깔보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비록 부귀는 얻었을지 모르지만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잃게 된다. 재물이나 지위를 잃은 것은 작은 손실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이상에서 말하는 '가득 채움(盈)', '날카롭게 함(銳)', '가득함(滿)', '부귀(富貴)'는 모두 극에 달한 상태를 가리킨다.
달이 차면 기울고 밀물이 끝나면 썰물이 들어오듯이 극에 이른 것은 항상 그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게 마련이다. 40장에서 말하듯이 '되돌아오는 것이 도의 움직임(反者, 道之動)'이기 때문이다.
⏹ 노자 도덕경 9장
8장이 좋은 방안을 수립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면, 9장에서는 그렇게 만들어진 방안도 영구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持而盈之, 不如其已.
揣而銳之, 不可長保.
문구 그대로 해석하면 "지키고 채우는 것은 그만 둠만 못하다. 끝단까지 세밀하게 만들어도 길게 보존치 못한다" 라고 이해 되었습니다. 이야기한 바와 같이 고생하여 어떤 방법을 만들어도 거기에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게으릅니다. 노력해서 어떤 방안을 만들어 내고, 특히나 그를 통해 성공사례가 만들어지면 많은 경우 사람들은 그것에 안주하게 됩니다. 그냥 큰 틀은 바꾸지 않고 내용을 보충하거나 약간 부족한 부분만 보완하려고 하게되죠.
모호했던 항목을 더 자세히 규정하고 기법을 고도화하는 방향으로도 개선하려 합니다. 그런데 노자는 그래봐야 길게 가지 못한다. 그만 두고 원점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이야기 합니다.
金玉滿堂, 莫之能守.
富貴而驕, 自遺其咎.
개인에 비유하자면 엄청난 성공을 거둬 집안에 돈이 넘쳐도 많은 경우 몇 세대를 거치치 못하고 무너지게 됩니다. 내가 가진 것에 자만하는 순간 주변의 원망하는 소리가 생기게 되고요.
성공 뒤의 재물과 같이, 지금 금과옥조로 알고있는 절차와 해결방안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라지게 됩니다. 과거의 성공에 연연해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에 집착하게 되면 구성원들의 원성이 생겨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죠.
功遂身退, 天之道.
그러므로 이 문구는 공을 이루었으면 물러나라는 단순한 의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무언가를 이룩하거나 만들더라도 거기에 집착하고 정체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이야말로 天之道, 곧 바탕이 되고 모든 것에 앞서는 기본 원칙라고 이야기합니다.
⏹ 노자 도덕경 9장 겸허한 삶
넘치도록 가득 채우는 것보다 적당할 때 멈추는 것이 좋다. 칼을 너무 날카롭게 벼리면 쉽게 무뎌진다. 금과 옥으로 집을 가득 채우면 불안함이 밀려온다. 교만과 자만이 가득하면 자신을 벼랑에서 구해 줄 이 아무도 없다. 일을 다 하였으면 물러나는 것이 바로 하늘의 길이다.
도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창조하면서 어느 정도 충분한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또한 이 조건없는 공급이 적당할 때에 멈춘다는 것을 우리는 내면에서 감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도가 얼마나 만들어 내는지에 대해 궁금해 할 필요가 없다.
도는 겸손의 원리 속에서 아름답게 균형을 이룬다. 도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이 온화한 겸손은 나무, 벌, 그리고 모든 생명체에게 어느 정도가 충분한지를 안다. 도는 넘치지 않는다. 창조의 무한한 능력을 과시할 필요가 없기에 도는 적당한 때에 정확히 멈춘다.
넘치는 것이 결국 결핍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소유, 쾌락, 교만 등의 행위들로 가득 찬 삶은 도가 아닌 에고를 따르는 삶임을 알게 된다.
겸허한 삶은 언제 멈추고, 언제 놓아 보내고, 언제 우리 노력에 대한 열매를 즐겨야 할지를 안다. 따라서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재산, 더 강한 권력을 쫓는 것은 이미 잘 갈아놓은 칼을 또 다시 숫돌에 가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칼을 가는 것은 날카로운 칼을 오히려 무디게 만들 뿐이다.
