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쭈바를 빼았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꽤나 화창한 내 기분에 평소답지 않게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한 두어번 정도 또 누님포스를 줄줄 흘리고 다니시는 여성분들이 내게 손짓하거나 미소를 뿌려주었지만 깔끔하게 무시해주었다. 아, 그러니까 그쪽 누님들은 시훈형 타입이라니까요.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어차피 아래에 입고 있던 것은 라이프가드 단체 주문 하얀 십자가가 작게 박힌 빨간 반바지였고, 무시하지마라 통풍 끝내준다, 위에 입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민자 티셔츠뿐이었기에 벗을거라곤 티셔츠 밖에 없었다.
등짝이 슬슬 젖어오는 것이 기분나빠 두번째 쭈쭈바를 물고 가고 있던 시훈형에게 잠시동안 내 쭈쭈바를 맞기기로 했다.
“형 이것 좀 들어봐.”
“왜.”
“옷 벗게.”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다.
“…풍기문란으로 잡혀간다, 너.”
대체 형 머릿속에 나란 인간은 뭐란 말이지. 정말 내 인생에 한탄이라도 하고 싶어졌다. 땀이 머리 안쪽에서 확실하게 느껴져 찝찝하다. 손으로 개털 같은 머리를 쓱쓱 쓸어넘기며 별다른 말 없이 쭈쭈바를 넘겼다. 말이 아니라면 듣지를 말라하였다.
“야. 나 너 모른 척 할거다.”
대체 내가 어느정도의 변태로 낙인찍혀 있는거냐고.
툴툴거리며 땀으로 조금 눅눅해진 티셔츠를 벗었다. 옆에 서 있는 시훈형만큼은 아니지만 왠만한 남자보다는 훨씬 짙은 피부가 드러났다. 옆에서 ‘와, 이 독한새끼. 진짜 벗네.’라고 중얼거리며 내곁에서 점점 멀어져만가는 시훈형도 보인다. 오해의 골은 점점 깊어져만가고 난 한숨만 쉴 뿐이고. 허이고야.
내 인생이 허무해져 벗어든 옷을 한 팔에 걸치곤 먼 산 언저리를 내다보려하였다.
그때였다.
새하얀 그 녀석이 보였다. 하얗고 망글망글하던. 웃는 모습이 그렇게 예쁠수가 없었던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엔 내가 신기루라도 보는 줄 알았다. 너무 보고싶으니까, 그 녀석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내가 너무나 갈구하고 있으니까 쏟아지는 햇살이 내게 걸어준 주문정도라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야, 왜 그래. 왜 이렇게 얼이 빠져있어.”
저만치 도망갔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조심조심 다시 돌아온 시훈형이 내 등을 주먹으로 쿡쿡 찔러볼때까지도 녀석은 내 눈안에 있었다. 그 녀석이었다. 날 그 따가운 햇빛 아래 남겨놓고, 그 예쁜 웃음한번 보여주지 않고 떠나갔던 그 녀석이었다.
웃음과 눈물이라는 비상식적인 조합을 몰상식하게 거리한복판에서 해대던 날 놔두고 떠나갔던 나의 몽글몽글한 흰 빛.
믿을 수가 없어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옆에서 시훈형이 손으로 내 눈 앞을 휘젓건 말건 상관없이 눈을 감으면 사라질 듯 해 눈조차 감지 못하고 그 녀석의 발자국을 따랐다.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너무나도 그 예쁜 웃음은 이제 내가 아닌 그 곁에서 손을 잡은 한 작은 여자에게로 향해 있었다. 햇빛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 세상의 모든 축복을 다 받은 듯 한 그 한쌍의 커플을 보며 난 결국 눈물 한방울을 떨궈버렸다.
이건 절대 내가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다. 눈을 하도 안 깜박였더니 눈이 발악을 해대는거지.
제발 눈을 감으라고. 제발 눈을 감으라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고.
“야, 괜찮아? 너 뭘 보고 있는 거야.”
내 옛 애인 보고 있다, 왜. 그것도 같은 거 달린 사내새끼 쪽이 내 애인이었다고. 그렇게 말하면 형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미친새끼, 이새끼 저새끼 내새끼 하며 평소같이 욕을 쏟아낼까. 그게 아니라면 온몸을 빳빳하게 굳어 세우곤 나를 피해 달아날까.
“근데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행복해 보인다. 난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멈춰서는 것 같았는데 넌 정말 행복해 보인다. 그 상황에서 더 웃긴건….
그래서 다행이라는거야. 네가 날 버리고 행복해서,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야. 이 빛나는 햇살 아래 사랑하는 사람과 당당하게 손을 잡고, 서로를 부둥켜 안고, 입을 맞출 수 있게 되서…. 정말 다행이야. 다행이다.
