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20시간 정도 달려야 훈자에 닿는다.
우리는 전용버스로 2박3일 걸려 훈자에 도착했다.(첫날 오전에 탁실라에서 간다라 유적과 유물들을 구경하고 나란에서 1박, 다음날 길기트에서 숙박,다음날 오후에야 훈자에 도착했다.)
1. 탁실라
고대에 이곳은 3개의 큰 무역로의 교차점에 위치하여 크게 번영했다.
인더스 강 유역에 있어 모헨조다로와 하라파가 상고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이라면, 탁실라는 고대 시기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기원전 4세기 경부터 간다라 지방의 중심이었고, 인도-그리스 왕국과 인도-스키타이 등의 수도로써 헬레니즘 문명과 불교 문화가 함께 융화되어 발전한 다국적인 도시였다. 동시에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인도를 잇는 실크로도 도시로써 활발한 교역으로 번영하였고 특히 날란다 대학과 함께 고대 불교의 양대 교육 기관인 탁실라 대학으로 유명했다.
랜드마크인 다르마라지카 스투파
그리스식 장방형 도시 구조
박물관에 전시된 탁실라 출토 불상들(간다라 양식의 대표작들)
2. 파키스탄에서 가장 유명한 고개인 바부샤르 패스에서
바부샤르 패스(Babusar Pass), 이 고개를 넘어서부터 도로도 험하고 풍경자체가 삭막한게 완전 다른 세상처럼 달라진다
지그재그의 난코스로 최고점은 해발 4,173m이다.
3. 길기트 조금 못미쳐 위치한 칠라스(Chilas)에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3산맥(히말라야,카라코람,힌두쿠시)이 만난,지질학적으로 중요한 지점이다.
4. 길기트(Gilgit)는 한때 불교가 번성했으며, 예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도시가 별로 없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도회지로 손꼽힌다.
태국의 카오산, 이집트의 다합과 더불어 배낭여행자들의 세계 3대 '블랙홀'로 손꼽히는 훈자는 파키스탄령(領) 카슈미르인 길기트 발티스탄에 속한 지역으로 파키스탄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인도와 파키스탄은 이 카슈미르 지역의 영유권 문제로 인하여 1947년, 1965년, 1971년에 한 번씩 최소 3번에 걸친 대규모 전쟁을 치렀으며, 1971년에 벌어진 대전쟁에서는 파키스탄이 사실상 항복하고 동파키스탄 지역이 방글라데시로 떨어져 나가는 것을 승인하기도 했다.현재 이 곳에는 대규모의 군대가 파병되어 있으며, 카슈미르 지역의 45.1% 정도를 인도가 통치하고 있으며 나머지 38.2% 정도는 파키스탄의 영유권 하에 있다. 인도는 현재 잠무, 카슈미르 계곡, 라다크, 시아첸 등을 포함한 잠무 카슈미르 지방 전체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파키스탄은 이 주장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현재 파키스탄은 자국이 영유하고 있는 카슈미르 지역에 아자드 카슈미르, 그리고 길기트발티스탄이라는 2개의 자치구역을 세워 따로 관리하고 있다. )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로 유명해진 훈자는 일본인에게는 꼭 가보고 싶은 ‘꿈의 여행지’로 꼽힌다.
미르의 통치를 받는 한 작은 공국이었다가 1947년 파키스탄에 합병되었다. 훈자 강 서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힌두쿠시 산맥에서 카슈미르 골짜기로 내려오는 여행자들의 숙박지 역할을 한다.
이런 아름다운 마을을 사방에서 내려다보는 건 하나같이 꼭대기에 눈이 쌓인 산들인데, 그냥 산도 아니고 저마다 상당한 높이와 절경을 자랑하는 곳들이다. 훈자를 대표하는 라카포시, 울타르 사르(Ultar Sar), 여인의 손가락(Lady Finger)이라고 불리는 특이하게 생긴 암봉까지 모두 해발 6000m 넘는 장엄한 봉우리들이 훈자의 모습을 더 매혹적으로 만들어준다.
