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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에 비친 쌍계루의 모습 - 사진을 거꾸로 뒤집어 올린 것
쌍계루로 유명한 장성 백양사 단풍
백양사는 백암산의 기암(奇巖)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어디에서든 훌륭한 풍경을 보여 준다.
참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 분명하다.
대웅전 뒤에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9층 석탑이 있는데
세련되고 깔끔한 정제미(精製美)를 보여준다.
백양사에는 대웅전 외에도 가장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극락전, 명부전, 사천왕문 등 많은 전각을 가지고 있다.
천년고찰 백양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승고적으로,
손색없는 절경을 자랑하는 백암산이 에워싼 사찰 풍경은
평생 뇌리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다.
사계절이 아름답지만, 많은 이들은 단풍이 붉게 물든 가을을 최고로 친다.
백양사 단풍은 잎이 작고 색이 고와 ‘애기단풍’이라 불린다.
백양단풍축제가 단풍이 절정인 10월 말에 열린다.
축제는 다양한 공연, 전시, 체험행사가 열린다.
단풍 터널길이 백양사부터 일주문까지 1.5㎞ 구간에 펼쳐진다.
"백양단풍은 전국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백양사에서 깊어가는 가을 정취를 누리시기 바란다".
ERNESTO CORTAZAR - With You
백양사에는 특이하게 절 이름을 딴 불전이 있다
백양사 [白羊寺]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백암산에 있는 절.
조계종 제18교구의 본사로 40여 말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632년(백제 무왕 33) 여환(如幻)이 창건하여 백암산 백양사라고 했으며,
1034년(덕종 3) 중연(中延)이 중창하면서 정토사(淨土寺)라고 개명했다.
백양사는 내장산 국립공원구역에 포함된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에 위치하고 있다.
백양사의 원래 이름은 백암사였다. 백양사 뒤에 우뚝 솟아있는 봉우리가
바로 백암산(백학봉)이라 산의 이름을 따 자연스레 백암사라 부른 듯하다.
백양사의 창건 시기는 백제 무왕 32년(631) 때로 전해진다.
승려 무환이 창건하였고 고려시대 때 중창되며
정토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지금의 이름인 백양사로 개명되었다.
방송에 소개된 덕분에 절을 좋아하는 사람 치고 백양사를 모르는 이는 드물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내장산에 자리하고 있다.
전남 장성 쪽에는 백양사가,
산 너머 전북 정읍 땅에는 내장사가 아름다움을 겨룬다.
전남 순천의 명산인 조계산이 선암사와 송광사라는
큰 절을 품어 안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1350년(충정왕 2) 각진국사(覺眞國師)가 3창하고,
1574년(선조 7) 환양(喚羊)이 현재의 백양사라고 개칭했는데
이것은 환양의 〈법화경〉 독성소리에 백학봉에 있는
흰 양떼가 자주 몰려온 것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1786년(정조 10) 환성(喚星)이, 1864년(고종 1)에는 도암(道巖)이 중건했다.
근세 이후에는 송만암(宋曼庵)에 의해 교세와 사운이 융성했다.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 중의 하나였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극락보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사천왕문(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4호)·명부전·칠성각·진영각(眞影閣)·
보선각·설선당(說禪堂)·선실(禪室)·요사채·범종각 등이 있다.
이밖에 백양사 재흥에 힘쓴 태능(太能)의
소요대사부도(逍遙大師浮屠: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6호)와
고려 때 각진국사가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절 주위의 비자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이 절에서는 전통적인 재식(齋式)이 집전되는데
관조부(觀照部)·전경부(轉經部)·정근부(精勤部)·
송주부(誦呪部)·범음부(梵音部)가 각각 행해진다.
내장산 국립공원 백암산 지구
우리나라에서 가을 단풍으로 가장 손꼽히는 내장산 국립공원.
내장산 국립공원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눠진다.
내장사가 있는 내장산과 백양사가 있는 백암산 구역이다.
내장사는 전북 정읍시, 백양사는 전남 장성군에 속한다.
두 곳 모두 가을 단풍으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다.
그런데 사람들이 장성 백양사는 알아도 백암산은 잘 모른다.
백암산(741m)은 내장산 국립공원에 속한 산으로
바로 백양사를 굽어보고 있는 산이다.
이곳은 내장산지구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훨씬 운치가 있으며,
계곡에는 용수폭포·몽계폭포가 있어 장관을 이룬다.
그밖에 운문암·약사암·영천암·청류암 등이 있다.
