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체험·텃밭가꾸기 등 교실 밖 체험도 강조, 전·통학생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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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타임(Block-Time)제 운영으로 20분의 긴 휴식시간이 주어지는 왕산초 아이들은 긴 쉬는 시간동안 친구들, 선생님들과 즐겁게 웃고즐기는 놀이를 하기도 한다. |
‘숲 속의 작은 학교’…강릉시 왕산면 도마리에 위치한 왕산초등학교는 높은 산들과 푸른 하늘에 에워싸인 1층짜리 작은 학교다. 왕산초등학교 주변경관을 보고 있으면, 왜 이 학교가 ‘자연친화적 문화예술체험 특성화’를 내세우고 있는지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왕산초등학교로 전학을 결심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모두가 학교 주변 경관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지난해 미국 L.A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온 권정호(5학년)·정민(3학년)학생의 어머니 최원영씨는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이 다닐 시골의 작은 학교를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됐는데, 학교 주변의 자연환경이 크게 끌렸다”며 “실제 와서 보니 자연경관도 너무 아름답고 가족 같은 학교분위기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탑동초등학교에서 전학 온 4학년 변유미 학생도 “방학 때 엄마를 따라 이모네 놀러왔다가 이곳이 너무 예뻐서 아예 이사를 오게 됐다”며 “요즘도 매일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지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왕산초등학교의 주요 프로그램은 교실에서 이뤄지는 교육보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체험을 강조한다. 매월 정기적으로 숲·생태 체험을 떠나고, 직접 텃밭을 가꾸면서 자연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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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하늘과 산에 둘러싸인 단층짜리 왕산초등 학교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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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바라본 잔디 운동장과 학교 밖 풍경 |
산속의 맑고 깨끗한 공기와 자연환경은 왕산초등학교의 큰 장점이지만, 단점이 되기도 했다. 산골에 위치한 데다 주변이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묶여있어, 초등학생 자녀를 둔 30~40대 인구는 거의 없는 것이 왕산초등학교가 직면한 현실이다. 1936년 개교 이래 7개의 분교가 세워지기도 했던 왕산초등학교는 2011년 고단분교가 문을 닫으면서 도마리에 위치한 본교만 남았다. 지난해에는 전교생이 10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마저도 졸업예정자가 5명에 1학년 입학 예정자는 한명도 없는 상황이었다. 폐교 위기에 처한 왕산초 교직원들과 동문들이 발 벗고 나섰다. 교직원들은 왕산초등학교의 교육프로그램을 적극 홍보했고, 동문들은 ‘왕산초등학교 살리기 추진위원회’를 꾸리고 시내에서 통학을 결심한 11명의 학생들이 편하게 등교할 수 있도록 택시 통학을 지원해줬다. 이러한 노력으로 현재 재학생은 19명이 됐다. 내년에도 1명의 졸업생이 있지만, 현재까지 6명의 학생이 입학할 예정이다. 내년 3월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전교생 19명의 작은 학교지만 이곳에서는 내실 있고, 학생들의 상황에 잘 맞춰진 교육이 이뤄진다. 지난해 왕산초로 전학 온 권정호·정민 학생은 미국에서 나고 자라면서 한국어가 많이 서툰 편이었다. 일상적인 회화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수업시간에 나오는 개념은 많이 낯설었다. 학교는 이 학생들이 어려움 없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수업보조 인턴교사를 채용해 도움을 주고 있다. 이들 외에도 수업과정을 쫓아가기 어려운 학생들이 보조교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방학 중에는 ‘학력향상 캠프’를 통해 1주일 동안 학생들이 교육과정에서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집중 학습을 진행해 학생 각자가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충학습이 이뤄진다.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교육을 하기 위한 노력이다. 예술교육이나 동아리 활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6학년 정도가 되면 간단한 악보를 보고 바이올린을 켤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왕산 초등학교의 교육 방식은 특별하지는 않지만, 이 학교를 다니는 모든 아이들이 직접 배우고,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작은 결과물이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내도록 하고 있다. 영어연극 동아리활동이나 악기 연주 활동, 시창작 활동, 사진 촬영 및 UCC제작 등 아이들이 배우고 체험한 결과물 들은 각종 전시회나 동아리 발표회 등을 통해서 뽐내진다. 이처럼, 왕산초등학교가 희망을 찾아가는 방식은 ‘우리에게 맞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한다는 점이다. 다른 학교의 좋은 사례들을 무조건 도입해서 시행하기 보다는 현재 재학생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왕산초등학교가 가진 것을 극대화할 것을 찾는 것이다. 왕산초 박철수 교장은 학생들이 몸을 움직이고, 직접 체험하면서 스스로 깨우쳐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김 교장은 “왕산초등학교의 장점인 자연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자연친화적 문화·예술 체험을 통해 자기주도적이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아이들로 자라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산초등학교가 처해있는 상황은 녹록치는 않다. 시내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고, 더 늘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인근 마을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늘어야 한다. 현재 왕산면의 인구는 모두 1890명 정도이다. 2년 전에 비하면 약 200명 가량 늘었지만, 이들은 대개가 퇴직을 했거나, 노후 생활을 위해 귀촌하는 경우라 30~40대 청장년층 인구 유입은 거의 없는 셈이다. 도시의 과밀화와 농촌인구의 과소화의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문제가 돼 왔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노력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거주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지역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반영숙 강릉시 학부모회 사무국장은 “작은학교 희망찾기는 지자체의 마을 만들기 사업, 특히 청장년층의 정주환경 조성을 위한 계획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용진 기자
강원희망신문 2013.09.14(토) 14:46
북 모닝(Book Morning)!
