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에서
김남희
선운사가 있는 고창을 찾았다. 고창은 계절마다 이름이 바뀔 정도로 맑고 아름답다고 한다. 동서의 친정이 있는 곳이기도 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선운사는 예전에 한 번 들른 적이 있다. 하지만 시인들의 시상이 담겨 있는 동백 숲이나 용이 드나든다는 용담굴에 있는 대장금 어머니의 돌무덤 촬영지는 보지 못했다. 대웅전과 그 주변 산새의 기운만 허겁지겁 둘러보았었는데 이번에는 지장보살의 영험한 기도발이라도 얻고 싶었던지 보물로 지정된 자료들을 미리 머리에 그리고 왔다. 산사의 입구에 들어서자 하루 만에 선운사를 둘러보겠다는 마음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크고 넓었다.
대웅전 앞의 만세루가 눈에 들어온다. 대웅전을 둘러본 사람들이 잠시 만세루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만세루의 굽은 나무들과 색 바랜 누각은 요즘의 지친 나를 보는 듯 푸석해 보였다. 그러나 그 내면은 누구보다 강하고 아름다운 듯 보물로 지정받았다고 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라고 가르쳐주는 것 같아 나의 선입견을 나무랐다. 좋은 나무는 더 좋은 곳을 향하게 내어 주고 자투리 남은 것끼리 붙이고 이어 만세루를 만들었다고 한다. 쓸모없다고 버려진 것에도 쓰임이 있음을 일깨워 주는 것 같아 괜히 어깨가 솟는다. 누구의 생각인지 참 장하다고 말해 주고 싶다. 만세루를 지은 사람은 쓸모없음의 쓸모를 알고 지장보살의 기도 소리를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지옥 불에 떨어진 중생을 끝까지 구원하고자 하는 지장보살의 한 줄기 기도 소리가 만세루를 휘감아 도는 것 같다. 내가 선운사를 찾은 또 다른 이유는 노스님들이 유머러스하게 말하는 일본으로 유학 다녀온 지장보살을 보기 위함이다. 사는 게 급급해 지금은 모든 종교의 신들에게 기도하는 처지이지만 얼마 전 방송에서 일본에서 돌아온 지장보살 이야기를 들었다.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이미 매스컴을 통해 다 알고 있는 내용일 수 있으나 나에게는 무척 놀라운 일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도벌꾼들이 지장보살상을 일본에 팔아넘겼다고 한다. 그런데 지장보살상이 소장자의 꿈에 나타나 “나는 본래 전북 고창 도솔산에 있었으니, 어서 그곳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일이 일어난 후 지장보살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기분이 찝찝해 서둘러 지장보살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는데 그 역시 같은 꿈을 꾸고 우환이 생겼다고 했다. 결국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지장보살은 2년여만에 선운사 도솔천 내원궁으로 되돌아왔다. 지장보살의 영험함에 대한 소문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선운사를 찾는 사람들은 내원궁을 찾아 그 영험함에 기도를 올린다고 한다. 기도를 통해 자신의 앞일을 기원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이리라.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을 때 언니는 타지에 있었다. 경황 중에 연락을 못 하고 있었는데 언니가 집으로 전화를 했다. 상주도 보이고 이상한 꿈이라 여겨 집으로 전화를 했단다. 아버지의 변고를 전해 들은 언니는 한걸음에 달려와 빈소에 눈물을 쏟았다. 꿈은 우리가 과학적으로 믿기 어려운 영험한 예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지장보살이 꿈에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석연치 않다. 간절함이 긍정의 에너지를 동반하여 우주의 기운을 모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별을 끌어당기는 중력이 인간 사이에도 작용하는 것이라 믿어본다.
극락왕생을 비는 스님의 염불 소리가 선운사에 울려 퍼진다. 누군가가 빌어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은 밝게 빛 날 것이다. 나도 지장보살에게 손을 모은다. 숙연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길을 잡는다. 고창에 온 동서를 만나기로 했다. 모처럼 고창 장어구이를 먹으며 마음속 보물을 나누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