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 따라
김 난 석
가을이 오려고 서풍이 불기 시작하면 곡식들은 놀랄 만큼 빨리 자란다.
이를 두고 갈바람에 곡식들이 혀를 빼물고 자란다고 했다.
여름 내내 땀 흘린 뒤의 보람이 영글어가는 모습인 것이다.
가을밭에 가면 어려운 친정 가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가을의 풍성함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올해도 바람이 그리 사납지 않았으니 가을막바지에 들어선 교외로 벗어나면
어디든 풍성하지 않은 곳이 없으리라.
가을바람 따라 충절의 고장 예산 뜰로 내려가 보았다.
중학교 때 지리 시간에 배운 대로라면 바람은 그 세기에 따라
정온, 연풍, 화풍, 질풍, 강풍, 구풍으로 구분되는데,
그 중에서 정온은 굴뚝의 연기가 똑바로 올라가는 기세의 바람이라 했다.
바람 한 점 없는 예산의 신암 들판은 널려있는 사과밭으로 길 양편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국향 가득한 재필이네 과수원도 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사람들의 입맛을 기다리는 듯했다.
오천 평 쯤 되어 보이는 과수목 울타리 안에 낙과가 한두 개밖에 눈에 띄지 않았으니
과수원 안의 바람은 오늘처럼 내내 정온이었던 모양이었다.
이곳으로부터 약 1.5 킬로미터 되는 곳에 추사(秋史)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하반기를 바람에 휩쓸려 살다 간 금석학의 대가요 시서화(詩書畵)의 명인인 김정희,
제주 유배시절에 그렸다는 세한도(歲寒圖)는 절제된 화법에 의해
선비의 서늘한 기개를 표현했다는 풀이로 추사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질 뿐 아니라
문인화의 걸작으로도 말해진다.
바로 바람 앞에 굴하지 않은 곧은 품성을 읽을 수 있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추사와 같은 시대를 살면서 시대적 바람에 휩쓸렸지만 선비정신을 잃지 않은 삼절(三絶)로
다산 정약용과 초의 선사, 그리고 추사 김정희를 꼽기도 한다.
이들 세분은 자주 어울리면서 굴곡의 시대를 탄했으되 좌절하지 않고 정진하여
역사에 길이 빛나는 그림자를 남겼다.
다산의 많은 저서가 그것이요 초의선사의 다도(茶道) 정립이 그것이요
추사의 독특한 서체 개발이 그것일 터이다.
어느 시인은 팔 할이 바람이라 노래했다.(미당 서정주)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른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거니와 삶에 주체성을 실어가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뜻도 담긴듯하다.
지난 세월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길항의 역사였다.
조선시대의 아전과 민초, 양반과 서민간의 길항에서 일제 시대의 정복자와 피정복자 간의 길항으로 이어지고,
해방 후에는 다시 관료와 국민간의 길항으로 이어져 갈등을 빚어왔다.
그러나 이즈음에 들어서면서부터 지역 간의 길항과 자본가, 노동자 간의 길항이 지배층 간의 길항으로 번져
소위 바람이라는 이념갈등으로 홍역을 치루고 있으니
이 헛바람을 무엇으로 잠재워야 하는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송풍취해대(松風吹解帶),
고택의 한쪽 기둥에 걸려있는 추사의 글이 눈길을 끈다.
솔바람에 허리띠가 풀려 옷깃이 나풀거린다는 것이니,
어디 시원한 바람이라도 한 점 불어 이즈음의 혼미한 시대정신을 일깨워줄 수는 없는지 모르겠다.
오래 전 써본 졸시를 꺼내본다.
텃밭
무슨 바람 불기에
가지 밭 댓가지
찢긴 적삼 덕지덕지 걸친 채
외로 정렬하고
무슨 바람 지나가기에
고추 밭 지지대
찢어진 고쟁이 꿰어 찬 채
오르로 정렬하고
바람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비알에 불거진 박 덩이 하나
적삼 같은 고쟁이 같은 거적일랑
다 벗어놓은 채
햇살 아래 기우뚱이고.(2007. 10월 어느 날)
봄바람 따라
김 난 석
어느 글벗의 부름을 받고 다시 예당평야를 찾았다.
김대건 신부를 기리는 천주교 솔뫼 성지 인근에 寓居를 마련하고 絶世한 듯 홀로 살아가지만
가끔은 무엇이 궁금한지 빼꼼히 고개 내밀고 손짓하기에 봄바람 따라 나서봤던 것이다.
