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일부를 역사적 사실 기록을 바탕으로 현대적 테마로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1. 척박한 땅 회인(懷仁)에 부임한 청백리
1623년(계미년), 수은 이홍조 선생의 나이 마흔아홉이었다. 조정의 부름을 받아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오른 선생은 그해 11월, 충청도회인현감(懷仁縣監)으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 회인은 강가와 골짜기에 끼어 있는 척박한 고을이었다. 백성들은 가난에 찌들었고 물자는 바닥나 있었다. 선생은 부임하자마자 자신을 다스리는 데는 청간(淸簡, 맑고 간소함)을, 백성을 다스리는 데는 인서(仁恕, 어질고 용서함)**를 근본으로 삼았다.
특히 금강(錦江)의 관선(官船)과 그물을 관리하며 백성을 착취하던 폐단을 단칼에 끊어냈었다. 선생은 부임 기간 내내 단 한 번의 사냥도 나가지 않았고, 강에서 잡힌 물고기 한 마리도 사적으로 받지 않았다. 전주 사람 익량(翊亮)은 이를 보고 "백성들이 물고기를 빼앗기는 고통에서 벗어났으니, 참으로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어른이다"라며 칭송했다.
2. 권력의 압박과 선비의 기개
회인현감 재직 시절, 서울의 권세가와 얽힌 큰 송사(訟事)가 터졌다. 한쪽 당사자가 권세가의 편지를 소매 속에 숨겨와 선생에게 은밀히 청탁을 시도했다.
"이것은 도성 안의 귀한 분이 보내신 글입니다. 살피어 처리해 주십시오."
그러나 선생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요동도 하지 않았다(先生不爲撓). 즉시 법대로 판결하여 보고하니, 고을 사람들의 가슴이 다 시원해질 정도였다. 선생은 그렇게 권력 앞에서도 오직 도(道)만을 따랐다.
3. 을유년(1625년) 봄, 사위 박미(朴渼)를 맞이하다
을유년(1625년) 봄 혼례와 관련한 사실의 기록은 청백함으로 잘알려진 수은이홍조 선생의 고집스러운 청렴함이 잘 드려난다.
낡은 옷소매에 담긴 진심: 회인현감의 따님, 박미(朴渼)에게 시집가던 날을 기록한다.
1. 가난한 고을의 더 가난한 현감
충청도 회인현감(懷仁縣監)으로 금강 줄기가 굽이치는 이곳에 부임한 수은(睡隱) 이홍조 선생의 생활은 현감이라는 지위가 무색할 정도로 초라했다. 부임한 지 3년이 넘도록 관아 사람들은 처음에 입고 온 옷이 해지고 때가 타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垢弊不堪)이었으나, 선생은 이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강가 고을이었으나 식탁에는 고기 한 점 오르지 않았고, 권세가의 청탁 편지는 뜯지도 않고 돌려보냈다. 백성들은 이런 선생을 '살아있는 포청천'이라 부르며 존경했지만, 정작 안살림을 책임진 부인 남씨(淑人 南氏)의 속은 타 들어갔다. 바로 금지옥엽 키운 딸의 혼사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2. 박무회의 아들 박미(朴渼), 사위가 되다
혼처는 무안 박씨 가문의박미(朴渼)였다. 수은이홍조 선생의 첫번째 따님이자 귀하신 신분이었고 그것도 서애류성룡의 외손주 수은이홍조의 첫따님을 시집보내날이라 주변의 관심이 어떠하였을까?
사위의 아버지 박무회(朴武晦) 선생은 수은 선생이 평소 그 기개와 학문을 높이 사던 인물이었기에 두 집안의 결합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혼례를 치를 준비를 시작하자마자 커다란 벽에 부딪혔습니다.
선생은 엄명을 내렸습니다.
"불이번관(不以煩官)하라. 관청의 물건은 단 실 한 오라기도 축내지 말고, 오직 우리 집안의 물건으로만 혼수(粧奩)를 마련하라."
3. "우리의 도(道)는 본래 이러한 것이오"
부인 남씨가 집안 창고를 열어보았으나, 그곳에는 먼지만이 가득했다(家貧無長物). 현감의 따님을 시집보내는데 변변한 이불 한 채, 비단 한 필이 없었다. 부인은 참다못해 눈물을 흘리며 선생에게 하소연했다.
"대감, 고집도 정도껏 하셔야지요. 명색이 한 고을의 수령이신데, 딸아이 가마 안에 헌 옷가지들만 넣어 보낼 작정입니까? 저 박씨 가문에서 우리를 무어라 생각하겠습니까."
부인의 비통한 탄식에 수은 선생은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나직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오도고여시야(吾道固如是也). 우리의 도는 본래 이처럼 맑고 가난한 것이오. 겉치레가 화려하지 않다고 해서 우리의 기개까지 가난해지는 것은 아니니, 부인은 마음을 굳게 먹으시오."
