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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그리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북방에서는 言語道斷이라는 주장이 있고,
남방에서는 개념과 실재로 분별하는 부파가 있다.
이때는 sañña가 아닌 paññatti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개념이라고 하며
論事(Kathāvatthu)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paramattha를 실재(실제/實諦)라고
혹은 俗諦와 대비되는 眞諦로 번역하기도 한다.
그러나 4부 니까야에 나타나는
paññatti 혹은 paññatta의 용례에서는 이러한 어감을 느낄 수 없다.
imā kho citta, lokasamaññā lokaniruttiyo lokavohārā lokapaññattiyo,
yāhi tathāgato voharati aparāmasan”ti.
찟따여, 이런 [자아의 획득]들은 세상의 일반적인 표현이며 세상의 언어이며
세상의 인습적 표현이며 세상의 개념이다.
여래는 이런 것을 통해서 집착하지 않고 표현할 뿐이다.
般若 & 公表 [paññā & paññatti]
세존께서 般若로서 알고 보신 것을 公表하시고,
후학들은 公表하신 것을 본인이 직접 般若로서 알고 보게 되는 것을
法隨法(Dhammānudhamma) 즉 實參(參禪)이라고 한다.
paññatti (f.) [fr.paññāpeti,cp.paññatta1] making known,manifestation,
description,designation,name,idea,notion,concept.
paññāpeti [Caus.of pajānāti]
to make known,declare,point out,appoint,assign,recognise,define
pajānāti [pa+jānāti] to know,find out,come to know,understand,distinguish
ñatti,(f.) [Sk.jñapti,from jñāpayati,caus of jñā] announcement,declaration
paṭiññāta:[pp.of paṭijānāti] acknowledged; promised; consented.
{『청정도론』을 위시한 주석서들에서는 개념적인 존재(paññatti)는 인식의 대상이요 법들(dhammā)은 지견의 대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법들을 지견하여 해탈 · 열반을 실현하는 과정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는 것이 『청정도론』 XVIII장부터 XXII장까지의 다섯 가지 청정(visuddhi)이다. 이처럼 깨달음이나 해탈은 자아로 대표되는 개념적 존재(paññatti)와 법들(dhamma)을 정확히 구분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tayome, bhikkhave, niruttipathā adhivacanapathā paññattipathā asaṅkiṇṇā asaṅkiṇṇapubbā,
na saṅkīyanti, na saṅkīyissanti, appaṭikuṭṭhā samaṇehi brāhmaṇehi viññūhi.
katame tayo?
“비구들이여, 세 가지 언어표현의 길, 이름붙이는 길, 개념의 길이 있나니
이것은 거부되지 않는 것이며, 과거의 [부처님에 의해서도] 거부되지 않았고,
현재에도 거부되지 않으며, 미래에도 거부되지 않을 것이며,
지혜로운 사문들과 바라문들에 의해서 비난받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셋인가?”
yehi, ānanda, ākārehi yehi liṅgehi yehi nimittehi yehi uddesehi nāmakāyassa paññatti hoti,
아난다여, 여기 [느낌, 인식, 상카라들, 알음알이의]
각각의 성질들이나 특징들이나 표상들이나 개요들에 의해서
정신의 무리[名身]라는 개념113)이 생긴다.
113) 개념으로 옮긴 원어는 paññatti이다. 빤낫띠(paññatti)는 pra(앞으로)+√jñā(to know)의 사역형 동사 paññāpeti에서 파생된 여성형 명사이다. ‘[남들이] 잘 알게 하다'는 뜻에서 ‘선언하다, 선포하다, 알리다, 지적하다, 지목하다' 등의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빤낫띠는 ‘알게 하는 것'이란 의미에서 ’명칭, 개념, 서술, 술어, 용어' 등을 뜻한다. 중국에서는 시설(施設)로 번역되었다.
아비담마에서는 82가지 구경법(paramattha-dhamma)이 아닌 모든 것을 개념(paññatti)의 범주에 넣고 있다. 아비담마에서 제시하는 가장 큰 메시지는 바로 이러한 개념과 법을 구분해내는 것이다. 우리가 이름 지어서 아는 모든 것은 개념이다. 이런 개념을 해체해서 찰나생 · 찰나멸(무상)과 고와 무아를 특징으로 하는 법을 보아서 해탈 ·열반을 실현하도록 하는 체계가 아비담마의 체계다.
ettāvatā adhivacanapatho,
ettāvatā niruttipatho,
ettāvatā paññattipatho,
ettāvatā paññāvacaraṃ,
ettāvatā vaṭṭaṃ vattati itthattaṃ paññāpanāya
yadidaṃ nāmarūpaṃ saha viññāṇena aññamaññapaccayatā pavattati.
