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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톨릭동호회 원문보기 글쓴이: 보라빛
김웅렬신부님 강론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예비신자들이 성당에 처음 오면 천주교회에 입문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 간단하게 적어냅니다. 본당마다 하는데도 있고 안 하는 데도 있지만...
어떻게 해서 천주교에 입문하시려고 마음 먹으셨습니까?
여러 군데 란이 있는데 그중에서 신자들이 가장 많이 적는 것은
마음에 평화와 기쁨을 얻기 위해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라고 적는 사람이 20%가 안 되는 건 당연합니다.
처음 예비자부터 하느님을 안다고 하면 좀 이상하지요.
아무튼 평화와 기쁨을 얻기 위해서....성당 문을 두드렸다!
분명한 것은 예비자들이 적어놓은 평화와 기쁨이
이 세상으로 올라오는 평화와 기쁨은 분명히 아닐 거라고 짐작이 갑니다.
세상살이 하면서 평화라고 느꼈던 것이 한 순간에 깨어졌던 것을 체험했고
기쁨이라고...느꼈던 그 기쁨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한 순간에 흩어지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내가 세상에서 누렸던 것이 한계가 있고 불확실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아무튼 들어오게 된 동기가...천주교회 분위기가 좋아서... 이웃선배들의 모습을 보고....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일 많은 것이 평화와 기쁨을 얻기 위해서다!
이렇게 시작하게 된 신자들의 삶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나 5개월 6개월 교리 배우고....세례 받고 1년, 2년....
10년.. 20년... 40년.....한평생을 살면서
천주교신자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평화와 기쁨의 삶을 못 살까!
왜 천주교신자들이 매사에 소극적이고, 미지근하고... 얼굴에 기쁨이 없을까!
여러분들, 그 통계 나온 것 아시죠? 왜 주일미사 나옵니까? 하고 물었더니 70%가 대답하기를 ‘고백성사 보기 싫어서 나옵니다!’
참, 세상에~~ 주일미사 빠지면 저 골방에 들어가 앉아 있는 것이 귀찮아서 주일미사를 지킨대요. 그런 정신머리 가지고 미사를 수 천번을 참석한들 미사 때마다 은혜를 받을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이게 현 천주교신자들의 모습입니다.
기쁨이 없어요.... 매사에 끌려 다녀요....형식적으로 흘러버리고 말지요!
한마디로 이런 신자들의 모습은 무엇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뿌리로부터 수액을 빨아들이지 못하고...
왜 병든 이파리처럼 신자생활 하다가 한 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영영 일어나지 못하고...
성당 안에 있을 때와 나가서 밖에서의 삶이 그렇게 다른가!
결론부터 얘기 드리겠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사제생활 25년, 신자들을 지켜보았던 사목적인 결론인데... 우리 신자들이 기쁨과 평화가 없이 사는 가장 큰 이유는
한마디로 뜨거운 성령체험이 없기 때문이다.
맞습니까? 사제들을 지도합니다. 수도자들을 지도합니다. 무수히 많은 평신도들을 가르치고 살아가는데 사제든, 수도자든, 평신도도....
성령에 대한 뜨거운 체험이 없으면 영적으로 식어버립니다.
내가 두 다리만 성당으로 끌려 다니고 있다고 하는 것은 본인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아, 요즘은 내가 기쁘다! 미사시간에도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묵주기도를 하더라도 이제는 분심이 줄어들었다! 내가 지금 기쁨의 삶을 사느냐! 마지못해 끌려 다니느냐! 영적으로 식어버렸다고 하는 것은 하느님 외에 본인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영적으로 식어버린 자신에게 불을 붙여야 하는데 누구한테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성호를 그을 때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면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찾습니다. 성부도 부르고, 성자도 부르고, 성령도 부릅니다. 성부, 성자께 기도를 하는데....‘예수님, 도와주십시오!’ 성령을 하루에 수십 번씩 부르면서도 여러분들 성령께 진심으로 도움을 청해보신적 있습니까? 식어가는 내 신앙을 다시 되찾기 위해서 ~~ ‘성령님, 죽었다 깨도 내 힘으로는... 의지가 약하고, 유혹이 너무 크니... 나를 성화시켜 주시는 성령께서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성령께 도움을 청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성모님께는 매달릴지언정... 신앙생활 하면서 몇 번이나 뜨겁게 성령께 도움을 청해 봤는가!