노자는 재산을 모아 축적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한다. 이러한 태도는 소중한 삶을 낭비하고 자꾸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하게 한다.
그리고 노자는 겸허한 삶을 실천하라고 이른다. 부와 명예를 가지려고 한다면, 최소한 그것들을 추구하는 단조로운 길에서 물러나 도를 실천하며 살아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아야 한다. 이것은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데 중독된 이 세속적인 세상과 반대되는 하늘의 길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마음을 간직하라.
이 다짐을 마음속에 간직하라. 비록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부족하다고 소리칠 테지만 말이다. 할 일을 다 하면 한 걸음 물러서라. 겉치레와 무절제한 소비 대신 검소한 생활로 실천하라.
서구사회, 그중에서도 미국의 비만 문제는 바로 이 도덕경 9장의 단순한 지혜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배고프면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러나 배가 부르면 멈춰라. 계속해서 더 많이 소유하면 더 행복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의 덫에 걸린 것이다. 성공을 상징하는 것으로 자신을 과도하게 치장하는 것 역시 이와 같다.
넘치도록 가득 채우는 것은 적당할 대 멈추는 것만 못하다고 말하는 도의 지혜를 떠 올려보라.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마음은 그냥 충분한 것이 아니라 도의 완전함과 일치하는 것이다.
에고의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하고 있는 일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라.
에고는 당신이 한 일에 대해서 더 많이 보상받기를 원한다. 재산을 축적하고 명예를 얻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매 순간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통해 없앨 수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당신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 생각하지 말고 바로 그 일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라. 이 물질만능의 세상에 당신을 태어나게 한 무한한 지혜인 도를 믿어라.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은 유혹이 당신을 찾아오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도를 생각하라. 이 창조의 원리는 할 일을 다 하면 거기서 멈춰야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노자는 말한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길이다." 왜 굳이 하늘의 길을 거스르려고 하는가?
⏹ 9. 가졌으면 더 채우려하지 마라.
持而盈之(지이영지) : 가졌으면서 더 채우려 하는 것은
不如其已(불여기이) : 적당할 때 멈추는 것만 못하다.
揣而銳之(췌이예지) : 충분히 날카로운데 더 벼리면
不可長保(불가장보) : 오래 보관할 수가 없게 된다.
金玉滿堂(금옥만당) : 금은보화가 집에 가득해도
莫之能守(막지능수) : 능히 이를 지키는 것만 못하다.
富貴而驕(부귀이교) : 부귀를 누리면서 교만하면
自遺其咎(자유기구) : 스스로에게 허물을 남긴다.
功遂身退(공수신퇴) : 공을 세운 후에는 몸을 물리는 것이
天之道(천지도) : 하늘의 도다.
비움의 미학을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넘치는 것보다는 조금 모자란 것, 지나치게 날카로운 것보다는 돌처럼 둥글둥글하고 원만한 것에 도가 있다는 것이 노자의 생각이다.
재산도 마찬 가지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재물을 쌓아두는 것보다는 적당하게 벌어서 알뜰살뜰 살아가는 것이 행복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사회적 명성도 그것에 너무 집착하면 몸에 해롭다고 본다. 적당하게 공을 세웠으면 겸손하게 몸을 뒤로 물리라고 말한다. 그래야 신상에 허물을 남기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 그런 예를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더 많은 권력, 더 많은 재물, 더 많은 명성을 쌓으려다가 오히려 가진 것을 잃고 이름을 더럽히는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 연예인들을 우리는 너무 많이, 너무 자주 보고 있지 않은가?
스티브 잡스도 그랬다. 잡스는 자신이 만든 제품에서는 미니멀리즘을 완벽하게 구현했지만 리더십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공동 창업자였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이 성공가도를 달릴 때 묵묵히 2선으로 물러나 엔지니어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지만 잡스는 그러지 않았다.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더 가지려 했고 공(功)을 충분히 이루었음에도 몸을 물리려 하지 않았다.
