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순간은 천둥같은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지옥을 방불케 하는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객차를 끌던 기관차가 사람크기의 땅밑으로푹 꺼지는 순간 뒤따르던 열차2량이 엿가락처럼 휘며 철로를 벗어났고 승객들은 미처 비명소리를 지를 겨를도 없이 차창밖으로 뜅겨져 나오거나 서로 뒤엉켜 주위는 온통 피바다로 변했다. 주민들은 열차가 탈선하는 순간 천둥소리와 같은 굉음이 들렸고 순간 "사람살려"라는 비명소리로 가득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고 전했다. 주위를 지나던 화물차와 주민들은 아수라장이된 현장에 뛰어들어 부상자들을 부근 병원으로 실어나르기 시작했으나 부상자들이 서로 엉켜 역부족이었다. 육중한 객차는 사고당시의 엄청난 충격을 보여주듯 휘어지고 부서져 주위는 철조각,유리,의자파편등으로 가득해 참혹함을 더했다. 철로역시 하중을 이기지 못해 땅으로 푹 꺼져 한가락의 휘어진 엿조각을 방불케 했다. 사고후 20여분이 지나면서는 소식을 들은 승객들의 가족 1천여명이 현장에 몰려나와 가족의 생사확인을 하느라 아비규환을 이뤘다 전선지중화 공사장 부근의 철로 지반이 갑자기 내려 앉으면서 승객 6백20여명을 태운 열차가 탈선, 73명이 숨지고 1백7명이 부상하는 대형참사가 빚어졌다. 부서진 객차 안과 밑부분 등에 숨진 승객의 사체가 더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다 부상자중 60여명이 중상을 당해 사망자 수는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 사고는 전선지중화 시공업체가 연약한 지반을 무시하고 무리한 공사를 강행해 발생한 인재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부산북구청에 설치된 대책본부는 현장에 1천5백여명을 투입, 구조 및 복구작업을 벌였다. <사고> 28일 오후 5시 30분께 부산시 북구 덕천2동 381의8 빅토리아호텔 뒤 덕천천 교량 2백여미터 앞 경부선(구포역기점 서울방향 2.5km) 철로 지반이 침하돼 이곳을 지나던 서울발 부산행 제117호 무궁화호열차(기관사· 노진환.32)8량 가운데 기관차와 발전차, 객차 2량이 탈선해 깊이 5m,너비 15m 가량의 무너진 구덩이에 쳐박혔다. 기관사 노씨에 따르면 시속 85km로 사고지점 부근인 구포역쪽으로 운행하던중 사고지점 50여m 앞에서 철로 지반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 급제동을 걸었으나 철로가 깊이 5m 가량 내려 앉으면서 기관차 머리가 먼저 흙속으로 쳐박혔고 연결된 발전차와 6,5호 객차가 잇따라 탈선하면서 서로 충돌했다는것. <인명피해> 이 사고로 밤 11시 현재 신성자씨(33.여.부산시 금정구 남산동 59의32)와 신씨의 아들 이동혁군(8)등73명이 숨지고 김채은씨(45 부산시 사하구 괴정4동 584의22) 등 1백7명이 중경상을 입고 북구 구포동 한중병원과 부산대학병원, 백병원 등 시내 13개 병원에 분산수용돼 있다. <사고순간> 6호차 55번 좌석에 탔다가 경상을 입은 이석우씨(21.부산시 북구 구포1동 83)는 "목적지인 구포역에 내리기 위해 미리 짐을 챙기던중 갑자기 열차가 급제동을 걸면서 '꽝'하는 소리와 함께 심한 충격을 받아 잠시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6호 객차 절반가량이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져 앞부분에만 30여구의 시체가 널려 있었고 중간부분에도부서진 의자에 10여명의 승객이 숨져 있는 등 객차내부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사고현장> 지반이 내려앉은 사고지점에는 기관차와 발전차, 2량의 객차가 꺼꾸로 쳐박혀 머리부분이 흙속에 파묻히거나 전복된채 몸체 절반가량이 마치 휴지조각을 짓이겨 놓은 것처럼 찌그러져 있고 주변 철로지반이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30-40km간격으로 갈라져 있어 사고당시의 참상을 짐작케 했다. 