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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일요일이지만 주원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회사에 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회사 창립 기념일이 있는 날이었다. 한결은
주원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언제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 5시에 기사 보낼테니 준비하고 있어. "
" 네. "
이게 대화의 끝이었다. 주원은 홀연히 집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 설희는 부엌으로 들어가 식탁에 놓인 컵을 집어 물을
마셨다. 식탁 위에 유리잔을 놓는 소리와 동시에 방에 두었던 휴대폰이 울렸다.
[ 네. 어머님. ]
[ 주원이 출근했냐? ]
[ 네. 방금요. ]
[ 한결이는? ]
[ 아침 일찍 나가셨어요. ]
[ 이번 행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 철 없는 놈. 내 너한테 부탁이 있어서 전화 걸었다. ]
[ 말씀하세요. 어머님. ]
[ 오늘 창립 기념식에 올 때 한결이도 데리고 나오거라. ]
[ 네? 제가요? ]
[ 그래. 그래도 걔가 형수는 좀 어려워하는 건지, 따르는 건지 네 말은 좀 들으니 네가 같이 가자고 하거라. ]
[ …그래도 ]
[ 왜 싫으냐? ]
시어머님의 퉁명하고 차가운 말에 설희는 주원과 통화하는 것 같아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아니에요. 함께 갈게요. ]
[ 그래. 그럼 행사장에서 보자꾸나. ]
[ 예. 들어가세요 어머님. ]
뚜뚜…….
전화를 끊고, 핸드폰 너머로 끊긴 음이 들려왔다.
" …도련님을 또 어떻게 설득하지. "
설희가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화장대 위에 내려 놓았다. 행사에 가려면 미용실에 들러 머리도 해야했고, 주원의 지위에
해를 끼치지 않는 드래스를 골라 입어야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김 주원 사장님 사모님의 지위에 맞춰야 했다. 오늘은
오랜 시간동안 주원의 곁을 지켜야만 했다.
행복한 부부처럼…부러울 것 없는 신혼 부부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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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악기들의 소리가 동아리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중 피아노 앞에 앉아 긴 손가락을 이용해 연주를 하는
한결이 눈에 들어왔다. 기타를 좋아하지만, 어릴 적 소질이 보여 배웠던 피아노도 꽤나 즐기는 한결이었다. 밤새도록
작사, 작곡한 음악을 직접 연주하며 부르는 한결을 동료들은 악기 연주를 멈추고 피아노 선율과 함께 들리는 부드러운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연주가 끝이 나고 동료들의 반응을 들어보려는 찰라,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에 '형' 이라고 떴다. 어차피 받아봤자
같은 말만 되풀이 할 것이 뻔했다. 한결은 휴대폰을 한 쪽에 집어 던졌다. 그렇게 여러번 울려대던 벨소리가 멈췄다.
" 노래를 왜이렇게 애절하게 만들어오냐? "
" 새벽에 잠이 안 오길래 만든거야. 새벽송은 원래 숨겨둔 감성을 끌어내지. "
" 너 좋아하는 여자있지? "
한 동료가 피아노 쪽으로 다가와 얼굴을 디밀며 물었다. 한결은 손가락으로 동료의 이마를 집으며-
" 괜한 소리말고, 이 곡 변경해서 밴드에 맞게 만들어라. "
" 옘병. 가사가 너무 애절해서 더는 못해 먹겠다. "
" 나는 자네의 능력을 믿네. "
한결이 동료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장난스레 말했다.
" 네가 피아노 쳐주면서 만든 곡을 너의 그 여인에게 불러주면 한 번에 넘어올 텐데.
뭐할라고 이렇게 뜸들이냐. 밥 짓냐? "
이미 그의 동료들은 한결이 1년간 만들어오는, 달라져가는 곡들에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자유로움과 재미를 첨가해서
만들던 한결의 곡이 갑자기 확 바뀌어 버렸다는 것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니까.
" 오늘은 오는 전화 다 안 받을 테니까 연습에 집중하자. "
한결이 소매를 걷어 부치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쇼파에 내려 놓았던 기타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을 기타에
대자 자연스레 줄을 건들며 청랑한 소리를 만들었다.