이러한 [알음알이와 정신 · 물질의 상호 조건]에 의해
이름짓는 토대가 생기고, 어원에 입각한 언어의 토대가 생기고,
개념을 얻는 토대가 생기고, 통찰지의 영역이 생기며,
이 알음알이와 정신 · 물질의 상호 조건에 의해 [윤회는] 전개되는 것이다.
정신 · 물질은 알음알이와 더불어 [오온의] 이러한 상태를 천명하기 위한 것이다.
ime kho, bho,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cattāro satipaṭṭhānā paññattā kusalassādhigamāyā”ti.
존자들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 · 아라한 · 정등각께서는 유익함을 터득하기 위한
이들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천명하셨습니다.
“tathāgatena, bhikkhave, arahatā sammāsambuddhena bārāṇasiyaṃ isipatane migadāye
anuttaraṃ dhammacakkaṃ pavattitaṃ appaṭivattiyaṃ
samaṇena vā brāhmaṇena vā devena vā mārena vā brahmunā vā kenaci vā lokasmiṃ,
yadidaṃ — catunnaṃ ariyasaccānaṃ ācikkhanā desanā paññāpanā paṭṭhapanā
vivaraṇā vibhajanā uttānīkammaṃ. katamesaṃ catunnaṃ?
“비구들이여, 여래· 아라한 · 정등각자는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녹야원에서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렸나니
그 것은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신이나 마라나 범천이나 이 세상 그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다.
그것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설명하고, 가르치고, 선언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해설한 것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ācikkhati deseti paññāpeti paṭṭhapeti vivarati vibhajati uttānīkaroti.
puggalapaṇṇattidesanā (DN 28) 인간의 규정에 대한 법문
“aparaṃ pana, bhante, etadānuttariyaṃ, yathā bhagavā dhammaṃ deseti puggalapaṇṇattīsu.
sattime, bhante, puggalā.
ubhatobhāgavimutto paññāvimutto kāyasakkhī diṭṭhippatto
saddhāvimutto dhammānusārī saddhānusārī.
etadānuttariyaṃ, bhante, puggalapaṇṇattīsu.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 주신 인간의 규정에 대한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일곱 가지 인간이 있나니
① 양면으로 해탈[兩面解脫]한 자 ② 통찰지로 해탈[慧解脫]한 자
③ 체험한 자 ④ 견해를 얻은 자 ⑤ 믿음으로 해탈한 자
⑥ 법을 따르는 자 ⑦ 믿음을 따르는 자입니다.
세존이시여, 인간의 규정에 대한 이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187)
187) 이 일곱 가지 인간의 규정(puggala-paññatti)은 『청정도론』 XXI.74 이하에 '일곱 분의 성자들의 분류’로 잘 정리되어 있으므로 참조할 것. 양면해탈과 혜해탈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마할리 경」(D6) §13의 주해와 제2권「대인연경」(D15) §36의 주해를 참조할 것.
satto, satto’ti, bhante, vuccati.
kittāvatā nu kho, bhante, satto vā assa sattapaññatti vā”ti ... pe ....
3. “세존이시여, '중생, 중생'이라고들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중생이 있으며 혹은 중생이라는 개념이 있습니까?”
4. “사밋디여, 눈이 있고 형색이 있고 눈의 알음알이가 있고
눈의 알음알이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 ”
“‘loko, loko’ti, bhante, vuccati.
kittāvatā nu kho, bhante, loko vā assa lokapaññatti vā”ti?
3. “세존이시여, '세상, 세상'이라고들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세상이 있으며 혹은 세상이라는 개념이 있습니까?”
4. “사밋디여, 눈이 있고 형색이 있고 눈의 알음알이가 있고
눈의 알음알이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 ”
imāyapi kho ahaṃ, cunda, paññattiyā neva attanā samasamaṃ samanupassāmi kuto bhiyyo.
atha kho ahameva tattha bhiyyo yadidaṃ adhipaññatti.
