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지하철 벽화의 최고봉,을지로3가
2001.3.10.토요일 딴지
문화유산 발굴팀
도대체
습관처럼
지나치는 곳들이 있다. 버스 정류장, 지하철 환승구, 집앞의
좁은 골목 등.
매일
걸어다니는 곳이면서도 세상 살기 바쁘다보니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기란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루만
조급한 마음을 접어두고 주위를 둘러보면 평소엔 무심히
지나치던 장소에서 색다른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니.
본지는
우리 주변에 있는, 그냥 지나치기 쉬우나 그러기엔 아까운
풍경들을 발굴, 소중한 문화 유산으로 보관하기로 하였다.
그
첫빠따는 서울 지하철 을지로3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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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자, 모종의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모월 모일 3호선 경복궁역으로 가던 길. 본사가
위치한 2호선 문래역에서 경복궁역으로 가기 위해선 을지로 3가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야만 했다. 여느때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숨긴 채 서둘러
환승구를 지나던 찰나..
"오옷, 이것은..."
환승구 양 옆에
펼쳐진 벽화를 발견한 본 기자, 모종의 사건이고 나발이고 다 팽개친
채 부랴부랴 통로의 벽화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으니, 왜 그랬으까나.
독자덜은 귀두를 세우고 함께 따라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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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3가 환승 통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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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3가 역은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이 교차하는 곳으로, 두 호선을 갈아타는 환승
통로가 있는 곳이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여느 맹숭맹숭한 지하철
내부와는 달리 뭔가 알록달록한 것이 화려하지 않은가? 본 기자가 주목한
것은 바로 양 옆에 주욱 그려진 벽화였던 것. 수십 개의 벽화가 아로새겨져 있는데 이 것이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묘한
그림이었단 말이시. 자, 그럼 이거뜰을 하나 하나 살펴볼까나? (단,
벽화마다 달아놓은 해설은 본 기자의 내맘대로 해석이니 독자 너의
생각과 다르다 하여 뻬인트 달걀 투척, 딴지 사옥 침투 지랄발광 등의
만행을 시도하는 건 허락치 않겠다)
본 통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캐릭터가 얘네들이다. 아톰 비스무레한 것이, 미키마우스
비스꾸레한 것이 어쩐지 친근감을 주는 캐릭터. 원래 있던 넘들인지
본 벽화를 그린 분이 창작한 것인지 건 모르겠다. 아무튼 이넘들이 자주
등장한다.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인사를 하고 있는데 두 사람이 똑같이
생겼다. 그리고 배경색이 화사한 노란색이다. 다름아닌 '인사를 잘합시다'란
주제. 내가 남에게 허리를 굽혀 공손히 인사를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 될 것이며, 그리하면 세상이 환하게 빛날 것이니..
벤치를 타고 물
위를 떠다니는 것도 심상치 않은데 그 물결이 바로 책에서 솟구치고
있다. 이는 책을 가까이 하면 지식의 파도가 일렁일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오른쪽의 인물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뒷짐을 지고 있고
왼쪽의 인물은 한쪽 신발까지 벗어던져가며 즐거워하고 있는데, 이는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어서 얼마든지 다른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라면인지 김치찌갠지, 아무튼
국물이 있는 벌건 음식을 앞에 두고 젓가락을 들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젓가락질에 삑사리가 났는지 내용물이 얼굴에 온통 튀고 있다. 무의식
중에 눈을 감기는 했지만 입을 벌린 채 즐거워하고 있는 주인공을 보라.
이는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잠시 어려운 상황이 있어도 여전히 좋은
것이다'라는 작가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도
잠시의 어려움 때문에 때려칠까 말까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위의 인물과 동일한 일문이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녹색의 산뜻함은 간데없고 음산한 회색 기운만이 감돌고
있다. 맥주잔을 잡은 손과 퀭한 두 눈, 힘없이 벌려진 입. 얼핏 보면
음주의 심각성을 외치는 것 같으나 딴은 그렇지 않다. 좌측 위에 몽실몽실
떠가는 방울 두 개를 보라. 삶이 힘겨워 술 한 잔을 놓고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생각하는 상징인 것이다. 경제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꿈을 생각하는 소시민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린 작품.
위 작품들은 세 개 연속 시리즈.
앞으로 자주 등장할 거란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모두 '뫼비우스의 띠'같은
둥근 선을 입을
통해 연결하고 있는데 그 복잡함이 점점 더하며 배경색도 진해진다.