" OK. 연습하자! "
동료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연습을 시작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연습에 몰두하고 잠시 쉬기위해 음식을 배달시켜
먹고 있을 때 다시 한 번 한결의 휴대폰이 정신없이 울렸다. 신경을 끄고 자장면을 먹던 한결을 보던 동료가 휴대폰
액정을 보고,
" 야, 너는 무슨 형수한테 전화도 오냐? "
" 휴대폰 이리 던져. "
" 오늘은 아무 전화도 안 받는다며~ "
" 형수라며. "
" 응. "
" 내놔. 새끼야 "
동료가 장난을 치기 위해 휴대폰을 들고 주지 않으려하자 한결은 손에 들고 있던 자장면을 내동댕이치고 걸어가 바로
회수를 하여 통화 버튼을 눌렀다. 끊길새라…….
[ 여보세요? 형수? ]
[ 네. 통화할 수 있죠? ]
[ 당연하죠. 왜요? 무슨 일 있어요? ]
한결이 빠르게 동아리 방을 빠져나와 통화를 이어갔다.
[ 부탁이 있어서요. ]
[ 뭔데요? ]
[ 오늘 저랑 같이 창립 기념식에 가주면 안 될까요? ]
혹시나, 설마 했는데 그 말이었다. 한결이 살짝 실망을 했지만 함께 가달라는 말이 썩 싫지만은 않았다.
[ 어머님께서 도련님이랑 꼭 같이 오라고 하셔서요. ]
[ 나랑 같이 안가면 형수 혼나요? ]
[ …아마도요. ]
설희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한결이 피식- 웃었다.
[ 그럼 오늘 내 파트너 해주면 갈게요. ]
[ 네? ]
이건 또 무슨 제안인지. 설희는 주원의 부인이기에 파티에 참석해서 끝날 때까지 그의 곁을 따라다녀야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한결이 모를리 없었다.
[ 도련님. 그건- ]
[ 그렇게 해준다고하면 바로 달려 갈게요. ]
[ 정말 바로 오실거에요? ]
[ 그럼요. 1분 안에 달려갈게요. ]
전화기 너머로 설희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한결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 알겠어요. ]
[ 준비하고 데리러 갈게요. ]
[ 네. 준비 끝나면 연락 드릴게요. ]
[ 그럼 이따 만나요. ]
통화가 끝나고, 한결이 동아리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자켓을 챙겨 입고-
" 나는 먼저 간다. 맛있게들 먹어라. "
" 형수 만나러 가냐?! "
한결은 손을 흔들며 그대로 동아리실을 나왔다. 앞에 주차해둔 차에 가방을 던져 넣고, 휘파람을 불며 운전대를 잡았다.
차는 미끄러지듯 언덕을 넘어 비탈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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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은 비서가 가져다 준 파티에 입을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었다. 블랙 정장이 주원의 몸에 맞게 핏이 잘 서있었다.
안에 입은 와이셔츠까지 블랙으로 깔끔하게 맞췄다. 정장마이 단추를 잠그고 있을 때 비서가 다시 한번 들어왔다.
" 회장님이 부르십니다. 사장님. "
" 알겠어. 곧 가지. "
" 예. "
비서가 다시 나가자 주원이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버튼을 누르고 귀에 가져다 댔다.
[ 차 대기해. ]
말을 마친 주원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그대로 사장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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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실로 들어서자 언제 왔는지 사모님이 쇼파에 앉아서 주원이 맞이했다. 화사하게 차려입으니 영락없는 회장 사모님의
모습이었다. 주원이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곧 세 사람의 앞에 따듯한 찻잔이 놓여져 있었다.
" 연회장 준비는 잘 했느냐. "
" 회장님도 참 주원이가 어련히 잘 해놓았겠죠. "
사모님이 거들며 웃자 김 회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 한결이 녀석은 온다더냐? "
" 연락은 했는데……. "
주원이 말끝을 흐리자 김 회장의 부인이 옆에서 다시 거들었다.
