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承復, “비서관은 공개적으로 앞에 나서면 안된다” 金正濂, “비서는 입과 얼굴이 없는 존재” 趙南俊 전 월간조선 이사
1990년대 초반, 金正濂(김정렴) 전 대통령 비서실장(1926~2020)을 만났을 때, 그에게 들은 이야기다. “비서란 입 없고, 얼굴 없는 존재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청와대 근무 사실조차 외부에 발설하지 말도록 늘 申飭(신칙)했다고 한다. 그래선지 그가 재임하는 동안은 車智澈(차지철) 경호실장의 전횡은 드물었고, 청와대 직원 관련 눈에 띄는 비리사건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1970년대 국무총리실의 名 행정조정실장(차관급)으로 이름을 떨친 朴承復(박승복 • 1922~2016) 전 샘표식품 회장 인터뷰에서 들은 이야기다. 朴正熙(박정희) 대통령 胸像(흉상)이 들어가는 「대한민국 5000년 역사 기념 금·은화」는 1970년 8월1일 발행됐다. 당시 朴正熙 대통령은 북한 金日成(김일성)이 기념주화를 발행할 계획이라는 정보를 입수, 경제수석비서관을 통해 총리실에 극비로 주화발행을 주문했다. 朴承復 당시 국무총리 정무비서관은 급히 로마로 날아가 베니스 상인과 1주일간 협상을 벌여 발행 수수료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하고 독일에서 주화를 찍어 냈다. 중개인인 베니스 상인과 협상을 끝내고 계약서를 작성할 때, 입회인이 문제였다. 朴실장은 “비서관은 공개적으로 앞에 나서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고민 끝에 주이탈리아 대사로 있던 劉載興(유재흥) 장군(전 국방부장관)을 찾아가 극비로 추진하는 사업이라고 설명하고 입회인 난에 서명을 받아냈다. 며칠 전, TV 뉴스에 신임 더불어민주당 朴光溫(박광온) 원내대표를 축하차 찾아온 대통령실 모 비서관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朴 의원과 함께 투샷으로 클로즈업 되어 방영되는 것을 보았다. 세월이 많이 지났으니까 비서에 대한 定義(정의)나 관점이 옛날과 똑같아야 한다고 고집할 수는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몇 달 전에는 그 비서관이 직접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논란이 생길 만한 정치적 견해를 밝힌 일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그럴까. 그가 움직이는 곳에서는 芳香(방향)이 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