어느 교우가 “신부님, 성령을 받는 데 장애가 되는 게 무엇일까요?
신자생활 한지 수십 년이 되었는데 저는 어째서 성령을 받지 못합니까?”
자기는 늘 그것이 궁금하대요.
“기쁘게 열심히 사는 사람을 보면.. 나도 저렇게 하느님을 체험하고 싶은데 어차피 내가 하느님을 선택했다면 뜨겁게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뜨겁게 살 수 있습니까? ”
“당신의 질문부터가 잘못되었습니다. 성령을 받다니....세례 때 이미 물과 성령으로 받았는데 뭘 또 받습니까? 성령체험이라고 하는 것은... 내 안에 없던 성령을 새로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세례 때 받았던 성령이 내 세속적인 어둠 때문에 갇혀계시기 때문에.. 그 어둠을 거두어 주어 내 안에서 갇혀 계시는 성령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성령체험이지....성령을 새로 받는다고 하는 형제님 질문이 처음부터 빗나갔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서...무엇 때문에 성령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 분에게 전통적인 다섯 가지의 클래식한 대답을 해 드렸습니다.
우리가 성령체험을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죄와 악습 때문이라고 그랬습니다. 罪는 뭐고 惡習은 뭡니까? 罪는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겁니다.
첫 번째, 죄와 악습 때문에 성령체험을 못 합니다. 악습은 뭡니까?
악습으로부터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그 악습은 우리를 죄로 연결시킵니다.
마귀가 그렇게 유인을 합니다. 악습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악습은 어두움이기 때문에 빛이 강한 쪽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어둠 속에서 어둠을 해결하려고 하면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방구석에 처박혀 기도한다고...안 될 때 많습니다.빛이 강한 곳이 어디입니까? 말씀이 있는 곳이지요. 성인 성녀들의 삶이 있었던...성지입니다. 순례지입니다. 하느님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놓으셨지만 특별히 거룩한 장소가 있습니다. 순교자들의 피가 흘려 넘쳐흘렀던 곳... 성모님의 성지입니다. 악습은 어둠이기 때문에 빛이 있는 곳으로 나갈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떨어져 나갑니다. 성지순례를 틈만 나면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확실히 예전보다 악습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는 얘기를 종종 듭니다. 죄는 어떻게 해결해야 되겠습니까?
죄는 회개해야 됩니다.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함 받아야 합니다. 이제껏 살았던 잘못된 사고방식, 잘못된 생활관, 잘못된 인생가치관을 바로잡아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람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바뀌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에게 못이 박히도록 하는 말이지만 사람을 가슴에 품고 살지 마십시오.
여러분 가슴에 사람이 잔뜩 들어가 있다면, 사람을 걷어내고 하느님을 가슴에 담고 사십시오. 하느님 중심으로 살아가면 환경이 어렵게 변화되어도..정말 못된 사람을 만나도...
상처를 받아도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면 미운 사람 피해 달아나면 또 미운사람 나타납니다. 어찌 한평생 미운 사람 피해 달아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도.. 어떤 놈이 내 가슴에 비수를 찌르건 내가 하느님 중심으로 살 때는 의연합니다. 상처를 받으면 아프지요... 인간 중심으로 사는 것과 하느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무엇이 다르냐! 하느님 중심으로 살면 회복이 빠릅니다. 어린이처럼 단순해지기 때문에 쉽게 용서가 됩니다. 그러나 사람 중심으로 살면 3~40년 전 그 미움을 무슨 신주단지라고....지금까지 끌어안고 살아갑니까? 예언자 요엘은 사제들에게 명했습니다.
‘사제들아, 베옷을 걸치고 슬피 울어라! 제단에서 시중드는 자들아, 통곡 하여라!