" 제가 설희한테 함께 오라고 전화 해뒀어요. "
" 새 아기한테? "
그 말을 듣고 있던 주원이 미간이 잠시동안 찡그려졌다.
" 그 녀석이 애비말도 애미말도 안 듣는데 며느리 말을 듣겠어? "
" 한결이가 은근 설희를 어려워하는지 곧 잘 따르는것 같아서요. 아마 올 것 같아요. "
" 참 별 일이구만. "
" 주원이는 바쁠텐데 내려가서 준비해라. 곧 연회 시작이니. "
" 예. 그럼 연회장에서 뵙겠습니다. "
" 그래. "
회장실을 나선 주원이 사장실로 돌아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다다르자 전화가 걸려왔다.
[ 사모님께서 따로 이동을 하시겠다고 하셔서 돌아왔습니다. ]
[ 따로? ]
[ 네. ]
[ 끊지. ]
말을 끝낸 주원이 통화를 끝내고 주머니에 휴대폰을 꼿아 넣으며 실소를 터뜨렸다. 곧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등을 한 쪽에 기댄 채로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복잡한 도시 풍경을 눈에 담았다. 멋없이
레고 모양으로 들어선 건물들이 주원의 두 눈에 빠짐없이 담겨졌다. 그의 얼굴이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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샵에 가서 머리를 만지려 했지만 1년 동안 주원과 많은 파티를 다니며 어느 정도 머리를 만지게 된 설희는 화장대 앞에
앉아 능숙한 손 놀림으로 머리를 만졌다. 길게 늘어뜨려진 머리를 하나로 잡아 아래쪽으로 또아리를 뜨며 고정을 시켰다. 포인트를 주기위해 보라색의 작은 꽃모양의 삔을 머리 옆에 꼿아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 쪽으로 걸어갔다.
" …뭘 입지. "
고민을 하다 설희가 꺼낸 옷은 보라색의 드레스였다. 머리가 흐트러지지 않게 조심히 입자 소매가 어깨로 내려오는
드레스로 몸에 착 붙어서 잘록한 설희의 몸매가 도드라지게 해주었다. 길이는 무릎 살짝 위까지 올라갔다. 시어머니에게 받았던 패물 중 다이아 목거리로 허전한 목에 걸어주고, 귀걸이를 달아주자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문자가 도착했다는 소리에 휴대폰을 집었다.
[ 도착했어요. 준비 끝내고 내려오세요. ]
설희의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화장대에 올려 놓았던 클러치백을 들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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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 노을이 질 무렵이 되자 햇볕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차에서 내린 한결은 차에 기대어
설희가 나오길 기다렸다. 짙은 네이비 색의 정장으로 차려입은 한결은 그 어느때보다 깔끔하고 신사다운 모습이었다.
얼마 후, 한결의 모든 시선과 생각은 한 곳을 향해 있었다.
저쪽에서 설희가 한결을 향해 오고 있었다.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이었다. 한결을 향해 웃어주
더니 얌전한 걸음걸이로 걸어왔다. 한결도 차에 기대었던 몸을 일으켜 반듯하게 섰다. 곧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하며
섰다.
" 오래 기다리셨죠? "
" 기다린 보람이있네요. "
" 왜요? "
" 내 눈이 즐거우니까요. "
한결의 말에 설희의 얼굴이 급속도로 붉어져버렸다. 부끄러운 마음을 절대 숨기지 못하는 설희이기에 그런 모습이
한결을 더 안달나게 만들었다. 욕심을 내고싶게 만드는 여자였다.
" 가, 가요. "
" 피식- 네. "
설희가 조수석으로 향하자 한결은 앞서가 문을 열어주었다. 두 사람의 얼굴에 또다시 같은 미소가 번졌다. 향긋한 봄
향기를 머금고 불어오는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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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장을 둘러보며 준비를 마친 주원은 서서히 안으로 들어서는 손님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전했다. 손목을
들어 시간을 보자 곧 설희가 당도할 시간이었다. 주변의 시선을 생각한 주원이 로비로 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설희가 오길 기다렸다.