쭌다여, 이러한 개념258)들에 관한 한 나는 나 자신과 동등한 [지혜를 가진]259) 자를
관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더 뛰어난 자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참으로 높은 개념260)에 관한 한 내가 더 뛰어나다.”
258) “여기서 개념(paññatti)이란 견해에 의한 개념(diṭṭhi-paññatti)이다.”(DA.ii.916) 복주서에서는 (diṭṭhi-paññatti를 “견해에 의한 개념((diṭṭhiyā paññāpana)(DAT.iii.125)으로 풀이하고 있다.
259) 원문은 samasamaṃ인데 주석서에서는 동등한 지혜로 동등함(samena ñāṇena samaṃ)으로 설명하고 있다.(DA.iii.916)
260) '높은 개념'의 원어는 adhipaññatti이다. 주석서의 설명을 들어 보자.
“[본 문맥에서 나타나는] 개념(paññatti)과 높은 개념(adhipannatti)은 둘 모두 뜻으로는 하나이다. 분류에 따라서 개념과 높은 개념으로 둘이 된다. 여기서 개념이란 견해에 의한 개념(diṭṭhipaññatti)이다. 높은 개념이란 무더기(khandha, 蘊)에 대한 개념, 요소(dhātu, 界)에 대한 개념, 감각장소(āyatana, 處)에 대한 개념, 감각기능(indriya, 根)에 대한 개념, 진리(sacca, 諦)에 대한 개념, 인간(puggala)에 대한 개념의 여섯 가지 개념들을 말한다. 여기서는 개념과 높은 개념 둘 다를 뜻한다. 세존께서는 이 둘 다를 통해서 위없는 분이시라는 뜻이다.”(DA.iii.916~17)
kāmānañcāhaṃ, bhikkhave, pariññaṃ paññāpemi,
rūpānañca pariññaṃ paññāpemi,
vedanānañca pariññaṃ paññāpemi,
diṭṭheva dhamme nicchāto nibbuto sītibhūto anupādā parinibbānaṃ paññāpemī”ti.
“비구들이여, 그러나 나는 감각적 욕망을 넘어섰음을 천명하고,
물질을 넘어섰음도 천명하고, 느낌을 넘어섰음도 천명한다.
금생에 더 이상 갈애가 없고 [오염원이 없어] 고요하고 침착하여
취착없는 완전한 열반을 천명한다.”104)
104) “즉 세존께서는 초선(paṭhama-jjhāna)으로써 감각적 욕망(kāma)들을 넘어섰음(pariñña)을 천명하시고, 무색계(arūpa-avacara) [증득]으로써 물질(rūpa)들을 넘어섰음을 천명하시고, 취착 없는 열반(anupādā-nibbāna)으로써 느낌(vedanā)들을 넘어섰음을 천명하신다. 열반은 모든 느낌을 버렸기 때문에 느낌을 넘어선 것이라 부른다. '취착 없는 완전한 열반(anupādā-parinibbāna)'이란 '조건이 없는 완전한 열반(apaccayaparinibbāna)'을 말한다.” (AA.v.27)
본문과 비슷한 구절이 본서 제1권 「바란두 경」 (A3:12) §4에 나타나고 있다.
“etthapāhaṃ, bhante, āyasmante vakkhāmi sahadhammena —
‘idaṃ kusalan’ti, bhante, bhagavatā paññattaṃ; ‘idaṃ akusalan’ti, bhante, bhagavatā paññattaṃ.
iti kusalākusalaṃ bhagavā paññāpayamāno sapaññattiko bhagavā;
na so bhagavā venayiko appaññattiko”ti.
“존자들이여, 여기서 나는 존자들에게 이치에 맞게 말합니다.
존자들이여, 세존께서는 '이것은 유익한 것이다.'라고 천명하십니다.
세존께서는 '이것은 해로운 것이다.'라고 천명하십니다.
이처럼 세존께서는 유익함과 해로움을 천명하시기 때문에 [자기 견해를] 천명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 세존께서는 허무주의자가 아니요 [자기 견해를] 천명하지 않는 분이 아닙니다.”
“puna caparaṃ, bhikkhu, bhikkhu yathāsutaṃ yathāpariyattaṃ dhammaṃ
vitthārena paresaṃ deseti, uttari cassa paññāya atthaṃ nappajānāti.
ayaṃ vuccati, bhikkhu — ‘bhikkhu paññattibahulo, no dhammavihārī’”.