특히 6호 객차의 경우 먼저 탈선한 발전차 뒷부분을 들이받으면서 절반가량이 완전히 찌그러져 이 부분에 타고 있던 승객 수십명이 모두 사망, 인명피해가 크게 늘어난 원인이 됐다. 6호 객차와 발전차 연결부분에는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팔다리가 살이 찢긴채 구겨진 철판에 끼여 있고 객차바닥은 마치 피를부어놓은듯 붉게 물들어 긴급구조에나선 소방대원들은 차마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었다. <구조> 사고가 나자 부근에서 작업중이던 대산중기소속 포크레인이 자원해 사고현장으로 달려와 구겨진 철판등을 들어올리고 속에 갇힌 생존 승객들을 구출하는 한편 시체발굴을 도왔으며 안병윤씨 등 20여명의 부근 주민들도 달려나와 전복된 열차속으로 들어가 승객들을 구조하기도 했다. 또 근무처인 경남 양산 호포에서 퇴근길에 사고현장 옆을지나던 한국의학연구소 방사선실 김성호 실장(35.북구 감전2동117의3)은 "구포역 주변에서 사고소식을 듣고 현장을 달려가 사체들을 한중병원으로 옮겼다"고 말하고 "철길에서 3미터 아래로 떨어진 6호차는 깡통같이 찌그러져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말했다 철도청은 사고직후 경부선 상하행선의 열차운행을 전면중단시킨 뒤 경찰, 소방대와 함께 구조작업에 나섰는데 시내 20여개 종합병원의 응급차가 모두 동원돼 부상자와 사망자들을 긴급후송했다 철도청은 대형 크레인을 동원, 전복된 열차들을 분리한 뒤 현재 사상자 구조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나 객차가 워낙 심하게 파손돼 이 부분에 끼여 숨진 시체 발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고원인> 사고원인조사에 나선 부산 북부경찰서는 기관사 노씨로부터 선로지반이 갑자기 내려 앉았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사고지점부근에서 진행중인 전선지중화 공사장의 지하 발파작업에 따른진동으로 연약한 지반이 침하되면서 사고가 난 것으로 일단 추정하고 있다. 문제의 전선지중화 공사는 한국전력이 북구 화명동삼거리-북부산변전소간 8km구간을 지하 35-40m 깊이로 직경 4m 크기의 터널을 굴착, 고압선을 매설하는 공사로 지난 89년 12월부터 삼성종합건설에 도급을 줘 한진건설(주)(대표 박주백.70)이 재하청을 받아 현재 사고지점 30여m 앞까지 굴착했는데 이날도 폭약을 이용한 지하발파작업을 한 것으로 경찰조사에서 드러났다.특히 이 지점은 지반이 연약해 그동안 몇차례 붕괴사고가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발파 진동으로 부근 주택이 피해를 입는등 지반강화 등 철저한 안전조치없이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 사고를 불러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나 경찰은 한진건설 공사현장소장등 한진건설 관계자의 신병을 확보해 이 부분에 대한 집중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구조.복구작업> 사고 직후, 부산시와 부산철도청은 북구청과 사고현장 인근 광주고속 부산지하철건설사업부에 각각 사고대책본부를 마련,구조 및 복구작업에 나섰다. 대책본부는 시 산하 공무원.경찰관.소방관.민방위대 등 1천5백여명을 긴급 동원하는 한편 소방서 긴급구조대,병원 앰뷸런스,포크레인 등 각종 차량 1백여대를 동원,구조 및 복구작업을 폈다. 