잡스는 애플을 통째로 자신의 손아귀에 넣기 위해 조직을 무자비하게 몰아붙였고 자신의 성에 차지 않는 직원들을 향해 심한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잡스의 이러한 불통 리더십과 과도한 욕망은 그에게 큰 허물을 남긴다.
1985년 애플 이사회는 스티브 잡스를 해임시키기로 의결한다. 잡스는 파부침주(破斧沈舟)의 심정으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애플 주식 중 딱 한 주 만을 남기고 모두 처분한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애플을 떠난다.
⏹ 노자 도덕경 제9장
持而盈之 不如其已.
揣而銳之 不可長保.
金玉滿堂 莫之能守.
富貴而驕 自遺其咎.
功遂身退 天之道.
갖고 있으면서 가득 채우려는 것은 그만두느니 못하고, 즉 넘치도록 가득 채우는 것보다 적당할 때 멈추는 것이 좋습니다.
이 글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 '지나침은 부족함보다 못하다', '차면 넘치는 법이다'
날카로운 칼의 끝을 더욱 뾰족하게 만들면 오래 보존할 수 없다. 즉 칼을 너무 날카롭게 갈면 쉬이 무디어집니다.
금과 옥이 방안에 가득해도 지킬 수가 없고, 부귀하되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되나니, 공을 이루면(일을 이루었으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입니다.
도덕경의 많은 가르침 중에 하나는 '돌고 도는', '다시 돌아옴', '절제'의 원리입니다. 일종의 잔을 비웠다가 채웠다가 하는 작용력입니다. 잔을 비워야 새로 물을 담거나 채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를 버려야 하나를 얻는 것입니다. 이미 채워져 있으면 더 이상 채우지 말아야 합니다. 적당함은 오히려 지나침보다 나은 것입니다.
만사는 그저 한쪽으로만 무한히 뻗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 가다가
어느 정도에 이르면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인생에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습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이 있는 것입니다. 꼭대기에 올랐다고 너무 기뻐하거나 바닥에 내려왔다고 너무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끝까지 오르지 못했다고 안달하거나 끝까지 내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필요도 없습니다. 인생의 기복에 그저 의연하게 대처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달도 차면 기울기 시작하고 완전히 기울어 없어진 다음에는 다시 생겨나서 차기 시작하고, 바다 물도 끊임없이 왔다 갔다(밀물 썰물)하는 것이며, 밤도 깊어져 가장 어두운 시점에 이르면 다시 밝아지기 시작하고 밝았다가 다시
계절도, 밤낮도, 음양도, 부귀영화도, 희로애락도, 권력도, 운도 모두 이렇게 왔다가 갑니다. 그리고 다시 옵니다. 없어졌다가 생겼다 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주기적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반복 작용을 하는데 이것이 도의 움직임이요, 우주의 리듬이라는 것입니다.
떠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면 됩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물러남이 있을 때 새로 들어옴이 있으니 이것이 하늘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일본 임제종 승려 난닌젠구에 얽힌 널리 알려진 일화입니다. 어느 박식한 대학 교수가 선(禪)에 관하여 저명한 선(禪)의 선사를 찾아 가르침을 청하였습니다.
그 교수는 처음부터 선에 대해서 배우러 왔다 기 보다는 자신의 의견과 지식을 선의 선사에게 과시하고자 했던 것이 분명한 듯 선사의 말을 가로 막으며 자신의 의견만을 피력 하였습니다.
선의 선사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사는 교수의 말을 끈기 있게 경청한 후 차 한잔을 권했습니다. 선사는 교수의 잔이 가득 채워졌지만 계속해서 물을 부었습니다. 그 교수는 찻잔 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며 말했습니다. "찻잔 물이 넘쳐서 더 이상 채울 수 없습니다."
그러자 선사는 "이 찻잔처럼 당신은 자신의 견해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지요.
당신이 잔을 비우지 않는다면 내가 어떻게 선을 보여줄 수 있겠소?" 라고 말했고, 부끄러움에 대학 교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