비구여, 다시 비구는 들은 대로 완전히 외운 대로 남들에게 자세하게 법을 설한다.
그러나 그는 통찰지로써 더 높은 뜻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여, 이 비구는 [법을] 이해시키는 것은 많이 하지만 법에 머무는 자라고는 하지 않는다.
“idha, bhikkhu, bhikkhu dhammaṃ pariyāpuṇāti —
suttaṃ, geyyaṃ, veyyākaraṇaṃ, gāthaṃ, udānaṃ, itivuttakaṃ, jātakaṃ,
abbhutadhammaṃ, vedallaṃ;
uttari cassa paññāya atthaṃ pajānāti.
evaṃ kho, bhikkhu, bhikkhu dhammavihārī hoti.
비구여, 여기 비구는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아홉 가지] 가르침을 배운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써 더 높은 뜻을 꿰뚫어 안다.
비구여, 이와 같은 비구가 법에 머무는 자이다.
“passatha no tumhe, bhikkhave, etaṃ vebhāraṃ pabbatan”ti? “evaṃ, bhante”.
“etassapi kho, bhikkhave, vebhārassa pabbatassa aññāva samaññā ahosi aññā paññatti”.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 웨바라 산을 보고 있는가?” “보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 웨바라 산은 다른 이름과 다른 명칭을 가졌었다.
5. paññattisuttaṃ (AN 4.15) 알려진 것 경(A4:15) Paññatti-sutta
“catasso imā, bhikkhave, aggapaññattiyo. katamā catasso?
etadaggaṃ, bhikkhave, attabhāvīnaṃ yadidaṃ — rāhu asurindo.
etadaggaṃ, bhikkhave, kāmabhogīnaṃ yadidaṃ — rājā mandhātā.
etadaggaṃ, bhikkhave, ādhipateyyānaṃ yadidaṃ — māro pāpimā.
sadevake, bhikkhav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tathāgato aggamakkhāyati arahaṃ sammāsambuddho.
imā kho, bhikkhave, catasso aggapaññattiyo”ti.
비구들이여, 네 가지 으뜸이라고 알려진 것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몸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는 아수라의 왕인 라후가 으뜸이다.
비구들이여,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자들 가운데서는 만다따 왕이 최고이다.
비구들이여, 지배력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는 마라 빠삐만이 최고이다.
비구들이여,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 · 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서는 여래 · 아라한 · 정등각이 으뜸이라고 말해진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가지 으뜸이라고 알려진 것이다.
“idaṃ akusalanti kho, upaka, mayā paññattaṃ.
tattha aparimāṇā padā aparimāṇā byañjanā aparimāṇā tathāgatassa dhammadesanā —
itipidaṃ akusalanti.
taṃ kho panidaṃ akusalaṃ pahātabbanti kho, upaka, mayā paññattaṃ.
tattha aparimāṇā padā aparimāṇā byañjanā aparimāṇā tathāgatassa dhammadesanā —
itipidaṃ akusalaṃ pahātabbanti.
“우빠까여, '이것은 해로운 것이다.'라고 나는 공언하였다.
그렇게 공언할 때 셀 수 없이 많은 단어와 셀 수 없이 많은 문장과
셀 수 없이 많은 여래의 설법으로 '이러한 [이유로] 이것은 해로운 것이다.'라고 공언하였다.
우빠까여, '이 해로운 것은 버려야 한다.'라고 나는 공언하였다.
그렇게 공언할 때 셀 수 없이 많은 단어와 셀 수 없이 많은 문장과
셀 수 없이 많은 여래의 설법으로 '이러한 [이유로] 이 해로운 것은 버려야 한다.'라고 공언하였다.
“idaṃ kusalanti kho, upaka, mayā paññattaṃ.
tattha aparimāṇā padā aparimāṇā byañjanā aparimāṇā tathāgatassa dhammadesanā —
itipidaṃ kusalanti.
taṃ kho panidaṃ kusalaṃ bhāvetabbanti kho, upaka, mayā paññattaṃ.
tattha aparimāṇā padā aparimāṇā byañjanā aparimāṇā tathāgatassa dhammadesanā —
itipidaṃ kusalaṃ bhāvetabban”ti.
우빠까여, '이것은 유익한 것이다.'라고 나는 공언하였다.
