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산행은 9일(토) 창경궁에서 진행되었다. 입동(7일)이 지나며 겨울이 시작된다는 말처럼 아침
공기는 쌀쌀했지만, 늦가을의 맑은 하늘 아래 따스한 가을볕이 내리쬐어 이례적으로 기온이 빠르게
올라 산책하기 좋은 날이다. 창경궁의 뜰은 깊어진 가을의 정취 한 가운데 있었다. 새파랗게 청명한
하늘, 수북이 쌓인 낙엽 위로 아직 남아있는 잎새들이 하나둘 포개지는 장면을 보니 깊어진 가을을
실감한다. 잠시 애잔한 마음이 자리잡더니 반갑게 만난 친구들과 함께 걸으니 이내 가신다. 창경궁
뜰을 거닐며 유적 관람 약 2시간 후 연결된 종묘공원을 통과, 종로 3가 낙원상가옆 식당까지 총 2시
간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 일 시 : 2024.11.9(토) 10:30
● 대 기 : 혜화역 4번 출구(전철 4호선)
● 산 행 : 창경궁
● 점 심 : 13시, ‘ 숨은 고기집' (02-737-4082)
* 종로 3가역 5번출구,4분거리
● 참 석 : 30명(남: 21 , 여: 9)
권우택, 김노성, 김동규, 김광호, 김명재, 김용기, 김형환, 나상봉, 남철석, 박진억,
박영춘, 송길현, 신완옥, 윤민석, 이자형, 이남희, 전권수, 정준호, 조규상, 조성일,
최효석
김귀임, 김실림, 김영순, 김춘희, 문연순, 박복순, 박선옥, 안재자, 이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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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昌慶宮)은 성종이 세 명의 대비를 위해 옛 수강궁에 창건한 궁이다.
창경궁은 원래 1418년(세종 즉위) 세종이 상왕 태종을 위해 창건한 수강궁(壽康宮)이 있던 자리이다. 이후 1483년(성종 14) 성종이 세 명의 대비(세조의 왕비 정희왕후, 덕종의 왕비 소혜왕후, 예종의 왕비 안순왕후)를 위해 수강궁을 크게 확장하고 궁의 이름을 창경궁이라 하였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경계 없이 동궐(東闕)이라는 하나의
궁궐 영역이었으며 주로 왕실 가족들의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창경궁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16년(광해군 8) 중건하였으며, 1830년(순조 30) 대화재로 대부분의 건물들이 소실되었다가 4년 뒤에 중건하였다.
그러나 1907년 순종이 황위에 오른 후 창경궁 내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조성하면서 궁궐로서의 모습을 잃기 시작하였다. 1911년에는 일제에 의해 궁의 이름마저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되어 궁궐이 아닌 공원화가 되어 훼손이 심하였다. 광복 후 1983년에 다시 창경궁으로 명칭을 회복한 후, 궁궐 경내에 있던 동물원을 이전하고 본래 궁궐의 모습으로 복원공사가 진행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창경궁은 남향으로 있는 다른 궁궐과 달리 정문과 정전이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창경궁 관람코스(관람)
아래 관람 코스는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홈페이지 자료를 옮겨온 것이다. 우리들은 이 코스를 따르지 않고
종묘 통과하는 방향성만 유지, 걷다가 보이는데로 관람하여 체계적인 관람을 하지 못해 그 내용을 상세히 게재
한다.
창덕궁 관람코스(미 관람)
홍화문(弘化門)
홍화문(弘化門)은 창경궁 창건 당시에 처음 건립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16년(광해군 8)에 재건되었다.
같은 동궐인 창덕궁의 정문(돈화문)은 앞면이 5칸인데 비해 홍화문은 3칸의 작은 규모로 지었다. 정조는 1795년(정조 19) 어머니 혜경궁 홍씨(헌경황후)의 회갑을 기념하여 홍화문 밖에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옥천교(玉川橋)
옥천교(玉川橋)는 응봉산의 명당수가 창덕궁의 존덕정을 지나 창경궁의 북쪽 춘당지를 거쳐 옥천교로 흘러
남쪽으로 흘러간다. 다리 양쪽 아래에 아치(무지개) 모양 사이에는 도깨비 얼굴의 귀면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은 물길을 타고 들어오는 귀신을 쫓아내어 궁궐을 보호하고 수호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옥천교는
궁궐에 남아 있는 다리 중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명정전(明政殿)
명정전(明政殿)은 창경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명정전은 1484년(성종 15)에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군 8)에 재건
되었는데, 현재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은 중층 규모
이지만 명정전은 단층으로 지어졌다. 우리는 이 곳 중심으로 머무르며, 촬영하였다.