내 하느님께 시중드는 자들아 베옷을 걸치고 밤을 새워라!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사제들은 본인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하지만 자기에게 맡겨진 신자들을 위해서 참회하고, 속죄하고, 기도하며 살았습니다.사제들은 신자들의 영적성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사제들이 행복할 때가 언제라고 그랬습니까? 교무금 늘어날 때도 아니고...헌금이 늘어날 때도 아니고.... 신자들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변화될 때, 그것만큼 기쁜 게 어디 있겠습니까?
죄와 악습이 우리의 성령체험을 가로막습니다.
악습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했지요? 빛이 있는 쪽으로 자꾸 찾아가라고 그랬습니다. 죄로부터 해방이 되려면 하느님이 주신 성사생활을 기쁘게 하라고 그랬습니다.
성령의 체험을 막는 두 번째 걸림돌은 지나친 이성주의입니다. 지나친 이상주의는 성령을 체험하는데 장애가 됩니다.
신자들을 지켜보면서, 또 많은 사제 수도자들을 지켜보면서...저는 늘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낍니다. 신부님들도 보면 정말 순박한 어린이 같은 사제들이 있습니다. 또 너무 복잡하게 살아가는 사제들이 있습니다. 수도자들도 보면 정말 철부지 어린아이처럼....때로는 실수도 많이 하지만 아주 단순합니다. 순박한 어린이같이...때로 조금은 무식하지만
소박하고 단순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성령체험을 확실히 빨리 합니다.
성령세미나 8주를 지도를 해보면.. 또 성직자, 수도자 세미나를 지도를 해보면...
단순한 사람이 8주 하는 동안에 심령기도도 터지고, 영가도 터지고...
그러나 머리가 복잡하고 너무 이성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은 하나하나마다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신부님, 저것 하는 것 하는 말 맞아? 옆에 사람 쏼라~~ 대는데 이것 미친것 아니야?’ 성령이 내 입을 열려고 해도 머리로만 파악하려고 하니까 되겠느냐!
신앙은 지식이 아니라 믿음의 행위입니다.
어느 정도 이해와 지성이 요구되지만 애시 당초 무한하신 하느님을 이 작디작은 머리로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그건 불가능입니다. 신적이고 불가시적인 대상을 속속들이 우리 이성으로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어야 됩니다. 감성과 지성을 조화롭게 받아들여 순박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따라서 성령을 체험하는데 두 번째 걸림돌은 지나친 이성주의입니다. 어떤 분들은 심령기도를 하고 싶어서 세미나를 세 번, 네 번.... 했는데도 안 돼요. “신부님, 저는 왜 그래요?” 그 양반이랑 대화를 해보면 상당히 많이 따지고... 이성주의자예요. 똑똑하기는 엄청 똑똑해요. 하느님 앞에 똑똑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속는 것은 똑똑한 게 아닙니다.
세 번째. 성령체험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교만입니다. 뭐라구요? <교만> 교만이 성령을 받는데 가장 큰 장애요인입니다.
교만에는 4대 교만이 있습니다. 진리 앞에 머리를 숙이지 태도, 이것이 첫 번째 교만입니다.
자신의 잣대를 가지고 늘 하느님을 잽니다 눈금이 맞지도 않는 엉터리 잣대를 가지고, 이웃을 재고, 자기 인생을 재고 ,하느님까지 재단합니다. 두 번째 교만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태도입니다.우리성당은 미사 때 무릎을 꿇습니다. 몸만 꿇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도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어줘야 하는데 몸은 무릎을 꿇고 있지만 마음은 무릎을 꿇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 번째, 교만은 자신의 결점과 결핍과 부족함을 인정하기를 싫어합니다. 자기가 잘못하고 나서도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겁니다. 교만은 책임전가입니다. 네 번째, 교만은 다른 사람을 존경하거나 인정해 주지 않는 태도입니다. 이것이 교만의 4대 성격이라고 합니다. 네 번째, 의혹과 의심이 성령체험 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됩니다.
우리들은 신앙생활하면서 11가지를 믿는다고 합니다.