저쪽에서 낯익은 차가 한 대 들어왔다.
한결의 차였다. 주원의 앞에 멈춰선 차 안에 앉아있는 설희도 보였다. 자리에 서서 두 사람이 내리길 기다리던 주원은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려 자신의 앞으로 올 때까지 석고상 처럼 굳은 채 자리에 서 있었다.
" 나 왔어. 형. "
한결이 손을 흔드며 주원의 앞으로 갔다. 설희는 말을 아끼며 한결의 옆에 서서 주원의 앞에 섰다.
" 안 올줄 알았는데, 왔구나. "
" 응. "
주원은 한결에게 주었던 시선을 거두고 설희에게로 돌렸다. 집에서만 보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이었다.
" 들어가지. "
" …네. "
웃음기 없는 말에 설희도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었다. 설희가 주원의 옆으로 가려고 하자 한결이 잡아세웠다.
" 형. "
" ? "
" 오늘은 내 파트너야. 형수. "
" 도련님. "
" 약속 했잖아요. 그렇게 하기로. "
설희가 난처해하자 주원의 입에서 나온 말은,
" 그럼 그렇게 하든지. "
신경쓰지 않겠다는 식의 대답이었다. 한결이 설희의 앞으로 팔을 내밀었다. 팔짱을 끼자는 식이었다. 주원의 무신경한
태도에 마음이 상한 설희는 그대로 망설이지 않고 한결의 팔에 팔짱을 끼었다.
" 들어갑시다. "
한결은 말을 마치고 설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서서 두 사람을 쳐다보던 주원이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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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장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모두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한 쪽에서 김 회장과 그의 부인이
앞에 마련된 단상에서 회사 창립기념일에 대한 말을 전한 뒤 내려와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화목하고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었다.
" 너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신다. 잠시 가서 인사나 올리고 오자꾸나. "
김회장의 말에 한결이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설희가,
" 다녀 오세요. 좋은 날이잖아요. "
웃으며 말하자 한결은 그대로 말없이 김 회장을 따라 자리를 이동했다. 한결이 자리를 이동하자 주원이 설희에게로
다가왔다.
" 잠깐 인사나 하고 오지. "
" 네. "
설희가 주원의 곁에 서서 그가 가는 곳으로 움직였다. 주원은 다른 사람들 앞에선 180도 다른 사람이 되었다.
집 안에선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미소를 지으며 예의바른 사람이 되었다. 설희에게 웃어주며 신경을 써주었고
배려라는 것도 해주었다. 그런 점이 설희를 주원에게서 더 멀어지게 하는 것 같았다. 이중적인 모습에…….
"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주원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나이가 조금 들어보이는 사내와 그 옆에 있던 부인이 웃으며 인사를 했다.
" 김 사장을 눈여겨서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
" 감사합니다. "
" 옆에는 안 사람인가요? "
" 예. 제 안 사람입니다. 인사 올리도록 해. "
주원의 말에 설희가 단정하게 인사를 올렸다.
" 듣던대로 미인이시군요. 신혼 생활이 즐겁겠습니다. "
그가 웃자 주원도 함께 따라 웃었다. 설희가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웃을 줄 알았다니…….
"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
" 그러도록 하죠. "
주원이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자리를 이동했다. 옆에서 따라오던 설희가 높은 구두 굽에 그만 삐긋- 하며 옆으로 휘청
였다. 설희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가는 줄 알았던 주원은 그대로 손을 뻗어 설희를 잡아주었다. 그의 두 팔에 설희가
살며시 안겨 있었다.
동그레진 두 눈으로 주원을 올라다 보았다. 미친듯 뛰는 심장소리가 들릴까 조마해하는 설희와 달리 여전히 무신경한
태도로 가만히 설희를 내려다보던 주원이 입을 열었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지…….
" 사장 부인답게 행동해. "
" ……. "
" 다른 부인들처럼, 그렇게 행동해. "
주원이 설희를 제대로 세워 주었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겨버린 주원을 가만히 응시하는 설희의 두 눈에 화가
차오르고 있었다.