그러나 지반이 4-5m 가량 깊이 함몰됐고 열차가 크게 파손되면서 전복,탈선해 복구에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빨라도 최소한 2일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밤이 되면서 소방차 3대가 서치라이트를 비추고 손전등까지 동원,철야작업을 벌였으나 비까지 내려 구조작업이 늦어졌다. 북구청에 마련된 부산시 대책본부(본부장.정병호 북구청장)는 긴급구조반, 장례절차반 등 4개반으로 편성,각종 구조 및 복구활동을 폈다 철로지반 함몰이라는 사상 초유의 철도사고는 부산시와 지중선 시공 주체인 한전의 안전에 대한 무신경이 빚어낸 어처구니 없는사고였다. 특히 철로지반함몰은 지난해 10월 이미 사고현장에서 불과 6백50m떨어진 지점에서 철로횡단공사를 마친 것으로 드러나 한차례 사고위험을 넘긴 셈이다. 사고의 직접원인은 터널굴착 도중 스며나온 지하수를 뽑아내 철로지반 지하에 동공이 생기면서 잦은 열차운행의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함몰되면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시공업체인 한진건설측도 현재 공사가 철로 30M전방까지 진행됐으며 터널 굴착공사중 계속 지하수가 흘러나와 양수작업을 병행해야 했고 28일 오전에는 양수작업으로 굴착작업을 중단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함께 공사구간은 NATM공법을 사용하면서 발파작업으로 인한 진동이 지반을 약화시킨 것도 간접원인으로 들 수 있다. 이같은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으면서도 한전측이나 부산시가 철도청과 협의조차 하지 않았고 엄연히 승인받도록 돼있는 규정을 무시한 것은 "밀어 붙이기식"편법공사와 안전의식의 결여로 밖에 볼 수 없다. 부산시는 89년6월5일 한전으로부터 도시계획승인 신청서를 접수 받아 같은해 7월12일 의견조회기관을 통보하면서 부산시도로과등 4개과와 사하구청, 부산시 교통공단, 부산도시가스, 한국수자원공사, 한국 전기통신공사 등 9개 기관만 지정했고 8월11일부터 도시계획공람 공고절차를 거쳐 89년11월8일 사업승인을 내주면서도철도청과는 협의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23㎞의 공사구간중 단2곳의 철로를 횡단하면서 철도청의승인을 얻는다는 것이 "공연히 긁어 부스럼"이라는 편의주의가 작용했다고 할수 있다. 더구나 부산시가 6개 공구로 나누어진 공사구간중 개착공사를 하는 부산지하철 구간인 하단삼거리~괴정삼거리간 2천5백30m는부산지하철공사에 위탁공사를 맡기면서도 터널구간인 사고구간에 대한 안전조치를 외면한 것은 "내몫은 챙기고 남의 몫은 알바 없다"는 안일한 업무태도에서 비롯됐다고 밖에 볼수 없다. 철도청고시 30호 (88년10월14일자)에는 철로를 횡단하는청원시설의 설치는 철도청의 승인을 얻어야하며 지상물은 시공자에게 맡길수 있으나 지하물은 공사위탁금을 내고 철도청만 시공할 수 있도록 못박고 있다. 또 철도법에는 철로 반경30m이내에는 방목조차 금지하고 있고반경 3m이내에는 시설물을 쌓아만 놓아도 처벌을 받도록 엄격히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규정에 따라 한전은 91년에 5건,92년에 4건의 수탁공?潁? 철도청에 맡겼다. 그러나, 사고가 난 구간의 지반은 지상으로부터 풍암 4미터,연암 6미터,토사 18미터의 연약지반으로 당초 터널을 29.6미터 지점에서 파려다 붕괴위험이 있어 암반이 보다 강한 30.4미터로 낮추었다는 사실은 설마하는 적당주의가 작용했다고 볼 수있다 한국전력은 경부선 열차전복사고와 관련, 사고지점 근처에서 굴착작업이 진행됐던 전력선 터널에 사고직후 막장으로부터 약 80m지점까지 토사가 물과 함께 밀려 들어온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한전은 그러나 현재는 막장으로의 접근이 통제되고 있어 토사가 밀려든 정확한 원인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전은 공사구간에서 1백m마다 시추작업을 벌여 지질조사를 했다고 말하고 사고지점에서는 철도제방 65m 전방과 5m 지난 지점에서 시추작업을 했던 결과 사고지점의 지층은 나툼공법으로 터널굴착이 가능한 연암층인 것으로 조사됐었다고 설명했다. 