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淸溪) 세심(洗心)
칠월 셋째 화요일이다. 근무지에선 고3과 교직원들은 방학이지만 거제공설운동장으로 집결해 코로나 백신 접종을 받는 날이다. 나는 지난 유월 어느 날 1차 접종을 받아둔 바 있어 해당되지 않는다. 60세 이상 연령대 접종 받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때 접종 받지 않았더라면 번거롭게 방학 중 창원과 고현을 오가는 불편을 겪을 뻔했다. 2차 접종일은 아직 한참 멀었다.
오후에 치과 진료가 예정된 날이다. 방학 중 틈을 내어 단순 치료가 아닌 임플란트를 세 개나 심는 시술이라 마음이 무척 쓰인다. 아침나절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산행을 나섰다. 한낮에 폭염이 시작되기 전 이른 새벽녘 길을 나섰다. 아침 다섯 시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삼거리로 나갔다. 가로등이 아직 켜진 미명에 창원대학 앞으로 나가 도청 뒤를 돌아 창원중앙역으로 향해갔다.
용추고개 너머로 동이 트는 기운으로 하늘에는 구름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창원천 하천 바닥은 수초가 무성했다. 천변에 심어둔 조팝나무는 칡넝쿨이 덮쳐 고사 직전이었다. 공원을 관리하는 부서는 칡넝쿨을 하루라도 빨리 제거해주어야 나무를 살리지 싶었다. 공직에서 은퇴한 고향 친구 같으면 담당자 앞으로 전화를 넣어 즉시 해결하지 싶었는데 나는 그럴 위인이 못 되었다.
창원중앙역으로 가질 않고 비음산터널 앞 철길 굴다리를 지나 용추계곡으로 들어섰다. 용추계곡은 도심과 가까워 사람들이 사계절 즐겨 찾는 휴식처다. 특히 여름이면 장마 이후 계곡에 맑은 물이 넉넉하게 흘러 더위를 식히려는 이들이 많이 몰려왔다. 내가 계곡으로 든 때가 아침 이른 시간이라선지 피서객은 드물었다. 용추정 정자를 지나 돌부리가 드러난 계곡으로 올라갔다.
물웅덩이는 한낮이면 사람들이 몰려와 발을 담그면 아주 시원할 듯했다. 가까이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골짜기를 따라 계속 올라갔다. 가을이면 선홍색 꽃을 피우는 야생화인 물봉선은 잎줄기를 한창 불려갔다. 화단에서 가꾸는 봉숭아 사촌쯤 되는 물봉선은 응달 물가를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 용추계곡은 물봉선 군락지인데 사람들 발길에 밟혀 개체가 점차 줄어든다.
출렁다리를 건너 우곡사 갈림길에서 포곡정 방향으로 올라갔다. 포곡정은 진례산성 성내 세워둔 정자다. 너럭바위를 지날 즈음 석간수 틈 사이 자라는 노루오줌이 엷은 분홍색 꽃을 피워 있었다. 노루오줌은 산미나리처럼 생겼는데 봄날에 여린 잎줄기는 산나물이다. 여름이면 야생화는 휴면기에 들어 꽃을 보기 쉽지 않는데 물봉선처럼 응달 습지를 좋아하는 노루오줌은 예외였다.
길섶에는 맥문동이 보라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쉼터를 지나니 바위에 이끼처럼 붙어 자란 바위채송화가 꽃을 피웠다. 포곡정을 앞둔 상사화 군락지는 아직 꽃대가 올라오지 않아 흔적을 볼 수 없었다. 상사화는 봄날 나온 푸른 잎맥은 모두 사그라진 뒤 한여름 꽃대가 올라와 엶은 분홍색 꽃을 피웠다.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상사화는 우리 지역에선 광복절 무렵 꽃이 피었다.
포곡정을 지나 진례산성 동문 터로 올랐다. 동문에서 되돌아서 숲속으로 들어 영지버섯을 찾으니 만나지 못하고 말굽버섯을 한 개 발견했다. 올랐던 길을 따라 내려가니 더위를 식히려고 계곡으로 드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나는 맑은 물이 흐르는 너럭바위에서 등산화 끈을 풀어 양말을 벗고 발을 담갔다. 어제는 용제봉 기슭 물웅덩이에 발을 담갔는데 이틀 연속 탁족을 했다.
석간수에 발을 담근 채 이마의 땀을 씻고 머리까지 감았더니 온몸이 상쾌했다. 탁족에 이어 세안은 물론 세심(洗心)까지 한 듯했다. 세상사 시름을 잊고 무아경에 빠져 한동안 시간을 보내다 자리서 일어났다. 올랐던 길을 되짚어 빠져나오니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계곡 들머리는 유아원 꼬마들이 보모의 손을 잡고 숲으로 들어 물가를 찾는 모습이 새끼오리 같았다. 21.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