" 다른… "
" 실례할게요. "
말을 마친 설희는 주원의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가만히 있다 설희를 따라가려고 할 때, 뒤에서
함께 경영수업을 들었던 친구들이 잡는 바람에 따라가지 못했다.
" 오랜 만이다. "
인사를 나누고 다시 돌아 보았을 때 설희는 이미 없어진지 오래였다. 주원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지만
설희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김 회장을 따라 다른 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오던 한결이 와이 한 잔을 모두 입 속에 털어 넣으며 언제나 그랬듯
자연스레 설희를 찾아보았다. 그러다 문득 홀로 서 있는 주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곁에 서서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어야할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주원에게로 향했다.
" 내가 말할 때는 듣지도 않더니, 형수 부탁에 달려온 건가? "
" 그런거 아니야. "
" 놀랍네. 부모님 말씀도 듣지 않는 네가. "
주원이 그대로 한결의 눈을 응시했다. 어쩐지 한결을 뚫을 것만 같은 강렬한 눈빛이었다.
" 나 때문에 형수가 난처해질까봐 온 거야. "
" 배려깊은 시동생이군. "
한결의 웃음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묻지 않아도 보지 않았어도 알 수 있었다. 설희는 또다시 주원에게 상처를 받고
다른 곳으로 도망간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들어도 충격이 가시지 않는 말들을 주원은 서슴없이 설희에게 뱉고,
또 뱉었다. 그 맑고 동그란 두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때까지…….
한결은 손에 들려있던 빈 와인 잔을 주원의 앞에 내려 놓으며 그대로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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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의 말을 듣고, 그의 손길에 의해 심장이 뛰었던 자신이 너무도 바보같이 느껴졌던 설희는 그대로 눈에 보이는
와인병을 들고 연회장을 나와버렸다. 끝내 자신을 붙잡으러 오지 않는 주원을 멈추지않고 욕하며 어느새 비상계단까지 와버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계단을 하나씩 밟으며 올라갔다. 주위에는 설희의 구두굽 소리만이 가득했다.
털썩- 계단에 앉았다. 고개를 돌리자 투명한 창문으로 화려한 불빛들로 가득한 도시들이 보였다. 차들이 내는 불빛과
밤 길을 밝히는 가로수와 도시들의 여러 불빛들이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방금까지 화려하게 보이던 것들이 흐리
멍텅해졌다.
" 후, 술이나 마시자. "
설희는 와인병을 들어 그대로 입 속에 털어 넣었다. 향긋한 포도의 향이 코끝을 스치며 쓰디쓴 맛을 내며 목구멍을
넘어갔다. 목 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 멈추지 않고 입 속에 들이 부었다. 평소 술을 잘 마시진 못하지만 멈추지 않고
넘기고 싶었다.
" …나쁜 새끼. "
그대로 고개를 유리창에 기대었다. 주르륵-. 말릴 새도 없이 그대로 코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의 곁에 서서
그의 체면을 지켜주기 위해 아침부터 지금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심하게 준비를 했던 시간들이 너무도 후회스러웠다.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멸시와 무시니까…….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취기가 오르고 있었다. 평소 입에 술을 잘 대지 않던 설희였기에 조금의 알콜로 취할
수 있었다. 밑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몸을 일으키고 싶었지만 귀찮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았기에 가만히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앞을 응시했다.
" 찾았다. 후……. "
흐릿하게 흐릿하게 보이다 조금씩 초점이 맞춰졌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한결이 보였다.
" …도련님……. "
뭘 했길래 옷이 흐뜨러져있고, 이마에는 땀들이 흘러내리고 있을까-
그대로 설희의 앞으로 올라온 한결은 설희의 옆에 놓여있는 와인을 들어보고 빈 병임을 확인하고 놀란 얼굴로 설희를
한 번, 아픈 얼굴로 설희를 한 번 내려다 보았다.
" 다 마셨어요? 형수가? "
" …네. 목이 말라서 조금 먹었어요. "
눈가가 촉촉한 설희가 한결을 올려다 보았다. 곧 따스한 기운이 설희의 입술에 닿았다.