그렇게 공언할 때 셀 수 없이 많은 단어와 셀 수 없이 많은 문장과
셀 수 없이 많은 여래의 설법으로 '이러한 [이유로] 이것은 유익한 것이다.'라고 공언하였다.
우빠까여, '이 유익한 것은 닦아야 한다.'라고 나는 공언하였다.
그렇게 공언할 때 셀 수 없이 많은 단어와 셀 수 없이 많은 문장과 셀 수 없이 많은
여래의 설법으로 '이러한 [이유로] 이 유익한 것은 닦아야 한다.'라고 공언하였다.
nisīda, mārisa moggallāna, idamāsanaṃ paññattan”ti.
nisīdi kho āyasmā mahāmoggallāno paññatte āsane.
앉으십시오. 이것이 마련된 자리입니다.
목갈라나 존자는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paññattāpaññattaṃ jānāti
배정한 것과 배정하지 않은 것을 잘 안다.
ñattikammaṃ paññattaṃ...
… 표백[ñātti, 表白]으로만 결정하는 갈마[ñātti-kamma, 單白羯磨]332)를 제정하였다.
332) 아주 중요하지 않은 승가의 업무는 한 번의 표백 혹은 고지만으로 결정을 하였는데 이를 '표백으로만 결정하는 갈마(ñātti-kamma, 白羯磨, 單白羯磨)'라 한다.(이하 KankhvitrA 255~256 참조)
paṭiññātakaraṇaṃ paññattaṃ...
… 고백을 행하는 것(paṭiññāta-karaṇa)을 제정하였다.
“dveme, bhikkhave, atthavase paṭicca tathāgatena sāvakānaṃ sikkhāpadaṃ paññattaṃ.
katame dve?
“비구들이여,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여래는 제자들에게 학습계목을 제정하였다. 어떤 것이 둘인가?
saṅghasuṭṭhutāya saṅghaphāsutāya...
승가가 미덕을 갖추고 승가가 편안하게 머물도록 하기 위해
여래는 제자들에게 학습계목을 제정하였다.
dummaṅkūnaṃ puggalānaṃ niggahāya, pesalānaṃ bhikkhūnaṃ phāsuvihārāya...
계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제어하고 계를 잘 지키는 비구들이 편안하게 머물도록 하기위해
여래는 제자들에게 학습계목을 제정하였다.
diṭṭhadhammikānaṃ āsavānaṃ saṃvarāya, samparāyikānaṃ āsavānaṃ paṭighātāya...
diṭṭhadhammikānaṃ verānaṃ saṃvarāya, samparāyikānaṃ verānaṃ paṭighātāya...
diṭṭhadhammikānaṃ vajjānaṃ saṃvarāya, samparāyikānaṃ vajjānaṃ paṭighātāya...
diṭṭhadhammikānaṃ bhayānaṃ saṃvarāya, samparāyikānaṃ bhayānaṃ paṭighātāya...
diṭṭhadhammi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saṃvarāya,
samparāyi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ṭighātāya...
현생에서 일어나는 번뇌, 원한, 허물, 두려움, 불선법들을 차단하고
내생에 일어날 번뇌, 원한, 허물, 두려움, 불선법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여래는 제자들에게 학습계목을 제정하였다.
gihīnaṃ anukampāya, pāpicchānaṃ bhikkhūnaṃ pakkhupacchedāya...
재가자들에 대한 동정심과 사악한 행위를 좋아하는 자들의 파벌을
뿌리 뽑기 위해 여래는 제자들에게 학습계목을 제정하였다.
appasannānaṃ pasādāya, pasannānaṃ bhiyyobhāvāya...
신심이 없는 자들에게 신심을 일으키고, 신심 있는 자들에게는 신심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여래는 제자들에게 학습계목을 제정하였다.
saddhammaṭṭhitiyā vinayānuggahāya.
