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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늦잠에 늑장까지 부렸습니다.
회관을 나서니 벌써 10시가 넘었습니다.
혹시라도 해군들 경찰들 쳐들어 올까봐 부랴부랴 서두르는데
덜말린 뽀글이 파마머리의 어머님께서 오토바이를 폼나게 세우시더니
"중덕 가나?"
"네 어머님~~~~~~"
온갖 알랑방구 뒤섞인 어투로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어머님 어깨 꼭 붙들어매고 중덕으로 갔습니다.
가는 길에 해군이 버스로 올레길을 막자 우리 어머님, 시원스레 한마디 날리십니다.
"역정놈들.. 아무리 지꺼려도 흥청망청이래"
여전히 제주 방언에 헤매지만, 말이야 어찌됐든 아침부터 만난 해군들 보고 욕 안할 사람 누가 있을까요.
미움이나 분노 그리고 슬픔 이런 것들이야 노력하지 않아도 만나게 됩니다.
지나가다가도 아침부터 해군 마주치면 웃다가도 화내는 게 그런 이치입니다.
웃음이나 기쁨도 마찬가지지요.
필사적으로 공사를 막다가도 종환삼촌이 밥 먹자고 하면 다들 박수치고 웃는 것이 같이 이치입니다.
지금 구럼비는 노력하지 않아도 만나는 것들이 있지만
저마다 경작하듯이 노력해야 만나지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행복입니다.
구럼비의 행복, 붉은발 말똥게와 그외 친구들의 행복, 연산호의 행복
강정마을 공동체의 행복, 제주도의 행복, 그리고 구럼비 지킴이들의 행복까지도...
5월 25일, 구럼비에서 저마다 행복을 경작하는 이야기.. 시작합니다.
#1. 정다우리 라는 친구입니다. 18살입니다.
강정에 온지 일주일이 되가는데, 이곳 강정에 온 기억을 그림으로 추억하느라 바쁩니다.
#2. 기억나는 모습이 없는 것 같다며 머리를 긁적이더니 벌써 이만큼이나 그렸습니다.
어! 종환삼촌과 중덕이구나.
#3. 아버지가 강정마을에 한 번 가보라는 권유로 혼자서 자전거 타고 이곳 강정에 온 친구입니다.
일주일간 알게모르게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이 날 하루종일 이 친구와 함께 있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다울아 지금 18살인데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돼?
"그냥 집에서 농사짓고 다니고 싶은 곳에 가는 거요."
"그럼 다울아 꿈이 뭐야?"
"어... 아직 모르겠어요."
"그럼 전에 하고 싶은거나 되고싶은 건 뭐가 있었어?"
"..............."
제 질문이 이대로 끝나는가 싶었는데 다우리가 대화 끝마디에 한 마디 던집니다.
"세계에 가서 밥 못 먹는 불쌍한 사람들 도와주고 싶어요."
그 말을 듣고 저는 이녀석도 어쩔 수 없는 친구구나 했습니다.
어딘가에서 옳은 것을 말하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그런 삶을 살겠죠.
문득 떠오르는 송강호 박사님 말을 빌리면
"십대에 이런 걸 경험하다니.. 인생 조질 수 있는데.. ㅎㅎㅎ"
송강호 박사님! 저도 인생 조져도 다같이 아파하고 기뻐하면서 그냥저냥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고보니 구럼비에 밥 못 먹는 불쌍한 사람들 밥 먹이는 분이 계시네요.
종환삼촌 너무 감사합니다!
#4. 비바람이 불어도 올레꾼들 발걸음은 끊이질 않습니다.
조용히 다가오시는 여자 올레꾼 한 분이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했는데 귀에 이어폰을 끼고 계셨습니다.
"커피한잔 드릴까요"
라고 눈맞추며 이야기했는데 미소만 보여주시고 그냥 가셨습니다.
그러고나서 우르르 몰려오는 올레꾼들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 찰나에
그냥 가신구나라고 생각했던 올레꾼이 다가오시더니
"그냥 갈 수가 없더라고요. 힘내세요."
라며 만원 한장 꾸깃꾸깃 수즙게 놓고 가셨습니다.
맞습니다. 이 바다를 보면 그냥 갈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5. 중덕 천막 한켠에서는 어제 베어 온 대나무에 현수막을 열심히 달고 있습니다.
의례회관에 현수막이 아직도 많이 널려져 있는 걸 보니 다음날도 계속 만들것 같습니다.
#6. 정말 하루종일 대나무 앞에 허리 숙이면서 현수막만 만드셨습니다.
왕년에 현수막 많이 만드셨다며 "이쯤이야 뭐" 라며 계속 만드셨습니다.
#7. 비행기 날개 마냥 바람타는 현수막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색깔입니다.
글씨 만큼이나 눈에 띄니 다 들고 있으면 장관일 듯 합니다.