한전은 따라서 전력선 터널에 토사가 밀려든 정확한 원인은 터널내부에 전문가가 들어가 조사를 해야 밝혀질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사고의 충격으로 이같은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전은 사고 당일 오전에 현장 작업자들이 굴착작업을 위해 터널의 끝부분에 발파를 위한 폭약 장치용 구멍을 뚫자 물이 흘러나와 양수기로 물을 퍼낸 뒤 발파작업을 하지 않고 철수했으며 이같은 사실이 보고되지 않은 것은 이때 흘러나온 물의 양은 터널굴착 작업에서 흔히 나타나는 정도였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하고 보고가 되지 않은 정확한 이유를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부산 무궁화호 열차 전복사고는 검.경의 수사결과 사고현장 인근에서 진행중이던 한전의 전력구 설치를 위한 지하발파작업이 주원인이 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검.경합동수사반(반장 부산지검 형사1부 정종우부장검사)이 29일 밤 10시 기자회견을 갖고 밝힌 중간수사결과에서 밝혀졌다. 합동수사반장 정부장검사는 부산대 공대 박성재 교수를 비롯한 학계 전문가 4명과 철도청,부산시,검.경 관계자 등이 참석한가운데 이날 낮에 실시한 현장검증 결과를 바탕으로 "사고지점에서 3백여m 떨어진 지점에 뻘이 완만하게 경사를 이룬 상태로유출돼 있고 터널 천장과 벽면에 설치된 통풍구가 물살에 밀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점으로 미뤄 전력구 터널 막장으로부터 터널내부로 다량의 물과 토사가 유입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정부장검사는 또 "사고 전날인 지난 27일 오후 2시께 사고지점에서 36m 떨어진 터널 막장 상단에서 발파작업중 평소 보다 많은 물이 유출됐고 사고발생 2시간 전인 28일 오후 4시30분께에는 페이로다로 발파 잔해물을 제거하려 했으나 물이 심하게 들어차 작업을 중단했다는 공사관계자의 진술을 받아냈으며 그로부터 약 1시간 후인 오후 5시 25분께 철로 노반에 깊이6m 정도의 함몰 붕괴현상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정부장검사는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볼 때 철로 근처의 터널 막장은 암반층의 두께가 얇고 균열이 있는 연암층이 주성분을 이루고 있어 터널공사시 각별한 주의와 안전대책이 요구되는데도 시공업체측이 무리한 발파작업을 강행하는 바람에 균열이 확대되면서 용출수가 증가됐다"며 "이에 따라 상부의 토사가 용출수와 함께유출되면서 지하 공동현상을 일으켜 철로의 함몰사고가 뒤따랐다"고 설명했다. 검.경의 수사결과 전력구 설치공사는 삼성종합건설(주)이 한전지중선 사업체로부터 2백28억원에 도급을 받아 한진건설산업(주)에 60억7천5백만원에 하도급을 주는 등 3개 업체에 하도급을 주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한진건설산업(주) 발파책임자인 허종철 화약주임에 대한 조사결과 사고발생 전날인 지난 27일 오후 1시 20분과 4시 40분께 화약 40kg을 발파하고 사고발생 2시간 전인 28일 오후 3시30분께도 화약 15kg을 발파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경은 화약주임 허종철씨에 대한 조사결과 "암반상태가 좋을 경우에는 1.6m 깊이로 구멍을 뚫는데 지난 27일과 28일의경우 암반상태가 좋지 않아 1.2m 깊이 밖에 구멍을 뚫지 못했으며 발파시 평소 보다 많은 물이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검.