4. 조카 효준(孝濬)의 등장과 극적인 반전
혼례 날짜는 다가오고, 집안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을 때 뜻밖의 손님이 회인 관아에 도착했다. 바로 수은 선생의 형님 아들인 **효준(孝濬)**이었다. 그는 당시 호남 지역에서 공물을 거두어 한양으로 올라가던 길에 숙부의 소식을 듣고 들른 것이었다.
관아의 처참한 몰골과 사촌 여동생의 안타까운 혼수 형편을 본 효준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자신이 가져가던 물자 중 포목 수십 필을 선뜻 내놓았다.
"숙부님, 이것은 제 사사로운 정성입니다. 부디 누이동생의 앞날을 위해 써 주십시오."
이 극적인 도움 덕분에 비로소 따님은 최소한의 격식을 갖추어 박씨 가문의 사위 박미에게 출가할 수 있었다. 수은 선생은 조카의 등을 두드리며 말없이 고마움을 표했다.
5. 가마 뒤에 남겨진 청풍(淸風)
딸을 보낸 그해 5월, 고생만 하던 부인 남씨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선생은 아내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백성들이 사준다는 상여를 거절하고 외삼촌에게 빌려온 상여로 아내를 고향 안동으로 보냈다.
이후 선생이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그의 봇짐 속에는 오직 몇 되의 보리쌀뿐이었다(行槖蕭然).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을지 모르나, 훗날 박씨 가문에 시집간 따님은 "우리 아버지는 천하에서 가장 부유한 도(道)를 물려주셨다"며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
이를 통해 수은(睡隱) 이홍조 선생이 회인현감 재직 시절 보여준 청렴(淸廉)과 지조(志操), 그리고 따님의 혼례를 통해 보여준 검소(儉素)함은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들에게 단순한 가문의 역사를 넘어선 깊은 울림과 교훈을 준다.
곧 이는 우리가 새겨야 할 네 가지 핵심 교훈을 던져준다.
수은 선생이 남긴 정신적 유산
1. 吾道固如是也 (오도고여시야): "나의 길은 본래 이러하다"
따님의 혼수가 없어 부인이 탄식할 때 선생이 던진 이 한마디는, '세상의 잣대에 흔들리지 않는 자기 확신'을 의미한다.
교훈: 남들처럼 화려하게 살지 못한다고 기죽을 필요가 없다. 내가 정한 올바른 가치관(道)이 있다면, 가난이나 주변의 시선은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가르친다.
2. 不以煩官 (불이번관): "공(公)과 사(私)를 칼같이 구분하라"
현감이라는 높은 직위에 있으면서도 따님의 혼례에 관청의 물건을 단 하나도 쓰지 않은 결벽에 가까운 청렴함은 공직자의 최고 덕목이다.
교훈: 내 손에 쥐어진 권한이나 자산이 내 것이 아닐 때, 그것을 사사로이 쓰지 않는 도덕적 엄격함을 가져야 한다. 이는 훗날 후손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리더가 되는 밑거름이 된다.
3. 不爲撓 (불위요): "권력 앞에 굴복하지 않는 강직함"
서울의 권세가가 보낸 청탁 편지를 소매에 넣고 온 자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판결을 내린 모습이다.
교훈: 눈앞의 이익이나 거대한 힘에 눌려 정의를 굽히지 않는 기개이다.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결국 그것이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 사람들의 존경(輿情快之, 여정이 그것을 쾌히 여김)을 받는 길임을 보여준다.
4. 行槖蕭然 (행탁소연): "떠날 때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관직을 그만두고 돌아갈 때 그저 몇 되의 식량뿐이었던 선생의 보따리는, 채움보다 비움이 더 어렵다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
교훈: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보다, 그 자리를 내려놓고 떠날 때 얼마나 깨끗한가가 그 사람의 진짜 가치이다. 탐욕을 경계하고 항상 자신을 정화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수은선생의 정신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여 가슴에 새길 만한 구절을 만들어본다며 이것이 아마 아닐까싶다.
"淸簡自牧, 仁恕爲治"
청간자목, 인서위치
(맑고 간소함으로써 스스로를 다스리고, 어질고 용서함으로써 세상을 다스려라.)
다시말해 수은 선생의 청렴함은 단순히 개인의 성품을 넘어, 가족 전체가 '도(道)'를 위해 감내해야 했던 숭고한 희생이었다. 이 수은 이홍조선새의 연보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 테마는 한산이씨 가문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존경받아 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실의 살아있는 기록이다.
2016년 1월 14일 해은 이대원이 글을짓다.
부록 보충설명
주요 한자어 및 발음 (요청 지침 준수)
不以煩官 (불이번관): 관청에 번거로움을 주지 않음 (관청 물건을 쓰지 않음)
粧奩 (장렴): 신부의 혼수 가구와 도구
吾道固如是也 (오도고여시야): "우리의 도는 본래 이와 같다"
家貧無長物 (가빈무장물): 집이 가난하여 남는 물건이 없음
行槖蕭然 (행탁소연): 보따리가 매우 쓸쓸함 (가진 것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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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은유고 저자 수은 이홍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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