백암산은 장성군 장성읍에서 북쪽으로 20㎞ 지점에 위치하며,
백양산(白羊山)이라고도 한다. 최고봉인 백학봉·옥녀봉·가인봉 등의 백암 3봉과
사옥성·사자봉 등이 솟아 있으며, 봄의 경치가 특히 아름답다.
백암산 산행은 운문암 방향에서 정상인 상왕봉을 올라 능선을 타고
백학봉에 이른 다음 약사암 쪽으로 하산하는 것이 좋다.
약사암을 거쳐 백학봉으로 오르는 길은 급경사에 계단이 많아 오를 때 힘이 더 든다
옛 선조님들이 잡은 절터를 보면 풍수지리에 매우 밝으셨던 걸 짐작할 수 있다
백학봉과 가인봉 사이 골짜기에 자리잡은 백양사의 편안한 모습
백학봉과 가인봉 사이의 골짜기에는 1,3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백양사가
비자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으며,
대웅전·사천왕문·소요대사부도전 등의 지방문화재가 있다.
백학봉과 백양사 중간 산중턱에 위치한 약사암
많은 이들이 와서 무병장수를 빌고가는 곳...
백양사의 아이콘 쌍계류
장성 백양사의 쌍계루(雙溪樓)는 백학봉을 뒤로하고
수정 같이 맑은 못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절의 이름은 백암사 – 정토사 – 백양사로 바뀌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양사의 처음 이름은 백암사였다.
백암사는 고려 때 정토사로, 조선 때 백양사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백양사의 창건이나 절 이름이 변경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글마다 책마다 다르다.
백암사 – 정토사 – 백양사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선인들은 백암사라 즐겨 불렀다.
백암산이 둘러쳐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백양사는 널리 알려진 절이 아니었다.
백양사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쌍계루였다.
고려 말 수문하시중을 지낸 행촌 이암(李嵒)의 아우이자 승려인
청수 운암(淸叟雲菴)이 쌍계루를 중건할 때
목은 이색(李穡)이 기문을 짓고,
포은 정몽주(鄭夢周)가 시를 쓰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색과 정몽주는 고려 말은 물론 조선 시대에도 최고로 추앙받던 인물이다.
그런 만큼 고려 말부터 조선 시대에 목은과 포은을 기리는
시인과 묵객들이 쌍계루를 다녀가며 남긴 시가 200편이 넘는다고 한다.
백양사에는 하얀 백학봉을 뒤로하고 계류가 흐르다
수정 같이 맑은 못을 이루는 자리에 쌍계루(雙溪樓)가 있다.
단풍이 절정일 때 여행객은 물론이고 전국의 사진가들이 자리다툼을 하는 명소이다.
아니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진가의 모델이 되는 곳이 바로 백양사 쌍계루다.
현재의 쌍계루는 한국전쟁 당시 전소하여 현대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쌍계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이층 누각이다.
아래 기둥은 돌로, 위의 기둥은 나무로 만들고 계자 난간을 둘렀다.
누각에는 이색의 기문과 정몽주의 시판이 걸려있다.
봄이면 매화 향기 은은한 고불매, 여름이면 울창한 나무 숲,
가을이면 색색의 단풍, 겨울이면 하얀 눈과 어우러지는
사시사철 아름다움을 뽐내는 백양사 쌍계루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백양사도 빼놓을 수 없는 관람코스다.
환양선사가 세운 극락보전을 비롯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고불매, 비자나무숲 등 볼거리가 가득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이색의 기문과 정몽주의 시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기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징청수가 무너진 누각을 중건하면서
친분 있던 이색에게 기문을 부탁했다.
이색은 한 번도 다녀가지 않은 누각의 이름을 짓고 기문을 쓰려니 난감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설명을 듣고 ‘쌍계루(雙溪樓)’라고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절이 두 시냇물 사이에 있는데, 물이 절의 남쪽에서 합쳐진다.
물의 근원은 동쪽이 가깝고 서쪽이 멀기 때문에 크고 작음이 있는데,
합쳐서 못을 이룬 후 산 아래로 흐른다고 한다.
절의 네면은 산이 모두 높고 험해서
무더운 여름날이면 시원한 바람을 맞을 곳이 없었다.
이제 두 시내가 합류하는 곳에 누각이 있어 왼쪽 물에 걸터앉아
오른쪽 물을 굽어보면 누각과 그 그림자가
물 아래 위로 서로 비치어 참으로 볼만하다고 한다.