" 포도주 묻었어요. "
취기가 오른 설희는 그의 손을 밀어내지 않았다. 한결이 조심히 설희의 옆에 앉았다.
" 이렇게 취하면 형이 또 한 소리 할텐데……. "
" 난 그 사람이 무서워요. "
한결이 입을 다물었다. 가늘게 떨고 있는 설희의 목소리가 너무도 위태로워 보였다.
" 날 바라보는 그 눈동자가, 날 향해 말하는 그 입술이 또 어떤 말을 할까- "
" ……. "
" 두렵고 무서워요. "
" …형수. "
" 듣는 순간순간마다 온 몸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 같아요. "
취기 속에서 설희가 숨겨두었던 말을 천천히 꺼내놓기 시작했다.
" 그 사람은요. 당신 형이란 사람은 말이죠. "
" ……. "
" 나한테 지옥이에요. "
" ……. "
" 지옥……. "
설희는 그대로 스르륵- 한결에게로 쓰러졌다. 한결은 설희를 놓칠까, 다칠까 조심히 안아주었다. 이렇게 작고 야윈
여자를 주원은 너무 함부로 대하고 있었다. 버려야 할 물건을 억지로 끼고있는 것 처럼 그렇게 말이다.
한결이 설희를 안으려다 그러려다 멈춰섰다. 천천히 설희에게 건넸던 팔을 거두었다. 그리고 한쪽 팔로 설희를 잡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휴대폰을 꺼내었다. 단축키를 누르고 무표정한 얼굴로 귀에 가져다댔다.
[ 나야. 지금 형수가 좀 취했어. 형이 좀 와야겠어. ]
주원이 할 말은 보나마나 뻔한 말이었다. 숨을 죽여 화를 내었고, 자신은 모르겠다며 끊으려고 했다.
[ 내가 회장님 곁에 있을게. 형수 두고 갈테니까 알아서해. ]
그대로 통화를 끊었다. 사방이 정적이 흘렀다. 한결은 설희를 조심히 유리창에 기대어주었다. 이마로 흘러내려온 머리
카락을 조심히 귀에 꼿아주었다.
" …왜 하필 내 봄이…형수에요. "
" ……. "
" 당신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을게요. "
" ……. "
한결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딛었다. 계단을 내려와 문을 열고 비상계단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른 한쪽 벽에 서서 주원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20분…30분…1시간이 흘렀다. 한결이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본인이 나서려고 할 때, 저쪽에서 주원이 보였다. 화가 잔뜩
나있는 표정으로 보폭이 넓은 걸음으로 걸어와 그대로 문을 열고 비상계단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 …감기 들면 어쩌려고. 일찍 좀 오지. "
한결은 말을 남기고 연회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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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은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서서 취기에 정신을 잃은 설희를 가만히 올려다 보았다. 생각같아선 따귀라도 한 대
때리고 싶었다. 사장의 부인이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러고 있는지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한결에게 보였다는 생각이 주원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
[ 지하 주차장으로 차 대기시켜. ]
통화를 마친 주원이 겉 옷을 벗어서 설희의 다리를 가려주었다.
" 별 짓을 다 하는군. "
설희를 가볍에 안아 든 주원은 여전히 표정없는 얼굴로 그대로 계단을 내려왔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다른 손님들에게 들키기 쉽상이었다. 결국, 주원은 지하 주차장까지 설희를 안고 계단을 이용해 내려왔다.
주원의 이마에 맺힌 땀이 뺨을 타고 흘렀다.
" 문. "
주원의 말에 비서가 놀란 표정을 감추고 뒷 문을 열어주었다. 설희를 안에 태우고 주원도 안에 몸을 실었다.
