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미봉 약수터로
내가 틈이 날 때마다 산을 찾는 이유는 몸과 마음의 안식을 위함이다. 언제부터인가 해발고도가 높거나 암반으로 된 능선은 내 체질에 무리라 거들떠보질 않는다. 사람들이 많이 오르는 산은 가급적이면 가질 않으려 한다. 고작 창원 근교 낮은 산자락을 누비면서 철 따라 야생화를 탐방하는 정도다. 봄이면 산나물을 뜯어와 찬거리로 삼고 여름엔 영지버섯을 따와 차를 끓여 마신다.
여름방학을 맞아 창원으로 복귀해 맞은 첫 주말이다. 뒤늦게 형성된 장마전선은 종료 시점에 소나기가 간간이 내리는 날씨다. 토요일은 용제봉 기슭으로 들어 삼림욕을 누리면서 비를 맞고 피어난 비비추꽃을 완상했다. 새날이 된 일요일 아침이 밝아와 산행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반송시장에서 김밥을 두 줄 마련해 창원실내수영장 맞은편에서 양곡으로 가는 216번 시내버스를 탔다.
이른 시각이라 승객은 나 혼자뿐이었다. 충혼탑을 지나 창원공단 배후도로를 달려 신촌삼거리에서 양곡을 돌아갈 때 내렸다. 장복산 북사면 목장마을에서 흘러온 양곡천을 건너 마창대교 접속도로 높다란 교각 밑을 지났다. 산성산 둘레길은 세 구간으로 나뉘는데 첫 구간인 편백누리길로 들어섰다. 수 년 전 창원을 에워싼 외륜산에 조성한 둘레길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뚫렸다.
산성산 둘레길은 옛 마진터널에서 목장마을을 거쳐 오거나 양곡소공원에서 양곡천변을 따라 편백누리길로 들어서게 되어 있다. 종점은 산등선을 넘어 삼귀 주민센터까지 꽤 멀다. 산행 기점까지 승용차로나 시내버스로는 접근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져 찾아오는 이가 적은 편이다. 대중교통만을 이용하는 나는 사람들이 몰려오지 않고 호젓한 숲길을 혼자 누릴 수 있어 오히려 좋았다.
숲길 들머리부터 쉬엄쉬엄 걸었다. 편백나무 조림지 쉼터가 있어 배낭을 벗고 앉았다. 이른 시간이지만 새참으로 곡차를 꺼내 김밥을 안주 삼아 잔을 비웠다. 단독 산행에서는 누구로부터 간섭이나 통제가 없어 마음 내키면 앉아 쉬어가도 되었다. 기력을 충전했다 싶으면 일어나 다시 걸었다. 차도가 가까워 숲 밖에는 장복터널을 넘나드는 차량 바퀴 구르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장복터널로 드나드는 차량은 소음이지만 우거진 편백나무 숲이 방음벽 역할을 해주었다. 철이 철인지라 숲에서는 매미소리가 청아한 음향으로 여름 운치를 더해주었다. 등산로는 갈지자로 그으며 산허리를 돌아 올라가니 마진터널에서 목장마을을 거쳐 온 갈림길을 만났다. 비탈길을 더 올라 산성산 전망정자에 닿았다. 두산중공업 공장과 합포만 돝섬이 드러나고 마산 월영동이 보였다.
정자에서 등산로가 아니었지만 멀리 군부대가 보이는 산등선을 따라 나가봤다. 나뭇가지 사이로 왼편 저만치 발아래 장복터널로 드나드는 차량이 보였다. 산마루를 넘는 송전탑 근처에서 되돌아 서편 산비탈 숲속에서 영지버섯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개옻나무가 스칠까봐 조심하면서 숲을 누빈 보람은 있었다. 삭은 참나무 그루터기에서 손바닥처럼 갓을 펼친 영지버섯을 찾아냈다.
아까 지나친 전망정자로 나와 남겨둔 곡차와 김밥을 비우면서 몇몇 지기들에게 숲속에서 남긴 사진을 보냈다. 거기가 어디냐는 회신이 와 산성산 둘레길이라면서 임플란트 시술을 받게 되면 즐겨 드는 곡차와 한두 달 거리두기가 난감하다고 실토했다. 전망정자에서 내려오니 산성산 둘레길은 바다 숲속 길로 이어졌다. 산마루를 넘는 송전탑 주변에서 영지버섯을 몇 개 더 찾아냈다.
참다래 길로 나가지 않고 맞은편 산마루로 올라 북사면 비탈로 내려섰다. 양곡에서 볼보공장 진입로 생태보도교를 건너 갈미봉 약수터로 갔다. 시원한 물줄기가 콸콸 쏟아지는 샘물을 받아 마셨다. 갈미봉 샘터는 창원 근교 3대 약수터로 꼽을 만하다. 용추고개 너머 우곡사 약수터 물맛이 좋다고 알려졌다. 천주산 천태샘 약수도 밀리지 않는다. 등구산의 갈미봉 약수도 놓칠 수 없다. 21.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