첫 번째, 하느님과 전능과 창조사업을 믿습니다.여러분들, 믿고 계십니까?
두 번째,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믿습니다. 믿습니까?
세 번째, 하느님의 지극히 거룩하심과 아름다우심을 믿습니다. 믿습니까?
네 번째, 하느님의 아들이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서 강생하셨음을 믿습니다.
다섯 번째 믿어야 될 것은 구세주 예수그리스도로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셨고 부활하심을 믿습니다.
여섯 째, 믿어야 될 것은 우리에게 약속하신대로 성령을 보내주셨음을 또한믿습니다.
일곱 번째 믿어야 될 것은 그 성령을 통해서 하느님의 심오한 진리와 섭리가 우리들에게 나타난다는 것을 믿습니다.
여덟 번째로 믿어야 될 것은 사제가 미사 때마다
‘이는 내 몸이니라! 이는 내 피니라!’ 할 때 그 빵과 포도주가 주님의 몸과 피로 바뀌고 성체 안에 그리스도의 현존을 믿습니다.
아홉 번째 믿어야 될 것은 고해성사 때마다 우리의 죄가 아무리 진홍색처럼 붉어도 용서받고 구원받음을 믿습니다.
열 번째 믿음은 언젠가는 주님이 재림할 것이요, 영원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마지막 우리의 믿음은 하느님의 심판과 하느님 나라를 믿습니다.
천주교의 기본적인 11가지의 교리를 의심과 의혹을 가지고 살 때는 성령체험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증오심과 탐욕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어찌 미워하는 사람이 안 생길 수 있습니까? 미사 하는 이 순간에도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이 세상에 많은 죄가 있는데 죄는 분명히 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누구를 미워하는 죄 만큼은 벌을 따로 받지 않는다고 그랬지요. 여러분들 누구 미워하면 속이 시원해집디까? 아니면 속이 괴로워집디까?
괴로워지지요. 누구를 미워해서 속이 시원하도록 하느님이 만들어 놓는다면 이세상은 개판이 되었을 거예요. 다행히 걸러주는 장치가 있어서 누구를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괴롭단 말이야! ‘아~~ 유, 내가 괴롭게 살지 않으려면 미워하지 말아야지!’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더 고통을 느끼니까.... 누구를 미워하는 것에 대한 벌만큼은
하느님께서 미루지 않으시고 그 자리에서 즉시 주신다고 했어요. 미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분명히 육신이 병이 듭니다. 우리는 미워하지 않고 시기하지 말아야 됩니다.
미워하면 평화가 깨지고 ,아프고, 불행해집니다. 하느님 중심으로 살아가면... 미워하는 자가 나에게 미움을 던져주더라도 쉽게 해방이 됩니다. 지금 간단히 기본적인 성령체험 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 다섯 가지를 말씀드렸는데 기억하십니까?
첫 번째, 罪와 惡習이 성령 체험하는 데 걸림돌이 됩니다.
두 번째는 지나친 이성주의 ,세 번째는 교만 ,네 번째는 의혹과 의심
다섯 번째는 증오심과 탐욕이 성령을 체험하는데 장애가 됩니다.
성령이 내 안에서 활동하셔야 강론을 들어도 치유가 되고
강론을 들어도 꿀처럼 답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셔야 성체를 영할 때마다 뜨거움을 느끼고 영과 육이 성체를 통해서 치유가 됨을 느낍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셔야 기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껏 말씀드린 이 장애되는 다섯 가지의 영적 걸림돌을 없앨 수 있도록 오늘 주님께서 복음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떠나더라도 협조자를 보내줄 테니 바로 그 분이 성령이시다. 이 다섯 가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해야 될 대상이 바로 누구라구요?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께 도움을 청하고 오늘 이 미사 중에 거룩하게 성화시켜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아멘
첫댓글 아멘. 강론 말씀 감사합니다. 하느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 마음을 이끄시어 바르게 생각하고 언제나 성령의 위로를 받아 누리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늘 기쁨과 평화가 필요함을 느끼게 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토마스.신부님의 귀한 강론 말씀~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