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도 유명사찰 순례 기행문
일정 : 1991. 8. 4 ~ 8. 7
동행자 : 박현수, 정지홍, 르망
4일 : 금산사, 백양사, 운주사
5일 : 송광사, 선암사, 화엄사, 천은사, 실상사
6일 : 해인사, 직지사
1991년 8월 4일.
이른 아침인 5시 40분경 잠에서 깨어났다.
어제 밤에 준비한 박스에 넣은 준비물을 차에 싣고 성룡 네로 출발. 성룡 네서 짐을 싣고 6시 25분쯤 성룡 아빠와 함께 출발. 내가 운전을 하고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호법 인터체인지에서 중부고속도로로 옮겨 타고 신나게 달렸다. 아침밥은 휴게실에서 먹기로 하고...
날씨가 흐리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만 같다.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려 여산 휴게소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식사 후 다시 出發.
운전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140km~150km를 밟아 보는가 보다.
전북 전주에서 고속도로를 내려와 모악산 금산사에 들어갔다.
금산사 경내에 들어서니 국보 제 62호인 금산사 3층 미륵전은 외부 보수 중이라서 외관은 볼 수가 없고 미륵전 안에 들어가 참배하고 5,000원씩 시주했다. 대웅전에도 참배하고, 금산사를 나와서 국도를 따라 내장산 백양사엘 갔다. 백양사에서 성룡아빠가 용인에 계신 현몽스님께 전화를 걸어서 전라도 쪽에 가볼만한 좋은 곳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으나, 현몽 스님도 특별히 잘 아는 곳이 없는 모양이다.
할수없이 지도에서 찾은 전남 나주에 있는 운주사엘 들러서 송광사에서 자기로 했다.
포장도로를 달려 장성과 광주를 지나고, 화순을 거쳐, 묻고 물어서 비포장 도로를 타고 운주사 입구에 도착하니 입구부터 탑과 불상들이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다.
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운주사엘 들어갔으나 너무 작은 절이다. 여승이 있다고는 하지만 보이지 않아 물어 보니 여섯 분 중 세 분은 출타 중이고 세 분은 윗 쪽 선방에서 공부 중이시란다.
작은 대웅전에 들어가 참배하고 나와서 산엘 올랐다. 산 위에 있는 탑과 불상들을 보기 위함이다.
천불천탑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스물 몇 개의 탑과 마흔 몇 분의 불상이 남아있을 뿐이라고한다.
모두가 매우 오래된 것들로 그 솜씨가 정교하지 못하고, 거칠며 투박하나 그런 대로 아주 멋이 있다.
산 중간쯤에는 매우 크신 불상 두 분이 계신다. 큰 바위에 불상을 조각한 뒤에 너무 크고 무거워서 세우지 못하고 그대로 누운 채 둔것 이라고한다. 이름하여 와불상이라 부른다. 이불상이 일어서는 날 세상이 용화세계가 되어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 온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단다.
옆에 있는 소나무에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광각렌즈로 겨우 잡힐 정도로 크신 불상이시다.
내려와 화순으로 해서 승주군에 있는 조계산 도립공원 송광사를 찾아갔다.
불교의 삼보 중 승보 사찰로써 정법을 널리 선양하고 열 여섯 분의 국사를 배출한 곳이란다.
송광사 앞에 있는 커다란 여관에 방을 잡았다. 저녁 식사는 밖에 나가 식당에서 먹고 들어와 잤다.
차는 공원 앞에 넓다란 주차장 한 켠에 세워 두었다.
내일은 화엄사와 북쪽에 위치한 실상사를 찾아가 봐야지.
1991년 8월 5일 비, 흐림.
아침에 송광사에 들어갔다. 대웅전에 있는 佛像이 매우 크시고, 대웅전이 커선가 중간 기둥이 많이 있다. +자 식의 대웅전을 보다. 좀처럼 보기 힘든 양식이었다. 대웅전 뒷 편으로 돌아가 보니 불상이 너무 커서 받침돌이 크게 놓여 있다. 불상의 무게가 매우 무거운 탓이리라. 승보전에 들르니 1,250분의
서로 다른 비구승의 모습들이 모셔져 있어 매우 이채롭다.