예당평야는 벼농사지대이기에 아직은 물채이길 기다리며 하늘과 마주하고 있다.
농부들은 한없이 한가로운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렇게 객군을 불러들일 수 있는 것일 게다.
혼자 지내는 터라 그런지 점심 차린다는 말도 없이 합덕시장으로 해물이나 먹으러 가자했다.
가는 길 논길 따라 새파랗게 돋아난 나승개를 캐는 아낙들 모습만 더러 보였고,
물채인 저수지에 고니 떼들이 한겨울을 내고 고향으로 갈 채비를 하는지 부산하게 유영하고 있었다.
사실 내 아우들이 사는 홍성 남당리에 가서 요즘 제철인 새조개나 먹을 요량이었는데
합덕 해물이 더 낫다며 주저앉히니 못이기는 척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또 신세나 지는 것이었으니, 이를 어찌 갚을지 모르겠다.
차려 내놓은 상을 보니 이리저리 발라낸 생선회며, 후벼 파낸 멍게며 해삼 등이었는데
생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뒤따라 나온 매운탕이나 먹으면서 역시 새조개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점심 뒤엔 너스레가 오가게 마련이다.
어찌 지냈느냐 물으니 욕심 낼 것도 없이 먹고 마시고 잘 자면 되는 게 아니냐고 한다.
맞는 말이라 화답했더니 나에게 연애 한 이야기나 해 달란다.
욕심 낼 것 없이 먹고 마시고 잘 자면 된다면서 그런 건 또 왜 묻는지 모르겠다.
나야 연애라면 연자의 年式이나 늘어갈 뿐이요, 애라면 홍어 애탕이나 좋아할 뿐인데 그런 걸 묻다니.
그럼 여성들 손목도 안 잡아봤느냐고 묻는다.
손목을 잡는다는 건 어딘가로 끌고 간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니
내 평생 그런 일은 한 번도 없다고 응수하곤, 그래도 뒤에서 껴안은 일은 있다 했더니
그게 누구냐고 묻는다. 그래서 허허 웃고 말았지만
사내들 사이에 언제나 이성 문제가 화제에서 사라질지 모르겠는데
역시 나는 새조개나 후벼 파먹을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식당에서 나와 합덕시장을 이리저리 한 바퀴 돌려니
과일장사 아주머니도, 순대국집 아주머니도, 생선집 아주머니도 고개 내밀고 쳐다보자
일일이 손 흔들며 인사를 나누는 것이었다.
집 근처에 오니 나승개를 캐어 다듬는 아주머니도 반갑게 나와 인사하며 한 보따리 싸 안겨주는 것이었다.
아마도 평소에 늘 이렇게 정을 나누는 관계이기에 서로 반가워하는 것일 테다.
이를 카페 문법으로 풀이한다면 이 글벗은 혼자 살면서 그 아주머님 댁들을 한없이 드나들거나 불러들여
숱하게도 불륜을 저질렀을성싶다.
허나 산다는 게 무엇이더란 말이냐.
그런 게 불륜이라면 이 봄판 질펀하게 앉아 한바탕 불륜을 저지르고 싶다.
봄판이니 객담을 나눠봤지만 매연 자욱한 한양 하늘 바라볼 것도 없이 잘 지내라 당부하고 돌아왔다.
차창으로 뒤돌아보니 몇 해 전 카페회원들과 함께 들려 가을바람 쐬던 평상에 봄바람만 드나들어
왠지 쓸쓸한 감정이 일었으니 사진으로나마 옛 모습들을 들춰보아야겠다.
2021. 3. 3.
첫댓글
길게 뺀 모가지로
한가로이
물가를 갈퀴질 하는
노니 떼들이
평화롭고
행복해 보입니다.
글벗을 찾아
맛난 음식과
다정스런 대화도
행복하기
이를데 없음 입니다~~
새조개를 먹으러 갔어야 하는데
마음이 약해 가다가 주저앉아
빚만 잔뜩 지고 왔다네요..
예당평야 다녀오셨군요.
들에선 봄나물 캐는 여인네들 보시고.
나승개가 냉이를 말하는건가요?ㅎ
네에
충청도 방언이에요.
♥~••석촌.님이시여!••~♥
옛날의 정겨웠던 '합덕장터<시장>'가
그 곳 그자리(?)에 ~@@
무탈ㅎ스레 계시긴 항가예?.
