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 있어도 부자가 될 관상
어느 한 사람이 젊은 시절 유명 관상가에게 관상을 보았다.
“당신 얼굴은 복이 많아 누워만 있어도 부자가 되겠소”
이 말은 들은 젊은이는 그 후 일도 안하고 게으름을 피우고 방안에서 뒹굴기만 했다.
누가 일을 왜 안하냐고 물어보면
“내 관상이 복이 많아서 누워만 있어도 부자가 된다고 한다네.”
결국 이 사람은 나이 들어 굶어죽으면서 아내에게 말하기를
“내가 관상가에게 속아서 인생을 망쳤다. 관상을 믿지 말라.” 한탄하면서 죽어갔다.
아내가 그 관상가를 찾아가 따지고 원망하자 관상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의 운명은 인간으로서 노력을 다할 때 그 본모습을 보여주는 법, 최선을 다하면 타고난 운명을 좋게도 만들 수 있소. 누워 있어도 부자가 된다는 말은 그만큼 복이 많다는 비유지 진짜로 누워서 최악의 게으름을 피우라는 말은 아니었소”
운명이나 사주를 보고 믿는 것은 좋으나 도가 지나치게 맹신하는 것은 역술인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참고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좋은데 사람에 따라서는 생활의 사소한 것까지도 문의하니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겠다.
얼마 전 <설 특집>으로 모 방송국에서 역술인과 무속인들을 테스트한 방송이 나간 적이 있는데 우선 역술에 대한 세간의 기대치가 학문이 발전되어 있는 수치이상으로 높아 마치 조선시대 전설적인 인물들을 검증하듯 한 점에 다소 문제가 있다.
우선 역술인 입장에서, 평소 아무리 상담을 많이 하여도 범죄자를 몇 명이나 상담해본
경험이 있었겠는가.
더구나 사람을 수십명 살상한 사람을 만나보았겠는가.
물론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역술인에게 1차 책임은 있겠지만 학문의 영역이상의
잣대를 들이댄 것도 문제가 있다.
<관상보다는 심상(心相)>이 우선하는 것이다.
아시아 투데이에 실린 필자의 칼럼임.
출처: 공주대학교대학원 동양학과 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