국보 제 42호 목조 삼존불상이라는 보조국사께서 갖고 다니시던 불상은 박서방의 얘기를 듣고 사진으로만 구경했다.
대웅전, 승보전에 참배하고 이슬비를 피하여 사진을 찍고 나왔다. 대웅전 앞에서 마애불, 미륵불이라는 책과 송광사 안내서를 샀다.
송광사를 보고 난 후 대승불교인 태고종이 자리 잡고 있다는 선암사를 향했다.
박서방의 얘기로는 조계종에서 대승불교 태고종에게 많은 절을 빼앗았지만 선암사는 뺏지 못한 유일한 곳이란다. 일제시대에 태고종이 번성하다 나중에는 조계종이 번창하면서 모두 태고종에게서 재산을 받았었는데 선암사는 아직도 태고종이 갖고 있고 승려들의 자식이 있는 대승불교란다.
선암사도 송광사보다는 조금 작은 듯하지만 잘 보존되어있었고 매우 큰 절이다. 절 입구에는 승선교라는 크고 높은 돌다리가 아치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아름답다.
승선교외에도 작은 돌다리들이 몇 개 보인다.
선암사 입장권에 있는 승선교의 모양을 따라서 개울에 들어가 입장권에 구도를 그대로 흉내내어 사진 찍어 봤다. 광각렌즈를 끼고 촬영하니 입장권 사진보다 더 넓게 보인다. 송광사에서도 많이 보이던 목백일홍의 붉은 꽃이 여기저기 보인다. 지나는 스님들의 머리가 삭발한지 오래됐는지 만나는 스님마다 머리가 검게 자라 있다. 결혼도 하는 대승불교이니 삭발도 안 해도 되는 것인가?
그렇지만 고루한 생각일지는 몰라도 스님은 파르라니 깎은 머리와 회색 장삼에 흰 고무신을 신어야 스님의 멋이 풍긴다. 자식도 있다는 스님들이니 머리도 기르겠다는 건가?
절 앞에는 깨끗한 집들이 여러 채 보인다. 아마 스님들의 처와 자식들이 살고 있는 집인 모양이다.
선암사를 나와서 승주와 구례를 지나 화엄사를 찾아 갔다.
지리산은 산 아래부터 짙은 구름에 휩싸여 있다. 정상 쪽은 비가 내리고 있으리라.
화엄사 입구에 들어가니 가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다. 절 입구에서 절 관람료와 주차료등 4,500원이나 내고야 차를 절 안 입구까지 몰고 들어갔다. 절 입구에는 차들로 꽉 차 있어 비탈진 절 아래 쪽에 차를 두고 대웅전과 승보전에 참배했다. 역시 古寺刹답다.
智異山 華嚴寺란 현판과 智異山 大華嚴寺란 현판을 사진 찍고 대웅전등 절 전경을 연속 사진으로 찍어 봤다. 화엄사를 나와 간단히 점심을 먹고 실상사를 가기 위하여 천은사 방향으로 돌아서 지리산 횡단도로를 올랐다. 안개비가 계속 내리고 있고 구름이 짙게 깔리고 있다. 삼성재를 올라 운해를 배경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삼원계곡을 거쳐 반선 휴게소에 차를 세워 놓고 뱀사골을 올라가 보다. 뱀사골이 거의 끝날 때까지 올라가서 맑은 계곡 물을 보면 시원해지는 마음이 수많은 텐트와 끊임없이 오르는 인파들을 보며 산에서의 행동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걸 느낀다. 계곡을 내려와 차를 몰고 실상사로 향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실상사를 봐야 하는데 걱정이다. 어렵지 않은 코스는 내가 운전하고 실상사 입구까지 갔다. 입구에서 차를 막으며 주차료를 내란다. 800원이란다. 그럴 바에는 차를 민박집에 두고 가기로 하고 민박을 구했다. 민박집 할배에게 물어 보니 우리가 차를 세워 놓은 곳은 요금을 징수하는 곳이 아니란다. 민박을 1만 원에 정하고 차를 세워 놓고 민박집에서 요금을 안내도 된다고 하여 돈을 찾은 뒤 실상사로 걸어 들어갔다. 작은 절이다. 이름만 요란했지, 규모도 작고 조용하기만 하다.몇 장의 사진을 찍고 걸어 나오며 이제 이 곳에서 잠잘 일이 없어졌으니 한 발자국이라도 해인사 가까이에서 자는 것이 좋겠기에 경상도로 갔다. 함양이나 거창에서 자야 하는데 저녁을 먹고 자려면 함양이 좋겠다. 함양에 도착하여 몇 군데 장급여관 중 제일 좋은 여관에서 16,000원을 주고 특실에 들어갔다. 에어컨이 있으나 가동 不可能이란다. 밖에 나가 저녁 밥을 먹는데 전라도에서 먹을 때는 열 대여섯 가지의 반찬이 나왔는데 이 곳에서는 일곱 여덟 가지의 반찬으로 줄어 버리고 맛도 별로 없다. 저녁을 먹고 내일을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1991년 8월 6일 화요일. 흐림 후 맑음.