문정전(文政殿)
문정전(文政殿)은 창경궁의 편전으로, 왕이 신하를 만나 업무 보고를 받고,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던 집무실이다. 그러나 편전 외에 왕실의 장례 때 혼전(魂殿, 왕과 왕비의 신주를 종묘로 모시기 전까지 임시로 신주를 모시는 건물)으로 쓰인 경우도 있었다. 문정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대에 다시 지었고, 일제강점기 때 소실되었다가 1986년에 다시 복원하였다.
경춘전(景春殿)
경춘전(景春殿)은 1483년(성종 15) 성종이 어머니 인수대비(소혜왕후 한씨)를 위해 지은 대비의 침전이었다.
그러나 정조와 헌종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인현왕후 민씨(숙종 두 번째 왕비), 헌경황후 홍씨(혜경궁, 정조의
어머니)가 이곳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아, 대비뿐 아니라 왕비와 왕세자빈의 생활 공간으로도 많이 사용
한 듯하다.
환경전(歡慶殿)
환경전(歡慶殿)은 왕이나 왕세자가 생활하던 내전 건물로 보인다. 환경전은 창경궁이 창건될 때 지어졌다가 임진왜란, 이괄의 난, 순조 연간 대화재 등으로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1834년(순조 34)에 재건한 것이다. 이곳에서 중종과 소현세자가 세상을 떠났다.
통명전(通明殿)
통명전(通明殿)은 왕비의 침전이며 내전 중 가장 으뜸이 되는 건물이다. 통명전은 월대 위에 기단을 형성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으며, 연회나 의례를 열 수 있는 넓은 마당에는 얇고 넓적한 박석(薄石)을 깔았다. 통명전
서쪽에는 동그란 샘과 네모난 연못이 있으며, 그 주변에 정교하게 돌난간을 두르고 작은 돌다리를 놓았다.
통명전은 창경궁에 남아 있는 전각 중에서 용마루가 없는 유일한 건물이다.
대온실(大溫室)
대온실(大溫室)은 1909년(융희 3)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철골구조와 목조가 혼합된 구조체를 유리로 둘러싼 서양식 온실이다. 준공 당시에는 열대지방의 관상식물을 비롯한 희귀한 식물을 전시하였다. 1986년 창경궁 복원 이후에는 국내 자생 식물을 전시하고 있다. 온실내 식물들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대온실 역사
대한제국 순종 시기인 1908년(융희 2년)에 짓기 시작했고, 이듬해인 1909년(융희 3년) 11월 1일에 개관했다.
당시 대한제국은 실권을 일제에게 모두 빼앗긴 상태였고, 일제는 대한제국의 모든 내정에 간섭하고 있었다. 1907년(융희 원년)에 순종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긴 후, 일제는 근심이 많은 순종의 마음을 달랜다는 명목으로 창덕궁 옆에 있는 창경궁을 유원지로 개조하여 동물원과 식물원을 세우고 이름도 '창경원(昌慶苑)'으로 바꾸었다. 설계는 일본 신주쿠 교엔 담당자였던 일본인 원예학자 후쿠바 하야토(福羽逸人)가 맡았다. 시공은 프랑스 회사에서 맡았지만 어느 회사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창경원 대온실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당시 동양 최대의 규모였다. 대온실에는 당시로서도 쉽게 보기
힘든 열대 식물을 비롯한 다양한 화초들을 전시해두었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이왕직식물원(李王職植物園)'으로 불렸다. 8.15 광복 이후에도 창경원은 궁으로 돌아
가지 못한 채 계속 유원지로 남았고 식물원도 예전과 같이 기능했다. 그러다 1950년 6.25 전쟁으로 창경원은
폐원했고, 대온실은 폭격으로 인해 일부 훼손되었다.
정부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인 1955년, 1961년 12월, 1976년 4월에 총 3번에 걸쳐 수리했다.
1969년에는 대온실 북측에 돔 지붕을 한 현대식 온실 2동을 지었다.
1980년대에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복원하자는 여론이 생겨났고, 이에 문화공보부와 서울특별시에서 〈창경궁
복원 계획〉을 발표했다. 그래서 1983년 12월부터 일반인의 출입 및 관람을 중단시킨 후, 일본식 건물 및 놀이
시설과 동물원, 식물원 시설 등을 없애고 관련 시설들을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서울대공원으로 옮겼다.