절에 대한 설명은 현재의 백양사와 다르지만
쌍계루가 들어선 자리에 대한 설명은 똑같다.
백양사 입구에서 백암산 계류를 따라 걷다 마주치는 쌍계루는 기문 내용처럼
“누각의 그림자와 물빛이 위아래로 서로 비치어 참으로 볼만하다.”
연못에 비친 쌍계루
포은 정몽주도 쌍계루를 노래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지금 시를 청하는 백암사 스님을 만나
붓을 잡고 끙끙거리니 글재주가 부끄럽네.
청수가 누각 세우니 그 이름 소중하고
목은 선생 기문 지으니 가치 더해지네.
노을빛 아득하니 저무는 산은 붉고
달그림자에 배회하니 가을 물은 맑네.
오랫동안 인간사 시달렸으니
어느 날 소매 떨치고 그대와 오르리.
이처럼 목은 이색의 기문과 포은 정몽주 시를 통해 널리 알려진 쌍계루는
이후 내로라하는 문인들의 시가 이어졌다.
서거정·김상헌·박순·김인후와 같은 인물들이다.
그 가운데 담양 소쇄원을 노래해서 유명한 하서 김인후의 시를 음미해 본다.
누각 위 얼굴 알만한 두 세명의 스님
예법 잘 지키니 기뻐할만 하네.
청수의 간청과 절간의 부탁으로
포은 목은이 글을 지어 값을 더했네.
환암이 기문 쓴 것을 들었는데
이제 보니 징청수가 사람을 보낸 것이네.
병든 몸 단단한 돌길을 느리게 돌아오니
봄바람은 어릴 적 올랐던 기억나게 하네.
백양사가 유명해진 데에는 쌍계루와 애기단풍을 빼놓을 수 없겠다.
시조시인이자 사학자였던 노산 이은상 선생은
쌍계루 연못에서 바라보는 백암산의 풍광을
남도 최고의 절경(絶景)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나 역시도 우뚝 솟은 백학봉을 배경으로 쌍계루 앞 연못에 비친
화려한 단풍의 절경을 담고 싶어 늘 백양사를 그렸던 것이 사실이다.
백양사를 찾았던 날도 쌍계루 주변에는
새벽부터 많은 사진작가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소위 쌍계루 단풍 사진 포인트라고 불리는 곳은
이미 사람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좁은 징검다리를 건너갈 수도 없을 정도여서 잠시 기다려보기로 했다.
원하는 사진을 찍으면 자리를 비켜주겠거니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한참이 지나도 미동(微動)조차 없기에
결국 포기하고 백양사 구석구석을 둘러보기로 했다.
눈을 돌려 보니 쌍계루에 못지않은 훌륭한 풍경들이 백양사 곳곳에 있었다.
쌍계루는 백양사의 단풍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명소 가운데 하나다.
붉게 물든 단풍나무에 둘러싸인 쌍계루의 단아한 자태와
백암산 중턱에 우뚝 솟은 백학봉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연못에 비친 백학봉의 우아한 자태는
그야말로 ‘조화의 솜씨’의 극치를 보여준다.
연못에 비친 쌍계루의 모습과
뒤쪽의 백학봉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낸다
백양사의 트레이드 마크인 쌍계루와 연못...그리고 그 뒤의 백학봉
백학봉
쌍계루와 그 뒤의 백학봉은 백양사의 상징이다
백양사 주차장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하얗게 빛나는 암봉이 바로 백암산 백학봉이다.
노산 이은상은 '백학봉의 신비스러운 경치를 보지 않은 사람은
조화의 솜씨를 아는 체 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백학봉은 회백색의 암벽이 햇빛에 반짝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
쌍계루 주변의 단풍
저마다 쌍계루를 멋지게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
백양사 경내의 단풍
백암산 고불총림(?) 백양사
백양사를 고불총림(古佛叢林)이라고도 하는데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와 더불어 조계종 5대 총림의 하나다.
총림(叢林)이란 승속(僧俗)이 화합하여
한 곳에 머무르는 모습이 마치 나무로 가득 찬 숲과 같다는 뜻인데,
통상 총림으로 인정받으려면 참선수행을 위한 선원(禪院),
경전 교육을 위한 강원(講院), 계율 교육을 위한 율원(律院)을 모두 갖춰야 한다고 한다.