" 출발해. "
" 예. 사장님. "
주원의 땀을 본 비서가 에어컨을 틀었다. 차 안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낀 주원은 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설희에게로
돌렸다. 그녀의 드러난 하얀 어깨가 어쩐지 눈에 거슬렸다. 결국 짜증이 가득 실린 얼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 꺼. "
" 예? "
" 에어컨 끄라고. "
" 예. "
곧 주원의 시선은 다시금 도심 속으로 박혔다. 수 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표정을 하고 친구들과 혹은 애인과 정답게
걸어 가고 있었다. 주원의 표정과는 너무도 대조되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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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방에 불이 켜지며 주원이 하얀 침대 위에 설희를 짐짝 내려 놓듯 내려놓았다. 꼼꼼히 묶어 두었던 머리가 그대로 풀려 버렸다. 한 숨을 쉬며 넥타이를 풀러 그대로 화장대에 짐어던진 주원이 목이 타는지 부엌으로 가버렸다. 그 사이
감겨있던 설희의 눈이 천천히 떠지기 시작했다.
" …푸우. "
주원이 소매 단추를 풀며 안으로 들어오자 언제 깼는지 설희가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 이 괴물아. "
" 뭐? "
짜증섞인 주원의 말에 취해버린 설희는 움찔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 뭘 보냐? 네 마누라 얼굴 처음보냐? "
어이없는 웃음과 황당한 웃음이 주원에 얼굴에 가득했다. 설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원에게로 걸어왔다.
" 이 잘난 얼굴로 왜 그런 말만 하는건데?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냐? "
" 당신 때문에 힘드니까 입 다물고 자. "
" 내 입이니까 내 마음대로 떠들거야. 묻잖아.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냐고. "
" 어. 그러니까 당장 침대로 올라가. "
" 비싼 돈주고 참 잘 배웠다. 생긴건 멀쩡해서 왜그렇게 사니. 너? "
주원의 한계에 점점 다다르고 있었다. 하지만 설희는 멈추지 않고 주원에게 쏟아붓기 시작했다.
" 입 다물어. "
" 싫어. 싫어! 싫어!!! "
" 난 분명히 입 다물라고 했어. "
" 싫어! 싫어!! 싫…웁……. "
그대로 주원이 두 손으로 설희의 뺨을 잡아 자신의 입술로 막아버렸다. 설희의 두 손이 미친듯이 주원의 가슴을
때리며 격하게 그를 거부하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주원의 입술은 더 진하고 깊게 설희를 욕심내고 있었다. 주원의
한 손이 설희의 가는 허리로 내려갔고, 그는 자신의 몸으로 설희를 밀착시켰다.
어느새 그는 이미 설희에게 흥분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안고 싶어져버렸다.
그것을 모르는 설희는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힘없이 자신에게 안기듯 쓰러지는 설희 탓에 주원의 온 몸을 휘감던
흥분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없었다.
" …씨발……. "
주원은 한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닦은 뒤, 설희를 안아서 침대 위에 눕혀주었다. 설희를 내려다보며 조금 전 자신이
가졌던 그 마음들이 혼란스럽게 주원에게 다가왔다. 짜증도 났고, 화도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당황과 혼란스러움도
함께 찾아왔다.
그러나 주원은 그런 것들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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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용
시간관계상 길게 남기지 못하고 갈게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하구요^^ 남겨주신분들 성함달지 못하는건
업뎃 일찍 했으니 바주세용~ ^-^&
사진은 한결 & 설희 입니당
업뎃쪽지 = 형수
안냥하세용~다음편 지금 올려드릴게용~기다려주세용 ㅎㅎ
형수. 키키 완전조음ㅋㅋ학교에서 밤을 새고 달려와 컴터를 킨 후 제일 먼저 나형사를 킨 일인입니다ㅎ
주원이도 마음이 있는 것 같은뎅...ㅋㅋ전 시가의 영향인지도 모르겠지만 주원이 엄마 문분홍 여사가 떠오르네용ㅋㅋ
안냥하세용~ 오- 나형사 ㅋㅋㅋ나지금 추리소설쓰는 작가된 기분이에요ㅋㅋ나형사 조아요!!하악- 분홍여사ㅋㅋ글케 생각해주셔도 될듯 앙칼지신것이 앞으로 많은 활약 펼치실 분임.ㅎㅎㅎㅎ
잘 읽었어요^^
형수~!
너무 재미있어요~!
담편도 기달려요~!
대박재미있네여><ㅋ
담편으로
두근두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