#8. 19일 대림에서 천막 어질러 놓고
23일 바람까지 불어와 다시 정리한 천막 어질러 놓으니
삼촌이 고심한 끝에 구럼비 바위에 천막을 고정시키기로 합니다.
옆에서 도우려 해도 비키라고만 하십니다. ㅜㅜ
그냥 말동무 해드리는게...
"삼촌 오키나와에 중덕이 비슷한 개 사진 봤는데 정말 그렇네요."
"ㅎㅎㅎ 신기해. 어떻게 그렇게 똑같아아."
"중덕이가 훨씬 잘 생겼어요."
"ㅎㅎㅎ 중덕이가 그놈보다 반대운동 더 잘할거여"
그렇죠. 아까도 국방 무늬 입고 온 올레꾼 보고 막 짖는 거 생각하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9. "아 이제 여서 밥을 수 있겠다" 라는 말에 계속 싱글벙글 이셨습니다.
"대림놈들 우리 잘못 건드리거야."
"맞아요. 우리 더 단결하잖아요.ㅎㅎ"
"이것들이 바보같아서 말이지.. 우리 단결하게 해주고..ㅎㅎㅎ"
수십명 백명 와도 밥 걱정 안된다며..
밥 못 먹는 불쌍한 사람 먹여주시는 그 맘.
저 중덕 바다 만큼이나 넓습니다.
#10. 저렇게 집집으로 모여 있으니 마을 같습니다.
할망궁에 굴뚝의 연기가 나는 듯 한 그림은 더욱 느끼게 합니다.
#11. 새벽에 긴급 작전이 있었습니다.
올레길에 함부로 철근 못 박게 하려고 콘테이너 옮겨다 놨습니다.
땅만 보이면 자꾸만 시멘트 덮고 철근 박으려고 하니 이렇게라도 막아야지요.
구럼비 지킴이들.. 이제 특수부대 저리가라 입니다.
저도 놀랐습니다. 이걸 언제 어떻게 심지어 누가 갔다놨는지 묻기 전에는 알 길이 없었으니까요.
#12. 이건 누구 땅?
강정마을 곳곳에 노란 막대에 빨간 천 하나 매달아 놓고 땅에 꽂아 놓은 것들이 보입니다.
땅 뺏는게 일이 아니라는 거 알지만 참 쉽습니다.
그런데 소심하기 그지없습니다.
#13. 깃발 수준이 저래서야... 이 정도는 되야지요!
하늘 높이 솟아 오른 이 깃발이야 말로 승리의 깃발이 될 것입니다. 불끈!
#14. 생명평화결사 순례단장님... 백일 순례를 다 마치고도 한달에 절반은 강정이 머무신다고 하십니다.
많은 연세에도 젊은 분들 열정과 헌신 못지 않으십니다.
이 날 양윤모 선생님 법원 공판이 있었는데 직접 가셔서 손가락으로 한명 한명 지적하며 이렇게 외치셨답니다.
"변호사, 검사, 판사!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요. 사람을 살려야 하지 않습니까"
혹시나 경찰에 연행되실까봐 컴퓨터 바탕화면서 유서 비슷한 거를 써놓고 가셨다고 합니다.
온 몸으로 포크레인이 구럼비 바위 깨는 것을 막으시지 못하는 답답한 마음..
감옥에 들어가셔서 단식에 함께 동참하고 싶으시다는 그 말씀에 숙연해집니다.
#15. 중덕이 열성팬입니다.
학교 끝나면 친구들과 놀고 싶어할 텐데..
중덕이는 녀석.. 노력하지 않아도 이쁜 여인들 몰려드니..
중덕이는 참 행복할 겁니다. 능력자!
#16. 중덕이는 종환 삼촌 기다리는 게 제일 힘듭니다.
바람결 따라 종환삼촌 목소리가 들리는지 종환삼촌 계신 곳만 보고 있습니다.
사진 찍고 보니 엉덩이 그림에 아침부터 실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ㅎ
#17. 언제나 그렇듯 바람 타고 음악이 울려퍼지는 중덕..
#18.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지키는...
그런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저마다 행복을 경작하는 이곳..
#19. 27일 천막 철거 경고를 맞고도
이렇게 웃어도 중덕은 긴장감과 비장함이 교차하며 짙게 깔려 있습니다.
나와 우리 모두 그리고 구럼비의 생명체의 행복을 열심히 경작을 하다 보면
분명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큰 수확을 하게 될 거이라 믿습니다.
행복이 수확되는 날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지금보다 그 때가 더 행복했어"
전국 각지에서도 행복을 경작하는 다양한 도움들이 있어서 든든합니다.
여러분 오늘도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그대들..
첫댓글 행복을 짓는 농사꾼들이 전국에서 계속 몰려들고 있습니다^^