“뭔 개소리야, 또. 야, 너 진짜 왜 그러냐. 아는 사람이야?”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이번엔 두번째 눈물방울이 투툭 하곤 눈끝에서 추락해버렸다. 눈이 시리다. 그러니까 이건 다 눈을 너무 오래 뜨고 있어서 그런거라니까.
“…야, 너 울어?”
도리질쳤다. 아니, 우는게 아니라니까!
단지 너무 행복해보여서. 그게 정말 다행이여서. 쉴새없이 따끔대던 내 가슴이 차츰 잔잔해 진다는 사실이 너무 원망스러워서. 내 마음이 이정도였을 뿐인가 싶어서 조금 혼란스러울 뿐이다.
“김하빈, 너 울어? 야, 왜 그래…. 이새낀 왜 갑자기 울고 지랄이야.”
김하빈, 김하빈, 김하빈. 내 이름이 들리자 네 조그만 입술이 사랑스럽게 옴치락 거리며 움직이던 것이 떠올라버렸다. 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던 예쁜 목소리도. 예쁘다 하면 성질을 바락바락내던 네 얼굴도.
갑자기 미치도록 그리워져서
울었다. 진짜 울었다. 눈물이 이젠 거침없이 쏟아져 내려오는데 당황한 시훈형은 옆에서 저도 울상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한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형에게 어느새 코맹맹이가 되어버린 내가 강력하게 요구했다.
“내 쭈쭈바 내놔.”
당장에 내 손에 쥐어주는 쭈쭈바를 빨며 손등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빌어먹을, 아주 지랄 궁상을 떠는구나 김하빈. 세상에 너만 실연했지? 너만 재수 없지? 그런데 정말 재수는 없는 것 같다. 어떻게 바닷가를 와도 꼭 여길 오냐.
잔인하게.
혀 위로 녹아드는 쭈쭈바에 난 눈물을 그쳤다. 이성적으로, 나잇값에 맞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헤어졌으면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줘야지 광기에 가까운 집착으로 그 사람의 얼굴을 계속해서 그리면 안된다. 끝났으니까. 그 이야기는 완결났으니까.
인생에 외전따윈 없다.
“나 쭈쭈바 하나 더 사줘.”
“…어? 어, 어! 알았어. 야, 쫌만 기다려봐.”
옆에서 정신 놓고 있던 시훈형은 내 울먹임에 더더욱 당황하며 눈 앞에 보이는 매점 안으로 들어가 아이스박스를 뒤지기 시작했다.
“아씨, 쭈쭈바 없어요? 왜 콘만 있는건데요! 아 어떻게 쭈쭈바가 없을 수가 있어?”
가게 주인에게 무식할 정도로 따져대는 시훈형의 목소리에 눈물이 쑥 들어가버렸다. 웃어버렸다. 와하하하하하하하ㅡ
그날 처럼 웃어버렸다.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 똥꼬에 털이 숭숭 날 것만 같다. 손안에 들려있는 볼품없어진 쭈쭈바를 만지작 거렸다. 내 사랑은 이런 700원짜리 쭈쭈바였을런지도 모른다. 꼭다리를 딸때는 저도 모르게 두근두근 거렸다가 빨아먹을땐 한없이 시원하고 달콤해서 더위를 싹 다 잊게 하지만 마지막 국물 하나까지 탈탈 털어 입 안에 넣고 나면 빈껍데기 뿐이라 쓰레기통에 툭 하고 던져버리는. 그렇지만 그 달달함은 입안에 남아 계속해서 날 괴롭게 하는.
빌어먹을, 궁상이다. 진짜.
*
보다가 든 생각이라거나, 느낌을 그냥
댓글에 편하게 적어주시면 전 행복하겠습니다.
읭?!
첫댓글 시훈이 너무 귀여워요ㅋㄷ저 허둥대는 모습이라닝..♡시훈이랑 잘됐으면 좋겠어용!!!!
쭈쭈바형.......그러니까 시훈이가 은근히 귀여운 타입이죠. 남자답게 생겨가지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면 어휴 너무 좋습니다. 그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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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하고 왔습니다. 아픈거 얼른 나으셔요. 청소년은 이미 완결난지 오래이니 완결까지 쭉 연재될겁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와 너무 재밌네요^^ 내 사랑은 이런 700원짜리~ 괴롭게하는. 이 부분 너무 좋아요.~^-^ 난 하빈이가 너무 섹시한것 같아요 ㅠㅠ
우~~~~주인공이 불쌍하네요... 대체무슨을이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