작은학교 희망찾기 ⑦ 강릉 왕산초등학교 - 전교생이 등교후 교실보다 도서관 먼저 방문
왕산초등생들의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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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전 1교시 전까지 진행되는 ‘북모닝’시간.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등교를 하면서 도서관부터 들른다. 1학년 학생들의 책을 읽는 모습도 너무나 자연스럽다. |
왕산초등학교 학생들은 하루일과를 책과 만나는 ‘북모닝(Book Morning)’으로 시작한다. 교문 앞으로 30m가량 이어진 가로수 길을 지나면 가장 먼저 보이는 도서관은 학생들이 등교해서 교실보다 먼저 들르는 곳이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가방을 내려놓고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꺼내 첫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책을 읽는다.
지난 4일 ‘북모닝’을 마치고 교실로 향하던 4학년 변유진 학생은 “‘소희의 방’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소희의 하루 일기로 된 이야기 책이라 독특하고 흥미로웠다”며 “매일 아침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보니 책읽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금옥 사서교사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운동을 하면서 근육이 길러지듯 왕산초등학교에서는 도서관이 놀이터고, 사랑방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읽는 근육이 키워지고 있다”며 “처음에는 10~20분도 앉아있지 못하던 아이들이 1시간씩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면 뿌듯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책만 읽는 것은 아니다. 시인이기도 한 유 교사의 지도로 동시를 짓기도 하고, 인근 마을 경로당에서 할머니·할아버지에게 책을 읽어드리는 봉사활동을 하기도 한다. 지난봄에는 유교사와 함께 아이들이 지은 동시를 전시하는 ‘시화전’을 열어 마을 주민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마을의 명물이기도 한 왕산초 도서관은 강릉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마을도서관 만들기 프로젝트에 따라 건립이 이뤄졌다. 8000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는 왕산초등학교 도서관에는 어린이 도서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도 읽을 수 있는 소설책이나 교양서적들을 비치한 서고가 따로 마련돼 있어 마을 주민들도 즐겨 찾는다. 농한기에는 직접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다 가는 주민들도 많다. 유 교사는 “비가 오는 날이나 농사일이 없는 때에는 도서관이 마을 사랑방 같을 때가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유 교사는 “도서관에서 바라보는 학교 주변의 경관은 너무 아름답다. 아이들이 책과 함께 이런 아름다운 풍경들을 마음에 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왕산초 도서관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박용진 기자
자연-문화예술과 함께하는 배롱이들
작은학교 희망찾기 ⑦ 강릉 왕산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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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여름 계절 학교에서는 왕산초등학교 교직원들과 학생, 학부모들이 모두 모여 1박 2일 캠프를 진행했다. 이날 아이들은 한학기 동안 동아리 활동을 통해 갈고 닦은 장기들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사진은 이날 학생들이 선보인 사물놀이 공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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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여름 계절 학교에서는 왕산초등학교 교직원들과 학생, 학부모들이 모두 모여 1박 2일 캠프를 진행했다. 이날 아이들은 한학기 동안 동아리 활동을 통해 갈고 닦은 장기들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사진은 이날 학생들이 선보인 치어리딩 공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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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왕산초등학교. 아이들은 매월 숲체험 수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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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뒷편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수확 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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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회 진행하는 수영 강습 모습 |