정법이 머물고 율을 호지하도록 하기 위해 여래는 제자들에게 학습계목을 제정하였다.
ime kho, bhikkhave, dve atthavase paṭicca tathāgatena sāvakānaṃ sikkhāpadaṃ paññattan”ti.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여래는 제자들에게 학습계목을 제정하였다.
apaññattaṃ tathāgatena paññattaṃ tathāgatenāti dīpenti ... pe ...
paññattaṃ tathāgatena apaññattaṃ tathāgatenāti dīpenti
te, bhikkhave, bhikkhū bahujanāhitāya paṭipannā bahujanāsukhāya,
bahuno janassa anatthāya ahitāya dukkhāya devamanussānaṃ.
bahuñca te, bhikkhave, bhikkhū apuññaṃ pasavanti, te cimaṃ saddhammaṃ antaradhāpentī”ti.
dvācattālīsatimaṃ.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있어 그들은 여래가 제정하지 않은 것을 여래가 제정했다고 말한다. …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있어 그들은 여래가 제정한 것을 여래가 제정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손해가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불행이 되고
많은 신과 인간들에게 해로움이 되고 손해가 되고 괴로움이 되게 한다.
또한 그들은 많은 악덕을 쌓고 정법을 사라지게 한다.
idha pana, mahānāma, ekacco satthā kāmānaṃ pariññaṃ paññāpeti, rūpānaṃ pariññaṃ paññāpeti,
vedanānaṃ pariññaṃ paññāpeti.
여기 어떤 스승은 감각적 욕망을 넘어선 [초선을] 천명하고
물질을 넘어선 [무색계 증득을] 천명하고 느낌을 넘어선 [열반도] 천명한다.
“so vatāvuso, cakkhusmiṃ sati rūpe sati cakkhuviññāṇe sati phassapaññattiṃ paññāpessatīti —
ṭhānametaṃ vijjati.
phassapaññattiyā sati vedanāpaññattiṃ paññāpessatīti — ṭhānametaṃ vijjati.
vedanāpaññattiyā sati saññāpaññattiṃ paññāpessatīti — ṭhānametaṃ vijjati.
saññāpaññattiyā sati vitakkapaññattiṃ paññāpessatīti — ṭhānametaṃ vijjati.
vitakkapaññattiyā sati papañcasaññāsaṅkhāsamudācaraṇapaññattiṃ paññāpessatīti —
ṭhānametaṃ vijjati.
도반들이여, 눈이 있고 형색이 있고 눈의 알음알이가 있을 때
감각접촉[觸]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670)는 것은 가능합니다.
감각접촉이라는 개념이 있을 때 느낌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는 것은 가능합니다.
느낌이라는 개념이 있을 때 인식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는 것은 가능합니다.
인식이라는 개념이 있을 때 일으킨 생각[尋]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는 것은 가능합니다.
일으킨 생각이라는 개념이 있을 때
사량 분별이 함께한 인식의 더미의 일어남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는 것은 가능합니다.671)
670) “'감각접촉[觸]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phassa-paññattiṃ paññāpessati).'는 것은 '감각접촉이라는 한 법이 일어났다.'라고 이렇게 '감각접촉이라는 개념(phassa-paññatti)'을 천명한다, 보인다는 말이다.”(MA.ii.77)
671) 위 §16에서는 6근 - 6경 - 6식 - 6촉 - 6수 - 6상 - 6심 - 6사량 분별 - 6사량분별이 함께한 인식의 더미의 9지 연기로 해체해서 설명하였는데 여기서는 6근 - 6경 - 6식 - 6촉 - 6수 - 6상 - 6심 - 6사량 분별이 함께한 인식의 더미로 6사량 분별이 없이 8지 연기로 해체해서 설명하고 있다.
so vatāvuso, sotasmiṃ sati sadde sati ... pe ... ghānasmiṃ sati gandhe sati ... pe ...
jivhāya sati rase sati ... pe ... kāyasmiṃ sati phoṭṭhabbe sati ... pe ...
manasmiṃ sati dhamme sati manoviññāṇe sati phassapaññattiṃ paññāpessatīti —
ṭhānametaṃ vijjati.
phassapaññattiyā sati vedanāpaññattiṃ paññāpessatīti — ṭhānametaṃ vijjati.
vedanāpaññattiyā sati saññāpaññattiṃ paññāpessatīti — ṭhānametaṃ vijjati.
saññāpaññattiyā sati vitakkapaññattiṃ paññāpessatīti — ṭhānametaṃ vijjati.
vitakkapaññattiyā sati papañcasaññāsaṅkhāsamudācaraṇapaññattiṃ paññāpessatīti —
ṭhānametaṃ vijjati.