창경궁이 복원된 이후에도 대온실 건물은 철거하지 않은 채 남겨 두었고, 이후 문화재청에서 2004년에 대온실
을 국가등록문화재 제83호로 지정했다. 그리고 2016년 8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보수공사를 한 후 일반에 다
시 개방했다.
한편 김금희 작가의 신작 장편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동양 최대 유리 온실이었던 창경궁 대온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이 최근 발간되었다.
춘당지 풍경 춘당지 주변은 산책 코스로도 인기가 많았다. 봄에는 창경원 밤 벚꽃놀이를 즐기는 명소였고,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도 기능했다.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에는 관람객이 뱃놀이를 즐기는 장소로도 쓰였다. 그렇게 춘당지는 역사성을 잃은 채 시민들의 여가 공간이 되었다. 1984년 문화재관리국에서 창경궁 복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여러 놀이 시설, 편의 시설을 전부 철거했고, 현재의 모습으로 재정비했다
홀로 힌 빛을 발하는 白松 백송은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벗겨져서 흰빛이 되므로 백송 또는 백골송(白骨松)이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로서 조선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은 것이다. 백송은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소나무이고,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곤지암 화담숲, 조계사 등에도 수백년 묵은 백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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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통과
인사예술마당
"한국의 몽마르트"라고도 불리며,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예술 공간이다. 이곳은 다양한 예술 작품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소로, 한국 전통과 현대 예술이 어우러진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몽마르트르와 같이 예술가들이 모여 창작하고 교류하는 장소로서, 그림, 공예품, 설치 미술 등 다양한 예술 장르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인사동의 특색 있는 분위기와 함께 예술에 대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 예술 애호가들과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또한, 한국의 전통과 현대적 요소가 조화를 이루며, 인사동 거리를 거닐다 보면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예술에 대한
관심과 문화를 경험하기 좋은 장소다.
" 춤 예술계의 대가, 사당동에서 인사동으로 떴다"
광화문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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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과 창덕궁 차이
창경궁과 창덕궁은 모두 서울에 위치한 조선 왕조의 궁궐로, 각각 독특한 역할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창경궁
역사와 배경: 창경궁은 1483년 조선 성종이 세조의 비(妃) 정희왕후와 대비들을 모시기 위해 건립한 궁궐이다.
이후 여러 차례 재건과 수리를 거쳤지만,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이 창경궁을 식물원과 동물원으로 바꾸어 훼손되었다. 현재는 복원 작업을 통해 다시 궁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특징: 창경궁은 상대적으로 아담하며, 조용하고 편안한 느낌이 특징. 이곳에는 명정전과 문정전 같은 중요한 건물이 있으며, 대중에게 친근한 공간으로 개방되어 있어 산책하기 좋다.
주요 공간: 명정전(창경궁의 정전), 통명전, 옥천교 등은 조선 시대의 정교한 건축미를 느낄 수 있다.
창덕궁
역사와 배경: 창덕궁은 태종에 의해 1405년에 건립된 궁궐로, 본래 임시 궁으로 사용되었으나, 한양의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린 아름다운 정원과 궁궐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오랫동안 왕들이 선호한 거처였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에 탄 이후 200년간 조선의 중심 궁궐 역할을 했다.
특징: 창덕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특히 비원(후원)으로 알려진 아름다운 정원이 유명하다. 자연의 흐름을 살려 인위적인 조경을 최소화한 후원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주요 공간: 인정전(정전), 대조전, 희정당, 낙선재와 더불어 비원(후원)은 창덕궁의 가장 큰 매력으로 손꼽힌다.
후원은 왕실의 사적 공간으로, 연못과 정자 등이 조화를 이루며 자연 속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구분 정리
역할: 창경궁은 대비들을 모시기 위한 공간으로 시작되었고, 창덕궁은 임시 궁궐로 세워졌으나, 실제로는 왕들의 주요 거처가 되었다.
특징적인 공간: 창경궁은 편안하게 산책하기 좋은 궁궐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개방된 반면, 창덕궁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더 보존되어 있으며, 특히 후원이 인위적 조경이 거의 없는 자연미로 유명하다.
자연과의 조화: 창덕궁은 지형을 그대로 활용한 건축과 정원 설계로 유명하며, 창경궁은 좀 더 소박하고 일상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두 궁궐은 위치가 인접해 있지만, 각각의 건축적 특징과 조선 왕조의 문화적 아름다움을 다르게 보여주며 방문자에게 다양한 역사적 경험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