1996년 '고불총림(古佛叢林)'이란 이름으로 '총림'으로 지정되었으나,
2019년 11월 11일 조계종 중앙총회에서 총림을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총림의 구성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1996년 총림 지정 당시
'서옹 큰스님 생존 시에만 총림으로 한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지역 내에서는 해제에 반대하는 여론도 있었으며,
사찰 홈페이지에도 '고불총림' 혹은 '5대 총림'이라고 소개한다.
흔히 백양사가 있는 곳이 백양산이라고 하지만 백암산이 맞는 이름이다
백양사가 들어앉아있는 백암산 일대는
오랜 옛날부터 ‘대한 8경’ 의 하나로 손꼽혔을 만큼
호남의 명승지로 잘 알려져 왔다.
특히 계절마다 색깔이 변한다는 신비스런 백학봉을 비롯해서
거대한 바위틈 사이에서 맑은 물이 솟아나는 약사암,
선녀들이 내려와 산양과 함께 목욕을 했다는 금강폭포,
그리고 천연의 바위굴인 영천굴 등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일년내내 관광객들의 발길 이 끊이질 않는다.
먼 옛날 이곳 백양사를 찾은 포은 정몽주는
“지금 백양승을 만나니/ 시를 쓰라 청하는데/
붓을 잡고 생각하니/ 재주 없음이 부끄럽구나” 라고
백양사 일대의 아름다움을 미처 글로 표현하지 못함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백양사 단풍은 잎이 작고 색이 고와 '애기단풍'으로 불린다.
애기단풍이 흐드러지게 물들어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1,4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옛 사찰답게 백양사 경내 곳곳에서는
감히 범접하지 못할 거센 기운이 흐르고 있다.
게다가 사찰을 둘러싸고 있는 기암괴석과 푸른 비자림,
그리고 마치 산불이라도 난 것처럼
붉게 타 들어가는 단풍은 백양사의 명성을 더하고 있다.
맑은 가을하늘과 햇빛에 비치는 투명한 단풍잎이 잘 어울리는 가을풍경
대웅전 뒤로 백학봉이 웅장하게 버티고 서 있다. 백학봉을 뒤로 하여 일부러 절터를 그렇게 앉힌건 아닐런지...
백양사의 가을단풍이 흰색의 백학봉과 어우러져 한층 더 아름답다
백양사 경내 대웅전 뒤쪽에 서있는 7층석탑과 석등
가운데 건물이 종루...그 뒤로 백학봉의 자태가 의젓하다
범종루

첫댓글 내장사 단풍만큼 아름다운 단풍은 없다고 단언 합니다 그러니까 딱 20년전 친구들과 저희부부 이렇게 6명이서 밤 1시에 출발해서 새벽 5시에 내장사 도착 했는데 벌써 주차장은 만차직전 이었지요 11월첫째주 토욜 이었는데 사람사람 말도 못하게 많았답니다 날밝기를 기다리다 아침은 굶고(차안에서 간단하게먹긴했음) 관광을 시작 했는데 내장산 단풍터널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답니다 그리고 가장 좋았던 단풍은 백양사 였답니다 빨간단풍과 노란 은행잎의 조화가 너무 아름다웠고 아침의 그 쌀쌀했던 청량감과 그야말로 완벽히 빨간 단풍은 그 이후로는 못봤다는겁니다 그뒤로 한 다섯번 내장산을 갔었는데 그때의 그 단풍은 아니었단말이죠 단풍이 해걸이를 한다해서 담담해도 갔지만 역시나 그때 만큼은 아니었네요 강천산 단풍이 아름답지만 내장산이 최고 였다고 생각합니다 백양사로 해서 담양에서 떡갈비를 아주 맛있게 먹었던 너무나 행복했던 추억을 청솔님 사진을 보니까 생각이 나서 글을 올렸네요 좀 지루 했지요?
내장사 단풍이 대단하지요
저도 한 때는 내장사로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해인가 시내에서부터 차가 막혀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선운사였습니다
그 이후로 내장사엔 간 적이 없습니다
유원지 분위기와 번잡스러움이 싫어서지요
너무 상업화 됐다고 느낍니다
저는 선운사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구요
인근의 장어구이집들도 좋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내소사에도 들르지요
강천산의 단풍도 만만치 않습니다
고교교우회 산악회에서 산행을 갔었지요
입구에서부터 차가 막혀 한참을 걸어 들어갔지요
백양사 단풍도 내장사만은 못해도 대단합니다
우리나라 단풍 명소가 곳곳에 여러 곳입니다
긴 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