세상 만사는 아무리 꼬인들 나에게서 비롯돼 나에게로 되돌아오며 그럴수록
삶의 깊이는 진해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시리즈. 눈여겨 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든 오묘한 작품이다.
뭔가 해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는 듯한 사람이 이마에 흰 띠를 질끈 동여매고 있다. 정열적인
붉은 바탕, 띠를 굳세게 쥐고 있는 옹골찬 두 손. 금방이라도 '맞짱뜨자!'며
달려나올 기세다. 그러나 아직 띠를 완전히 동여매지 않았다. 이제 막
매려고 하는 찰나인 것이다. 생각이 반이요 결심하는 것이 곧 이루어짐이니. 용기있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중생들이여, 힘을 내고 자신있게 시작할지어다!
위의 인물을 좀더 세밀하게
그린 것으로 사료되며 보기만 해도 위태로이 레코드판을 막대기로 돌리고
있다. 엉거주춤한 포즈와 떨고 있는 저 손을 보라. 표정도 아슬아슬하기
그지없다. 결심 끝에 그 어렵다는 판 세 개 동시에 돌리기를 시도했으나
난관에 봉착해 버린 안타까운 서사이다. 그러나 꼭 붙든 손을 놓으려는
기색은 추호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신념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굳은
의지! 가심이 숙연해진다.
많이 보아와서 알겠지만 다름아닌
핵폭탄으로 생긴 버섯구름. 우리의 주인공들이 놀란 표정을 하고 연기
속에 숨어있다. 핵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이렇게 담대히 표현한 작가의
의식이 투철하다.
왼쪽의 작품은 위의 버섯구름을
먼 발치서 보고 놀라는 대한민국 육군 병장의 모습. 위의 작품과 시리즈이다.
오른쪽 작품을 보고 혹자는
트렌치 코트를 입고 길거리에서 갑자기 앞섬을 펼치는 변태쉐이를 연상할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사회의 부조리를 명쾌하게 나타낸 작품. 대충
보기엔 한 개씩의 이불을 똑같이 소유한 평등한 집단으로 보이나 중심부에
선 한 사람만이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호기롭게 팔다리를 대자로 뻗고
있지 않은가. 이런 현실이 싫어 아주 돌아서거나 눈을 흘기고 있는 다른
네 사람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본 작품은 본 기자를 한없는
절망에 빠뜨려 버렸다. 본시 '돼지'라 함은 주체못할 정도로 뒤룩뒤룩
살이 찐 동물이 아니던가. 헌데 작품 속의 돼지는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비쩍 말라있다. 얼마나 못 먹었으면 입가에
주름이 패이고 한쪽눈의 쌍까풀이 풀릴 정도다. 그러나 이 작품의 핵심은
바로 돼지가 들고 있는 괭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지 않고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농사일에 나선 돼지의 모습이 눈물겹다. 그렇다. 삶은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것이다.
위의 돼지가 하루 농사일을
끝내고 돌아와 지친 몸을 눕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부자리. 얼마나
일에 찌들었으면 생명이 없는 베개를 의인화 시켜 바라보겠는가. 마음이
아파온다. 덮고 잠들 이불엔 날아가는 새와 푸른 잎사귀, 즉 자유롭고
싶은 마음을 고이 아로새겨 놓았다. 노란색의 담장은 담장 너머 멀리
멀리 뛰어가고 싶은 돼지의 소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
무리한 다이어트 끝에
피골이 상접한 지경까지 이른 것으로 사료되는 한 여성. 머리 위에 수박
껍데기를 뒤집어쓴 것으로 보아 수박 다이어트를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못 먹어 농업에 뛰어든 돼지가 있는가 하면 스스로 굶는 이도 있게 마련.
거울을 볼 때마다 수박 다이어트에 대한 투지를 불사르고자 가슴에 수박의
머릿자인 'ㅅ'을 그려놓은 것만 보아도 다이어트에 대한 집념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가 있다.
위의 여성으로 추측된다.
연속되는 다이어트에 심신이 황폐해진 자신의 모습에 분노, 죄 없는
벽을 걷어차니 일곱 개의 별이 번쩍일 만큼 강도가 높다. 공허한 두
눈과 볼품없이 빠진 머리, 앙다문 이빨 사이로 끝없는 다이어트의 심각성이
엿보인다. 곁다리로 말하는 거지만, 다이어트에 무리하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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