라카포시와 같은 눈 덮인 산봉우리들과 울타르와 같은 거대한 빙하 및 깊은 골짜기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길기트에서 산길로 난 도로를 통해 통행이 가능하다.
6,000m 이상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에 위치하지만 비교적 온화하고 건조하여 쾌적한 기후를 유지하고 있다. 경사지를 이용한 계단경작지에서 감자·밀·옥수수·야채·살구·사과·체리 등을 재배한다.
과거에는 훈자 왕국이었고 청나라와 책봉-조공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였으나 영국의 침략을 받아 영국의 보호령이 되어 영국에 복속되었다. 왕조 자체는 유지되었고 1947년 파키스탄이 독립하면서 파키스탄의 지배 지구에 속하게 되었다. 파키스탄이 공화국으로 독립했지만 명목상의 왕(Mir)이 한동안 존재했는데 1974년 9월 25일에 자치권이 박탈되면서 왕조도 사라졌다.
훈자인 들은 오지에 고립된 탓인지 얼굴의 생김새가 여느 파키스탄인 들과 다르다. 파란 눈과 곱슬머리가 있는 사람들을 지금도 간혹 볼 수 있다. 치트랄(Citral) 지방, 칼라쉬(Kalash,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라는 뜻)지방과 더불어 이곳을 알렉산더 원정 이후 남은 그리스 군인들이 자손을 퍼뜨려 지금에 이른다는 가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무슬림이지만 시아나 수니파가 아니고 이스마일리 계통이며 언어도 전세계 어디에도 계보가 닿지않는 ‘부루샤스키어’라는 것을 쓴다. 바로 아랫마을인 가네시 사람들이 쓰는 말과도 다르다.
이는 이들이 오랫동안 그들만의 독자적인 문명을 일구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훈자는 훈스(Huns)라는 말에서 기원한 것으로 화살이란 뜻인데, 활을 잘 쏘아서 그렇게 불린 것이라고도 한다.
훈자 왕국은 11세기에 최초로 알티트, 카리마바드, 가네쉬 마을이 모여 만든 부족 국가 형태였으며 18C 까지도 이 세 마을이 훈자 왕국의 전부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아래 강가 쪽에 알티트(Altit) 성이 건축되어 왕궁으로 사용되어 졌으며, 발티트 성은 13세기에 만들어 졌다.
파키스탄에서 훈자식 식단은 건강식으로 진작에 유명해져서 건강관리한다는 사람들은 훈자식 식단으로 끼니를 채우기도 하고 서구권에서는 '샹그릴라'라고도 부르며 유토피아적인 지역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훈자 마을 자체는 1980년대에 카라코람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전에는 맛보기 힘들었던 아이스크림, 탄산음료, 냉동식품 등 인스턴트 식품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젊은층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대거 이주해오는 등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100세 넘게 장수하는 노인들의 수가 줄어들어 예전의 명성은 퇴색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5. 알티트성(Altit Fort) 에서
약 900년전 훈자강 바위절벽 거대한 암반위에 건설된 알팃포트는 원래 훈자 왕국 통치자들의 거주지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6. 독수리 둥지(Eagle's nest) 전망대에서
해발 2,850m의 듀이카르 전망대는 훈자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사방의 고봉들과 훈자 계곡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라카포시(7,788m), 울타르 사르, 골든 피크등 거대한 설산들(무려 17개)을 360도 파노라마뷰로 감상 할 수 있는 곳이며 특히, 일출과 일몰 경관으로 유명 하다.
한자리에서 이 모든 봉우리들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도 드물어 히말라야 마니어들에게도 성지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이글스네스트는 언덕 위에 독수리 모양을 한 바위가 있어서 그렇게 명명했다
7. 발티트 성(Baltit Fort)에서
티벳트 영향으로 티벳풍 건축양식이 혼합된 것이 특징으로 13세기에 건축.
현재는 훈자 왕가의 생활상과 유물들을 전시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