또한,
아련스레 떠오르는 '운산리•합덕종고' 는 옛터에
소롯이 잘 계시?겠고~~예?.
아아!~
그리웁고 가고잡은(싶은) 심사에
눈물이 글~~~썽~~¶¶~~
어째 제가 다니던 학교와 닮았습니다.^^
@박지연
혹여,
합덕종합고등학교 졸업 하셨나여?.
&::임 미화.임 미령 아실려남?~¶¶
<합덕경찰서..서장.따님들..ㅎ>
@푸르나. 네~~ 잘 알지요. 친구언니들입니다. ^^
@박지연
와~~~우!? ~⊙°°⊙
세상에 이를 수가???.
•
•
???
글타면,
여직도 합덕(설마)에
계실까요?.
(수원.세류동에---한 때는..)
&~제가 괜스런
수고를 끼치는 건 아닐런지여??.
@푸르나. 지금 제 친구는 인천에 살고있고, 부모님은 다 돌아가셨고,
합덕에는 형제들 아무도 살고있지 않은것으로 알고 있어요.. ^^
ㅎ 수고롭지 않습니다.
푸르나님의 어린시절 고향을
제가 함부로 밟은 것 같습니다.
합덕이야 그대로 합덕이었습니다.
고니가 품고 있는 낯설지 않은 초봄 정경입니다.
숙연해지네요.
아래 사진 중에서 하늘에 오르신 이가 세분이나 되네요.
유난히도 해맑은 미소를 짓는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살아 있을 때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야죠.
건강하시구요. 석촌 님
맞아요.
이것저것 재다 보면 해다가지요.
고마웠어요.
향리의 사람들과 정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요.
내 고향 합덕에 다녀가셨네요.
합덕성당 앞 연호방죽에 고니떼는 장관이지요.
한 여름에는 연꽃축제를 가질만큼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렇시군요.
좋은 데 고향을 두고 계시네요.
다음에 들리면 방문료라도 드려야겠어요.
합덕이 고향이신분이 많네요.^^
저 사진속에 그곳이 홑샘님의 집인가요?
말로만 듣던‥ㅎ
지금쯤 성묘등산에도 봄내음이 살짝 나겠지요?
석촌님의 멋진 글 잘 보고 갑니다‥
꿀 밤요~^^
네에
거기가요 천주교 성지가 가까이 있는데요
김대건신부 고향이기도 하고
신리성지 솔뫼성지가 있고
홑샘님 집이 있고
그 안에 성모상을 모시고있고
인근엔 추사 김정희 고택이 있고
조영남이 자란 곳이기도 하고
박지연님 푸르니님 삼봉님 고향이기도 하고
백제곱킬로미터의 예당평야가 있고
휴우우 숨차서 고만 할래요.
과거
좋았던 추억 사진 소환 하셨습니다
요즘같아선
어려울,
다정한 장면의 사진 입니다~
요즘같아선 불가늠이죠.
사진촬영 까지도 잘하시는 석촌님.
평화롭게 노니는 고니도 좋고
고니 뒤에 부채살처럼 펼쳐진
나무들의 배경도 좋으네요.
저는 새조개의 참 맛을
잘 모르는데
석촌님이 아쉬워 하시니
식탐이 발동합니다.ㅎ
제 고향도 충청인데
제 동네에선 냉이를 나싱갱이 라고
불렀어요.
막연히 일본말의 잔재인가
여겼는데 고거이 충청 방언이었나봐요.^^
네에 고거이 냉이 나승개 나싱갱이~
그럼 새조개 먹으러 갈까요?
그런데 이제 날이 풀려서 다음 해에 모실게요.
좋은 글, 올려주셨습니다.
내일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어느 성당에서 단체사진을
찍으셨네요...
여기 회원인 홑샘님 뜰이에요.
제 고향 합덕을 다녀오셨군요. 여고때 추사고택으로 자전거하이킹 갔던 추억과 솔뫼로 스케이트타러갔던 추억을 소환해 주셨네요..^^ 저도 조만간 고향앞으로~~ㅎ
허락없이 박선생님 고향땅을 밟았나보네요.
다음엔 밟더라도 더 조심조심~
@석촌 에구~ 아닙니다. ^^ 홑샘님과 고운 추억만들고 오셨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러셔요.
무언가의 기대감으로 지내는 것도 촣은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