경은 또 부산시가 지난 89년 한전에 대해 시공전에 부산지방철도청과 협의할 것을 조건으로 전력구 설치공사의 도시계획시설 허가를 내주었으나 한전 및 시공회사가 철도청과의 협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이 부분에 대해 철도청과 한전및시공업체 관계자들을 상대로 집중적인 수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장검사는 발파작업이 1차 사고원인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사고발생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30일 오전 사고현장 인근에 철도청 직원으로 하여금 시추공을 뚫어 터널 위치 실측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정부장검사는 또 사고발생지역 인근 주민들이 지난달 관할 북구청에 "한진건설이 지하용수를 퍼내 지하수가 고갈되고 있다"며공사중지를 요구하는 진정을 한 사실을 밝혀내고 부산시와 북구청이 실제 현장조사를 벌였는지 등 직무유기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를 병행키로 했다
첫댓글 다시는 이런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
구포열차사고군요;; 사진으로만봐도 끔찍합니다;;
제가 이것때문에 S그룹을 싫어한다죠... 다들 S그룹이 뭐가 그렇게 좋은지.. 이거 이후로 철도계에서는 S그룹의 철도관련사업 수주를 거의 거부했을것 같은데, 서울메트로 1.3.4호선 행선전광판은 어떻게 따냈을 까요?
제가 잘아는 해병대 730기 선배님이 대학재학 시절에 삼랑진에 MT를 가셨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걸 탈려고 했는데,그때 더 놀다가자는 친구 분 덕분에 저 열차를 놓쳐서 사고를 면하셨다죠.. 그분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실런지..
제가 화명동 살때였네요... 이때 아버지랑 어머니랑 뉴스보고 나가봤는데 정말 끔찍했습니다..
당시 기관차는 장폐단 운전으로 기관사 분들은 무사했었죠;;;
저 사고가 김영삼정권이 "사고정권"이 되는 서막이었습니다. 이후 위도서해페리-목포아시아나항공-성수대교-삼풍백화점-아현동도시가스-대구지하철공사장-괌대한항공-양평버스추락- 등등 육해공을 돌아가며 대형사고가 터졌죠...
마지막 대형사고는 재정, 경제계로서 IMF.... -_-
대략 저도 저때 부산 있을떄였는데.. 집에서 꽤 멀었는데도 초딩 친구들하고 철없이 구경간 일이 생각나는군요..
저사건으로 삼성건설이 없어졌죠. 지금의 삼성아파트는 삼성물산 건설사업부에서 시행하는거죠..;
제가 3살때일이네... 무슨일이지....
영종도 부기관사님 말씀처럼 김영삼정권 때 구포참사를 시작으로 여러 대형 참사가 연이어 터지면서 대한민국이 대형참사공화국이라는 세계적 오명을 쓰기도 했었지요.
다시는 이런일이 안벌어 졌으면 합니다
이게 93년으로 기억하는데..위에서 쓴 대로 구포-물금간 경부선 선로가 열차 통과 직전에 내려앉아서 기관차, 발전차와 객차2~3량이 곤두박질쳤습니다..이때 난리났었어요..제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4학년때 일인데 그때 뉴스가 아직도 생각나네요..기억에 생생해요..
이때 저는 초등학교 입학할때였습니다..(구미상모초등학교)
저두 초등학교 1학때 일이지요. 당시 이거 뉴스로 보는데, 우리 숙모님께서 얼른 채널을 바꿔버리셨다는..(당시 만삭이셨지요.)
일단 사진으로 봐서는 객차 2량과 기관차, 발전차가 폐차장으로 직행한 것 같은데, 저거 말고도 폐차장으로 간 차량이 있는지요?
삼성종합건설 = 래미안
어렸을 때 일어난 사고라 한동안 자료를 찾았었는데.. 여기서 찾게되네요.. 다시는 이러한 참사들이 일어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