잔디위에 뒹구는 눈부신 얼굴들
작은학교 희망찾기 ⑦ 강릉 왕산초등학교
<기고>참관기
오봉댐을 끼고 달리는 차창 밖으로 제법 높아진 구름이 그랬고, 땅콩 밭을 지나 학교정문을 잇는 작은 숲그늘을 들어서니 초록병풍에 둘러싸인 노란 운동장에 우선 눈이 부셨다. 이 학교를 찾은 날, 노랗게 물들어가는 천연잔디위에서 뒹굴던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풀벌레울음소리로 운동장이 그득했다. 80년 가까운 역사를 지녔다는 왕산초는 어디서 희망을 찾을까 골몰해있던 내게, 산골의 가을은 이렇게 툭하고 다가섰다. 오후마다 있는 체육 수업으로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얼굴들이 저마다 오색 훌라후프를 끼고 누웠거나 엎드렸거나 털퍼덕 주저앉아 있다. 교사5명에 전교생 19명이 단체로 추석 밑에 있을 운동회경기규칙을 익히는 중이다. 수업시간이 맞나 싶게 제멋대로 자유로이 편안한 모습이지만 시선만큼은 똘망한 눈빛으로 온전히 선생님을 향하고 있다. 선생님 허리춤에 친하게 매달리고 아이들의 벌칙주문에 엉덩이춤으로 인사하는 이들의 관계가 그저 부러웠다. 낯선 방문객에게 먼저 스스럼없이 다가와 합창하듯 인사를 건네는 아이들을 찬찬히 지켜보니 ‘학교 안에서 저렇게 편안해 보이는 아이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종일 머릿속을 맴돌았다. ‘북모닝부터 노작교육, 그린에코와 스포츠, 문화예술까지 수없이 많은 시도들을 하고 있지만 어떤 아이로 성장시킬 것인가에서 인성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본다’는 교장선생님 말씀과 주변 선생님들 말씀을 들으면서도 작은 학교에 대한 열정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밖에도 소규모학교 통폐합이라는 경제논리 앞에 우리 아이들을 지킬 방법을 생각하는 도마 1,2리 목계리, 왕산리 마을주민들이 팔 걷고 나선 택시통학지원노력까지 무엇하나 눈물겹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색교육이니, 특성화학교니 이런 것 보다는, 어쩌면 학교는 그저 공교육만 충실히 하면 되는데...’ 하며 말끝을 흐리시던 교장선생님은 이내 ‘우리 왕산골 배롱이들..’이라며 창밖으로 그윽하게 아이들을 바라보신다. 마을주민과 학교 모두 각고의 노력으로 올해 11명의 신입생을 받았지만 교장선생님의 고민은 깊다. 산골이라 학령기아동을 둔 젊은 세대들의 정주여건이 여의치 않다보니 시내아이들이 온다고 해도 마을에 정주하지 않는다면 편법입학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왕산면민 인구수가 늘었지만 베이비부머세대들이 귀촌이지, 정작 젊은이들은 경제적 문제와 자녀교육을 이유로 고향을 등지고 있다고 한다. 중심만 기형적으로 비대해지고 지역이 다 시들어 가고 있는 이 나라에서 변두리 마을들의 작은 학교가 문닫는 일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2년전 고단분교 폐교를 비롯해 강원도에서만 400개가 넘는 학교가 문을 닫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도교육청이 도내에 소규모학교가 많은 여건을 고려해 통폐합 기준을 15명 이하로 정해 추진 중이며, 학교와 지역주민, 학부모, 동창회의 동의를 전제로 하고 1면 1개교의 원칙이 지켜지는 한 폐교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참관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드는 생각은 더욱 분명해졌다. 아이 키우는 이들이 도시를 향해 떠나가는 게 아닌, 이곳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어르신들의 손자손녀들이 생태적 삶의 근원적 가치를 찾아 다시 돌아와 살 수 있게, 정부와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멀쩡한 시골학교가 문을 닫는 일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마을에 생기를 더하는 일이 특성화된 작은 학교가 장기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학교는 온전히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는 수업을 위해 노력하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정부는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던 소규모학교 통폐합을 재정·행정 인센티브 강화를 조건으로 재추진할 것이 아니라, 정주여건이 해결될 수 있는 적극적인 귀농정책으로 구조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작은 학교의 희망찾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어야만 한다.
반영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