여관을 나와 어느 길가 식사집에서 시원찮은 경상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88고속도로를 달려 해인사IC에 도착. 해인사 정문에 도착하니 주차료로 1500원과 관람료 3000원을 합하여 4500원을 받는다. 아직껏 구경한 곳 중 최고로 비싸다. 안으로 들어가니 차들이 여기저기 빽빽이 줄지어 있다. 안내판에는 주차료는 당일은 1000원이다. 500원을 더 받았다. 숙박으로 받고는 나갈 때 돌려줘야 되는데 돌려 주는지 모르겠다. 해인사에 들어가 대웅전, 승보전에 참배하다.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각을 둘러 봤다. 현판 글씨를 사진 찍었다. 환기 시설이 매우 잘돼 있어 장경각 내부가 무척 시원했다.과학적으로 되어 있으니 몇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목각 대장경판이 존재하는 것 같다. 정말 대단한 과학이다.
해인사에서 나와 서쪽으로 조금 오르니 꽤 큰 암자가 나온다. 원당암이란다. 스님이 이 곳에서 입적하셨단다. 스님들이 큰 절에서 암자까지 차를 타고 다닌다. 소나타 GLI이다. 원당암과 삼선암 두 군데의 암자를 본 뒤 해인사 반대편에 있는 전망대를 향해 올랐다. 꽤 가파르다. 전망대에 올라 가야산 정상을 바라만 보다. 올라서 야호를 외치고 싶은 마음이 뭉게구름처럼 일어난다. 이 전망대에서 바라 보니 해인사의 여기저기가 꽤 잘 보인다. 몇 장의 사진을 찍은 뒤 하산하는 도중 박서방이 산속에서 떨어진 잣을 발견했다. 여러 송이를 주웠으나 담아 갈 그릇이 없다. 내가 차 있는데 까지 가서 비닐봉투 4개를 주워 와서 담아 갔고 왔다. 전부 22송이나 된다. 꽤 많이 주운 셈이다. 집에 가져가 땅 속에 묻어야지.
해인사를 나와 김천 쪽 도로를 택해 소로길을 달렸다. 두 군데나 비포장된 곳이 있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도로를 한참동안이나 달려서야 황악산 직지사에 도착했다. 절 입구에 큰 문에 황악산 직지사란 글씨를 찍는데 후래쉬가 작동을 안 해 몇 번이고 고쳐 찍어 보지만 정상 작동이 안 된다. 어제 내려뜨린 탓인가? 고장인 모양이다.
절에 들어가니 좌우에 삼층 석탑이 있다. 대웅전에 들어가 참배 후 옆에 있는 비로전에도 참배하고 석탑 앞에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꽤 어두워져 있다. 경부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차가 밀리기 시작한다. 걱정이다. 이천까지 얼마나 걸릴까? 정상적으로 달리면 11시면 도착이 가능하겠지만, 이대로면 열 두시에도 못 들어가리라. 경부 고속도로 변에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고 다시 달려 보지만 속도를 낼 수가 없다. 대전을 지나 영동 고속도로에 진입해서야 달릴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부지런히 달려 보지만 열 두시가 금방 지났다. 사동리를 지나 이천읍 보르네오에 도착하니 열두시 삼십 여분. 짐을 내려 놓고 박서방을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삼박 사일의 여행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