도반들이여, 귀가 있고 소리가 있고 귀의 알음알이가 있을 때 …
도반들이여, 코가 있고 냄새가 있고 코의 알음알이가 있을 때 …
도반들이여, 혀가 있고 맛이 있고 혀의 알음알이가 있을 때 …
도반들이여, 몸이 있고 감촉이 있고 몸의 알음알이가 있을 때 …
도반들이여, 마노가 있고 법이 있고 마노의 알음알이가 있을 때
감각접촉[觸]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는 것은 가능합니다.
감각접촉이라는 개념이 있을 때 느낌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는 것은 가능합니다.
느낌이라는 개념이 있을 때 인식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는 것은 가능합니다.
인식이라는 개념이 있을 때 일으킨 생각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는 것은 가능합니다.
일으킨 생각이라는 개념이 있을 때
사량 분별이 함께한 인식의 더미의 일어남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는 것은 가능합니다.”
“yā cāvuso, paññā yañca viññāṇaṃ — ime dhammā saṃsaṭṭhā udāhu visaṃsaṭṭhā?
labbhā ca panimesaṃ dhammānaṃ vinibbhujitvā vinibbhujitvā nānākaraṇaṃ paññāpetun”ti?
“yā cāvuso, paññā yañca viññāṇaṃ — ime dhammā saṃsaṭṭhā, no visaṃsaṭṭhā.
na ca labbhā imesaṃ dhammānaṃ vinibbhujitvā vinibbhujitvā nānākaraṇaṃ paññāpetuṃ.
5도반이시여, 그러면 통찰지와 알음알이라고 하는 이 법들은 결합되어 있습니까,
혹은 분리되어 있습니까?
이 법들을 잘 분리하여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이 가능합니까?”
“도반이여, 그런데 통찰지와 알음알이라고 하는 이 법들은 결합되어 있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법들을 잘 분리하여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cattāro kho, bhikkhu, mahābhūtā hetu, cattāro mahābhūtā paccayo
rūpakkhandhassa paññāpanāya.
“비구여,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이 원인이고 네 가지 근본물질을 조건하여
물질의 무더기가 드러난다.
phasso hetu, phasso paccayo vedanākkhandhassa paññāpanāya.
phasso hetu, phasso paccayo saññākkhandhassa paññāpanāya.
phasso hetu, phasso paccayo saṅkhārakkhandhassa paññāpanāya.
감각접촉[觸]이 원인이고 감각접촉을 조건하여 느낌의 무더기가 드러난다.
감각접촉이 원인이고 감각접촉을 조건하여 인식의 무더기가 드러난다.
감각접촉이 원인이고 감각접촉을 조건하여 심리현상들의 무더기가 드러난다.
nāmarūpaṃ kho, bhikkhu, hetu, nāmarūpaṃ paccayo viññāṇakkhandhassa paññāpanāyā”ti.
정신과 물질[名色]이 원인이고 정신과 물질을 조건하여 알음알이의 무더기가 드러난다.
첫댓글
{물론 법(dhamma)이란 의미를 광의로 해석하면 이런 모든 개념(pannatti)들도 모두 법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럴 경우에 최소단위로서의 법은 ‘궁극적 실재, 혹은 구경법(paramattha)’으로 강조해서 부른다.
그러나 아비담마 전반에서 별다른 설명이 없는 한 법(dhamma)은 구경법을 뜻한다.}
4부 니까야에 담마가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최소단위'라는 의미로 사용된 용례를 아직은 본 적은 없습니다.
{여기서 스님은 dhamma를
① 빠리얏띠(pariyatti, 교학, 가르침) ② 헤뚜(hetu, 원인, 조건) ③ 구나(guṅa, 덕스러운 행위)
④ 닛삿따닛지와따(nissatta-nijjiivataa, 개념이 아닌 것)
(주: nissatta-nijjiivataa의 문자적인 뜻은 ‘삿따(중생, satta)도 아니고 영혼(jiiva)도 아님’이다.
즉 중생이라는 개념(빤냣띠, pannatti)이나 영혼이라는
개념이 붙을 수 없는 궁극적 실재(빠라맛타, paramattha)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개념이 아닌 것’으로 옮겼다.}
무명-행-식...에서
행은 담마인가요? 아닌가요?
행은 신행, 구행, 심행(의행)으로 분해할 수 있으면
행은 구경법이지 아니라는 의미이지요?
강물은 중생도 아니고 영혼도 아니므로 개념이 아닌가요?
길가의 돌멩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